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순 / 진해자
새벽을 감싸던 는개가 안개비로 내리는 아침이다. 차를 몰고 중산간 마을을 지나간다. 숲 사이로 보이는 조팝나무 꽃줄기가 살며시 손을 흔든다. 달리던 차를 갓길에 잠시 멈추었다. 비를 머금은 고사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어린순을 감싸고 있는 솜털에 안개가 내려앉아 고사리꽃이 핀 것처럼 이쁘다. 숲에서 고사리를 꺾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 어머니의 모습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고사리 장마다.
고사리 장마가 시작되면 어머니는 포대를 챙기고 고사리 꺾으러 갔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먼 길을 종일 걸어 다닌다. 가시가 있는 덤불 속에 오동통하고 먹음직스러운 고사리가 많이 있다. 어머니는 가시에 팔이 긁혀 피가 나면서도 고사리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벌이가 없던 시절 고사리는 아이들의 배를 곯지 않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었다.
고사리를 한 짐 꺾은 어머니는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산과 들판을 헤매었으니 다리가 아프고, 고사리를 꺾을 때마다 허리를 굽혔으니 허리가 아프고, 먹을거리가 변변치 못하니 배가 고팠을 것이다. 하지만 지친 몸을 살필 새도 없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어렵게 채취한 고사리를 그대로 두면 상품이 안 된다며 곧바로 삶았다.
장작불을 붙이기 위해 작은 솔가지들을 먼저 태웠다. 그 위로 장작을 하나씩 집어넣는다. 장작은 너무 가까이 두어서도 안 되고 너무 떨어져 있어도 잘 붙지 않는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솔가지에 붙은 불이 장작에 옮겨붙기를 기다려야 한다.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물이 빨리 끓어오르길 바라며 아궁이에 장작을 많이 집어넣었다. 잘 붙던 장작불이 점차 사그라들며 검은 연기만 가득 차오른다.
자리로 돌아온 어머니는 아궁이에 들어있는 장작을 몇 개 빼내고 틈틈이 불쏘시개로 뒤집어주었다. 사그라들던 장작불이 다시 활활 타오른다. 어머니는 모든 일에 욕심을 낸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고사리도 한번 굽힐 때 하나밖에 꺾을 수 없다고 한다. 허리를 굽혀서 찬찬히 봐야 눈에 들어오는 고사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만 꺾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가마솥을 뜨겁게 달구는 장작불은 어머니의 고단한 하루를 타닥거리는 불꽃으로 날려 보냈다. 장작은 아낌없이 자신을 태우며 화려한 불꽃을 만든다. 몸이 까맣게 타들어도 아프다거나 뜨겁다고 외면하지 않는다. 물이 팔팔 끓어 고사리가 푹 삶아질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마른 장작이라고 눈물이 없는 건 아니다.
햇볕에 잘 마른 장작은 거침없이 불꽃을 내며 활활 타오르지만, 해가 들지 않는 곳에 오래 두어 눅눅해지면 잘 붙지 않아 매운 연기가 난다.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도 늘 궁핍한 살림으로 어머니의 눈물샘은 마를 날이 없었다. 아궁이 앞에 앉은 어머니의 고단한 하루는 어떤 장작이었을까.
타오르는 장작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내뿜던 수증기가 고사리가 익었음을 알린다. 어머니는 고사리를 소쿠리에 건져 올려 물기를 뺀다. 세상 물정 모르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던 고사리가 한순간에 풀이 죽었다. 누군가에 의해 꺾이지 않았더라면 산과 들을 평정하며 푸르게 피어났을 것이다.
열여덟 살에 결혼한 어머니의 삶도 피어보지 못하고 꺾여버린 고사리 같았다. 삼대독자 집에 시집가서 신혼의 재미도 모른 채 혼인하자마자 4·3사건으로 남편을 잃었다. 진흙 속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박차고 나오려 애써도 몸은 점점 늪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진흙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어머니의 어둡고 무거운 현실에도 작은 씨앗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모래가 속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이겨내고 영롱한 진주를 잉태하는 조개처럼, 슬픔을 삼키며 악착같이 살아서 낳은 아이가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타인의 손이 잘 닿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가시덤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가시덤불 속의 고사리가 예쁘고 튼실하듯 열여덟 살 어머니도 참으로 고왔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유복자 아들을 데리고 남편 없이 살아내야 하는 생활이 오죽했을까. 어떻게든 견디어 활짝 피어나길 숨죽여 기다렸다.
활짝 핀 고사리는 잘 꺾이지 않는다. 질기게 뿌리를 내려 땅속으로 영역을 넓힌다. 하지만 이슬을 머금은 고사리순의 작은 소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의지가지없이 다시 한번 ‘툭’ 꺾이고 말았다. 피어보지 못하고 솥단지 안에서 푹푹 익어가는 저 여린 고사리가 자신의 처지 같았다. 어머니의 삶도 활짝 핀 고사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삶아서 물컹물컹해진 고사리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팔딱이는 작은 생명을 놓을 수는 없었다. 어린 유복자를 데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늘어난 식솔들을 보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삶은 고사리를 햇볕에 널어 말리며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마음도 골고루 마르길 바랐다. 비록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해 위태롭지만, 힘없는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어린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어머니가 고사리를 꺾어 오는 날이면 잘 볶아진 고사리 반찬이 밥상에 올라왔다. 힘들게 채취한 고사리지만,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만들기 위해 재를 섞은 물에 담갔다. 하루쯤 푹 담가 남아있는 독을 없앤다. 독이 빠진 고사리는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살살 볶는다. 고소한 냄새가 허기진 배를 더욱 자극한다. 갓 지은 밥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볶은 고사리를 얹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맛이 입안에 감돈다. 걸음걸음마다 허리 숙였을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떤 그릇에도 다 담아낼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은 꺾어도 다시 돋아나는 고사리순 같다.
어머니의 요리는 고급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소박하고 수수하면서도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기억되게 하는 힘이 있다. 돌아가신 지 오래지만 고사리 볶음만 보면 어머니가 옆에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맛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먹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음식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그때의 감정이 샘솟는다. 먹으면 마냥 행복해지고 가슴에 묻어둔 누군가가 떠오르는 음식을 누구나 한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사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행복한 사람이다.
안개 속에서 고사리를 꺾던 아주머니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진다. 잠시 멈추었던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은 사라지고 없지만, 고사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돋아난다. 당신을 보내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간에도 고사리는 끊임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험하고 먼 길을 걸어가던 어머니의 시간이 고사리순으로 다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