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소비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관계다.>는 `공정여행`을 전폭 지지하는 입장에서 외환 시세 폭등으로 지난 겨울동안 국외여행을 자제하느라고, 또 추운 겨울날씨로 국내여행도 못한채 사뭇 묶여 있다가 모처럼 지난 16일(09년 3월)부터 19일까지 3박4일동안 울산을 거쳐 순천의 갈대밭과 상사호 일주까지 1백여km를 누비며 신선한 시골 공기를 만끽하고 왔다.
울산은 볼일을 보러 갔기에 고속버스에 싣고 간 잔차를 별로 타지 않았지만 다시 시외버스편으로 순천까지 가서는 그 곳의 갈대밭, 그리고 순천만 땅끝 마을을 둘러보고 인근의 상사호수를 일주한 이번 여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탓인지 마치 김삿갓의 여행과도 엇비슷한, 얻어 먹고만 다닌 여행같아 좀 멋쩍은 느낌이다.
순천서 20km도 안되는 땅끝마을 황포리의 석양이다. 이날도 전날에 이어 이상고온에 황사현상이 더욱 심해 온천지가 뿌옇게 흐려서 태양도 제 빛을 내지 못했다. 한적하기 이를데 없는 이 어촌은 이날따라 구멍가게 마저 문을 닫아 이 사진을 찍기위해 맥주 한병 사먹지 못한 채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지루하게 기다렸지만 사진이 겨우 이 지경이다. 원래 이 곳은 석양보다는 해돋이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라지만 여건상 대신 석양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평선 훨씬 위의 짙은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리자 마자 서둘러 순천시내쪽으로 달렸는데 갈대밭 지역의 안쪽 동네에서 찜질방 간판을 발견했으나 이는 전 주인이 세워 놓은 것이고 지금은 가든형 식당으로 바뀌었다는 것, 다른 곳을 묻자 식당 주인장이 상사호 입구쪽의 불가마를 추천한다.
그런데 그의 그 위치 안내가 현지의 지리를 모르는 외지인은 좀처럼 알아 들을 수 없는 설명이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자 안주인이 나타나 대뜸 "마침 쑥국을 끓였으니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자.'란다. 어~나도 쑥국을 매우 좋아하는데 말이다.
이래서 공짜 저녁을 얻어 먹게 되었지만 공짜만 먹기는 뭐해서 유리창의 선전문구를 가리키며 일부러 힘이 딸린다는 엄살을 부려 가면서 '값을 낼테니 장어 한마리만 구워 달라.'는 청을 넣어 결국 잎새주 반주까지 곁들인 성찬을 즐겼고 주인장의 권고로 샤워장까지 있는 그 집의 황토방서 이 날밤을 보낼수 있었다.
아침에 장어탕까지 얻어 먹고 나올때는 젊은 시절 직장서 착한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호남에 와 살게 되었다는, 경북 점촌댁인 주인 아줌씨가 '용돈까지 줘서 고맙다.'는 감사를 할 정도의 체면치레 값을 치루었지만 하옇든 저녁밥은 아줌마의 적선(?)에서 비롯된 셈.
이튿 날에는, 전날 지리를 잘 몰라 빠트린 순천시의 추천지인 갈대밭 일대를 돌아봤다.
호남지방보다 영남지방서 대절 버스편으로 온 관광객들이 훨씬 더 많았던 이 곳은 갈대밭 사이를 누빈다는 모터 보트도 있는 선착장까지 있었지만 불경기 탓인지 이용객이 없었고 갈대밭 가운데로 난간이 있는 전망대 통로도 있었지만 더욱 번창케 하기 위한 작업이라며 곳곳의 갈대를 베어 내선지 새들은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았으나 뻘위를 누비는 게들은 쉽게 눈에 띄었다.
넓디 넓게 퍼져 시원한 느낌의 갈대밭은 우선 콧김을 시원하게 했지만 쾌청한 파란 하늘색아닌 사방이 온통 황사로 흐려져 배경이 죽은 느낌이어서 그 멋이 퇴색되어 버린 것 같아 못내 아쉬었다.
뒤에서 일행들과 함께 온 한 젊은 부인은 일부러 이 노바이커에게 '와~멋진 아저씨다.'라는 감탄사를 던져 보기도 한다.
시당국은 이 곳 습지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 집중에 따라 최근부터 이 관광지 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느낌. 이래서 우선 대형주차장에 갈대밭과 철새등 생태 관계 자료관은 이미 세워져 있다. 심지어 꼬마 전동 기차도 운행되고 있고 임대 잔차도 몇 십대 비치되어 있었으며 라이딩 중 순천의 mtb바이커도 몇명 만날 수 있었다.
뒤에 안 것이지만 순천 중심지서 동천을 끼고 이 곳까지 오는 잔차 전용도로도 있었다.
상사호는 그 동안의 가뭄현상에 따라 저수량이 크게 줄어 경치가 별로여서 사진 촬영에도 효과가 반감되는 느낌. 허나 땜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을 정도다.
이 땜 입구의 휴식 공원에는 한 교회 미니버스가 때마침 열리고 있는 한국과 일본과의 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라듸오를 크게 틀어 놓아 다가가 현상황을 알아 본즉 2회말 현재로 3대0 으로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래서 마침 점심 먹을 시간도 되고 해서 TV중계도 시청할겸 눈앞의 고개길을 서둘러 내려가서 한 동안 호반길을 달려 봐도 좀처럼 전방에 식당이 나타날 기미가 안 보였고(뒤에 이 곳서 10k에 가까운 선암사 앞까지 가서야 6천원짜리 산나물 반찬이 많은 순두부백반을 먹을 수 있었다. 중간에 가든형 식당은 한 두곳 있었지만 통닭백숙이니 매운탕등이 주메뉴로 1인용은 없었다.) 골짜기 안쪽 도로변에 土父茶苑 시음장 간판이 보여 핸폰으로 한일전 야구중계 TV를 시청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서야 골짜기로 50m쯤 더 들어가는 시음장을 찾았다.
이 시음장은 이런 시골 벽지서 찾기 힘든 멋진 설계의 대 저택이었고 공원처럼 대형 금붕어들이 노니는 연못, 잘 다듬어진 정원수와 잔듸, 그리고 요란하게 짖어대는 개소리에 쉽게 들어서기가 주저스러웠지만 좀 전에 핸폰으로 허락을 받은 만치 빨리 중계를 보겠다는 생각에 거침없이 열린 대문을 통과 잔듸정원을 가로 질러 달려 들어 갔다.
그러자 때마침 건물 현관문 밖으로 나온 한 교양미가 있는 중년 부인은 대뜸 '잔차를 타고 들어 오시면 안되는 데요.'라는 핀잔을 해와 무안을 당하고 멈칫했다. 하지만 잔차가 좀 고급스럽게 보여선지, 이 손님이 예상외로 나이가 든 노 나그네인 점을 확인해선지, 부인의 눈빛이 점차 부드럽게 바뀌었다.
하여튼 그의 지시대로 잔차를 정원에 세워 놓고 안내를 받아 집안에 들어서고는 감탄해 버렸다.
시음장은 흔한 일반적인 전시장과는 달리 주인장의 2층으로 완전한 주거용 저택인데 우선 2층 천정까지 터진 시원한 거실에서 초대형 통 유리창을 통해 내려 다 보이는 전망이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근경은 잘 다듬어 진 소나무 정원수와 연못, 중경은 이 골짜기로 내려와 돌아서 다시 언덕배기로 오르는 도로, 원경은 골짜기 협곡 사이로 파란빛의 호수물등이 주위의 산세와 더불어 너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선경이다.
다음으로는 기괴하며 멋진 차탁에 아기자기한 찻잔과 녹차제품, 관계 기구들이 촘촘하게 진열되어 있는 거실 바닥과 가족 사진부터 상장등에다 결코 값 싸지 않게 보이는 산수화와 서예품등이 여백이 없을 정도로 벽 곳곳에 붙어 시선을 사로 잡아 TV중계를 보러 온 목적도 잊어버릴 정도다. 여기에 이 곳을 방문했다는 한 아프리카 국가의 대통령이 남긴 싸인까지 벽에 붙어 있다.
이러니 명함까지 주고 받으며 정중히 국내외를 누비는 잔차여행가이며 분당문학회 회원임을 밝혀야 했다.
순천지역의 茶생산자협회 회장인 바깥 주인장은 출타중이었고 인근에 녹차밭도 있다고 했다. (하기사 이튿 날 순천시내 외곽의 드라마 세트장에 가는 길에 택시 옆면의 광고에서도 이 집 선전인 '土父茶苑'을 목격했다.)
빅사이즈 구형 TV로 야구중계를 시청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주위의 작품과 전시물들을 보랴, 창밖의 경치를 보는 일등으로 눈길이 분주했고 또 옆에서 부인이 계속 잔에 채워주는 녹차를 마시랴, 미리 양해를 얻은 담배를 피우랴, 최소한 인사치레의 가족안부와 사연 얘기를 나누랴, 식당이 없어 대신 들어 왔다는 얘기에 시장하시겠다며 특별히 내온 전라도식 꿀떡을 정말 꿀떡 같이 맛나게 먹느라고 입도 몹시 분주했다.
연신 물마시듯 시음용 차를 얻어 마시다가 이런 장소서는 정말 제격인듯한 엄격하고 정중한 茶道 생각이 나 민망스러워져 '죄송합니다. 전 원래 스티뮤레이터(stimulate)에 약해 불면증을 염려, 녹차도 외면합니다. 그리고 제 성격이 좀 급해서..'라며 정식으로 쑥차를 주문하고는 또 엉겹결에 연신 마셔대니 이에따라 계속 숨가쁘게 부어댈수밖에. 이러니 미안해서 오래 머물기도 뭐해 중계를 3회전 정도도 못보고 일어나 쑥차값을 치루자 최소한 이 차값의 몇배는 됨직한 이곳 생산품인 녹차 티백이 20개 가량이 든 소형 녹차박스 선물까지 준다.
결국 또 김삿갓이 되어 버린 꼴이다.
상사호 호반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속 돌면서 선암사를 거쳐 귀로의 밤티재 고개길은 너무 경사가 심해 마지막 3백 여m 가량은 끌차로 올랐고 땅거미가 시작 될 무렵, 이날 오전의 상사호 일주 시발지점인, 상사면 소재지서 1km 아래쪽의 불가마 찜질방 동네에 되돌아 왔다. 미리 점 찍어 두었던 남도한우구이집에 도착, 한우 채끝 살등 3백50g(2만7천원)을 구입, 같은 건물내의 구이집에 가져가 백세주 반주로 모처럼 순수 한우맛을 누리다보니 홀로 무려 4만원짜리 저녁을 먹은 셈. 맨날 얻어 먹고 다녔다는 사실에 오기와 보상심리 같은 것이 발동된 결과 라고나 할까.. ㅎ
어둑해져 끌차로 찜질방입구로 들어서자 '꽃뜨락'이란 이름의 야생화 전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마침 안에 불도 켜져 있어 들어가니 한 중년여성이 맞아 주는데 첫눈에 야생화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
백두산에서 서식한다는 풍성한 흰꽃의 만병초(사진속의 작은 원 사진)옆의 탁자에 앉으니 차를 드릴까요?, 한약제 술을 드릴까요? 다. 잠시 어리둥절하면서도 곧 당연한듯 술을 택하자 안주도 없이 술병을 앞에 가져다 놓고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다 보니 40대후반의 독신이며 시인인 그녀는 잔차여행가며 글쟁이라는 내 응대에 깍듯이 문인 대선배로 대하며 또 외로운 노 나그네로 대접해 준다.
술병이 빌 무렵 내일 아침에 다시 보자며 전시장을 나와 찜질방에 갔지만 이 곳은 여늬 곳과는 달리 너무 불가마중심의 운영이라선지 딱 하나뿐인 잠자는 방이 피부관리실과 겸해 마땅찮아 샤워만 하고 다른 숙소를 찾아 다시 전시장에 내려오자 안쪽의 골방을 권했다.
방이 너무 좁고 침구도 빈약했지만 술에 취해 멀리 시내까지 숙소를 찾아 갈수도 없는 만치 그냥 머물기로 했다.
이튿날 인근 숙소에서 온 그녀가 부엌서 준비한 해장국등 단조로운 아침밥을 먹은 다음 일어서도 술값등을 달래는 얘기가 없어 재회를 기약하며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미리 슬그머니 그 값을 내 놓는 것은 그를 모욕하는 꼴이 될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나오면서 되돌아 본 그 전시장 건물은 몇달전에 취미가 다양한 인사에게서 인수했다지만 야생화를 위한 특별한 설계의 지붕에다 벽에 미니버스 뒷 토막이 창고로 붙어 있고, 그러고보니 건물안 천정에 스크린을 위한 프로젝터까지 설치되어 있었던 것도 생각나는, 전위적인 냄세가 나는 좀 요상한 건물이었고 또 입간판의 꽃뜨락이란 큰 글씨 밑에 작은 글씨로 '차와 죽' 이란 글도 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
이 다음 아들이 있는 수원에 올때는 꼭 연락을 하겠노라고 했던 만치 그 녀와의 재회때를 빚 갚는 기회로 삼는 수밖에 없겠지만 하여튼 이래서 이 날도 또 김삿갓 꼴이 된 셈이다.
나 원참 ! 이번 여행때는 머리칼 염색도 안한 체 흰머리칼을 날리면서 다녀서 인감?
-----------------------------------------시인인 그녀가 여행서 돌아 온후 보내 준 메일과 시 한수-----
잔차여행객 님,
무사히 올라가셨군요.
그날은 예상치 못한 방문으로 대접이 너무 소홀햇었습니다.
보내드리고 나니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들더군요.
후회는 언제나 늦게 찾아오는 법이죠?
어쨌든 여행의 묘미가 무엇인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어 기뻤고
인생은 멋지게! 라는 슬러건을 가슴에 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개념들이 얼마나 큰 아집이고 부질없음도 알았습니다.
어쨌든 반가웠습니다.
오며가며 언제라도 들르십시요.
< 무위 >
조동례
만남을 生이라 하면
헤어짐은 死라 하겠지요
만나고 헤어지는 생사의 간극에서
물 한잔 건네던 이여
만남에 매이지 않고
이별에 뒤돌아보지 않으며
가도 가도 불생불멸이니
있다고 하는 것에도 속지 말고
없다고 하는 것에도 속지 말고
나라고 하는 너에게도 속지 말라며
항상 소식 없는 이여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마음밭이라서
희망이 生이라면
절망은 死라 하겠지요
사람의 목숨은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는데
그대에게 눈먼 나는
그대가 가고 나니 그대가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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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4 22:17
젊은 오빠, 부럽소이다. 멋진 그림과 글, 자주 볼 수 있기를.
19:21
<*>센올(순천 자연염색공방) 대표
꽃뜨락 이웃집입니다. 제가 서울 출장중 꽃뜨락에 다녀가셨다는 얘기 들었어요. 멋진 분을 만났다고 언니에게서 듣고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꽃뜨락 홈피 가입인사에 올린 글을보고 인사드립니다. 전 컴맹이었는데요. 언니 덕분에 이렇게 발전했답니다. 재미가 조금 붙었어요. 아직 멀었지만요.
<^>안준철(土父다원 대표)
저희 다원을 방문해주셨군요.
녹차를 즐겨 주시고 시음장을 방문하고 가셨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회되시면 들러주시구요. 즐거운하루되시고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첫댓글 참 멋있습니다. 그길따라 살며시 가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