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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스크랩 강영기(59) 강동구 천호동 동명대장간 - 2010.8.16.조선 外
하늘나라(홍순창20) 추천 0 조회 460 16.05.08 21: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서 3대째 전통대장간 운영 강영기씨 父子

 

"망치로 두드려 만든 물건은 기계로 찍은 것과 달라요"


농기구 등 2배 가격이지만 단골손님들 꾸준히 찾아… 미국에 호미 100개 수출도
"요즘 찾아보기 힘든 기술… 친구들도 부러워해요"

 

 

섭씨 33.8도로 올 서울 최고 기온을 기록한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명대장간 주인 강영기(59)씨는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비오듯 흐르는 땀을 연방 훔쳤다. 그가 2000도에 육박하는 화로에서 빨갛게 달궈진 쇠를 꺼내 모루에 올려놓자 아들 단호(31)씨가 4㎏ 망치로 힘껏 내리쳤다.

"탕, 탕, 탕."

가로 10㎝, 세로 30㎝ 크기의 벌건 쇳덩이는 몇번이고 매질을 당하고 물에 담금질 된 끝에 강철 괭이로 변했다. 강씨는 "아버지(강명환·2004년 작고)가 이곳에서 대장간을 시작한 지 70년이 됐다"며 "아들 녀석도 제 뒤를 잇고 있으니 100년 된 대장간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명대장간에서 아버지 강영기(왼쪽)씨와 아들 단호씨 부자가 전통 방식으로 쇠를 달구어 곡괭이를 만들고 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66㎡(20평) 남짓한 대장간은 새로 들어선 주상복합 건물과 오래된 옷가게들이 뒤섞여 있는 천호동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겉에서 보면 일반 철물점과 비슷하지만, 안은 조그마한 화로와 쇠로 된 모루가 있는 옛 대장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인데 난들 덥지 않겠소. 그래도 내 일이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거지."

◆풀무질하는 아버지 보며 대장장이로 성장

강씨의 아버지는 1930년대 말 천호동(옛 광주군 곡교리)에 대장간을 세우고 뿌리를 내렸다. 매일 뜨거운 불과 싸우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강씨는 13살인 1964년부터 부친을 도와 어깨너머로 대장일을 배웠다.

"쇳덩이를 달구고 두드려 여러 물건을 만드는 작업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자꾸 해보고 싶다고 아버지께 졸랐죠. 대장장이를 천하게 여겼지만, 결국 허락을 받았죠."

대장일은 녹록지 않았다. 풀무질을 하며 너무 바람을 세게 넣어도 안 되고, 엉뚱한 모양으로 쇠를 두드리다 혼나기 일쑤였다. 망치질을 잘못하다 손가락을 찧기도 다반사였다. 그의 오른손 중지와 약지, 왼손 검지는 숱한 망치질로 단단해져 이제는 잘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그는 1979년 아버지 가게를 본격적으로 물려받았다. "밤낮없이 일했어요. 하루에 호미나 낫, 괭이 등을 100여개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건축붐이 일어 철근 자르는 도구, 목공 도구, 망치 등이 만들기 무섭게 팔렸죠."

강씨는 공장에서 만든 호미나 낫, 괭이 등을 도매로 떼어다 철물점 식으로 팔기도 하지만, 쇠를 뜨겁게 달궈 망치질하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풀무질을 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 생각났어요.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방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재래식 담금질 고집

대장간은 IMF 경제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근근이 이어오던 대장간들이 속속 문을 닫거나, 현대식 제작소·공작소·철공소로 업종이 바뀌었다. 천호동에 있던 대장간 3곳도 이때 없어졌다.

가뜩이나 장사도 잘 되지 않는 데다,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어렵게 마련한 149㎡(45평)짜리 단독 주택이 압류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유방암에 걸린 아내 간호를 하던 강씨도 위암에 걸려 가게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이때 아들 단호씨가 나섰다.

단호씨는 전문대 건축과를 나와 취직한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버지 밑에서 대장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 승낙했다"며 "어렵고 힘들어도 요즘 찾아보기 힘든 기술을 가지고 있고, 직접 가게를 꾸리는 나를 친구들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강씨 부자(父子)의 솜씨를 알아주는 손님들은 3대째 이어지는 가게의 단골이 됐다. 최근에는 주말농장을 일구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시중에서 1000원 하는 중국산 호미의 두 배 가격이지만, 여기서 만든 농기구와 건축 도구는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나 전국 각지에서 찾을 정도다. 강영기씨는 "여기서 만든 농기구들을 경기도나 호남, 경남까지 택배로 부친다"며 "미국에 호미 100개를 수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송국 사극 소품을 만들어달라는 주문도 여러 번 있었으나, 일반 손님을 위한 호미와 괭이, 망치 등을 만드는 것이 더 좋아 거절했단다.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만든 물건을 써본 손님들이 '기계로 찍은 물건은 영 못쓰겠다'며 다시 찾을 때 보람을 느껴요." 아들이 대꾸했다. "할아버지·아버지의 가업(家業)을 장인정신으로 이어받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제 아이가 커서 이 일을 하고 싶어하면 100년 넘게 이어가야죠."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아들까지 3대를 이어가는 서울 천호동 동명대장간. 아버지 강영기씨와 강단호씨가 함께 쇠를 달구어 곡괭이를 만들고 있다./조인원기자 join1@chosun.com

 

 

 

[수도권/추억 ING]“중국산에 치여 제값 못받아도 오래 제몫하는 연장 포기못해” [사회] 2012-09-17 03:00:00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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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명대장간에서 아버지 강영기 씨(왼쪽)와 아들 단호 씨가 3000도가 넘는 화덕 옆에서 달궈진 쇳덩이를 힘차게 내리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Why] 서울에 79년 된 대장간... 3代 아들은 100년을 채우고 싶다는데 2016. 5. 7 (토)
...7시 서울 천호동 동명대장간.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지역 유일의 대장간동명대장간은 오전 6시 문을 열고...농기구만 만들어 팔던 동명대장간이 공사용 연장을...
조선일보 > 사회

천호동 '동명대장간'의 하루

강영기
아버지 강영기씨는 “하다 보니 (대장간 일을) 계속 하게 됐다”고 했고, 아들 단호씨는 “손님들이 솜씨를 칭찬해줄 때마다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자(父子)에게서 대장장이의 자부심이 느껴졌다./오종찬 기자
동명대장간
서울 천호동에 있는 동명대장간. 밖에 내놓은 칼·낫·갈고리 등은 이곳에서 직접 만든 물건이다./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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