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가 쓴 내용을 보면 객관을 가장해 주관을 더한 내용이 많았다. 북한도 사람사는 세상으로 못살고 차별이 있지만 발전해 간다는 것이 아니라, 살맛나는 세상에서 행복한 천국생활 같이 글을 쓰면서 기자정신이란 말이 어색했다. 이런 편향된 것은 극우만큼 위험하단 생각이다. 언론인 중 일부가 이러니, 전체가 매도돼 선량한 진실만을 보도한 기자마저 기레기란 말을 듣지 않을까? 물론 자신이 북한상주취재원과 통일TV를 위한 북한 문화물 취재권을 위해 그러하기에 상당부분의 과장된 요소는 아쉬웠다. 내용도 요즘 TV의 ‘이제 만나러갑 니다’의 내용을 넘어서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 기레기란 소리는 자기와 생각이 틀리면 무조건 쓰는 비난 용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여러 곳을 자유롭게 간 것처럼 말을 하는데 역시 평양의 특별한 선택된 자들이 사는 평양이란 공간에서의 변화만 책에서 보여주는 한계가 있다.
P7 한겨레 기자로 재직하던 2017년 10월6일부터 9일간(3차 방북), 11월10일부터 13일간, 2018년 4월11부터 11일간(5차 방북), 6월 23일부터 15일간(6차) 평양은 물론, 원산, 마식령스키장, 묘향산, 남포, 서해갑문 등지를 취재한 내용이다.
P8 그동안 세상에 공개된 북녘에 관한 책과 사진은 대개 외국 기자가 취재한 것이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나는 그런 한계를 깨고 싶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감정과 생각까지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취재에 임했다. 서로 말이 통하는 만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다. 눈인사와 농담을 주고받고, 때로는 어깨를 부딪치기도 하며 그들 속에서 함께했고, 그 모습을 이 책에 담아냈다.
P9 1992년 6차 남북고위급회담 취재와 2000년 6.15 정상회담 취재에 이어 17년 만에 찾은 평양은 ‘놀라움’이었다.
P14 단동의 옛 지명은 안동으로 안동 역은 일제시대에 우국지사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거쳐 가던 중요한 지점이다.
41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동해 2017년 9월부터 미국시민권자들의 방북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행정명령은 인권이 세계에서 최고로 존중받는다는 미국에서 행해진 것이다. 인권의 가장 기본이 무엇인가? 첫째는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거주 이전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거주지나 여행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비인권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인권적인 일을 미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의 왜곡된 생각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방임해야 하는가? 2017년 6월 오토 웜비어가 코마 상태로 북한 억류에서 풀려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한 상황에서 미국의 방북금지가 옳지 않다고? 온갖 핑계로 북한에 억류된 많은 기자와 목회자 등에 가한 인권이 아예없는 곳인 북한에 대해 모른 무식한 기자? 혹은 자신의 방북 허가를 위해 두둔하고픈 기자?
왜, 북한이 최악의 인권국가 인가를 지탄하지 않고,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북한과 강경입장에 있는 상황을 고려, 방북 금지한 사실만을 왜곡한 기자의 모습은 안타깝다.
탈북민은 사상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찾아온 민주투사로 생각할까? 이제 북한의 외적 발전 현상과 더불어 내적인 인권과 자유의 현 주소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보면 언론인들 다들 수박 겉만 보고 크기와 색깔만 칭찬하려 하는 꼴이다.
P44 그동안 여러 기자와 사진작가가 북한을 취재하고 사진에 담아냈다. 그들은 대체로 평양 시내, 정해진 장소 등을 이동하며 취재하고 사진을 찍었다. 현실적으로 취재하고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세상에 공개된 북녘의 사진 중에 많은 수는 외국 기자나 작가가 찍은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취재하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방북 취재를 할 당시는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화산보다 뜨겁게 끓는 상태였다. 폭발을 목전에 두고 연기를 내뿜는 화산처럼 변해가는 한반도에서 기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북쪽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P46 어린 시절에 받은 반공 교육이 어찌나 철저했던지, 기자인 내가 북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무심코 내 생각과 말을 스스로 검열하곤 했다. 이 사실이 큰 충격이었고, 이때부터 나는 평양 상주 특파원이 되겠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누군가에 의해 한정된 정보 혹은 왜곡된 정보만 주입받아온 결과가 무섭고 끔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그것을 깨뜨리고, 많은 사람들이 북녘을 있는 그대로 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P47~48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뒤 나는 한동안 접어두었던 평양 상주 특파원 꿈을 다시 꺼냈다. 나는 미국 영주권자로서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내가 북한에서 하고 싶은 첫 번째는 평양상주 특파원이고 두 번째는 통일 TV관련 북측 영상물 저작권 확보이다. 북측은 평양 상주 특파원은 당장 할 수 없으나 일반 특파원은 가능하다며 취재는 언제든 가능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이 아닌 지금도 '남한은 거지와 깡패국가로? 귀순하면 죽인다'는 등, 북한에 대해서는 말을 못한다. 상호 비방을 했는데, 꼭 우리만 비방한 것처럼 쓰는 자들이 참 많다. 비평도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하는데... 결국 자기 이익과 욕심을 위해, 남한과 미국을 비판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겉모습만 취재하거나 과장은 없이 실상만 말하면 좋으련만, 화사첨족의 느낌이 든다.
P66 평양은 대동강을 중심으로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대동강 서쪽 지역을 서평양, 동쪽 지역을 동평양, 그리고 보통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곳이 본 평양이다. 서평양에 김일성광장, 천리마 동상, 옥류관, 모란봉공원 등 흔히 보아온 곳들이 모여있는 평양의 중심지다. 고려호텔은 동평양에 있다. 서평양과 동평양 사이 대동강에 양각도가 있으며 이곳에 양각도 국제호텔이 있다.
P71 미국에서 생각하는 서울이 전혀 딴 세상이듯이, 평양의 일상은 서울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평양에서도 서울과 같은 평온한 일상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P80 대동강가와 함께 평양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가 모란봉공원이다. 젊은 남녀들의 인기 있는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P91 (모란봉공원에는) 은퇴한 사람들이 흥쾌한 춤을 추는 등 여유로운 여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여성을 55세, 남성은 60세가 되면 일터의 현장에서 떠나 은퇴하고 연금을 받으면서 생활한다고 한다. (기자는 연금에 대해 확인을 해야 하는데 확인한 내용은 쓰지 않고 안내원의 이야기만 전한다. 사진은 은퇴한 자가 양복입고 공원에서 춤을 추는데, 객관적 취재는 무시하고 평양 상주 특파원 하려고 찬양만 하는지?)
P114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들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가르치는 곳에선 아이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소학교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북녘의 복지제도는 남쪽과는 다르므로 그대로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책임지고 교육하는 전문학교가 있다는 건 좋은 방식인 것 같다.
2017년 10월12일 오후 만경대학생 소년궁전을 방문했는데(방문 시간은 주1회 목요일 오후 2시~4시까지만) 외국 관광객들의 모습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학생교육에 대해 쓴 곳은 평양의 지정된 곳 몇 곳 뿐을 보고 북한 전체를 쓰듯 했다.
P133 점심을 먹으러 들른 모란봉면회자숙소 1층 식당에서는 봉사원이 태블릿 피시를 들고 메뉴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주문을 받았다. 이런 주문 방식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흔치 않을 것이라 낯설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P134 평양에서 남한으로 이메일을 보내면 받는 사람이 깜짝 놀라 “지금 북한에서 보내는 이메일이 맞느냐?”고 의심하다, 답장을 보내왔다.
P137 휴대폰의 일상화는 우리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놀라운 변화이며, 북녘이 세계 경제 흐름과 동떨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P138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북녘ㅌ의 사정에 대해 알려고 하면 그 자체가 현행법 위반이었다.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서로 갈라져 살고 있는 8천만여 명의 시민들이 서로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하는 것이 현행법 위반이 되는 일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북한은 남한을 자유롭게 알 수 있으며?, 핸드폰과 인터넷이 검열 없이 우리보다 자유롭다? 이런 내용도 궁금한데... 기자는 남한만 탓한다.
P146 우리처럼 개인택시, 회사택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려항공, 금강그룹합자회사같이 군, 정부 등이 기관별로 관리한다. 모든 택시회사 운전원들의 기본 월급은 같고, 수입이 발생하면 그 단위 조직 혹은 부서별로 운영비로 쓴다고 한다.
P148~149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을 이용해 보고 싶으면 안내원에게 이야기하여 동ㅇ행한 상태에서 이용할 수 있는데, 이를 ‘참관’이라고 한다.(항 안내원이 따라다니는 나라)
“택시는 주로 누가 이용하나요?” 택시를 타고 가면서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운전원에게 물었다.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이 없는 뒷골목까지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허무할 정도로 당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보다 비싼 비용을 치르고 택시를 타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여러 번 갈아타지 않고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는 편리함. 평양에서도 특수한 신분의 당 간부들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북녘에는 개인 소유의 자동차가 없으니 대중교통 중에서도 택시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내가 탄 택시 운전원은 하루 평균 40~50명을 태우고, 요금은 1킬로에 49원(500원), 야간 98원이라고 했다.
P153 2018년 4월1일 동평양 대극장에서 남쪽 예술단의 공연 때 남쪽기자들은 무대 뒤의 분장실에서 TV를 보면 취재하는 기가 막힌 상황인 방생했다. 사실상 ‘갇혔다’고 봐야 한다.
P154 다음날 김영철부위원장이 직접 사과를 했다. ‘최고 존엄’에게 만에 하나라도 일어날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북녘에서 ‘최고 존엄’에 대한 경외심은 남쪽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경외심’으로, 남한에는 ‘독재’라는 말로 표현할까?)
이처럼 남한 기자들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 않고 한정된 곳만 보여주고 취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방북 취재에서 평양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 섞여서 취재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내가 그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신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다른 남한기자는 전부 북한 왜곡 기자이고 자신은 일방적 찬양이 아니라 정확한 기자라고 하는 듯 한 기레기의 전형)
P154~158 북한 당국은 내게 세 가지만 지켜달라고 했다.
첫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동상이나 사진 등을 촬영할 경우 신체 일부가 잘리거나 방해물이 가리는 일이 없이 전체 모습이 온전히 나와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상업적인 광고가 필요 없기에 광고물 설치가 있을 만한 곳에 거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P159 그런데 얼마 전부터 평양에도 상업용 광고 간판이 등장했다.(사회주의 국가는 광고가 필요 없어 동상을 세운다고 주장하더니..)
둘째 건설노동자를 찍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은 12년간 의무교육으로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무상으로 하고, 대학은 재능과 자질이 있으면 누구나 진학할 수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전문대학에 가고 그렇지 못하면 취업한다. 취업을 할 경우 국가에서 직업을 배정하는데, 가장 싫어하는 ‘노가다’를 차마 건설현장의 일용잡부로는 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녘에서는 일용잡부라는 직업이 없다. 그래서 건설노동자를 찍지 말라는 것이다. 남쪽에서는 방어적인 차원에서 군사연습을 한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총구를 조금만 돌려도 기습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셋째 남루한 모습의 등이 굽고 나이든 노인을 찍지 말라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 이 단순한 태도가 남과 북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키면서 북한과 남한의 통일과 남북의 서로를 알게 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P169 평양행 열차 안에서 파는 도시락은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락과 비교해도 뒤지 않을 만큼 알차고 풍성했다.
(평양역으로 가는 열차 안 도시락 : 쌀밥, 왕만두, 삶은 계란, 생선전, 소고기볶음, 배추 김치 외)
P169 평양에서 유명한 식당은 옥류관, 청류관, 해맞이식당, 종합봉사선 무지개 호, 류경관 등이다.
P173 옥류관은 건물이 길고 넓은 것이 특징인데, 각 룸마다 내는 요리가 다르다. 예를 들어 1층 가장 넓은 홀에서는 평양냉면을 먹고, 2층의 한 룸에서는 고기쟁반국수, 또 다른 룸에서는 자라탕 등 탕류를 먹고, 3층에서는 소불고기를 구워서 먹는 식이다.
P176 옥류관과 청류관 등 대형음식점에서는 냉면뿐 아니라 다른 요리들도 판매하는데, 평양의 4대 음식은 평양냉면,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 녹두지짐이라 한다. 자라탕, 철갑상어요리, 소불고기, 오리불고기도 옥류관과 청류관의 대표 음식이다.
평양냉면에는 고기쟁반국수, 쟁반냉면, 냉면(회냉면 포함)이 있다고 한다. 평양냉면 육수는 예전에는 꿩육수로 했으나 지금은 닭으로 육수를 만든다. ‘꾸미’가 평양냉면만의 고유의 맛을 낸다고 한다.
P177 국수사리는 옥류관이든 청류관이든 비슷한데 면발이 약간 질기고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이어야 좋다고 한다. 고기 쟁반국수는 어복쟁반국수를 응용한 요리인데, 어복은 소의 뱃살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복 대신 닭고기를 푸짐하게 넣은 요리이다.
P179 고기쟁반국수를 시키면 ‘평양주’라는 술 한 잔이 함께 나온다. 양은 우리 식으로 소주 세 잔 정도이다. 술을 먼저 한 모금 마시고 국수를 즐기는데, 이를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고 한다. 즐겁게 한잔하면서 먹어야 국수가 맛있다고 한다. 점심식사에 누구에게나 술(소주)을 먼저 마시도록 내놓다니 놀라웠다. 물론 술은 원하지 않으면 마시지 않아도 된다. 냉면 사리는 원하면 추가로 가져다준다.
P184 북녘에서 지방에서 평양을 다녀왔다 하면 ‘대동강숭어국 먹었냐?’고 묻고 안 먹었다하면 ‘안 갔다 왔구나’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한다.
P185 청류관의 소불고기는 엷게 저민 등심과 안심을 간장, 과일즙, 참기름, 파, 마늘을 섞은 양념장에 일정 시간 재우는 것이 비법이라고 한다. 언뜻 보기에 광양불고기와 비슷해 보였다.
P191 온반은 밥에 닭이나 꿩, 소고기를 고아 우려낸 육수를 부어 먹는 국밥의 일종으로 평양사람들은 그중에서 달고기 온반을 즐긴다. 닭육수에 고명으로 닭고기, 녹두전, 야채 등 갖가지 재료를 얹어 양념장, 나박김치와 함께 먹는다.
P197~198 대동강 맥주 공장은 180년 동안 에일 맥주를 생산해 온 영국 월트셔 주 트로브리지의 어셔 양조장을 ‘한 조각씩 해체’한 뒤 옮겨, 재조립한 것이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매에 나온 것을 당시 150파운드에 구입해 2002년부터 대동강 맥주를 생산했다. 유서깊은 에리 맥주 공장을 들여왔으나 독일의 맥주 공법을 사용해 영국 필스너 맥주 식의 라거 맥주를 주종으로 생산한다. 에일과 라거의 기술을 조합한 맥주다.
뉴욕타임즈가 “약간 단맛이 들고 뒷맛은 쌉쌀한 맛을 지닌 풀 바디 라거로 상부에 깨끗하고 하얀 거품이 있는 황금빛 오렌지 색”(2008년 3월10일) 이라고 평했고, 이코노미스트는 “남한의 맥주는 지루하다. 영국에서 수입한 시설로 만든 대동강 맥주는 놀라운 맛이다”(2012년 11월24일)라고 평했다.
대동강맥주는 2016년 8월 평양에서 맥주 축제를 열어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당연하게 모든 재료를 북한산으로 사용하는데 양강도, 자강도와 평안북도에서 생산한 보리와 홉을 사용하고, 쌀을 섞는다는 점이 색다르다. 맥주의 종류가 다양한데, 원액스, 보리와 쌀의 함량, 알코올 도수에 따라 각 번호로 구분한다. 보통 1번부터 7번까지 있고, 8번은 보리맥주가 아니라 호가든처럼 백밀주(밀맥주)이다. 평양시민에게 가장 인기 있는 맥주는 2번이다.
P199 1번은 보리 100%
2번은 원액스 11%, 보리 70%, 흰쌀 30%(알코올 5.5%)
경흥맥주집은 약 300평 정도인데 의자가 없고 탁자에 서서 마시는 스탠딩 바 다. 안주는 악화생(땅콩), 소시지, 낙지(우리의 오징어) 등을 판매한다.
P204 ‘별무리 차집’도 피자,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요리와 티, 커피 등의 음료를 판매하는 인기 식당이다. 이곳에서는 전화로 피자를 주문받은 뒤 포장해 판매하기도 한다. 평양에 이런 스타일이 약 6개란다.
P210 조선료리협회는 북한 전체의 요리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중구역 동문동 인근 대동강에서 종합봉사선 ‘무지개’호하는 배에 선상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살아있는 철갑상어는 1킬로에 20달러인데, 1.7킬로 짜리를 34달러에 사서 세명이 푸짐하게 먹었다. 남은 것을 싸서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다음날 먹으니 더 맛있었다.
P212 잔칫상을 보았는데 테이블에 돼지보쌈, 오리훈제, 탕수육, 새우튀김, 총포묵무침, 버섯볶음, 갖은 나물무침, 잡채, 동태전과 호박전 등 몇 가지 전, 소적쇠구이 등을 먹고 나중에 냉면이 맛보기 식으로 작은 그릇에 나온다. 여기에 대동강맥주, 평양소주 등 주류와 사이다, 콜라 등 음료수, 강서 약수 등의 병물이 차려져 있었다. 보통 100명 기준은로 가격이 300달러 정도이고 500달러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P250 지난 몇 년 동안 건설된 평양 시내의 대표적인 지역을 살펴보면, 창전거리(2102 6월 완공), 은하거리(2013년 9월), 위성거리(2014년 10월), 미래과학자거리(2015년 11월), 그리고 려명거리(2017년 4월)이 있다. 미래과학자거리의 가장 높은 건물은 53층으로 1, 2층에는 주민 편의시설이 들어있다.
P251 려명거리는 73층 최고층 아파트를 비롯해 30층부터 50층 사이의 아파트 총 4,804 세대가 있고, 1년여 만에 완공했다 한다. 이는 콘트리트 양생 기간을 2/3로 줄인 양생 감수제를 사용해 공기를 단축했다고 한다.
P258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대개 아파트 평수이다.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의 개념보다는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평수에 대한 개념이 없다. 평양에서는 집의 크기를 평수가 아니라 방의 개수로 계산한다고 한다. 방 2개짜리 집, 3개짜리 집, 4개짜리 집 등으로 집의 크기를 짐작하는 것이다. (…) 방의 개수는 집주인의 권력관계나 사회적 지위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양가족의 숫자로 결정한다고 한다.
P259 눈에 띄는 점은, 재개발하기 이전에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 즉 철거민에게 아파트 입주 1순위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철거 맞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기존 집이 철거된 사람들은 새 아파트가 지어지면 그곳에 1순위로 입주하게 된다. 려명거리에 있는 아파트의 한 달 주택 사용료는 240원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700원 정도이다. 거의 무료라고 할 정도로 저렴한 비용이다. 고층 아파트여서인지 엘리베이터 관리자가 따로 있다.
P290 나는 지금 평양 중구역 대동강 옆에 위치한 평양호텔 5층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에필로그를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보내면 그동안 진행해오던 책이 마감된다. 이 책은 평양에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와 이메일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마무리했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첫댓글 평양도 변하고 발전은 하고 있지만 감시과 통제 속의 생활이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곳은 북한 뿐이지 않을까? 북한은 뿔달린 사람이 산다는 것이나, 이런 찬양 일색의 글이나 다르지 않다. 상호 이해와 진실한 공감을 바탕으로해, 교류가 되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