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성체로 산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2003).’ 모든 생물이 먹고 마셔야 살듯이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를 받아 하느님 자녀로 성장한다. 그런데 참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빵이 구세주 예수님의 몸이고 보통 포도주가 그분의 피라고 믿는 게 쉽지는 않다. 인간의 지성은 이 믿음에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 미사 때 주례 사제를 통해 듣는 것처럼, 예수님이 먹으라고 하니 먹고, 마시라고 하니 마신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예수님은 파스카 만찬을 성체성사로 만드셨다. 소위 말하는 ‘최후의 만찬’ 자리는 동상이몽 그 자체였다. 예수님은 그것이 지상에서 제자들과 나누는 마지막 파스카 만찬임을 아셨지만 제자들은 전혀 몰랐다. 단지 오랜만에 편하게 좋은 음식 먹고 즐기는 시간이었을 거다. 오래전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그 만찬을 하는 동안 죽음이 그들을 그냥 지나쳐 갔던 것처럼 예수님은 그 예식으로 사람들이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신비를 알 턱이 없었다. 잠시 후 당신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으로 그 빵과 포도주는 당신의 몸과 피로 변하게 될 거였다. 솔직히 아무리 정성스럽게 그리고 초집중해서 성찬 예식을 거행해도 그 보잘것없는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주님과 몸과 피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미사 경문에 적혀 있는 대로 말하고 지시된 대로 행할 뿐이다. 그러니 믿음이 없으면 그 시간은 지루하고 그 자리는 무의미하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을 맺을 때 동물을 잡아 둘로 가르고 그 피를 뿌렸다. 농경문화의 우리에게는 섬뜩하게 보이지만 그 의미는 분명하다. 그때는 피에 생명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한 마디로,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의 하느님 백성이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계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모세는 번제물의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 24,7-8)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계약대로라면 그들은 그 번제물의 동물처럼 죽어야 했다. 하느님은 백성에게 벌을 내리시는 대신에 예언자들을 계속 보내셔서 야단치고 어르고 달래며 다시 돌아오라고, 계약을 지키라고, 그래야 한다고 하셨다. 급기야 당신 아들까지 보내시기에 이르렀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모르겠다. 하느님은 우리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신다. 왜? 계약 때문이라기보다는 죽음을 건너가고 영원히 사는 길은 그 계약을 지키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힘으로 하느님 계명을 지킬 수 없나 보다. 그러니까 미사 성찬례 안에서 계약 위반의 벌을 우리 대신 당신이 받으시고, 영성체를 통해 우리와 하나가 되셔서 계약을 지키게 도와주신다.
미사 때 쓰이는 소제병 하나 값은 20원, 대제병은 200원이다. 하느님은 20원짜리 빵과 한 모금의 포도주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다. 이는 창조주 하느님의 품격에 전혀 맞지 않는다. 계약 위반의 벌을 사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식에 걸맞은 재료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런 것을 이 세상에서 구할 수는 있을까? 그리고 그 예식에 합당한 사제와 그걸 먹고 마실 자격이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이 보잘것없는 빵에서 우리 하느님의 애타고 간절한 바람을 느낀다.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 나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의 애간장이 다 녹아내린다. 하느님이 이렇게 바라시는데, 미사에서 성체를 모시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이들을 보면 하느님은 얼마나 속상하고 슬프시겠나. 한 교우는 어렸을 때, 자신에게 신앙을 전해준 외할머니가 해준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너는 꼭 영성체해야 한다. 네가 죄를 지으면 무슨 죄를 짓겠냐.’ 지금 어른이 된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성체의 깊은 의미와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신비를 몰라도 받아먹어야 한다. 밥 먹듯 죄를 짓는데도 그나마 이렇게 사는 것이 전부 다 그 덕인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성체성사로 산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어쩌면 성체성사의 신비를 잘 모르는 게 저에게는 오히려 나을지 모릅니다. 만약 안다면 온몸이 떨려서 성체를 받아먹지 못할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에서 예수님은 희망과 생명의 녹색 옷을 입고 계시고, 어머니는 아드님을 저에게 내어 주십니다. 영성체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영원히 살기 시작했음을 믿게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