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라도(平戶) 트레킹 여행기 - 그 두 번째 이야기 전편에 이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시 계속된다. 【아래 그림】천상의 계단을 올라 아름다운 주변 풍광을 열심히 카메라앵글에 담고 다시 길을 떠나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래 그림】히라도 올레길 코스는 언덕을 거슬러 천천히 오르면 사이카이 국립공원의 광대한 초원이 펼쳐지는데 마치 제주도의 오름과도 많이 닮은 것 같다. 【아래 그림】잠시 숨을 멈추고 싶을 만큼 장대한 다도해의 풍광이 360도로 휘돌아 펼쳐진다. 멀리 우리가 히라도로 들어올 때 건넜던 히라대교도 보인다. 【아래 그림】올레길 코스는 언덕을 내려서니 남국의 정취가 풍기는 정자가 하나 있어 Partner와 함께 인증삿(shot)을 남긴다. 【아래 그림】올레길 코스에는 삼나무 숲길로도 이어진다. 【아래 그림】걷다보니 올레길 코스에는 대나무 숲길도 이어진다. 【아래 그림】올레길을 걷다가 잠시 쉬면서 후미일행을 기다려주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래 그림】올레길 구간 중 산림이 울창한 어느 습한 구간을 지나는데 숲에서 들려오는 낯선 귀신의 음성 비슷한 소리가 음산한 기분을 더해주더니만 카메라도 놀랬는지 사진도 귀신에 홀린 것 같이 찍혔다. 【아래 그림】이곳에도 남국의 정취가 풍기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아래 그림】히라도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야구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아래 그림】히라도 야구장을 지나면서 운동 중이던 선수들과도 인증삿(shot)을 남긴다 【아래 그림】다양한 색깔의 수국이 둥근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지나는 이국의 나그네를 반기고 있다. 전설이 없는 꽃은 없는 것 같다. 수국도 옛날 일본에 ‘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련한 한 여인의 애절한 사연을 갖고 피어난 꽃이다. 그런데 수국을 ‘국이’의 고향 일본 땅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아래 그림】일본의 국이가 제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우리 아름다운 사람들만 하오리까! 【아래 그림】일본의 공동묘지 모습인데 화장(火葬)을 하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봉분이 없고 비석만 세워져 있다. 【아래 그림】기와치 올레길에서 청량하고 맑은 바람에 몸과 마음을 Healing한 후 마을로 내려오니 길에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다. 일본에서 처음 보는 십자가이다. 에도 막부는 급격한 기독교 신자의 증가를 정치적 위협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 탄압의 명분은 '일본에는 이미 신이 있기 때문에 다른 신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아래 그림】성당과 사찰이 함께 배치되어 사진 찍기 좋은 Photo-Zone이 이곳인 것 같다. 【아래 그림】사찰에는 절 입구에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은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불린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닌 경계를 말하며 절대 차별 없는 이치를 나타낸다. 승과 속이 둘이 아니요,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란 얘기이다. 저 성당의 십자가가 상징하는 예수의 사랑이나 사찰에 모신 부처의 자비는 용어만 다를 뿐이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성자의 등불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사진이나 찍는 곳으로 인식할 게 아니라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가 둘이 아니란 의미로 ‘불이골목(不二路)’이라 부르고 싶다. 【아래 그림】저 언덕 위에 있는 히라도성을 들리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 성에 살았던 성주도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출병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가문이 포상을 받아 저 성을 세웠다. 성은 아름답지만 우리 조선의 아픈 역사와 연관되어 있어 아름답게만 봐줄 수는 없어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래 그림】히라도성과 앞에 있는 항구를 바라보며 당시 일본으로 잡혀 온 조선의 도공들을 생각하면 임진왜란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일본군은 임진왜란 7년의 전쟁을 겪고 귀국하면서 웅천의 도공 등 100여 명의 조선인을 데려와 히라도성 아래 마을을 정하여 ‘고라이(高麗)정’이라 하고 이곳에 살게 했다. 【아래 그림】400년이 되었다는 소철나무를 배경으로 Partner의 인증삿(shot)을 남긴다. 【아래 그림】성당을 지나 항구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벽에 붙은 포스터가 히라도의 인물 정성공을 추도하는 행사를 알리는 것 같다. 정성공은 히라도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명나라 말기의 관리이자 해적이며 거상이었던 정지룡이며, 어머니는 타가와 마츠(田川松)이라는 일본여인이었다. 일본의 문화사를 보면 일본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활약한 정성공을 기리는 시대극도 상연되고 있다. 【아래 그림】이곳은 송포사료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가와치 언덕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진 섬들을 ‘송포제도’라 부른다.
【아래 그림】송포사료박물관 입구에는 ‘왕직(王直)“이라는 인물의 조그만 동상이 서있다. 왕직은 히라도 중세사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히라도는 16세기 17세기 동아시아해상네트워크를 장악했던 일명 ‘해적(왜구)’들의 본거지였다. 해적들의 두목은 소금장수였던 중국인 ‘왕직’이었고 다양한 국적으로 이루어진 국제해상네트워크였다. 일본역사를 보면 왕직은 이 지역에서 휘왕(徽王)이라고 칭하며 해상왕으로 군림하였던 인물이다. 우리로 보면 해상왕 장보고와 비슷한 인물이다. 【아래 그림】2시간 이상 오래 걷고 나서 송포사료박물관 입구에 있는 노천 온천에서 족욕을 즐기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 일본사람들은 따뜻한 온천물에 족욕(足浴)을 즐기지만 우리는 산행 후 산을 오르느라 고생한 발도 숨을 쉴 수 있도록 시원한 계곡물에서 탁족(濯足)하며 심신의 피로를 푸는 것은 서로 비슷한 것 같다 . 숙소인 란푸호텔 【아래 그림】우리는 온천에서 족욕을 즐기고 숙소인 란푸호텔로 향하였다. 【아래 그림】숙소인 란푸호텔 입구에서 양해를 구하고 친절한 일본여인들과도 인증삿(shot)을 남긴다. 아름다운 여인이 내 팔짱을 껴줘서 그런지 내 모습이 너무 좋아하는 표정이다. 【아래 그림】숙소인 란푸호텔 객실에서 바라본 바닷가 모습은 약간은 남국의 정취기가 풍긴다. 【아래 그림】호텔 식당에서 일본정식 저녁식사를 앞에 두고 인증삿(shot)을 남긴다. 【아래 그림】일본 음식상이 맛을 떠나서 일단 정결하고 깨끗해 보인다. 【아래 그림】호텔 식당에서 일본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 【아래 그림】서양 사람들은 호텔에 Bible을 갖춰놓은데 반해 일본 사람들은 호텔객실 탁자 밑에 불경을 구비해 놓았다. 불경은 ‘불교성전’이란 책인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영문과 한글인데, 호텔 객실에는 영문과 일본어로 된 책으로 내 것과 같은 책이다. 【아래 그림】다음날 아침 식사 후 호텔 앞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는데 그곳에도 역시 히라도의 인물 정성공의 동상이 바다를 향해 서있다. 정성공은 일본과 중국 양국에서 대접 받고 있는 인물이다. 어머니가 일본인이며 고향도 히라도이다. 일본역사를 보면 정성공이 사망하였을 당시 그가 나가사키에 축척해 두었던 은(銀)이 7천관이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과 관련이 깊은 탓인지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가 태어난 히라도에서는 그의 탄생축제를 열기도 할 정도이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선지 장군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아침 식사를 마치고 후쿠오카로 가던 도중에 차 안에서 바라보니 이정표에 ‘이마리(伊万里)’라는 지명이 보인다. 히라도 인근에 위치한 이마리(伊万里)라는 항구는 한자로 이만리(고향땅까지 거리가 2만리)인데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도공들의 염원이 묻어있는 지명이기도 하다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후쿠오카 【아래 그림】우리는 후쿠오카로 와서 학문의 신을 모신 ‘태제부천만궁’을 방문하였다. 태제부천만궁 도리이(鳥居) 문 앞에서 인증삿(shot)을 남긴다. 전통적인 일본 신사의 정문인 도리이(鳥居)는 우리나라 홍살문과 같은 기능으로 곧 신성한 곳을 구분 짓는 경계의 표시이다. 불교사찰에 있는 속계와 법계를 나누는 일주문과 비슷하게 보면 될 것 같다. 【아래 그림】신사를 지키는 소의 동상은 자신의 아픈 부위와 소의 아픈 부위를 같이 만지면 아픈 곳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다 한다. 그런데 우리 백원장님은 의사선생님인데 안 만져도 되는 것 아냐! 【아래 그림】태재부천만궁은 초입에 있는 과거, 미래, 현재를 나타내는 세 개의 다리를 배경으로 Partner의 인증삿(shot)을 남긴다. 【아래 그림】신사는 절은 아니고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조상신을 모시는 곳이다. 일본에는 10만개가 넘는 신사가 있다고j 한다. 이중에서 상당부분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을 모신 곳이란다. 【아래 그림】태재부천만궁을 배경으로 Partner의 인증삿(shot)을 남긴다. 【아래 그림】학문(學文)의 신(神)을 모신 신사(神舍)라 그런지 매년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며 새해의 운을 점치고 액운을 소멸 하기위하여 일본 전역에서 이곳을 방문 한다고 한다. 【아래 그림】태재부천만궁을 배경으로 나도 인증삿(shot)을 남긴다. 모지코 【아래 그림】태재부천만궁 탐방을 마치고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모지코항으로 향하였다. 【아래 그림】모지코항에서 바라보니 간문(關門)해협 너머로 시모노세키항이 보인다. 【아래 그림】모지코항 블루윙 모지에서 간문(關門)해협을 감상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 【아래 그림】모지코항에 위치한 북구주시립 국제우호기념도서관 앞에서 Partner의 인증삿(shot)을 남긴다. 다시 시모노세키로 【아래 그림】간문(關門)해협에 있는 간문(關門)대교를 넘으니 시모노세키항이다. 혼슈의 제일 끝자락에 있는 시모노세키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으로 해산물이 풍부한 맛의 보고이다 【아래 그림】일본 쓰시마,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등 일본 서부지역에는 아직도 조선통신사의 흔적과 관광지가 많이 있다. 조선통신사가 쓰시마에 도착, 첫발을 내디딘 곳은 시모노세키 아카마신궁 앞이다. To Be Continued.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시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