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은 일본 종전 60년, 한국 해방 60년을 맞은 해이며 한일 우정의 해이기도 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2005년 TV에서는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한일을 대표하는 연예인들의 양국 방한과 거대콘서트가 방영되곤 했습니다. 또한 일본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영유권 문제, 한중간 역사 문제 등도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습니다.
이것 또한 기억하십니까? 그러한 소란 속에 <안녕, 사요나라>가 있었습니다. 이번 카페 빵 상영회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과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극장개봉을 했던 <안녕, 사요나라>를 상영합니다. 한일 두 나라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제작한 <안녕, 사요나라>는 영화제 상영과 극장개봉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극장개봉이 끝난 현재도 한일공동상영회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일본 극장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상영회 또한 비주류문화인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주축이 되어 준비되었습니다.
<안녕, 사요나라>는 침략과 전쟁의 신사, 야스쿠니를 중심으로 한일 두 주인공의 긴 여정을 따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씨앗을 뿌리는 영화입니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현재, 2005년에 <안녕, 사요나라>를 놓쳤다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 상영회를 통해 화해와 평화의 길을 위한 여정을 함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상영회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27일 월요일, 8시부터 시작합니다. |
[상영작 소개]
<안녕, 사요나라>
감독 : 김태일, 카토 쿠미코 | 제작년도 : 2005년
제작국 : 한국, 일본 | 상영시간 : 107분
홈페이지 : www.annyongsayonara.net
<기획취지>
2002년 공동월드컵 개최와 한류 열풍으로 고조되던 한일간의 우호적 분위기는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일련의 퇴행적 역사인식이 빚어낸 갈등으로 파국적 위기를 맞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시놉시스>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하소송을 하고 있는 한국인 유족 이희자씨. 일제 강점 하 한국인의 피해 보상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인 후루카와씨. 두 사람은 1995년,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죽었던 일본 고베에서 처음 만났다. 이희자씨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후루카와씨가 그녀의 표정을 이해한 것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지난 6월, 60년 만에 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며 통곡하던 이희자씨, 비가 내렸고, 후루카와씨는 그녀 옆에서 그저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었다.
<감독소개>
■ 김태일
“공동작업은 간단하지 않았지만 덕분에 일본 내부를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따뜻한 마음과 굳은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서 길을 보았다.”
1963년생, 독립다큐집단 푸른영상에서 활동.
<원진별곡>1993 | 38min | DV
<분단을 넘어선 사람들> 1995 | 85min | Video
<어머니의 보랏빛 수건> 1995 | 48min | Video
<풀은 풀끼리 늙어도 푸르다> 1996 | 58min | Video
<22일간의 고백> 1998 | 50min | Video
<4월 9일> 2000 | 125min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2002 | 25min | DV
<나도 노동자이고 싶다> 2003 | 30min | DV
<길동무>2004 | 74min | DV
■ 카토 쿠미코 (加藤 久美子)
"작업을 하면서 이 테마가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영화가 야스쿠니신사가 아시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975년생.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도쿄 거주. 필린핀 군위안부 문제와 9.11 이후의 연쇄 폭력과 일본 자위대 의 이라크 파병 등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문제 제기. 현재 정보공방스피리통 소속으로 활동.
<당신은 14세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2002 | 3min | DV
<레메디아스.페리아스씨산타마 체재기> 2002 | 23min | DV <어디에?> 2003 | 3min | DV
<주인공 소개>
■ 이희자
"마지막으로 꼭 한 가지, 반드시 내 손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
1943년 1월 경기도 강화군에서 출생한 이희자씨는 해방 이후에도 부친이 돌아오지 않자 부친의 생사를 모른 채 기다리다 1989년부터 피해자 단체에서 활동했다. 1992년 부친의 사망기록 확인 이후 부친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2001년 6월 유족 대표로 동경지방재판소에 야스쿠니신사 합사취하 소송을 제소하였다.
■ 후루카와 마사키 (古川 雅基)
"더 이상 똑 같은 잘못을 반복해선 안된다"
고베시 공무원으로 1987년 카데나기지 포위행동에 참가하면서 오키나와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생각을 접하게 되었다. 1995년 고베대지진 때 시민부재의 고베시정을 비판해 전직됐으며, 이에 항의하는 재판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일제강점하 조선인 군인 군속에 대한 관심으로 재한군인군속재판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 카페 빵은 어떤 곳인가요? (since 1994) 원래 빵은 이대후문 건너편 연대 동문 밑에서 1994년에 문을 열어 10년쯤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중순에 홍대앞쪽으로 왔습니다. 카페 빵, 복합문화공간, 모던록 전문 라이브클럽..... 음악 공연, 퍼포먼스, 연극, 전시, 파티, 모임, 연습 등 작은 공간이었지만 담는 그릇으로 보면 꽤 다채로웠습니다. 직접 꾸민 공간은 그런대로 분위기 있고 오가는 사람들도 훌륭했습니다. 홍대앞쪽으로 이사 왔습니다. 구석에서 좀 벗어나서 그런대로 사람들 흐름이 있는 곳에서 더 잘 하려고 왔습니다. 어떻게 될까요? 더 잘 할 것이고 더 잘 될 겁니다. 넓은 세상에서 걷는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다리가 무겁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공간마다 이름 앞에 이런저런 꾸미는 말이 있는데 빵은 그냥 빵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라이브클럽이든 카페든 대안공간이든 복합문화공간이든 아트스페이스든 갤러리든 그다지 새롭거나 적당하지 않은거 같아서 그냥 빵이라 합니다. 그리고 영어로는 modern Bbang입니다. 어쨌거나 빵을 뭔가 내용을 만드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서로 교감하면서 성장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문을 늘 활짝 열어 다들 드나들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빵을 많이 찾아주십시오. 빵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27-18 b1 카페/ http://cafe.daum.net/cafebbang 이메일/ cafebbang@hanmail.net ▶▶▶ 카페 빵 가는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