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과 ‘숙명전환의 선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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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 사회학과
학번 : 2018101224
이름 : 이수현
담당 교수님 : 조성윤 교수님
제출일 : 2018년 5월 30일
‘창가학회’는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사회학개론 수업을 들으며 처음 알게 되었는데 창가학회는 제법 규모가 있는 종교였다. 종교 활동도 하지 않고 있고 종교에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적 존재에게 두터운 믿음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하는 궁금증도 지니고 있었다. 조성윤 교수님이 집필하신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과 ‘숙명전환의 선물’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종교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에서는 창가학회는 무엇인지, 재일한국인은 어떠한 삶을 살아온 존재이며, 재일한국인이 어찌하여 창가학회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입신의 동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항복이 이루어지고 한국으로의 귀국을 희망했지만 여러 가지 불가피한 이유로 귀국을 하지 못하게 되고 현재의 재일한국인이 형성되었다. 잔류 재일한국인은 일본인들에 의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었고 간간히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일본 사회의 여러 가지 차별을 겪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 시절 그들이 의지할 곳은 바로 ‘창가학회’였다. 창가학회는 불교에서 출발한 종교로 회원의 대다수가 재일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 창가학회는 일본에서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한국에서도 사이비 종교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창가학회를 ‘남묘호렌게쿄’라고도 하는데 '호랭이교'라고 부르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비판받는 창가학회를 왜, 무엇 때문에 믿어야만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일본 사회에서 적응, 순응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들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통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였다. 차별에 지쳐있던 그들에게 평등한 세계를 이야기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그들이 헌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창가학회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비록 일본계 종교의 신도가 되는 것은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포기하는 일임에도 말이다.
재일한국인의 삶을 정신적으로 지탱해 주었던 이 창가학회가 왜 사이비, 이단 이라고 여겨지는 것일까? 창가학회가 비윤리적이며 종교의 본질을 잃고 비종교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이비 종교인가? 아니다. 창가학회가 교리를 왜곡해서 해석하고 그릇된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인가? 아니다. 누구나 종교의 자유가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 종교를 믿는데 누군가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숙명전환의 선물은 창가학회에 입신한 재일한국인을 인터뷰한 형식의 책이다. 구술자와 답변자의 이야기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접근하기 훨씬 쉬웠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느낀 점은 재일한국인들은 일본에서 매우 힘든 삶을 겪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 돈을 빌리기도 어려웠고 일본인들과 살면서 인격적ㆍ사회적으로 차별받은 적도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뿐 만 아니라 한국에도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구서로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 않았지만 실제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니 그분들이 얼마나 억압과 차별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느껴졌다. 내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분은 히라야마 고우에 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었는데 그분은 제주도의 조천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말씀에 거역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가게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된 후 파란만장한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노름하고 의처증을 가진 남편과 물이 새고 축축한 방, 버려진 채소를 먹는 것 등 안정적이지 모산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작은 어머니의 소개로 인연을 맺고 초기에는 조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1년 후부터 신앙 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신심을 가진 후 사업이 잘 되고 정신적 괴로움이 사라졌다고 한다.
창가학회는 히라야마 고우에 외에도 여러 명의 사람들의 재일한국인들의 불행한 숙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을 옭아매던 불행을 이겨내고 역경을 견디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종교 활동에 관심이 없고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게 의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재일한국인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한 삶을 겪다 보면 이 불행을 떨치기 위해 신앙에 기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불안정하고 힘든 상황에서 한국인의 민족정신,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그것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비난을 하는 것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행동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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