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살(보리)행론] 5-59.60 사경 합본
-보리심 사경반-
입보살행론
샨티데바의 행복수업
김영로 옮김
2563. 08. 30
제5장. 지계와 정지
59
오, 마음이여, 죽음이 그대의 몸을
삐니앗아 갈 때는
그걸 지키지 못하는데
어째서 지금 그토록 지키려 하는가?
60
오, 마음이여, 그대 어째서 이 몸을
보호하는가, 마치 이게 그대 자신인 양?
이건 실제로 그대와 별개의 존재인데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백상화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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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띠데바 지음
청전스님 옮김
2563.08.30.
제5장 호계정지품(護戒正知品)
59.
독수리가 시체에서 고기를 탐해
서로 쫓고 끌어당길 때
마음 그대여! 어째서 몸을 지키는가?
그대와 마음이 둘이어서 각각이라면
이것이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60.
이 몸을 ‘내 것’이라고 집착하면서
마음 그대여! 어째서 몸을 지키는가?
그대와 마음이 둘이어서 각각이라면
이것이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승화 사경 합장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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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살 행론 광석(5-59.60)
적천 보살 게송
수다지 켄뽀 강해
지 엄 편역
2563.8.30
제5품 바른 앎을 지키다.
2)섭선법계를 배움
(1)계를 배우지 않는 원인을 끊음
5-59
독수리가 내 시체를 쟁탈하고 찢는 것을 의식하는가?
만약 그대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면, 왜 지금 이 몸을 아까와 하는가?
선법계를 섭수하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모든 보살이 율의계를 받은 후, 위없는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신.구.의로 모든 선을 고요하고 부지런하게 쌓는다. 우리가 선법을 닦고자 할 때 가장 크게 거스르게 하는 것은 신체에 대한 탐욕스런 집착이다.
육신에 대한 탐욕스런 집착이 있기 때문에 평상시 지은 것의 절대 부분이 모두 자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다만 상처와 해를 받을까 걱정하여 별의별 걱정을 다하며 애석해하고 아끼며 기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전력을 다해 선법을 닦아야만 하는데, 우선 자신에 대한 탐욕스런 집착을 끊는다.
이러한 탐욕스런 집착의 잘못을 깨뜨리기 위하여, 적천보살은 여기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각자가 죽은 뒤, 신체는 시다림으로 보내져 탐욕스럽게 시체를 먹는 독수리에 의해 찢긴다. 이때 각자의 의식이 조금도 개의치 않고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평상시 의식이 몸에 대하여 어떻게 그렇게 집착하는가? 고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소수가 수장.화장의 방법을 취하는 것 외에 일반적으로는 시타림에 보내 천장(인도는 지금까지 여전히 많은 시림을 보유하고 있다. 유명한 곳으로 8곳이 있고 팔대시림이라고 불린다)을 지낸다.
시림에는 시체만을 전문적으로 먹는 독수리.들개.이리 등이 많다. 사람이 죽은 뒤 그 시체를 시림으로 보내 맹금 야수들이 찢어 먹도록 내버려둔다. 우리 대부분은 학원 서산의 시림을 본 적이 있다.
천장을 주관하는 사람이 시체를 천장대에 놓을 때 독수리가 떼 지어 올라가 필사적으로 뺏고 찢어 삼킨다. 가죽.살.내장을 하나도 남기지 않을 정도다. 최후에는 또 천장사에 의해 부서진 뼈.골수를 전부 먹어치운다.
이때 망자의 신체는 완전히 반응이 없다. 가령 너 자신이라고 해도, 이때에는 예외 없이 분명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 어떤 집착도 애석함도 없다. 자세하게 한번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상황은 확실히 좀 이상하다.
자신의 시체를 시다림으로 보냈을 때 이때 자기 마음이 그것에 대하여 조금도 애석해하지 않으면서 새나 짐승이 찢어 삼켜 먹게 한다. 그런데 살았을 때 자기 마음은 도리어 신체에 대하여 백방으로 집착하고 아까와 하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떨쳐 일어나 다른 사람과 대항하여 다툰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다른 사람이 무의식중에 다가와 부딪친 뒤에 마음이 또한 기쁘지 않을 것이다. "각자가 어떻게 한 거야? 나를 이렇게 지독한 상태로 맞부딛치게 하다니 ---." 강렬한 신체 집착, 사망 전과 사망 후의 사지.목.흉부 등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닌데, 행위는 오히려 완전히 다르다.
만약 신체가 정말 자기에게 속한 것이라면, 평상시 어떻게 아끼면서 길러주었는가에 따라 사후에 각자의 의식도 마땅히 아까와 해야 한다. 평상시 각자가 신체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툰다면, 죽은 뒤에도 마땅히 너를 찢는 독수리와 목숨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한번 생각해보자. 현재 자기 신체에 대한 애석해함과 돌봄이 합리적인가? 자신이 현재 어떻게 신체를 아끼는가에 상관없이 결국에는 자신의 신체를 독수리.구더기, 혹은 뜨거운 불.물.흙에 보낼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단지 마음속 습기가 견고하게 습관을 이룬 가짜 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이전에 청정 대사도 "현재의 나는 거짓된 것이어서 환영 같고 아지랑이 같은 것이 바로 공성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환화의 무상한 물건에 대하여 또 무슨 집착할 만한 곳이 있는가?
5-60
이 몸을 내것이라고 집착하면서, 마음 그대여 어째서 몸을 지키는가?
그대와 신체가 둘이어서 각각이라면, 이것이 그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것은 다르다. 신체가 비록 잠시적인 것이지만, 살아있을 때 나의 의식은 신체로 방을 삼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집착해야만 한다. 인연이 다한 뒤, 의식은 바로 육체를 떠나 다른 방을 찾는다. 그래서 더 이상 이 방에 집착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기왕에 의식을 집착하여 주체아를 삼는다면, 신체는 각자가 있는 곳이 된다. 너와 신체가 분리되는 별체라면, 각자의 신체는 너(의식)에 대하여 또 무슨 작용이 있는가? 의식과 조금도 상관없는 별체라면 왜 집착하려 하는가?
우리 모두는 안다. 자기의 의식과 육체는 다르다. 신체는 부모의 정기와 피의 종자가 인이 되고 지수황풍 4대가 조합하여 이룬다. 그러나 의식은 중음신의 경계를 넘어 온 것이다. 신체는 집과같고 의식은 집안의 나그네로 단지 잠시 이 집에 머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여관에 머무는 것처럼 단지 매우 잠시 머무는 시간일 뿐 곧 떠나게 된다. 신체라는 주택이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닐진대, 각자가 이렇게 애석해 여기고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간에 만약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물건을 자기의 것으로 여겨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의 어리석고 무지함을 조소할 것이다.
신체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매우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세간 사람들은 육체를 자기 것으로 여겨 온종일 치장하면서 그것에 대하여 매우 깊은 집착을 일으킨다. 그것을 아끼어 기르기 위하여 끝없는 악업을 지었다. 그러나 자신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는가? 신체는 결코 자아가 아니며, 몸과 마음 역시 일체가 아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 만약 우리의 신체를 이용하여 정법을 닦기 위해 잠시 그것을 손상되지 않게 보호하는 것 외에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집착하고 아까와 할 필요가 없다.
만약 자기 몸에 대하여 집착한다면, 수행은 근본적으로 바른 도에 들어갈 방법이 없다.
정암 감로수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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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보리행론
샨띠데바 지음
최로덴 번역
2563.30
제5장.억념 자각품
[5.57]
제죄가 되지 않는 일이 확실한
자신과 중생을 위하여 일하며
허깨비처럼 '나'라는 것이 없는
이 마음을 언제나 지켜야 하리라.
[5.58]
긴 세월이 흘러 한가함의 수승한
[이 몸을] 받으니 숙고 또 숙고하여
마음을 수미산과 같이
확고부동하게 지켜야 하리라.
향공덕 사경 합장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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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향공덕 합장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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