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몸, 퍼포먼스 그리고 사운드의 충돌
무브먼트 당당의 <벗어난 원리들ver.2-우는 사람들>
글 : 염창선
2001년 서울연극제와 서울무용제가 ‘서울공연예술제’로 통합되면서 연극과 무용의 만남의 장으로 출발해 200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로 명칭이 바뀐 이후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세계예술인들의 만남과 소통의 축제로 성장하였다. 최근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장르의 크로스오버 현상이 나타나면서 실험적 공연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올해 2015년 제 15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모방과 재현'에 반(反)하는 실험적인 공연들이 많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롯을 중심으로 완성된 텍스트를 강조한 이후 19세기 리얼리즘연극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모방과 재현’에 충실하며 관객의 극적 환상(illusion)을 유도하였다. 이러한 리얼리즘연극은 지금까지 주류에서 현대연극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리얼리즘연극은 출현과 동시에 실험극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다. 언어를 거부하고 원초적 감각을 무대에서 표현한 아르또의 잔혹극, 극적몰입을 깨며 거리두기를 시도한 브레히트의 서사극, 비논리적 순환 구조속에서 부조리한 삶을 보여주었던 부조리연극 등의 반사실주의 연극은 이후 유럽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실험극들로 이어졌다.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해외참가작들은 ‘재현과 모방’에 도전한 실험적 양상의 기류를 한꺼번에 담아낸 종합선물세트 같다. 현대와 과거를 이어주며 교과서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던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무대였기에 그 열기는 뜨거웠다. 연극, 오페라, 무용의 장르가 결합된 부조리한 무용극 피팅톰의 <아 루에>를 시작으로 브레히트가 창단한 베를리너 앙상블 극단의 로버트 윌슨 연출 이미지연극<셰익스피어 소네트>, 퍼즐처럼 튀어나온 대사들과 제의적 구음을 조합했던 예지 그로토프스키의 후예, 토마스 리차드연출의 <리빙룸>, 아르토 이전에 선행되었던 잔혹성과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을 라이브 피아노연주와 광기를 통해 발산한 슬로베니아 류블리아나 국립극단, 예르네이 로렌치 연출의 <폭주기관차>에 이르기까지 그러했다. 국내참가작들 중 전통적 재현의 방식을 거부한 실험적 공연으로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벗어난 원리들 ver.2>가 돋보였다. 공연<벗어난 원리들 ver.2>는 12개의 방 안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동시다발적으로 체현되는 몸의 퍼포먼스로 보여준 실험극이었다.
극단 무브먼트 당당은 현대무용을 전공한 김민정 연출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무용과 연극을 결합하여 언어와 몸의 움직임, 비주얼 퍼포먼스와 감각적인 사운드를 적극 활용하며 독특한 공연을 추구하고 있는 단체이다. 필자는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인생The Life>를 관람한 이래 본 공연을 통해 극단 무브먼트 당당과는 두 번째로 만났다.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참가작<인생The Life>가 혁명가의 삶을 텍스트를 중심으로 시적언어와 강렬한 무브먼트로 보여주었다면, 이번 <벗어난 원리들ver.2-우는 사람들>공연은 언어, 몸, 퍼포먼스, 강렬한 사운드가 충돌하며 죽음의 의미를 전달하였다.
공연 전-로비
공연 전 로비에는 좌석번호 없이 순서대로 관객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 관객들 사이를 3명의 배우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고, 서성이고, 때론 앉아 있다. 죽음을 선택했던 그들은 바로 언젠가 스쳤던 인연이었고, 우리와 함께 현존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우스가 오픈하면 15분 동안 전시관이나 미술관에 온 것처럼 설치된 무대와 무대의 소품들을 관찰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방에는『당신은 일할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책, 담배꽁초, 술병 등이 흩어진 가운데 바로 옆 침대에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옆의 다른 방에는 유아 장난감, 인형, 비행기, 흐트러진 크레파스, 자동차와 사진이 놓여 있다. 그 옆의 또 다른 방에는 옷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고, 화장을 하는 여자와 팩을 하고 있는 두 여자가 있다. 옆의 네 번째 방에는 국어사전, 토익책, Reading book 등 수북이 쌓인 책들과 과자봉지가 있다. 1층에 각각 4개의 방들이 있고, 2층과 3층에도 같은 크기의 4개의 방들이 있다. 총 12개의 작은 공간 사이를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며 클로즈업해서 촬영을 하고 있다. 관객이 객석에 모두 착석함과 동시에 공연이 시작된다.
단순화된 언어와 극대화된 몸의 충돌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고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자살에 의한 사망률이 가장 높고,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비율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날마다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일가족 몰살, 자살에 대한 기사들을 접한다. 공연<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 사람들>은 이런 ‘자살’에 대한 사례, 담론, 연구들을 바탕으로 16명의 배우들이 몸으로 표현된 공연이다. 우울한 실업 청년, 자녀를 잃은 두 부부, 취업을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학생, 금지된 사랑을 하고 있는 두 남자, 가난한 시인과 애인 그 외에도 주부, 군인, 노숙자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때로는 직업이나 사회적 관계조차 알 수 없는 인물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우울한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개개인의 사연을 추적하였다. 그러나 공연은 친절하게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언어는 “에잇!”, “야”등 으로 단순화되었고, 심지어 그 외의 대사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배우 및 행위자들의 몸의 표현을 극대화하였다. 몸의 표현은 전통적 연극처럼 대사와 함께 목적을 지닌 동작과 행위를 통해 재현의 방식을 취하기도 했고, 춤과 같이 의도된 기호로써의 신체이기도 했고, 그리고 무대에서 현존하는 몸 자체로써의 퍼포먼스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표현수단으로써 ‘몸’은 일상의 동작, 행위, 춤 그리고 퍼포먼스를 포함하며 언어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래서 단순화된 언어들은 극대화된 몸과 충돌하여 ‘소리’를 만들었다.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웃는 소리. 이런 소리들은 파편화되어 12개의 공간에서 산발적으로 들려왔고 개개인의 사연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슬픔, 고통, 그리고 즐거움을 공감하기에 충분한 '소리'였다.
사실성과 상징성의 만남 - 다큐퍼포먼스
극대화된 몸은 ‘사실성’과 ‘상징성’을 내포하였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사실적이면서 상당히 연극적이었다. 면접을 보러가는 듯 울고 있던 청년은 양복을 차려입고 거울을 보고 단장을 한다. 두 여자가 작은 방안에서 격렬히 싸운다. 한 여자는 통닭을 먹으면서 룸메이트인 다른 여자에게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두 여자는 계속 밀치며 싸우고, 옷을 갈아입는 행위를 반복한다. 화난 감정을 옷을 갈아입고 벗으면서 발산한다.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가 포옹을 하고 있다가 성관계를 끝내고 각자 옷을 입는다. 일상으로 돌아와 글쓰기를 하는 남자와 주변에서 눈에 띄지 않게 작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여자의 행위는 가난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현대의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군복을 입은 청년이 몇 번을 망설이다가 3층의 여인을 찾아간다. 그들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연인인지 하룻밤 욕정을 위해 찾아온 관계인지 모르지만 망설이다가 찾아오기를 반복한다. 3층의 마지막 공간에 있는 주부는 건조대에 걸려 있는 많은 빨래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을 한다. 무를 썰고, 빨래를 정리한다. 한숨을 쉬고, 지쳐있는 그녀의 모습은 갑갑하다. 60분 동안 계속되는 행위로 써가는 이야기는 대사는 없지만 연극적다. 재현된 연극을 보 것 같다.
그러나 이와는 상반적인 상징적 움직임도 공존한다. 3층의 어느 방에서는 끊임없이 실로 거미집을 만들고 있는 여인이 있다. 공연 내내 같은 동작과 움직임을 계속한다. 노숙자처럼 보이는 중년남자가 들어와서 옷을 하나씩 벗으며 다 벗겨지지 않은 옷들과 시름하며 괴로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 삶의 질긴 인연들과 관계들을 벗기려 애쓰나 벗겨지지 않은 옷과 몸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극의 후반부에는 죽음을 결심한 듯 무표정한 한 여인이 캐리어를 끌고 등장한다. 3층 방으로 들어와 옷을 벗는다. 맨몸으로 왔다 맨몸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상징하듯 옷을 벗고는 죽음 직전의 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인물들의 움직임에는 일상의 ‘사실성’과 많은 의미를 포함한 ‘상징성’이 섞여있다. 그래서 공연<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 사람들>은 꾸밈없이 일상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다큐’와 상징적 기호들이 섞여있는 ‘퍼포먼스’가 결합된 ‘다큐퍼포먼스’였다.
관객과의 거리두기
브레히트는 극장에서 관객은 연극을 보면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재현일 뿐인 연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였다. 그래서 흰색조명을 사용하고, 플랭카드를 사용하고, 극적 분위기와 상반되는 노래를 사용하며 관객의 극적 몰입을 방해하는 ‘거리두기’를 시도하였다. <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 사람들>은 동시다발적 다초점, 의도된 불친절로 관객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왜 죽음을 선택했나? 왜 울고 있는가? 두 여자는 자매인가? 왜 싸우고 있는가? 직업은 무엇인가? 지금 이 공간은 어디인가? 수많은 의문들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장면들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 없었다. 하나의 장면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또 다른 소리에 시선을 돌렸고,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며 시종일관 12개의 방에 집중하였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다초점의 장면들로 인해 공감과 몰입을 하기 힘들었고 낯설게 느껴졌다.
또한 인물들 간의 관계, 이름, 직업, 사회적 지위나 신분 등을 의도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공연 전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미리 무대 위에 전시된 소품과 의상 등을 관람하게 함으로써 언어가 배제된 빈자리를 메우려고 최소한의 배려를 하지만 여전히 내러티브, 관계, 다층적으로 얽혀있는 복잡한 기호들을 읽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또한 극적몰입을 배제시키려는 의도된 선택이었고 거리두기였다.
사운드와의 충돌 - 클라이막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이야기하는 플롯의 구조는 시작, 중간, 끝을 가지고 있으며 사건의 발견과 뒤바뀜을 통해 클라이막스적 구조를 이룬다. 공연 <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 사람들>은 클라이막스적 구조를 거부하며 사건들을 병렬식으로 펼쳐놓았다. 그와 함께 장면들이 60분간 ‘죽음’의 순간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된다. 공연은 클라이막스적 구조에서 보여 지는 극적 순간이 없는 듯 보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강렬한 사운드와 충돌하면서 극의 클라이막스를 연출하고 있다.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의 움직임은 줄어들고 강렬한 사운드가 객석을 채웠다. 10여분 동안 계속되었던 강렬한 사운드의 울림은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점점 커지는 사운드의 기계음과 비트들은 귀를 압박하면서 온몸을 짓눌렀고, 죽음의 기운을 객석에 전했다. 아르토는 잔혹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잔혹성은 피흘림을 의미하지 않으며, 학대받는 육체나 십자가에 처형된 적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무엇보다 잔혹성은 냉정하다. 그것은 일종의 엄격한 지침이며 필연성 복종하는 것이다. 몰입하는 의식(意識)이 없다면 잔혹성도 없다……. 삶의 모든 행위를 실천하는데 피의 색깔과 잔혹한 뉘앙스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그 의식이다. 물론 그것은 삶이 항상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죽음을 향해 가는 그들에게 끔찍한 자살행위나 피, 도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삶에 몰입하는 의식(意識)같은 사실적인 퍼포먼스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의식(儀式)같은 상징적인 퍼포먼스가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객석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는 관객들 있어서 이 공연은 잔혹했다. 또한 고막을 짓누르는 사운드는 죽음의 그림자가 되어 극장 전체를 덮었다. 이후 그동안 정면에서 비추던 조명은 삶의 해가 넘어가듯이 무대 뒤로 서서히 넘어가 행위자들을 실루엣을 드러냈고, 사운드의 울림이 커질수록 몸의 움직임과 퍼포먼스는 작아지면서 마지막 극적인 순간을 보여주지 않은 채 정적과 함께 공연은 끝이 난다.
설명이 아닌 현상, 그 자체
객석 불이 켜지면, 시종일관 배우들의 움직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던 무대 앞 텔레비전 화면에서 대학로의 거리풍경이 보여 진다. 이 마지막 장면은 이 극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다. 12개의 공간에서 일어났던 이 모든 것이 지금 거리의 현상처럼 지나간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기사를 접한다. 일가족 몰살, 자살, 비극적 참사라는 타이틀로 접하는 기사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언제나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 공연은 ‘설명’을 배제하고 자살이라는 ‘현상’에 집중한다. 실제로 우리는 ‘현상’을 바라보고 많은 상상을 한다. 거리에서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현상을 보면서 그들의 관계, 대화, 그리고 삶을 상상한다. <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 사람들>공연은 현상을 보고 상상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자살을 결심하고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행위, 움직임,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 만드는 ‘현상’을 보고 관객은 이들의 관계, 이유를 상상한다. 리얼리즘연극이 극적환상을 통해 관객의 감성에 호소하였다면 브레히트는 거리두기를 통해 관객의 이성을 자극하였다. 롤랑바르트가 “문학작품의 목표는 독자를 더 이상 소비자로 만들지 않고 텍스트의 생산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제안한 것처럼 브레히트는 생산자로서의 관객을 요구하며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공연<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소리들>은 관객이 생산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즉 공연은 언어를 대신하는 몸의 퍼포먼스를 통해 ‘설명’이 아닌 ‘현상’을 보여주며, 그 ‘현상’을 통해 관객 개개인이 의미를 찾고, 관계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관객을 진정한 생산자로 남겨놓았다.
마무리 하며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 사람들>공연은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전시, 연극, 무용,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합하여 16명의 죽음, 자살을 표현했던 실험적인 공연이었다. 텍스트 중심으로 관객의 극적 몰입을 유도한 전통적 공연방식과는 달리 언어는 최소화되고 몸의 표현을 극대화하였다. 그리고 동시다발적 다초점과 연출의 의도된 불친절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였다. 최소화된 언어는 극대화된 몸의 퍼포먼스와 만나 소리를 만들어 냈고, 병렬적, 동시다발적으로 나열된 장면들은 강렬한 사운드와 충돌하며 죽음의 기운을 전달하였다. 본 공연은 그동안 극단 무브먼트 당당이 보여준 도전과 실험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진화하고 있었고,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이전에 보여주었던 기술적이고 강렬한 무브먼트가 아쉬웠다. 현상으로서 행위들의 나열이고 그 도구로서 행위자들의 몸을 선택했다면 사실적 움직임 이외의 상징적 장면에서는 보다 더 기술적으로 완성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어야 했을 것이다. 향후 더 진화된 모습으로 세계무대에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참고도서
Arnold Aronson 지음/김미혜옮김, 『미국의 아방가르드연극』,연극과 인간, 2015
앙토넹 아르토 지음/박형섭 옮김,『잔혹연극론』, 현대미학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