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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름 전에 처형 아들 결혼과 매월 둘째 일요일 수원 친구들 산악회가 잡혀있었던 터라 5월 8일, 9일 양일간 일정을 접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불씨가 꺼지지 않아 결국 무리수를 두기에 이른다.
금요일 밤늦게 ‘권영우’로부터 강원도 지역 두 구간 종주를 위해 강릉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는 연락이 왔다. 동요된 마음을 진정하기는 이미 글렀다. 확신은 없었지만 틈새를 노리기로 하고 ‘권’에게 일단 9일 산행을 알렸다.
사전 포석으로 산악회 회장과 재무총무에게는 집안 혼사를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 일이 되려고 부산의 처남과 홍성의 큰 처형이 예식 직후 바로 내려간다며 서울역까지 콜택시를 예약하는 것을 보고는 구체적으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작은 애를 을지로에 내려주고 나서 산에 간다고 이실직고하니 일요일 텝스 시험이 있는 큰 애가 약간 아쉬워했지만 집사람은 묵인하는 눈치다. 뜻밖에 두 문제가 해결되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당연히 산행준비다.
이번 배낭도 뒷동산 오르는 수준으로 꾸렸다. 민박과 휴게소가 있는 구간에 대한 요령이다. 오후 6시경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마침 20분 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허기만 면할 요량으로 어묵하나 사고 바로 올랐다. 어묵 천 원에 버스비 만 3천 2백 원이다.
장평, 진부를 거쳐 횡계에 도착한 시간은 9시 조금 넘어서다. 택시를 타고 일러준 민박집에 도착했다. 택배와 민박을 겸하고 있는 이런 형태의 집은 소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닐까 한다. ‘권’이 동네사람 차림으로 금방 나온다.
방에 드니 구석에 놓인 탁자 위에 엄청난 양의 드릅이 쌓여 있다. 그것도 청정 강원도에서 채취한 순도 100% 자연산이다. 눈앞의 드릅을 그냥 놔두고 지나칠 수 없어 시간도 거리도 뒤로 하고 몰입했단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친구다.
목살에 반주를 곁들인 늦은 식사를 하면서 가지고 온 두릅을 실컷 먹었다. 입안 가득히 봄 향기가 느껴진다. 취기도 적당히 오른다. 나물도 먹고 물도 마시고 했으니 이젠 팔베개하고 눕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중에 드릅을 보던 집사람이 귀한 것이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함에 반으로 나눠주는 것을 그냥 받기 미안해 한 움큼으로 줄인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 친구가 사양하는 내게 한 번 더 권하지 않았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새벽 3시 어김없이 핸드폰 기상 벨이 운다. 이번에는 ‘권’이 미리 준비해와 직접 요리를 한다. 누룽지 먼저 끓이다 김치와 라면을 넣은 것이 특이하다. 구수하고 시큼한 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고 훈훈한 기운이 오래가면서 든든하기도 하다.
5월이 시작되고 우리는 두 번 만나 ‘권’은 4개 구간을 나는 2개 구간을 이미 소화한 상태다. 이런 나도 아직 근육이 뭉쳐있는데 식사 준비로 무거운 배낭을 지고 드릅도 따면서 한 구간을 다시 추가한 이 친구는 어떨까 궁금하다.
대체적으로 산악회 주관 종주는 한 달에 두 구간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행보는 염려가 되는 수준이다. 이럼에도 아무런 내색 없이 지도를 보며 구간을 점검하는 ‘권’의 모습은 장하기까지 하다.
민박집에서 대관령 입구까지 6㎞거리고 택시로 6천 원이다. 횡계 토박이 기사가 다음에 오면 민박값 2만 원에 만 원만 더하면 목욕탕이 딸린 좋은 여관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들머리에서 ‘권’이 밀짚모자를 두고 왔다며 난처해한다. 그 모자가 어떤 것인가. 만 원에 합의를 보고 당연히 차를 돌렸다. 방에는 밀짚모자는 물론 내 모자도 있었다. 우리 셋은 허탈하게 웃었다. 고추나 제대로 달려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구간은 대관령에서 시작하여 선자령, 곤신봉, 매봉, 소황병산, 노인봉을 거쳐 진고개로 내려오는 25.8km다.
다시 입구에 선 시간은 오전 5시다. 들머리가 심한 오르막이 없었던 성삼재 보다도 더 완만하다. 아니 아예 평지다. 그간 흘린 땀과 눈물에 대한 보상인 지 두 구간 연속으로 횡재를 했다. 이런 대간 길도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하다.
헤드랜턴 없이 시작하기도 처음이다. 배낭도 물 한 병과 막걸리 외에는 갈아입을 속옷뿐이라 맨몸으로 걷는 기분이다. 바람도 선선하고 야생화도 지천이다. 사람은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르면 딴 생각을 한다더니 남은 구간도 이랬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30분 정도 휘파람 불며 걷다 보니 대규모 벙커를 철거하고 생태계를 복원 중인 현장이 나온다. 벙커에 사경도 그리던 내 군대 초년 시절이 생각난다. 이때 요란한 징소리가 들린다. 국사성황당 쪽에서 나는 소리다. 이 새벽에 요란하게 징 두드리는 사연은 그만두더라도 오싹함은 피할 수 없다.
아직은 가다 만나는 작은 오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편안한 길하다. 오래전 화전민이 터전을 일궜을 흔적도 곳곳에 보인다. ‘권’이 그런 곳을 육산이라고 해서 그간 흙길은 모두 육산으로 알았던 정보를 수정했다.
1시간 20분 동안 6.2㎞를 걸어 선자령 정상에 섰다. 다른 구간 초반이면 3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리다. 이것만으로도 이 구간 초반부가 얼마나 수월한 지 알 수 있지만 그동안 쌓인 내공을 바탕으로 이런 기록을 만든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이 기록에 고무되어 다시 6㎞ 정도 떨어진 매봉까지 8시 도착 목표를 세웠다. 지금이 오전 6시 20분이니 1시간 40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이때 고개 바로 밑 초소 쪽에서 대간 출입을 금하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찜찜하지만 가야할 길이다.
선자령은 해발 1,157m 높이로 강릉시에 소재한 고개로 대관령 길이 나기 전에 영동 지역으로 가는 나그네들이 넘나들었다 하고, 남한강 상류가 되는 송천이 시작되는 곳이며, 축산을 위해 백두대간에 이르는 산줄기 부분까지도 비포장도로로 개설하였다고 하고, 명칭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놀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목장 비포장 길을 따라 완만한 능선을 걷다보니 해발 1,000m 라는 높이를 잊게 된다. 이곳 역시 출입을 제한하여 안내 리본이 없다. 대간길을 정확히 밟고 지나는 지 확인할 길이 없어 그저 감각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목장은 대관령 일대 600만평의 고산 유휴지를 개척하여 초지로 일구어 우리나라 산지 축산을 선도한 곳으로, 서울 여의도의 7.5배에 해당하는 넓은 면적에 대단위 풍력단지도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1년에 150일 가량 30초도 서 있기조차 힘든 센 바람이 분다고 한다. 그 거센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사업은 전기도 얻고 낭만적인 분위기도 제공해 관광 산업에도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도로를 걷다보니 곤신봉 정상 표지석이 나온다. 평지로 착각할 정도로 봉우리 맛을 잃었다. 이곳에는 사유지로 출입을 금지한다며 적발될 시 목장견학 입장료조로 성인에게는 7천 원을 물린다는 안내문이 있다.
조금 더 가니 동해전망대가 있다. 목장 견학 관광객을 위한 곳이다. 전망대에서 동해 바다가 보인다고 하나 흐린 날씨로 올라갈 이유는 없었다. 앞 쪽으로는 조성되어 있는 목초지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임도와 초지를 반복하여 걷다 보니 어느 작은 능선에 매봉에서 노인봉까지는 비지정 법정탐방로로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있다. 이곳을 지나니 초지 한가운데 노송 단 한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무리 초지가 고기와 우유라고 해도 감히 옮길 생각을 접을 정도로 잘빠졌다. 당연히 이 장면도 디카에 담았다.
초지만 보고 가다 오랜만에 관목 사이를 헤치고 올랐다. 표지석은 없으나 등산로 입구를 나무 울타리로 막아놓고 출입금지안내를 한 것을 보니 매봉이 분명하다. 울타리를 넘어 막걸리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데 반대편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대관령 출발 후 처음으로 사람을 보니 반갑다. 인사를 나눠보니 경남 사천에서 왔단다. ‘권’이 산골 사람들이 대간을 탄다며 재미있어 한다. 이들은 고장의 낙남정맥을 여러 번 완주하고 다시 대간에 도전중이라 한다.
우리는 출입금지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공공의 적들로 당연히 감시인 배치 정보를 나눈다. 우리 진행방향인 소황병산에서 감시가 심하다고 하며 우회 길을 알려준다. 나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나 ‘권’이 수긍이 가는지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매봉 일대도 야생화가 널렸다. 종류가 적은 것이 흠이지만 같은 종류라도 개화 시기가 달라 여러 모양을 담았다. 버들강아지도 담았다. 이 근처는 소황병산 정상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고 자연적으로 조성된 초원지대도 있다.
지금까지 지나온 목장 길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획일적인 푸름만 있었다. 기계로 다듬은 것과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은 천양지차다. 전경에 빠져있는 ‘권’에게 동유럽 초원지대가 연상된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서 보니 봉우리 전체가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지라 작게 보이는 정상 구조물이 표지석 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능선에는 건초 더미가 널려있는 모습도 보인다. 저 위를 우리가 걷는다면 아래쪽 감시원들 눈에 쉽게 뜨일 것이다.
다시 반대편에서 많은 수의 등산객이 온다. 몇 마디 나눠보니 이들은 일반 등산인들이라 정보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소황병산 입구에 오니 역시 나무로 울타리를 둘렀다. 길은 두 갈래다. 이곳만은 자연에게 양보하자는 안내문이 인상적이다.
주변을 관찰하던 ‘권’이 울타리 쪽을 택하잖다. 오다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이 선 모양이다. 몇 발 전진하다 보니 이곳 역시 야생화 밭이다. 디카에 담고 나니 이 친구는 벌써 저 멀리 가고 있다.
서둘러 간격을 줄이다 보니 이번 구간에서는 비교적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 나온다. 우측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물도 보충할 겸 잠시 쉬어가기 위해 내려갔다. 낙엽 쌓인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이 작은 폭포가 되어 내려오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 사이에 ‘권’은 물을 마시고 얼굴도 씻는다. 산에서는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자주 보여준다. 대간 길에서 물을 만나는 것은 극히 드믄 경우다. 대체적으로 물을 만나면 제 길이 아니라고 한다. 여기는 계곡을 우측으로 끼고 오르니 산자분수령 이론에도 어긋나지 않고 아르바이트도 아니다.
정상에 오르니 다시 나무 울타리로 막혀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입구 근무자를 피해 오른 우회도로가 맞았다. 정상 아래에 감시초소가 있다. 초소에 근무자가 없는 것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밑에서 본 것 같이 정상은 나무 한포기 없이 초지로 조성되어있고 정상 표지석도 아래에서 보던 그것이다. 제법 큰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건초 더미도 널려있는 것을 보니 사람 통행이 자주 있는 모양이다. 그런 사정이면 굳이 출입을 통제할 필요가 있을까도 의문사항이다.
‘권’이 정상을 넘어 길을 판단하려는 것을 만류하고 초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간 종주를 경험자 없이 한다는 것은 어쩌면 모험이다. 더구나 이 구간처럼 출입이 금지된 곳은 아무런 안내가 없이 방황하기 일쑤다.
초소 뒤에도 나무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 주변 안내도가 있기는 한데 오면서 보던 것과 현위치 표시까지 똑같은 것이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지도를 꺼내 현장과 비교를 하고는 울타리를 넘었다.
길이 뚜렷하게 나있는 것을 보니 일단은 안심이다. 이곳에서도 흐드러진 야생화로 인해 눈이 현란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뚜렷한 길이 이어진다. ‘창배’ 선배가 늘 강조하던 대간길 표본이다.
10여 분 진행하다 ‘권’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방향이 강릉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하다는 것이다. 나도 내리막이 이어지는 것에 의문을 품고 지도를 다시 보자고 했다.
일단 등고선 단면도는 내려가게 되어 있어 그 부분은 해결되었으나 이 지역부터 대간 줄기가 강원도 내륙으로 휘어들어가는 것이면 지금 우리 진행 방향이 동해 쪽이니 아르바이트라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권’은 소황병산 너머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 못내 서운한 모양이다. 다시 초소로 와서 지형지물을 살폈다. 좌측 봉우리가 황병산이 분명하다는 것 외에는 판별이 힘들다. 황병산 정상은 중요 군사 시설이 들어서 있어 그런지 지도에 표시도 없다.
선행자에게 자문을 구하려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새벽에 우리를 태워준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황 없는 설명이라 역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러는 동안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간다.
얼마동안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던 ‘권’이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실마리를 푼 모양이다. 그 단서는 소재지로 노인봉이 강릉시에 있었던 것이다. 장고 끝에 악수가 나왔다고 바둑 격언을 인용한다. 이런 것은 내가 써야할 것인데 이것마저 선수를 친다.
어디쯤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줄 수 있는 안내문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 헤매지는 않았을 것인데, 아무리 금지구역이라도 이런 식으로 해야만 하는 것일까. 출입을 절대 금하려면 목장도 폐쇄하고 감시인들도 들어오면 안된다. 로멘스와 불륜의 논리다.
다시 울타리를 넘다 보니 나무막대 페인트가 많이 벗겨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다. 침착해지니 안보이던 것도 보인다. 한 시간 이상을 실속없이 보냈다. 같은 길을 가고 오고 다시 가는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노인봉까지도 완만한 능선에 돌멩이도 하나 없는 부드러운 흙길이 계속 이어지고, 길 양쪽으로는 야생화가 지천이라 걷는데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요 며칠 사이에 평생 본 야생화 몇 배를 보고 있다.
이러는 나와 달리 전날 종주에 식사준비로 무게가 더해진 ‘권’은 평소와 달리 걸음이 무겁고 물도 자주 마신다. 결국은 먹어서라도 배낭 무게를 줄이자며 식사 자리를 잡는다. 아직도 배낭에 2인분 음식이 남아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오늘도 나는 무임승차다. 내가 오늘 가지고 온 것은 막걸리 두 병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용히 있는 것이 예의다. 나눠준 밥과 멸치 고추장조림, 마늘장아찌, 삭힌 고추에 김치 모두를 깨끗이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더 가니 철거하지 않은 제법 큰 철판에 지나온 길과 남은 길을 정확하게 안내는 그림이 있다. 제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은 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남은 길도 이젠 멀지 않다. 우측 높은 봉우리는 등산객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곳이 노인봉이라면 많은 인원이 들어왔다는 것은 감시원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번 산행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편안하게 산길을 줄여 나갔다.
나는 틈새를 노려 야생화를 담느라 지체했다. 세 종류의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때로는 홀로 있기도 하고 나무, 돌멩이, 잡초와 어울려 연출하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예전처럼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전문가가 아니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풍족하면 넉넉해지는 것이다. 돌아와 현상해보면 그때의 느낌이 담긴 것은 소수지만 찍는 순간만큼은 부자다.
길도 좋고 볼거리도 풍성하고 배도 부르고 몸 상태도 최고다. 이런 구간 하나 만 더 있어도 내게는 큰 선물이다. 춘몽에 사로잡혀 긴장을 늦추고 걷는데 전방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앞서가던 ‘권’이 마주오던 등산객을 대하는 행동이 평상시와 달리 딱딱하다. 그쪽 일행은 4명이다. 그 중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빨리 오라고 한다. 도착 순간 옆에 있던 직원이 카메라로 찍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이들이 말로만 듣던 감시원이었다.
“당신들은 산림법 28조를 위반하여 어쩌구 저쩌구”
그 중 하나가 마치 범죄인을 취급하는 듯이 강하게 몰아 부친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솔직히 우리도 할 말은 없다. 너무하다 싶은 가운데서 한 가지 희망은 보았다. 짓는 개는 물지 않는 것이다. 먼저 나에게 묻는다.
“신분증 제시 하세요.”
“없다.”
“그럼 주민등록번호 부르세요.”
망설이자 더욱 다그친다. 주머니에서 계산기 같은 것을 꺼내더니 빨리 번호를 부르라고 재촉한다. 움직임이 없자 경찰서까지 동행하잖다. 옆 직원에게는 무전으로 경찰차를 대기시켜 놓으라고 한다. 열은 받고 있지만 상대방이 심하게 나올수록 나는 더욱 침착했다. 이유는 같았다.
“잠깐 내 말좀 들어라. 모르고 오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이유는 필요 없습니다. 어디부터 왔습니까.”
“댓재부터 왔다.”
감시원은 우리가 어디서 온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계속 신분 확인을 할 태세다. 나는 산행 중에 은행카드만 소지해 신분증이 없었다. 5년 전인가 음주단속에 걸렸을 때 쉽게 신분을 밝혀 징계도 받고 벌금도 물고 가족들에게는 고개도 들지 못한 경험이 있어 그 이후 쉽사리 응하지 않는다.
“한 번 봐줘라. 사실 입구에서 감시원을 만나지 못했고, 초소에도 근무자가 없었다. 만나는 등산객들도 감시원이 없다고 해 우리는 조용히 지나가면 되는 줄 알았다.”
“...........”
“알고 왔으면 내가 이런 말을 하겠나.”
“그래요. 아저씨는 가세요.”
고맙게도 감시원은 나를 보내 준다. 내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일단 내가 벗어났으니 벌금 50만 원이 반으로 줄었다. 재차 ‘권’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이 친구도 쉽게 내줄리 없을 터라 참견 못하고 구경만 했다.
이 상황에서 하나 의심스러운 점은 있었다. 일행 4명 중 2명이 집중 추궁하고 1명은 몇 발짝 앞에서 나처럼 방관하는 자세고 다른 1명은 뒤에 그냥 서있다. 나를 보내주어도 나머지 사람들은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큰소리로 떠드는 자가 주무자다. 그냥 서있는 ‘권’에게 다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없다. 한 번 봐줘라.”
“안됩니다. 주세요.”
“너무 그러지 마라. 나도 공직자다.”
“제시 하세요.”
이런 실랑이가 오고 간 끝에 성질을 이기지 못한 ‘권’이 끝내 신분증을 꺼낸다. 내가 그 자리에 끼어들고 싶어도 이미 탕감 받은 것까지 무효가 될까 나서지도 못했다. 신분증을 내놓자 옆에서 바로 사진을 찍는다. 벌금청구서가 작성되고 상황이 종료되어 가고 있다. 이때도 다른 2명은 아무 말 없이 구경만 하고 있다.
“싸인하세요.”
“싸인 거부다. 알아서 처리하라.”
이미 긁은 것 취소는 어렵다. 그러면 분이나 풀어야 한다. 역시 ‘권’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급기야는 가는 일행을 불러 세운다.
“잠깐, 너희들도 신분을 밝혀라.”
이들이 제시한 신분증을 보니 현역 별정직 공무원이다. 신분증까지 거꾸로 요구했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좋다 이왕 일이 벌어졌으면 그런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 이들은 등산객으로 위장하고 다닌다. 위장이라는 것은 동식물이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고 하나 더 들면 전쟁터에서 상대를 속이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현역 공무원들이 암행 단속을 위해 위장을 한다는 것은 극히 후진국적 발상이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슬프다.
그간 불던 휘파람이 끊겼다. 사실 우리도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온 잘못은 있지만 나름대로 소양을 가진 성인들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을 남획하고 식물을 채취할 정도로 막되어 먹은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감시원을 만나면 이런 입장을 말하고 아전인수 격의 행동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표하려고 했다. 상대방이 하도 막무가내로 질러대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이유야 어떻든 지금의 입장에서는 유감이다. 단지 대간 완주의 꿈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이들과 헤어지고 걷는 기분은 완전 180도로 바뀌었다.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지도 못한다. 오다가 본 등산객들이 모여 있는 봉우리가 바로 노인봉이었다. 그 봉우리도 출입금지구역으로 알고 있었던 우리는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디카에 담았다.
그 많은 등산객들은 처리 결과를 반박 자료로 쓰기위해서 현장을 확보한 것이다. 실랑이 있던 자리를 잠깐 걸었나 싶은데 노인봉 대피소가 나온다. 이렇게 억울할 때가 없는 것이다. 골키퍼 없는 골대 앞에서 헛발질 한 격이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나무 울타리가 있다.
와보니 사전 정보와 달리 울타리 밖의 노인봉과 대피소는 출입허용 구간이었다. 이래서 반박자료는 쓸모없는 자료가 되고 만다. 붐비던 사람들은 노인봉 정상 한 곳만 올라 친목을 도모하는 친목회원 들이다.
대피소에서 우측으로 300m 오르면 노인봉 정상이다. 정상은 바위봉이다. 사방으로 전망이 막힘이 없으나 워낙 많은 등산객들이 점령하고 있어 잠시 서있을 공간 확보조차도 어렵다. 정상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은 지리산 천왕봉 이후 처음이다.
이곳 표지석은 특이하게도 앞뒤 양쪽 면에 한자와 한글로 새겨놓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관망이고 뭐고를 생략하고 서둘러 내려와 진고개 방향 하산 길로 접어든 시간은 정오 무렵이다.
진고개가 얼마 남았다는 이정표가 자주 나온다. ‘권’은 피곤한 몸에다 마음까지 상했는지 걸음이 늦다. 함께 하면서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앉을 만한 바위가 나오자 걸터앉아 미숫가루를 타서 마신다. 내가 권하는 작은 쵸코바도 받는다.
완만한 길을 3㎞정도 내려가니 나머지 구간이 급경사 내리막이고 등산객 출입이 빈번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 부근은 계단으로 설치되어 있고 계단이 끝나면서는 나무를 조성해 놓은 사잇길을 걷게 된다.
사진으로보다는 직접 그리고 싶은 오솔길을 도니 바로 진고개다. 4차선 도로 옆에 강릉 초입 교통 표지판이 달려있고 고개 옆으로는 주차장이 아주 넓은 휴게소가 있다. 그 위쪽에 시인의 마을을 겸한 감시 초소가 있어 들어갔다. 갑작스런 방문에 근무자가 의아해 한다. 다짜고짜 물었다.
“우리는 백두대간을 하고 있다. 지리산부터 오다 처음 적발되었다. 도움을 줄 수 있나.”
“소속은 다르지만 말은 해보겠다.”
“충청도 지방은 대간 홍보를 위해 기념관도 세우는 데 이곳엔 법 적용이 너무 심하다. 사전 산림청 문의도 하고 온 것이다.”
“필요한 사람들이 자진해서 하는 대간 종주는 법이 없다.”
“지나온 강원도 지역은 등산로를 개방했다. 이곳도 강원도 아닌가.”
“구간마다 상황이 다르다.”
“명예 산림 감시원증을 받으면 가능한 가.”
“안된다. 그 증을 받은 사람들이 동물도 쏘고 식물도 캐간다. 없어질 것이다.”
“진고개 위도 통제가 심한가.”
“일부는 그렇다.”
혹시 도움이 될까 들린 초소에서 근무자와 나눈 대화다.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에서 일말의 희망을 가졌으나 다음날 알아보니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휴게소에서 진부까지는 2만 5천 원 콜택시 외에 이동 수단이 없는 막막한 곳이다. 일단 캔맥주를 마시며 상황을 파악하는데 바로 앞에서 서울 번호판 승용차가 출발 시동을 건다. 무작정 다가가 동승을 알리니 거절하지 못하고 문을 열어준다.
이번에는 주문진을 다녀오는 부부에게 신세를 졌다. 강남이 집이라기에 혹시나 서울까지 태워줄까 하고 수작을 부려보았다. 두 번 당할 수는 없는지 원주에 볼 일이 있다며 진부 톨게이트 근처에 내려준다. 버스터미널까지는 한 참 걸어야 한다.
“그 사람 속도 좁다, 이왕 태워줄 것 터미널까지 태워주지.”
아직 열이 남아 있는 ‘권’이다. 진부터미널에서 14시 30분발 버스를 탔다. 내가 소주 한 병을 슬며시 싣고 혼자 홀짝 마시니 한잔 달란다. 평소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 모양이나 오늘은 사정이 다른 가 보다. 하기사 술이란 이럴때 필요한 것 아닌가.
장평터미널에 들러서 다시 소주 두 병과 삶은 달걀을 샀다. 이 술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니 속상한 것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귀경 차량으로 영동고속도로가 심하게 막힌다. 피로에 술이 들어가니 내가 어느 사이에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권’이 멀뚱한 표정으로 ‘강촌’이라고 한다. 얼결에 아직 강천이면 여주도 지나지 못했냐고 물으니 춘천쪽 강촌이란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다. 이 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할 시간인 데 이런 곳에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아보니 기사가 극심한 체증 지역을 피해 우회했단다. 관광버스도 아닌 시외버스가 임의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춘천고속도로 역시 체증으로 말이 아니다. 가평을 지나면서 기사가 볼일을 보라며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출발 전에는 기사가 직접 인원을 파악하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다시 출발하면서는 막힘이 없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간 가까이 지체된 오후 6시 30분 경이다. 기왕 마신김에 한 잔 더 하기로 하고 터미널 앞에 있는 중국음식점으로 안내했다. 이 집은 홍합을 잔뜩 넣고 얼큰하게 해주는 홍합짬뽕이 일품이다.
산에서 내려오면 매운 것이 땡긴다. 지금 상태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다. 작은 고량주도 한 병 시켜 막 시작하려는 순간 수원 친구들 산악회장 ‘조규성’의 전화가 왔다.
“야! 집사람에게 전화했더니 강원도 산에 갔다더라, 그렇수 있냐.”
“미안하다, 그렇게 되었다.”
“심하다, 다른 친구들이 알면 뭐라 하겠냐.”
“할 말은 없다, 이해하라.”
이런 식으로 시작한 대화가 나중에는 심한 언쟁으로 발전했다. 통화시간도 30분을 넘겼다. 짬뽕은 입에도 대지 못하고 퉁퉁 불었다. 애꿎은 고량주만 1병 더 시켜 비웠다. 술이 과해지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양쪽 모두 만취상태라 절교라는 단어까지 쉽게 나왔다. 물론 다음날 화해는 했지만.
‘권’과는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도 없이 집에 도착했다.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드릅만 겨우 꺼내 놓고 간단한 샤워 후 곧장 이불을 깔았다. 목이 말라 깨보니 다시 새벽이다. 배낭이 깨끗이 비워있고 비상금으로 넣어둔 만 원권 지폐가 책상위에 펼쳐있다. 아무 소리 못하고 출근을 했다.
“감시원들은 산림청이 아닌 환경부 소속이다. 벌써 통지서를 정리해서 평창군으로 넘겼단다. 소명기회를 주고 잘되면 10만 원은 탕감된다고 한다.”
사무실로 온 ‘권’의 전화다. 감시원에게 거꾸로 신분증을 제시받고 서명까지 거절을 했으니 열이 받아서 당일로 처리한 것이 분명하다. 산에서 내려오면 내가 선배다. 메일로 간단하게 답을 보냈다.
“커서 뭐 되려고 그래. 성질 좀 죽이고 살아.”
이번 판은 무리수를 두면서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무리수가 악수로 변해 패했다. 그래도 한 판의 바둑은 두어진 것이다. 백두대간 수첩에 한 페이지를 채울 때의 그 기분을 누가 알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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