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출이어도 괜찮아
신 은 희
큰딸이 밤에 선물 꾸러미를 내놓았다. 하얀 상자를 열어보니 태블릿 pc였다 .
"엄마, 태블릿 pc 알바해 산거예요. 그러니 맘껏 글쓰기 하세요."
"정말! 고마워."
나는 감동해 큰딸의 어깨를 감싸고 잠시 고맙다며 울었다. 딸이 해맑은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딸은 초밥집 알바를 주말에 했다. 놀라움과 감격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만의 컴퓨터가 없어 몹시 아쉬웠지만 내색을 하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글을 쓰면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저장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거실이나 서재로 가면 컴퓨터가 있었지만 가족 공용이었고 사용법을 몰라 불편하였다.
눈을 감았다. 나의 역사가 스쳐간다.
2005년 둘째 딸을 낳다가 산부인과 의료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뇌 병변 1급으로 휠체어를 탔는데, 계단 오르기, 경사로 걷기 연습 등 피나는 노력으로 뇌 병변 6급 영구가 되었다. 2005년 뇌 수술을 하고 나니 글씨부터 엉망이 되었다. 큰 글씨밖에 못 썼다. 8칸 국어 노트에 글씨 연습을 하였다. 인쇄체같이 가지런하던 내 손글씨는 추락했다. 갈매기가 날아가듯 삐뚤빼뚤 썼다.
여러 번의 수술을 했는데 남편의 도움이 기적을 일으켰다. 농협을 휴직하고 6개월간 간병을 해주는 등 도움이 컸다. 그때 중환자실에서 남편이 쓴 병상 노란 일기장을 보면 눈물이 펑펑 나오곤 한다. 당시 8살이던 큰딸도 움직임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링거병을 화장실로 옮겨주고, 손잡이를 따라 계단 걷기 연습을 비디오로 찍어줘 고마웠다는 마음을 평생 갖게 해 주었다. 시어머니는 병원 중환자실에 두 달간 있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맡아 하셨다. 2005년에 갓 태어난 둘째 딸을 대전 큰언니 집에서 6개월간 돌봐주었고, 큰딸을 대전 탄방 초등학교로 전학시켜 보내 주었다. 청주 동서 집에서 둘째 딸을 그 뒤 6개월을 봐주었다. 당시 병원에 동서가 아기를 데리고 와줘 환자복을 입은 내가 아기와 찍은 사진은 지금 볼 때도 눈시울이 젖게 된다. 돌 때 동서가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잊을 수없다. 그때 나를 문병 온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을 한다. 지금도 벽에 걸려있는 동서가 찍어준 둘째 딸 돌사진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오곤 한다.
가족들의 희생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난 기적적으로 깨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가족의 모습은 장애인이 된 나를 중심으로, 시어머니, 남편, 딸 둘이 갈등과 힘겨움을 겪고 있다. 그러던 중 테블릿 pc도 생긴 걸 기념 삼아 가족 화합을 위해 어버이날도 있고 2022년 5월 6일 가족 여행을 했다. 작년 시월 여행이 좋았나 또 가자고 딸들이 보채서였다. 남편이 일정을 잡았다. 10시에 충주호 유람선을 타기로 예약했다.
용인에서 약 한 시간 반 남편이 운전하여 충주에 도착하였다. 아침 체조도 하고 풍경을 담아 사진도 찍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상쾌했다.
모처럼 내 일상의 근심이 사라졌다. 파란 강물 위로 배가 지날 때 흰 물결이 일어났다.
초록 산이 물기 오른 듯 강물과 함께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셔틀을 눌렀다. 강물 위로 하얀 분수가 솟아올랐다. 큰 배가 옆을 지나갈 때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 주었다. 딸들은 영화 타이타닉을 따라했다. 한 명이 양팔을 벌리고 또 한 명이 허리를 감싸며 찍어달라고 젊은 아줌마에게 부탁하며 부끄러운 듯 까르르 웃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옥순봉 출렁다리를 건넜다. 산 사이로 길게 난 길의 아래는 유리로 만들어 파란 강물이 보인다. 긴 다리가 출렁거렸다. 담력 테스트처럼 나는 마음을 강하게 움켜쥐고 앞만 보고 걸어 나갔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에 앞서 두려움과 걱정은 꼭 있기 마련이니까. 복지관 물리치료를 받을 때도 힘겨운데 참아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넘어섰었다. 출렁다리를 다 건넜다. 뿌듯하였다.
작년엔 남편이 세 시간가량 운전해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을 돌고, 고창 선운사를 보았다. 시어머니는 고창 복분자주가 장어와 잘 어울린다 하셨고, 큰딸은 복분자주가 쓰다고 한 모금만 마셨다. 군산에서는 바다를 보며 큰 조개구이와 해물과 고기를 함께 굽는 삼합을 먹었다. 딸들이 좋아하였다. 그때의 사진을 볼 때마다 모두 웃는 얼굴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진다.
'어려움도 많지만 지금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내 가족이 있어 불안도 헤쳐나갈 수 있겠지' 가족 여행에서 지쳐 입을 헤 벌리며 차 안에서 그만 잠든 둘째 딸의 사진을 큰딸이 찍으며 좋아한다. '저 둘째 딸을 낳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장애인이 된 거 아닌가? 때론 미워도 하지만 부족함을 감싸주고 채워줘야 가족이지? 일만 시킨다고 투덜거리는 며느리, 느리고 답답해 내가 하게 되는 큰딸, 하도 덜렁거려 필통이고 교통카드고 몇 번 잃어버린 둘째 딸..' 누구나 다 결점이 있다. 불만을 말하기 전에 칭찬을 하자. 음식도 맛깔나게 하시고 지혜로운 시어머니, 자상하여 뮤지컬 음악회 등 답답해하는 나에게 자주 바람을 쐬어주는 캠퍼스 커플 남편, 안경이니 운동화니 립스틱이니 생일 선물 끝에 엄마 글 쓰라고 태블릿 pc까지 질러버린 수재형의 큰딸, 설거지며 심부름도 곧잘 해주는 편한 둘째 딸. 단점을 감싸주고 장점을 보니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시어머니와 묵묵히 여행을 계획하고 운전해준 남편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살아 계실 때 추억 하나라도 만들어 시어머니와 아이들 다 즐겁게 만들어야 하겠지' 불만을 하면 끝도 없고 좋은 추억을 찾으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론은 다 아는데 현실은 청개구리처럼 행동한다. 가슴이 벌렁거릴 만큼 화나는 일도 그려려니 하고 참아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장애인이 된 엄마를 배려해주고 가족 간의 작은 화합을 이끈 충주 가족 여행이었다. 나는 차창을 스치는 풍경을 보며 큰딸이 사준 태블릿 pc가 작가의 꿈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했다. 억울한 장애인들을 대변하고 위안을 주는 글을 써서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충주호 파란 물속에 내 고난의 시절과 노력, 의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른거렸다. 가족이 도움을 주고 배려해준다. 내겐 독자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감동을 주는 작가의 꿈이 여물어간다.
첫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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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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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꿈과 같고, 환이라지만,
불편한 몸은 얼마나 큰 고통인지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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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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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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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