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나쁜 집은 있어도 싸고 좋은 집은 있을 수 없다는 단독주택 시장에, 같은 비용이라면 스펙이 더 좋은 집을 지어보자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있다.
연갈색의 아스팔트싱글 지붕재와 은은한 세라믹사이딩 벽체가 조화를 이룬다.
지어진 지 70년도 넘은 노후화된 집에 살고 계시던 부모님께 번듯한 보금자리를 지어드리고 싶었던 건축주 백종욱 씨. 마침 집을 짓는 직장 동료에게 소개받은 나무집협동조합과의 첫 미팅은 직접 그려간 거친 도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근에 시공 중인 현장을 몇 차례 직접 방문하고, 인터넷카페 게시판도 꼼꼼히 살펴본 후 ‘여기다’ 하고 최종적으로 일을 의뢰했다.
효율을 고려한 단층집, 탁 트인 오픈형 거실, 하루의 노독을 풀 수 있는 구들방, 바닷바람을 막아줄 단열과 창호 등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공간과 자재들로만 구성된 알찬 집이 완성되었다.
데크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건축주 백종욱 씨(좌)와 나무집협동조합 정세형 조합이사장(우)
최종안까지 총 9차례의 설계 피드백을 주고받고, 나무집협동조합 카페의 해당 주택 게시판 모든 글에 답글을 달 정도로 열의를 보인 백종욱 씨. 처음 하는 집짓기였지만,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목수 팀장에게 수시로 현장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고 말한다. 다소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인건비나 자재비 등을 직접 집행할 수 있어서 더 신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PLAN - 1F (96.18㎡)
‘ㄱ’자형 주방가구로 공간 효율을 높이고 레일 조명을 추가로 달았다.
부모님을 위한 구들방은 황토 바닥 마감에 편백나무로 벽을 둘렀다.
계단은 단조난간을 설치하고 벽에 센서등을 매입해 어두울 때에 전체 불을 켜지 않아도 된다. / 세면대를 분리한 욕실
설계 및 시공 : 나무집협동조합 1588-3673 | http://cafe.naver.com/namoohyup
총 공사비 : 약 2억1천9백만원
모든 방에는 창을 2개씩 내어 환기에 신경썼다.
천장구조재가 노출되는 시원한 층고의 거실
실제 도급으로 계약을 하면 잔금 10%에 대해서 일부 목수들은 거의 포기할 정도로 공사비 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장의 현실. 그러다 보니 아예 처음부터 공사비의 90%로 집을 짓는다 고 생각한다는 목수들도 적지 않아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건축주인 백종욱 씨가 매주 인건비를 송금하고 자재를 직접 주문했고, 처음이라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목수들은 집만 생각할 수 있고 비용이 온전히 자재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안심이었다고.
대부도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 단맛이 일품인 포도를 수확하느라 한창 바쁜 부모님께서는 처음에는 오랫동안 살아 온 집이 더 편하다고 하셨지만, 이제는 지금의 집에 정을 붙이셨다고 전하는 백종욱 씨.
긴밀한 소통 끝에 완성한 집에서 이제는 행복할 일만 남았기에 이름 붙인 ‘숲 속의 행복하우스’는 부지런한 건축주가 만족하는 집짓기의 시작이자 끝임을 보여 준 좋은 사례로 남을 것이다.
창고 등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다락
발코니는 방수재를 이용한 코너방수, 방수 시트, 방수합판 등을 사용하고 별도의 담수 테스트도 거쳐 시공에 만전을 기했다.
Interview.
“목수는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건축주는 그 과정을 투명하게 알고, 집은 저비용 고효율로 지어야죠.”
나무집협동조합 정세형 조합이사장
Q. 조합은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나요?
원래 한 목조주택 회사의 일을 받아 작업하던 목수들이었는데 그 회사가 와해되면서 우리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어요. 어차피 목수는 프리랜서라 소속감이 없었지만, 한두 사람의 문제로 회사가 흔들리는 일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고민하다가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게 되었죠. 팀장부터 팀원까지 조합원이 되면 한 표씩 의결권을 가지고 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것도 좋고, 이윤창출이 아닌 목수들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일거리 창출이라는 목적에도 맞겠다 싶었어요. 작년 4월에 발족해서 지금은 본부, 목수 10팀, 전기·설비 각 2팀, 토목·기초 각 1팀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요.
Q. 목수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나요?
처음에는 목조주택기술협회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 중 기장보 이상의 자격증을 갖춘 사람으로 한정했는데, 지금은 해당 교육이 없어졌어요. 시작 단계에서 함께 모였던 사람들이 회사를 키우는 중이라 모든 목수에게 개방하지는 못하고 조합에서 인력이 필요하면 목수를 모집하는 공고를 내요. 그러면 준조합원 형태로 1년 정도 일을 해보고 팀장과 협의해서 조합원 가입 여부를 확인하죠. 조합에 가입하는 게 의무는 아니고, 소속이 아니어도 함께 일은 할 수 있어요.
Q. 일반 목조주택회사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일반 목조주택회사는 일을 수주하는 곳과 일하는 곳이 사실상 분리되어 있어요. 건축주가 집을 짓겠다고 어떤 회사를 찾아가면 회사가 일을 받아서 현장 소장에게 맡기고, 현장 소장이 공정별로 팀을 섭외해서 보통 진행해요. 일하는 사람들은 그 회사 소속이 아니기도 하죠. 가끔 나중에 제일 밑에 있는 인부들이 돈을 못 받는 일도 생기기도 하는데 이 부분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기도 하고요. 저희는 수주하는 곳(본부)과 일하는 사람들(목수)이 모두 한 조직이죠. 현장소장이 없으니 중간마진이 없고 팀장이 소장 역할을 합니다.
건축가가 설계하고 사는 집으로 나무집협동조합에서는 시공만 맡은 성북동 협소주택 작업 ⓒ변종석
Q. 일을 의뢰한 이후부터 집을 짓는 시스템이 어떻게 되나요?
우선 건축주가 건축비용 일체를 본부(계약금, 조합운영비), 빌더(목수 인건비), 특수팀(기초, 전기, 설비 등), 자재회사에 직접 지불하는 시스템입니다. 집짓기를 조합 본부에 의뢰하면 함께 현장답사를 다녀오고 상담을 진행한 후 설계와 관련한 계약을 진행해요. 그러고 나면 조합 카페에 게시판이 생성되고 디자인에 대한 피드백 및 주요 자재 선정을 조율하고요. 디자인이 결정되면 이를 바탕으로 건축예산서를 만들고 팀장인 목수와 최종 확인절차를 거칩니다. 여기서부터 공사과정은 비슷하겠지만, 비용 지불방식이 다소 다른데 목수 인건비는 매주 주급으로 건축주가 직접 목수(개인)에게 지급하고, 건축주 본인이 결정한 자재를 직접 종합자재상에 입금하는 방식입니다.
Q. 조합의 카페를 보면 ‘저비용’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입니다. 지금의 시스템상에서 소장이 가져가는 비율 말고 비용적으로 차이는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저비용을 구현하나요?
우선 하청제도 없이 자체적으로 모든 걸 소화해요. 일반 회사처럼 경영상의 이윤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조합이 운영 가능한 최소한의 비용만 더 받고 나머지는 다 집 짓는데 쓰여요. 그래서 다른 데보다 재료비의 비율이 더 높은 편이고요. 단, 비용이 더 들더라도 구조재 2×6의 경우 일본의 J그레이드 제품만 쓰기로 조합차원에서 정했어요. 여기서 비용을 아낀다고 하는 것은 현장 소장 중간마진이 없고, 자재는 건축주가 종합자재상에서 직접 구매하기 때문에 회사가 남기는 부분이 따로 없습니다.
Q. 같은 조직 안에 있어도 목수들은 오랫동안 개별적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기술적으로는 어떻게 균일하고 안정된 품질을 보장하나요?
구조재를 동일한 제품을 쓰기로 했듯이 구조 부분은 저희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만한 자체 시방서 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건축주가 바꾸더라도 그 틀인 구조만큼은 50년, 100년도 끄떡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고요. 워크숍을 통해 서로가 가진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고 목조건축기술협회 등과 협력해 목수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제작도 고려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수분탐지기와 열화상카메라를 팀장들에게 지급했는데, 이미 건조된 나무라 해도 건축주분들은 나무가 비에 조금이라도 젖으면 불안해해서 직접 그 수치를 보여주고 단열 부분도 체크할 수 있게 조합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Q. 설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설계비는 어디에 포함되나요?
자체 설계인력이 있어서 건축주와 설계안을 같이 고민합니다. 저희와 파트너 협약을 맺은 외부 건축사도 있고, 아예 외부에서 설계를 받아서 저희가 시공만 하기도 하고요. 설계비는 따로 책정되어 있지 않지만, 시공계약 전에 규모 검토 및 기본 설계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받아요. 인허가면적 기준 99.17㎡(30평) 미만 150만원, 99.17㎡~165.29㎡(30~50평) 200만원, 165.29㎡(50평) 이상 250만원이고, 이게 설계비에 해당한다고 보면 돼요. 대신 피드백 횟수가 정해져 있지않고 무제한으로 설계안을 고칠 수 있고요.
위) 2개층 발코니가 특징인 지중해풍 주택 아래) 카톤스타일 외관에 포치 부분 긴 눈썹지붕이 인상적인 강화도 주택
Q. 건축주 직영시공이긴 하지만 현장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집에 대한 A/S는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합니다.
건축주가 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직영시공의 개념이지만 조합을 보고 일을 맡기고, 조합에서 집을 지었기 때문에 그에 관해서는 2년간 A/S를 해드립니다. 내년부터는 저희가 방문을 못 하면 건축주가 그 증권으로 돈을 받아서 고칠 수 있도록 하자이행보증증권을 끊어드릴 예정이에요. 사실 하자가 없는 게 제일 좋고, 발생한다면 저희가 직접 가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요. 다만 담당자가 타 지역에서 작업 중이라면 가까이 있는 팀장이 가서 문제를 보고하고 본부와 건축주가 조율하기도 합니다.
Q. 올해 초, 하자와 관련해 조합이 큰 진통을 겪었죠.
위에 말씀드린 A/S 관련해서 그 과정이 잘못된 사례가 올해 초에 발생했습니다. 건물 기초 부분이었는데,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잡았어야 했지만 그 과정과 시기를 놓쳤어요. 그로 인해 기초 담당자와 해당 현장 목수팀장은 징계를 받았고요. 건축주분께서는 저희와 얘기하다가 답답하신 마음에 저희 카페와 건축주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셨는데 그 영향이 상당하더라고요. 저희로서는 정말 큰일이었으나 감추는 것보다는 공개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조합원들이 각성하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건축주분과 만나 하자로 인한 실질적 보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이제 조합이 결성된 지 1년 반, 자체적으로 평가해본다면요?
후하게 점수를 매긴다면, 이 시점에서 조합은 절반의 성공 정도로 생각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가다듬어야 할 것도 많아요. 최근 임시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출자금을 늘리고 교육장과 교육 시스템 등에 대한 논의도 나누었어요. 직영공사는 특히 건축주와 시공자의 소통이 중요한 만큼 ‘목수들로 이루어진 협동조합은 다르다’하는 소리들을 수 있도록 세를 확장하는 한편, 조합 내의구조적인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더욱 내실도 다져나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