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해가 가고 쥐의 해가 왔습니다. 쥐는 흔히 다산과 풍요의 의미가 있다고 하던데, 올 한해 여러분들의 소망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저희들은 이곳 대구의 앞산에서 좀 특별한 새해맞이를 했습니다. 94년 1월 1일 0시 30분을 기해 떨쳐 일어난 사파티스타 농민군의 봉기 14주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앞산 달비골 입구 상수리나무숲을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 땅과자유 동무들은 앞산에 모였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는 시점에 떨쳐 일어난 멕시코 사파티스타 농민군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곧 닥쳐올 한미FTA를 생각했습니다. 올 2월 임시국회에서 어쩌면 비준안이 통과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러면 사실상 한미FTA는 발효가 되고, 우리도 멕시코 민중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새해맞이였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사파티스타 선언문을 함께 낭송하면서 그들의 분노에 깊이 공감했고 나아가 한미FTA 저지를 위한 우리의 결의도 함께 다졌습니다.
또한 한미FTA와 같이 자본의 논리에 복무하기 위해서 마구잡이식 개발이 난무하는 그 와중에 있는 앞산, 그 앞산에 터널을 뚫으려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경제성장의 망령, 그 뿌리깊은 망령에 맞서기 위해서 앞산 달비골 상수리나무숲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올해 발족하는 천릿길기금, 그 천릿길기금의 제안문을 숲의 정령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읽으면서 올해 이 기금을 통해 우리들이 열망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했습니다.
이만하면 새해맞이를 잘 했습니까? 역시 땅과자유답다 하시겠지요.
올 한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이 날의 결의는 우리에게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져주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미FTA 국회비준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과 앞산을 지켜내기 위한 ‘기도’가 바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최전선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고, 우리가 올 한해 열의를 가지고 시작하는 천릿길기금의 성공적인 발족을 기원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 천릿길기금의 발족을 위해 우리는 지난 한해 많은 시간을 이 기금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새해맞이 인사를 드리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 천릿길기금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우리와 함께 이 천릿길기금을 만들어가자는 말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 중에 ‘천릿길’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행진곡풍의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저절로 흥이 나는 것이 여간 즐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멜로디도 멜로디이지만 노랫말은 더욱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2절의 첫 소절인 “동산에 무지개 떴다. 고운 노을 물들고 하늘가 저 멀리엔 초저녁 별 빛나네. 집집마다 흰 연기 자욱하게 덮이니 밥 냄새 구수하고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소리” 이런 구절은 뛰어난 시적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 소절을 접할 때면 언제나 엄마 품, 따뜻함, 고향 마을 이런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 노래를 땅과자유학교의 교가라고 하면서 열심히 부르고 음미하고 있습니다. 언제 여러분들과도 함께 이 노래를 목놓아 부르고 싶습니다.
이 천릿길기금이라는 아이디어도 이 노랫말에서 나왔습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한걸음 두걸음 내딛으며 함께 ‘내 땅에 내가 가자’는 염원을 드리는 것이지요.
그동안 땅과자유는 자율/자급/자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농업 중심의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모토 삼아, 우리 스스로를 ‘땅의 사람들’이라 칭하면서, 우리 농업의 회생을 염원하는 여러 활동을 해왔습니다. 특히 지난 2005년 11월 말 쌀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난 후 바로 거리로 나와서 우리쌀과 농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를 200일 동안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땅과 농업, 그것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우리들의 가슴속의 열망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우리 농업을 말 그대로 폐기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도대체 한 나라에 농업이 없는 나라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주권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란 것을 조금만 길게 생각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인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이 나라 정부는 그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농업을 말살하는, 우리 서민 살림을 쥐어짜게 될 한미FTA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올 한해 더욱 마음을 다잡을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다짐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는 천릿길기금을 시작합니다.
우리 스스로 조금씩 돈을 모아서 기금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땅과자유가 느슨하게 유대를 맺고 온 동무들에게 서로서로의 책임감을 함양하는 계기를 만들어, 우리 우정의 망을 더욱 촘촘히 하려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이 기금에 참여함으로써 이 기금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고, 주체적인 활동을 벌여나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금의 일정 부분을 우리가 벌이는 다양한 활동의 경비로 충당함으로써 경제적인 자치/자립의 실험을 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땅의 활동’ 즉 우리 스스로 농사를 지어보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땅을 구입하는 기금을 만들어 놓으려 합니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를 ‘땅의 사람들’이라 칭하면서도 직접 땅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못했었는데, 이 기금을 계기로 땅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와 더불어 우리 농업과 땅을 지키려는 일에 더욱 매진하려 합니다.
동무 여러분, 그동안 우리 땅과자유에 여러분이 보여준 관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 벽두에 여러분들에게 이런 편지를 띄웁니다. 올 한해 우리의 이런 계획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조언을 듣고 싶고, 이러한 우리의 여정에 함께 동참해주시길 호소하기 위함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너무 거창한 호소를 여러분에게 드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공감을 하리라 생각하기에 이런 제안을 조심스레 드립니다.
우리와 함께 “가자 천릿길 굽이굽이 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가”는 이 길에 함께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에서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의 관심사일 것입니다. 이 천릿길기금은 그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그 여정에 우리가 함께 동참하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서로가 우정을 나누면서 함께 가면 분명한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 길에 함께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올 한해는 더욱 자주 뵙게 되길 희망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땅과자유 ‘천릿길기금’ 발기인 일동 드림
땅과자유 ‘천릿길기금’ 규약
제 1조 명칭
이 기금은 땅과자유 ‘천릿길기금’이라 한다.
제 2조 목적
가. 농업 중심의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활동의 재원을 마련한다.
나. 협동과 상호부조, 우정과 환대, 자율․자급․자치와 같은 땅과자유 운동의 이상을 실생활 속에서 실험하고 훈련한다.
다. 땅과자유 운동의 인적, 물적 기반을 다진다.
제 3조 사업
가. 농지를 확보하여 농사를 짓는다.
나. 위 목적에 부합하는 땅과자유학교를 열고 운영한다. 단, 땅과자유학교의 운영에 관해서는 별도로 정한다.
다. 농업과 농촌을 중심으로 세우는 연대활동을 한다.
라. 그 외 위 목적에 부합하는 여러 사업을 할 수 있다.
제 4조 회원의 자격과 구분
가. 땅과자유 운동의 이념과 이 규약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나. 회원은 소정의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여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자로 한다.
다. 회원의 종류
㉠ 한걸음회원(정회원): 이 규약에 동의하고 매월 일정 금액(월 5천원~1만원)을 적립하는 자를 한걸음회원이라 한다.
㉡ 물동이회원(특별회원): 이 규약에 동의하고 부정기적으로 기금에 동참하며 이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자를 물동이회원으로 한다.
라. 회원의 탈퇴
㉢ 모든 회원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다. 단 본인이 납부한 기금에 대한 일체의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
제 5조 한걸음회원(정회원)의 권리와 의무
가. 권리
㉠ 이 기금의 사용에 대한 심의, 의결 및 집행권을 가진다.
㉡ 운영위원에 대한 선출권 및 피선출권을 가진다.
㉢ 단, 아래에 정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 한걸음회원이 된지 1년(4계절)이 되지 않은 자는 위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나. 의무
㉠ 회비를 성실하게 납부하여야 한다.
㉡ 땅과자유학교에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
㉢ 땅과자유 ‘천릿길기금’의 제반 활동에 성실히 참여해야 하며, 그 활동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
제 6조 권리의 제한 및 징계, 제명
가. 위의 목적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위에 정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권리 제한 및 징계나 제명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나. 이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결정하며, 운영위원회는 해당회원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다. 제명된 경우에는 납부한 기금의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제 7조 운영위원회의 구성
가. 5~10명의 운영위원을 둔다.
나. 운영위원은 정기총회에서 한걸음회원 중에서 선출한다.
다. 운영위원장은 운영위원 중에서 추첨(제비뽑기)해서 선출한다. 총무는 운영위원 중에서 운영위원장이 선임한다.
라. 운영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한다. 단, 1회 연임이 가능하다.
마. 매월 정기 운영위원회를 연다. 단, 운영위원의 1/3 이상의 요구가 있을 시 또는 운영위원장이 소집할 경우 임시 운영위원회를 열 수 있다.
바. 운영위원회의 의결은 만장일치로 한다.
제 8조 운영위원회의 기능
가. 회원의 가입 승인, 권리의 제한 및 징계․제명 결정, 규약에 대한 유권 해석
나. 사업 계획의 입안 및 사업 평가
다. 땅과자유학교 기획 및 운영
라. 규약 개정안 제출
마. 총회에서 의결된 사업의 집행
제 9조 총회
가. 총회는 한걸음회원 2/3 이상의 참석으로 성립하며, 참석자의 2/3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다.
나. 정기 총회는 매년 정월대보름 전후에 소집한다.
다. 당해연도 총회의장은 정기총회에 참석한 한걸음회원 중에서 선거+추첨으로 정한다.
라. 임시 총회는 의장의 소집, 운영위원회의 발의 또는 한걸음 회원의 1/3 이상의 요구가 있을 시 소집할 수 있다.
마. 총회의 결의 사항
㉠ 사업 계획 승인 및 사업 평가에 관한 사항
㉡ 예․결산에 관한 사항
㉢ 규약 개정에 관한 사항
㉣ 운영위원 및 감사 선출에 관한 사항
㉤ 기타 사항
제 10조 기금의 운용
매 회계연도(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기금의 7할은 농지기금으로 적립하고, 3할은 사업 기금으로 한다. 단, 창립총회로부터 1년간은 기금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로 전액 적립한다.
가. 농지기금
㉠ 농지기금의 사용(농지 구입 및 임대)은 총회에서 의결한다.
㉡ 식량 생산을 위한 농지확보를 우선으로 한다.
나. 사업기금
㉠ 사업기금은 매년 정기총회에서 결의된 사업 계획에 따라 지출한다.
제 11조 감사
감사는 총회에서 한걸음회원 가운데 2인 이상 선출하며, 본 기금의 사업 및 재정 업무를 감사하고 이를 총회에서 보고한다.
제 12조 해산
본 기금을 해산하고자 할 시에는 총회에서 재적회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고 잔여 재산이 있을 시에는 천릿길기금의 목적에 부합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양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