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6 (수) 오랜만에 서해 강화도를 찾아서 마니산행을 하며 서해북도 도서섬들도 조망해 보고
정상엔 개천절엔 제례를 지내는 참성단에 올라서 아름다운 마니산과 강화도를 조망하는 즐거운
산행으로 마음도 넓어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마니산행을 다녀왔습니다.
'강화도령님" 가락을 들어며 마니산행을 출발~~~
마니산 정상에 올라서~~~~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72 m의 마니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니산을 올라서 참성단에서~~~
산정에는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수산집 修山集》에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인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여러 차례 개축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마니산매표소를 들어서면 잘 조성된 천부인광장과 여러조형물과 팔각정 숲과 게곡으로 휴식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산행하지 않고 휴식할 수 있는 공원이 있네요.
ㅎㅎㅎ 전국에서 마니산을 찾은 산님들과 단체들이 리본을 걸어놓고~~~
오늘의 주인공들이 마니산 등산로 안내판에서 잠시 기념촬영후~~~
산행코스는 마니산매표소->단군로->372계단->마니산 정상(첨성단)->중식->단군계단 -.매표소주차장산행후->대명항어시장->
김포공항역에서 헤어진후 전철로 귀경했습니다.
계곡을 따라서 오른쪽 산행을 걸어며~~~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며 산행길이 부드럽고 좀 완만한 능성길을 택하면 정상까지는 1.5배 정도 멀지만
능선길에서 뷰가 좋고 여유롭게 산행을 할 수 있지요.
바위 사이를 지나며 부드러운 육산이라 공기 좋고 온화한 날씨이라 산행하기 상쾌합니다.
능선으로 접어드니 시원한 서해바다와 여러 섬들이 어우러져 지리공부도 좀 하고~~~
큰암봉에 노송이 자리해 포토죤으로 인기있는 곳이라 잠시 추억의 포토를 담고서~~~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포오즈도 잡으면서~~~
저 멀리 마니산 정상봉우리가 손짓하네요.
372계단을 힘 좀 쓰며 오르고~~~
중간 전망대에서 잠시 숨 좀 고르고~~~
강화 우정님들과 기념촬영을~~~
전망대에서 북쪽 북한지역으로는 백령도와 소청도 그리고 연평도~~~오른쪽엔 석모도와 교동도를 ~~~
이곳 능선은 바위능선이고 얼음과 잔설이 남아있어 신경을 좀 써야 하지요.
올라온 능선을 되돌아 보고서~~~
마지막 계단을 오른후 통과하며~~~
코너를 돌아가는 데크길을 걸어면서~~~
차성단에 오르는 마지막 급경사를~~~
오랜만에 참성단에 도착후 기념포토를 담고서~~~
참성단에서 나의 건강과 소원성취를 비는 제를 올리고~~~~ㅋ
또한 참성단에서 "강화도련님" 께 제를 올립니다.~~~
헬기장과 감시초소가 있는 마니산 정상에 등정후~~~
오늘의 하이라이트 순간에 자~~~ 머리를 밟았다!!!
강화군은 멀리 고조선 개국과 그 역사를 함께하며 도서 특유의 지정학적 숙명으로 인해서 삼국시대부터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남북국 시대 신라 때인 757년 경덕왕 16년에 이르러 수진현, 호음현, 교동현 등을 묶어 해구군(海口郡)으로 편재, 개칭하였다. 844년 문성왕 6년에는 혈구진을 설치하였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940년 태조 23년에 강화현으로 개편되었다. 강화는 국가에 커다란 변란이 있을 때마다 제2의 수도역할을 수행하여 39년간 고려시대의 왕도 역할을 하였다. 이때는 '지군사'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처음으로 강화에 천도한 것은 고려 고종으로 몽고군이 개경에 침범하자, 당시의 권신 최우의 권유로 천도하였고, 원종도 강화에 머무른 바 있다. 강화도에 머무르는 동안 간척 사업을 실시하였는데 이는 20세기까지 이어지는 강화도 주변의 해안간척의 시초가 되었다. 고종은 1232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기면서 강화군으로 승격하고, 이령군으로 하여금 방어선인 내성 축조공사를 일으키는 한편 궁전, 사찰 등을 모두 당시의 왕도인 개경을 모방케하고, 궁전 배후의 산을 송악이라 하였다. 내성이 완공되자 다음해 겨울에 외성을 쌓게 하였다. 1363년 공민왕 때는 강화부로 승격되었다.
《대동여지도》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태조, 정종, 태종의 세 왕이 일시적이나마 강화에 잠행한 일이 있고, 특히 1394년 태종은 강화에 도호부사를 두어 방어를 강화했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도 인조는 강화로 피신하였으며 이때 강화유수부로 승격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강화로의 몽진이 여의치 못하여 결국 남한산성으로 방향을 옮겼다. 조선 17대 효종은 성의 축조와 군량 보충을 강화하였고 19대 숙종은 인조시대부터 수비를 강화하기 위한 진(鎭)과 보(堡)를 증설하고, 각 진에 돈(墩)을 설치하여 분담 수비하게 하였으며 강화도 건너편의 김포의 문수산성의 축성 등 모든 방비를 강화시켰다.
운요호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요호 사건이 강화군에서 벌어지는 등 조선 말기 새로운 문명과의 충돌현장이 곧 강화도였다. 1895년 지방제도가 개편됨에 따라 강화군이 되었고, 1896년 잠시 강화부로 승격되었다가, 1906년 군으로 환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으로 교동군이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강화면이 강화읍으로 승격되었다.[1] 1983년 2월 15일 하점면 양오리가 송해면으로 편입되었다.[2]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3]
정상에서 우정의 타임을 가지면서~~~
자~아 배도 조촐하니 각자 맛난거 펼쳐놓으면 멋진 부페에 정상주로~~~
"우리의 건강과 산우회 발전을 위해서 부라보!!! "
자 ~아 안주는 통닭으로~~~ㅎㅎㅎ
주변을 즐감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1000계단이 넘는 급경사 하산길로 하산을~~~~
강화도의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고려산과 넓은 논밭을 조망하면서~~~
계속이어지는 돌게단에 정신이 없소이다~~~ 힘들어유~~~
나무꾼과 신선이 바둑시합하는 조형물도 둘러보고~~~
하산하며 게곡을 막아서 연못을 조성한 휴게소에서 잠시 몸 좀 풀고서~~~
전국체전시 봉송등불을 붙이는 조형물도 둘러보고~~~
마니산공원을 빠져나와 발길을 서울로~~~~
귀로에 김포 대명항 어시장을 둘러보고 맛난 횟감에 마니산등정 기념으로 하산주 한잔하고~~~
항구에는 갈매기떼들이 지저기며 비상하는 풍경도 즐감하며 분위기 좋소이다. 한 잔 더 합시다.!!!
우리의 건강과 산우회 발전을 위해서 부라보!!!
강화도령님이 살았던 마니산행을 하며 안산즐산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