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3.8 (금) 3월 계절의 변화가 있는 꽃샘추위 날씨인 오늘, 동두천에 소재한 소요산을 찾아서
여유 있는 가벼운 산책을 하며 산세로 둘러싸인 소요산을 걸어며 원효대사의 러브스토리가 있는
자재암도 둘러보며 초봄의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멜로디를 들어며 소요산 자재암으로 출발~~~
오대산 소금강처럼 소요산도 산세가 수려해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산세가 웅장하진 않지만, 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기에 경관이 좋다. 그리고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한여름에는 등산로 입구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폭포는 작지만 여럿 있어서 등산을 하다 보면 좀 큰 원효폭포와 작은 청량폭포, 옥류폭포 등을 볼 수 있다. 하백 운대, 중 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여섯 봉우리가 원을 그리며 솟았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청량폭포가 보이는 곳이 하백운대다. 청량폭포를 지나서 암릉으로 된 능선 기를 따라 올라가서 나오는 것이 중 백운대. 중 백운대에서 더 올라가면 상백운대다.
눈이 녹으며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어며 소요산 숲 속으로 오르면서~~~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신라시대의 고승. 성은 설(薛)씨. 원효는 법명, 아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 압량(押梁 : 지금의 慶山郡) 불지촌(佛地村) 출신. 잉피공(仍皮公)의 손자이며 내마(奈麻) 담날(談捺)의 아들이다. 648년(진덕여왕 2) 황룡사에서 스님이 되어, 각종 불전을 섭렵하며 수도에 정진하였다.
650년(진덕여왕 4)에 의상과 함께 당(唐)의 현장과 규기에게 유식학을 배우려고 요동까지 갔지만,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 날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돌아왔다.
10년 뒤, 다시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하여 입당(入唐) 하기 위하여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사진자료 : 범어사 미륵암 벽화]
이후, 655년에서 660년 사이에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는데, 이 실계(失戒)의 사실이 오히려 원효로 하여금 더욱 위대한 사상가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실계 후, 스스로를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면서 광대들이 무롱(舞弄)하는 큰 박을 본 따 무애(無碍) 박을 만들어 천촌만락을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였다. 그 노래의 줄거리는 <화엄경>의 이치를 담은 것으로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야 생사의 편안함을 얻나니라."라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랫가락인데, 그 노래를 <무애가(無碍歌)>라 불렀다.
그리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친사람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하여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어 거사(居士)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었고, 혹은 가야금과 같은 악기를 들고 사당(祠堂)에 가서 음악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는 또 여염집에서 유숙하기도 하는 등 대중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생활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난뱅이나 어린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염불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일생은 화쟁의 방법에 의하여 자리(自利)를 구하고 대중교화를 통하여 이타(利他)를 행함으로써 석가 이후 '상구보리 하화중행'으로 대표되는 불타의 참정신을 구현한 것으로 일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요산은 지하철 1호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해 평일에도 많은 시민들이 찾아서 운동 겸 산책도 할 수 있고
등산객들도 자주 찾곤 하지요.
소요산자재암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소요산의 폭포,자재암,가을단풍을 소개하는 홍보판도 잘 조성해 놓아 잠시 보고서~~~
잠시 머물수 있는 팔각정에서 목도 축이고~~~
초입에 원효폭포수가 쏟아지고 원효굴엔 기도를 올리는 관광객도 눈에 보이고~~~
자재암으로 들어서는 108 계단을 쉬엄쉬엄 오르며~~~
108 계단을 오르면 금강문을 통과하고 이어서 자재암으로 들어서는 산속으로 이어지지요.
금광문을 들어서기전에 잠시 원효대에서~~~
원효스님이 이곳에서 지친 심신을 달랬다고 합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러브스토리를 읽어보고~~~ㅎㅎㅎ
이 절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한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정진하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을 하였다.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는 이내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수행에 정진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한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의 승려이던 제암과 자재암의 주지인 원공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우연히 만나 절을 중창했다는 영험담도 전한다.
자재암 청량폭포수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자재암 석굴과 그 위엔 우뚝 솟은 암봉의 모습이 신비스럽네요.
원표생에서 나오는 시원한 약수도 한 모금 마시고~~~ 계단으로 쉬엄쉬엄 등산로로 들어서며~~~
자재암에서 소요산 등산으로 시작되는 급경사의 돌계단을 오르며~~~
오늘은 등산복 차림이 아니라 조심하며 저당하 오르기로~~~
계속 이어지는 계단에 숨 좀 고르고~~~여~여~구~~~
경사가 있는 구간도 있는 편이고, 등산로 중간중간 돌이 상당히 미끄럽고 간격이 크게 벌어진 곳도 많아 초행이거나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낙상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계단도 정말 많다.
하백운대까지는 급경사에 계단으로 힘들지만 산세의 풍경ㅇ 매료되어 눈은 즐겁지요 . ㅎ
하백운대 아래 계단가지만 올라서 주변에의 여러 봉우리와 풍경을 즐기며 ~~~
소요산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의 스토리가 있는 곳이네요
신라 29대 무열왕녀 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사모하여
공주궁을 짓고 설총을 길렀다는 주초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정상인 의상대 옆에는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두고 이름을 지었다는 '공주봉'도 있지요
뾰족한 봉우리가 나한대이고 왼쪽 봉우리는 상백운대가 시야에~~~
소요산등산로도 데크계단을 잘 조성해서 많이 안전해져서 하백운대까진 오르기 좋지요.
맑은 창공에 우뚝 상백운대와 나한봉이 유혹하네요.
왼쪽이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봉 의상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주봉이 연결되어 자리하고~~~
하백운대 근처 계단가지에 올라서 주봉 우리의 풍경을 즐감하며 휴식 후 하산을~~~
절 근처에는 원효와 요석공주의 전설이 얽힌 요석궁지와 조선 태조의 행궁(行宮)터가 있다. 요석궁지는 요석공주가 설총을 키웠다는 곳인데 그 위치는 자재암 부근의 하백운대 부근으로 보인다.
온갖 풍파를 견딘 이 멋진 노송은 4계절 내내 우리의 마음을 녹아내 기게 하는 산신령이시야~~~
데크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며 거대한 바위로 둘러쌓이고 아래에 깊은 계곡 속에 자리한 자재암이 자리하고 있네요.
자리가 좁은지 자재암 종무소 건물은 저렇게 절벽에 지어져 있습니다.
계곡을 따라서 자재암을 빠져나오며 ~~~
원효대를 뒤로하고~~~~
소요산입구 맛집에서 치즈떡갈비정식에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3월의 초순이라 봄을 준비하는 소요산을 둘러보고 워킹하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