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감정
과수원을 걸으면 가지가 어깨에 닿는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쳐서 얼굴이 붉어졌을까 사과와 사과가 부딪치면 무슨 빛이 될까 그 빛을 따라 가면 과수원에 도착한다 과수원에서 사과들이 부딪치고 있다 어떤 중력이 사과를 끌어당길까 상자 안의 사과는 누구에게 길들여졌을까 사과일까 과수원의 주인일까 홍조 띤 얼굴은 누구를 향한 당신의 질투일까 모두의 사과일까 왜 칼을 보면 사과를 깎으려고 할까 토마토와 사과는 얼마나 가까운지 장미와 사과가 만나면 붉은 저녁이 생겼다 사과 옆에 종이컵은 왜 하얗게 보입니까 누가 죽도록 미워서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멀어집니까 몹시도 그리워서 사과는 또 떨어집니까 한 때는 사과도 매달리는 힘으로 살았겠지만 지금은 낙하하는 힘으로 사는 계절 붉은 사과는 붉은 사슴처럼 외출을 하고 싶을까 사과는 동물원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낙하산을 펴는 꿈을 꾸고 이것이 파란 하늘일까 감정일까
공간 심리학
우산을 폈다 공간이 생겼다 기억이 생겼다 비 오는 날 캠퍼스에서 우산을 쓰고 같이 걸었던 여학생은 지금 어디 있을까 향기가 남아 있는데 향기는 공간에 머물고 우산을 접었다 공간이 사라지며 향기도 날아간다, 다시
우산을 폈다 공간이 생겼다 취미가 생겼다 낯선 리듬과 성립 나는 공간의 편집자다 공간을 접고 공간을 풀어서 만든다 공원의 나무 밑을 걷는다 걷기는 공간의 재발견이다 삶이 지루하면 공간도 지루하다 반대도 성립한다 공간이 지루하면 삶이 지루하다 계속 우산을
편다, 버스 뒷좌석이 생긴다 풍경이 지나간다 의자는 나만의 공간이 된다 공간이 들려주는 소리 공간의 향기 공간의 감촉 섬세한 신호들이 느껴진다 우산을 펴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면 공간은 권력이다 이제 나는 공간을 소유한다 누구든, 어디든, 가려면 내 공간을 통과해야 한다 내 공간을 우회해야 한다 공간은 위압감이다 공간이 바뀌면 권력이 바뀐다 공간을 바꾸기 위해, 우산을 폈다
해부학
그림자가 바쁘게 걷는다
가로등이 눕는다
그림자가 가로등보다 길게 눕는다
전철을 타고 가는 그림자가 손잡이를 쥔다
빌딩 속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그림자들을 밀고 간다
어둠이 공간을 삭제한다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어둠이 어두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메스를 대면
그림자는 점점 멀어진다
해부하면 장미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속은
거미줄로 연결된 통로다
실 같은 빛이 꼬리를 물고 있다
햇살에 토막 났던 그림자가 다시 형체를 드러낸다
공간이 맥없이 사라진다
심장을 도려내도 그림자는 살아난다
컴컴한 내부에 캄캄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밟으면 기억이 되살아난다
발바닥 밑에 더 긴 그림자를 숨기고 있다
걸으며 모종처럼 심는다
국수
하늘 한 쪽이 흐려질 때
누군가 유리에 입김을 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티슈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얀 티슈 하나를 뽑아낼 수 있다면
티슈로 구름을 만들고
국수를 만들 수 있을 텐데요
가락국수로 찢을 텐데요
인간들이 사는 마을마다
저녁의 국수들,
때문에 아이들이 가늘어집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 나무젓가락 떼어내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휘저으면
흐린 날이 됩니다
국수를 먹은 입가를 닦기 위해 사람들은 티슈를 뽑습니다
코를 풀고 얼굴을 닦고 티슈를 버립니다
티슈와 함께 얼굴을 버립니다
짐승들이 쓰레기를 뒤집니다
티슈에서 축축한 얼굴이 나오고
후루룩 국수를 먹던 사람의 얼굴이 나오고
구름이 흐르거나 하늘 한 쪽이 먼저 맑아질 때
깨끗한 티슈 하나 꺼내서
유리창 닦는 사람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토마토
토마토는 심장을 닮았지
어느 별에서 왔기에
온 몸이
심장인지
뜨거움을 느껴
길게 걸어간
하얀 모래처럼
토마토는 여우의 꼬리를 달았지
토마토를 보면 설레지
옛 애인이 토마토를 닮았거든
수혈 받고 싶어
토마토
애인은 사막으로 갔다
토마토라는 별로 갔다
자세히 보면
모래처럼
하얀 접시 위에
토마토
이희교_한국문학예술 시부문 등단.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첫댓글 이희교 시인님, 첫시집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 시집이라 한동안 설레일겁니다
이희교 시인님, 첫 시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 이란 말이 설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