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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보물창고 스크랩 앵글에 비친 석굴암의 100년...
달빛청암 추천 0 조회 28 09.12.02 00: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앵글에 비친 석굴암의 100년

내달 1일부터 서울 불교중앙박물관서 최초의 사진첩 등 전시


 


 

석굴암이 처음으로 사진에 담긴 지 만 100년 만에 석굴암을 단일 주제로 한 최초의 전시가 '석굴암 백년의 빛'이라는 이름으로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조계사 경내에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조계종 총무원과 동국대가 공동 주최하는 이 전시에는 260여 건 1,000여 점의 사진과 책자등이 나온다. 1909년 12월 동경제대 교수 세키노다다시(關野貞) 일행이 찍은 석굴암 본존불 사진, 경주에 있던 전문 사진회사인 토요켄(東洋軒)사진관이 1912년 늦가을(추정)에 본존불과 36개 조각상 전부를 최초로 담은 사진첩 '신라고적석굴암석불' 등 다수의 미공개 사진이 전시목록에 포함됐다.

이번 전시회 도록을 겸한 단행본 < 석굴암 백년의 빛 > 을 집필한 성낙주 석굴암미학연구소장은 26일 열린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석굴암이 버텨낸 근대 100년의 영광과 수모의 역사를 사진을 통해 되돌아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책은 석굴암 배치의 과학성, 미학적 황금비 등 문화사적, 예술사적 분석보다는 다양한 사진과 문헌자료를 통해 바라본 한 세기의 석굴암 이야기를 통사적으로 전하고 있다.

성 소장은 다만 '아침 햇살이 석굴암 부처님의 백호(白毫ㆍ부처의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털)를 비춰 그 반사된 빛이 자비광명의 세상을 밝히고…' 하는 식으로 묘사돼 온 이른바 석굴암의 '햇살 담론'은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이 논리는 전각을 갖춘 석굴암의 구조상 불가능한 이야기이며,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숭배하는 일본이 그들의 신앙적 해석을 석굴암에 투사한 식민지문화론의 흔적이다.

이 같은 해석이 일제가 만든 조선총독부 교과서에 수록됐고, 해방 이후에도 국어 교과서에 실린 미술사학자 윤희순의 글 '토함산 해맞이'처럼 맹목적으로 재생산돼왔다는 것이다.

일본 사학자 야나기 요네무시(柳宗悅)가 여러 책에서 "화창한 태양빛이 바다를 건너 굴원의 불타 얼굴에 닿았을 때… 불타와 그를 둘러싼 여러 불상이 놀라운 새벽 햇살로 선명한 그림자와 흐르는 듯한 선을 보인 것도 그 순간이었다" 운운했던 것도 당시 석굴암 전각이 훼손돼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해석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성 소장은 "석굴암의 예술적ㆍ종교적 가치는 학문적 분석의 치장 너머에서 유구의 세월 동안 경이롭게 빛나고 있는 '미의 천체도'"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과 함께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1

751년 창건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석굴암이 필름에 처음 담긴 것은, 알려진 바 올해로부터 100년 전인 1909년 4월이다. 을사늑약 직후 설치된 조선통감부의 부통감 소네 아라스케(曾?荒助) 일행이 석굴암을 둘러본 뒤 찍은 이 단체사진에서는 제복 차림의 한 일본 관리가 본존불의 무릎 위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사진 2

해방 이후의 가난과 전쟁, 분단의 질곡에 석굴암은 한동안 관심 바깥에 머물러야 했다. 1913~15년 당시 조선총독부는 석굴암 석실 법당 본체를 해체한 뒤 시멘트로 전면 개축했다. 이 과정에서 전실 전각이 사라진 석굴암은 기차터널을 방불케 하는 외관을 갖게 된다. 1951년김한용이 찍은 사진 속 본존불은 새똥과 이끼, 곰팡이,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다.

#사진 3

석굴암에는 신라인의 종교적 열정과 참된 아름다음을 향한 예술적 영감이 함께 빛나고 있다. 그 열정과 영감이 최고의 통일적 미감으로 맺어진 석굴암은 민족의 유산을 넘어 199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일보/최윤필기자 2009.11.27>

 


 사진마다 석굴암의 역사가 담겨 있다.

1910년 사진에선 석굴암의 내부 천장이 뚫려있다.

1911년이 지나면서 본존불 입술에 색을 칠한 사진도 더러 보인다.

한국전쟁 때(1951년)는 새의 배설물과 이끼·곰팡이 등으로 본존불이 심하게 오염돼 있다

 

 

100년전의 석굴암

1909년 일본 미술사학자 겸 고건축학자 세키노 다타시가 촬영한 석굴암 본존불

 

 

새똥이 내려앉은 석굴암 본존불.

 1951년 김한용 촬영

 

 

 

 

 

 1913년 석굴암 해체 수리 당시 무렵

 

 

1952년의 석굴암

전실과 전각이 없는 석굴암

 


 

뒤바뀐 석굴암과 불국사

일제시대에 간행된 경주도회도 중 석굴암과 불국사 부분. 두 사찰 위치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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