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을 아예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주역을 아는 사람 가운데 이 책을 동양 최고(最古)이며 동시에 최고(最高) 철학서로 꼽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동양, 그 중에서도 한중일 지식인 그리고 민중에게까지 주역이 끼친 영향은 넓고 깊다. 그런데 정작 주역이 어떤 책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막연하게 점치는 책 혹은 동양철학의 시원(始原) 쯤으로 생각한다. 좀 더 아는 사람은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떨어졌다는 사기(史記) ‘공자세가’의 ‘위편삼절(韋編三絶)’ 고사를 아는 정도다.
주역에 대한 주석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나라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서 수많은 종류가 나왔다. 그런데 정작 주역 책과 저자에 대한 해설서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 ‘주역의 탄생’ (이봉호, 파라아카데미, 2021)은 이전의 학문적 성과를 담고 있으면서 일반인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체와 내용으로 돼 있다.
주역은 언제 쓴 책일까. 주역은 과연 주(周)나라 역(易)이란 뜻일까. 만약 아니라면 주역 말고 다른 역(易)도 있다는 말인가. 일반적 인식으로 주역은 주나라 역이다. 주역 경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인 역전(易傳)편 가운데 총론편인 계사전(繫辭傳)에는 “복희씨(포희씨)가 8괘를 그렸고, 역이 은나라 말기 주나라 덕(德)이 흥할 때 일어났다”는 문장이 있다. 이를 근거로 사마천은 “주나라 건국 초기 문왕이 8괘를 중첩해 64괘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자(朱子) 역시 주를 주나라로 해석한다.
그런데 주나라 이전 하(夏)나라에도 역이 있었고 은(殷)나라에도 역이 있었다. 이를 각각 연산역(連山易), 귀장역(歸臧易)이라고 부른다. 주역이 주나라 역이라면 연산역은 하역, 귀자역은 은역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렇지 않다. 한나라 대학자 정현(鄭玄)은 주를 ‘두루 주(周)’로 보았다. ‘두루 완비돼 갖추지 않음이 없다(周普)’고 해석했다. 연산역은 산들이 첩첩으로 이어져 끊이지 않은 것을 형상화했고, 귀장역은 만물이 그 속에 감추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주 왕조 구분이 아니라 세 종류의 다른 역이라는 뜻이다. 현대 학자들도 주역 성립 시기에 대해 합의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 학자 허신이 지은 인류 최초 문자 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역(易)은 도마뱀을 형상화한 것으로 풀이했다. 도마뱀은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피부색을 바꾸는데 우주 삼라만상이 변화하는 것으로 상징했다는 말이다. 역의 영어 번역이 ‘Book of Changes(변화의 책)’인 점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易의 글자 모양을 따라 일(日)과 월(月)이 결합한 글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역시 설문해자 뜻풀이로 일월이 역이 된다. 음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했다. 음양이 단순히 그늘과 햇볕 같은 자연현상을 넘어 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역은 일월, 즉 음양이 결합해 더욱 변화라는 심오한 뜻을 지니게 된다. 새의 형상을 본떴다는 해석도 있다. 새 조(鳥) 자의 갑골문 글자와 거의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주역』은 작은 철학사이다. 음양, 삼재, 태극 등은 전국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그 개념이나 용어들이 형성된다. 『역전』에는 음양, 삼재, 태극 등의 용어가 나타난다. 이는 사상사의 흐름과 『역전』의 성립이 궤를 같이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64괘의 괘 배열에서 건괘-곤괘 괘 배열, 군왕-신하의 위계, 태극-음양의 체계는 한무제의 대일통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한무제는 대일통사상을 제시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완성시킨다. 이 과정에 유교가 국교가 되고, 유교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군신간의 위계, 음양의 배후로서 태극의 논리가 탄생한다.
저자 이봉호는 지리산 근처 함양에서 나고 자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박상륭의 소설에 빠져서 살다가, 철학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경북대 철학과에 입학하고, 성균관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한양대, 국민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덕성여대, 인천대 등에서 초빙교수와 학술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경기대학교 교수로 있다.
≪정조의 스승, 서명응의 철학≫(2014년 대한민국학술원상), ≪최초의 철학자들 -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을 썼고,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1≫ 등을 공동 집필했다. 번역한 책으로는 ≪도교사≫, ≪도교백과≫, ≪도교사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