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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 미제라블」에 대한 연구
- 미국 영화와 프랑스 영화의 비교를 중심으로
진 경 년
(부경대학교)
서 론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은 낭만주의의대표적 작품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전 세계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연극, 영화, 만화,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서 장기 공연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팔레스 극장에서 뮤지컬로 공연되었고, 1987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무대는 토니상 8개 부문을 석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인기리에 뮤지컬로 공연된 바 있으며, 지난 겨울에는 ‘파리의 노트르담’이 뮤지컬로 공연되었다.
소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초등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프랑스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작품이며, 성경에 맞먹을 정도로 많이 읽혔으며 전쟁과 혁명, 고난과 기쁨이 전편에 깔려 있는 걸작이다. 장 발장, 코제트, 마리위스가 엮어나가는 근대 프랑스에서의 고난에 찬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인생과 역사에 대한 통찰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은 1862년 발표되었는데 1851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반대한 위고가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당시 소설로도 인기리에 판매되었지만, 그 후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32번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가 보려는 리엄 니슨 주연의 미국영화가 32번째라고 한다. 한 편의 소설이 이토록 여러 번 영화화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켜 한때 국산영화로 번안 제작되기도 했다.
서구에서 제작된 영화는 카펠라니가 1912년에 만든 영화가 세 시간에 달했고1), 아카데미상을 받은 레이먼드 버나드 감독의 1934년 작, 리처드 볼레슬라프스키 감독의 1935년 작,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1952년 작, 장폴 사누아 감독의 1958년 작(장 가뱅 주연), 글렌 조던 감독의 1978년 작 (앤소니 퍼킨스 주연), 그리고 우리가 보려고 하는 1982년 작(리노 벤추라
주연)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우리는 리노 벤추라가 주연한 로베르 오셍 감독의 영화 「레 미제라블」을 ‘프랑스 문학의 이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주다가 그 상영시간이 너무 길어, 리엄 니슨이 주연한 빌 오귀스트 감독의 미국 영화「레 미제라블」로 바꾸어 보여주었는데, 두 작품에서 너무나 다른 인상을 받았다. 마치 원작이 같은 작품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작품인 것 같은인상을.
우리 논문의 출발점은 여기 있다. 원작에 충실한 프랑스 영화와 불충실한 미국 영화. 그것은 결국 두 나라 영화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영화는 가볍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원작에 충실한 프랑스 영화는 다소 지루하긴 했으나 더 진지하고 진실한 감동을 준다. 두영화의 차이점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작가와 소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1.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위고는 1802년 브장송에서 출생했고, 아버지는 나폴레옹 아래의 장군이었고, 어머니는 왕당파 집안 출신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해 결국 이혼한 것 같다.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라 코르시카, 이탈리아, 스페
1) 르네 프레달, 『세계영화 100년사』, 이론과 실천, p. 48.
인 등지로 전전하며 살았으나 1812년부터 어머니가 파리에 정주하였고, 그는 1814년부터 기숙학교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바랐으나, 그는 문학에 흥미를 갖고 제 2의 샤토브리앙이 되기를 꿈꾸었다. 1817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공쿠르에서, 1819년 툴루즈의 아카데미 공쿠르에서 그의 시가 입상했다. 같은 해 형인 아베르와 함께 잡지『Consérvateur Littéraire』를 창간했다.
매일 아침 100줄의 시 또는 20페이지의 산문을 썼다는 그는 20권의 시집과 10편의 희곡, 9권의 소설을 남겼다. 그는 자유주의자이며 공화정 지지자로서 뚜렷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해 왔고 프랑스 혁명 당시 입법의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에 대한 자신의 주장들을 실천에 옮긴 사상가였다.
1822년 어린 시절의 친구 아델 푸세와 결혼했고, 「오드와 여러 가지시」를 냈는데 이 작품으로 루이 18세와 가까워져서 연금을 받게 되었고 그는 이 시절 왕당파이자 카톨릭교도였다. 그 외에도 『오드와 발라드』(1826)『동방시집』(1829)을 발간했고, 소설 『아이슬란드의 한』(1823),희곡 『크롬웰』(1827)을 발표했다. 처음에 노디에를 중심으로 모였던 낭만주의자들이 이 무렵 그를 중심으로 모여 세나클을 이루어 그는 사실상 낭만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크롬웰』 서문은 고전주의를 비판한 낭만주의 문학의 선언이고, 희곡 『에르나니』의 상연을 계기로 낭만주의자들이 크게 성공하게 된다.
1833년 아내가 친구인 평론가 생트 뵈브와 사랑하자 크게 상심했고, 자신도 여배우 쥴리엣 들루에와 평생 지속되는 관계를 가진다. 그가 상원의원이던 시절, 다른 유부녀와의 불륜이 현장에서 발각되는 창피스런 일도 있었다.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날 무렵부터 위고는 인도주의와 자유주의로 기울어진다. 그는 여러 번의 정치적인 태도 변화를 가져오며 그 시대 흐름에 따라 자신을 변모시킨 듯하다. 시집에는 『가을의 나뭇잎』(1831),『황혼의 노래』(1835), 『마음의 소리』(1837), 『빛과 그림자』(1840)가 있고, 희곡에는 『Marion Delorme』(1831), 『왕은 즐긴다』(1832),
『Ruy Blas』(1838), 『Les Burgraves』(1843) 등을 발표했다. 특히 소설로 불후의 걸작인 『‘Notre-Dame de Paris』(1831)가 있다. 1843년 큰 딸 레오폴딘이 남편과 함께 세느강에서 뱃놀이하다가 익사한 사건으로 그는 큰 비탄에 빠져 그로부터 약 10년간 글쓰기를 중단하고 정치에만 관심을 쏟았다.
1848년 2월 혁명 이후에는 공화주의자가 된다.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반대한 그는 망명길에 올라 영불해협의 저지 섬과 귀에른지 섬에서 19년이나 머물며 창작에 몰두하게 된다. 그에게는 이 망명기간이 인생에서 가장 충실한 시간이었으며 그를 프랑스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남게 만든 시간이었다. 중요 작품들이 거의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귀에른지에서 그의 거처였던 오트빌 하우스 정착, 그리고 프랑스가 까마득히 바라다 보이는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외로운 작업을 지속한 집필실 룩 아웃은 이 시기 그의 창작의 산실이 되었다. 고독이 그의 구원이 된 셈이다. 외로움으로 인하여 일상의 타협에서 그를 지켜냈고 고독은 일
종의 받침대 위에서 세상을 직면하게 해주었다. 자신이 우주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고 여러 세기와 대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영혼을 팽창시키고 그 이전의 어느 누구도 역사 안에서 채우지 못했던 이 독특한 사명에 적응하기 위하여 목소리를 부풀려 갔다. 폭군에 맞서는 정의의 어조였으며 미래를 창조하는 표현을 일굴 수 있었다.2)이 시기 발표된 작품은 시집으로 나폴레옹 3세를 비난하는 『징벌시집』(1853),『정관시집』(1856), 『여러 세기의 전설』(1859)이 있고, 장편소설로 『레 미제라블』(1862), 『바다의 노동자』(1866), 『웃는 사나이』(1869) 등을 발표했다.
그가 1870년 파리에 돌아와 사형제 폐지, 빈민 구제, 의무교육,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에 열정을 바치다가 1885년 죽자, 수많은 파리 시민들이 그를 애도하여 국장으로 성대한 장례 의식을 베풀었고, 그는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을 안치하는 팡테옹에 묻혔다.
위고의 생활과 사상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웅대하면서도 낙천적인 성
2) 이규식, 『빅토르 위고』,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6. p. 20.
격이다. 다른 낭만파 시인에게서 볼 수 있는 감상적인 요소는 그의 작품에서는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며, 인류의 무한한 진보, 이상주의 건설등의 낙관적인 신념으로 일관해 있다.
2. 소설 『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은 사랑의 소설, 탐정소설, 그리고 1832년 6월의 파리봉기를 다룬 점에서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이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지만 단순한 모험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고, 위고 자신의 말처럼 “사회적 서사시”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파리의 노트르담』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이 소설로 위고의 대중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이 소설에 흐르는 일관된 성격은 고상하고 숭고한 감정, 우선 연민이다. 궁핍하고 타락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이 연민의 시선은 하나의 커다란 사상, 즉 윤리적 진보에 대한 믿음에 힘입어 넓어지고 깊어지게 되었다. 한 영혼의 속죄, 그리고 희생의 정점을 향하여 올라가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사회의 희생자인 장 발장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인물이 아니라, 빈곤으로 고생하던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것이 삶을 바꾸어놓은 계기가 된다. 그는 5년의 노역, 네 번에 걸친 탈옥 미수로 모두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성격이 비뚤어지고 증오와 탐욕에 가득 찬 인물이 된 것이다. 도형수의 어둠에 썩어가던 영혼이 어느 계기를 통해 밝게 비추어지고 수많은 곡절과 운명의 급변 속에서 사람들의 경멸과 사회의 부정과 싸워가는 장 발장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극기주의와 신성의 정점에 오르는 한 영혼의 숭고한 승리를 보여준다.3)
미리엘 주교는 디뉴의 주교가 되고 난 뒤 겸손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자선을 베풀고, 언행일치의 삶을 살며, 그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며 다른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는 지극히 인자한 목자였다. 그는 “제단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주에게 감사드리는, 위로받은 불행한 사
3) ibid., p. 82.
람의 마음이다”4)고 말하며 자선을 베풀었다.
미리엘 주교의 생활과 믿음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하느님은 그 자체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발한다. 더욱이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인간 안에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어 그로 하여금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할 수있는 희망과 힘을 주는 것이다. 인간 장발장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며 그 안에 언제나 살아 있던 것은 바로 미리엘 주교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희
망의 하느님이었다.5)
미리엘 주교가 실천한 죄의 용서와 관련한 기독교 정신이 장 발장을 변모시키고, 장 발장은 팡틴에게 그리고 그녀의 딸 코제트에게 사랑을 베풀고, 마리위스의 생명도 구해주고, 심지어 자신을 잡아 또 감옥에 보내려고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자베르에게까지 사랑을 베푼다. 그를 사형시키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몰래 그를 풀어주는 것이다.
미리엘 주교는 기독교가 자신의 죄만을 사해주고 내세만을 위한 기독교가 아닌 약자와 민중의 고통을 끌어안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억압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기독교여야 한다고 본다. 즉 위고가 생각한 기독교는 혁명의 정신을 품고 있는 진정한 혁명의 완성인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60여명의 인물 중에서 주요인물은 미리엘 주교, 장발장, 자베르 그리고 테나르디에 등이다. 이들 4인의 삶은 격변기 사회의 인간적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골고루 대변하고 있다. 이 네 인물의 지형학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6)
신 양심 선행 법 범죄미리엘 장 발장 자베르 테나르디에
4)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I』, 이휘영, 정기수, 방곤 역, 정음사, 1979. p. 33.
5) 이성배, Dieu dans les Misérables de Victor Hugo, 동의대학교 동의논총 9집, 1984.
p. 127.
6) 김영철, 소설 『레 미제라블』을 읽고 나서; 한 교육학적 독후감, 교육인류학 연구,
2002, p. 32.
이 소설은 오랫동안 구상하고 쓴 것으로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자.
1) 1845년 이전; 위고는 운명의 희생자, 특히 신분이 미천한 희생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려는 생각에 몰두하여 친구에게 도형수에 관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도형수가 탈출하여 육군 대령까지 되었다가 1820년 파리 한복판에서 체포된 실제 모험담에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그리고 1828년 전 도지사 미욜리스는 그의 형인 디뉴의 주교 몬시뇰 드 미욜리스의 생애에 관한 세부자료를 위고에게 주었다. 그는 1806년 석방된 도형수 피에르 모랭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고, 이에 감명을 받은 도형수는 군 간호원으로 일하다가 워털루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1830년 초 미래의 이 소설이 될 초고 상태의 소설의 개요를 정해 놓았다. 1832년 이 작품을 몇 장정도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그것은 「비참한 사람들」(Les Misères)에 대하여 명상한 것이다. 소설에서 연극으로 선회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그 후 위고의 머리 속에서 계속 싹트고 발전되어 갔다. 그러다가 으젠느 쉬가 「파리의 신비」에서 크게 성공하자 자극을 받아 대중소설로 완성할 계획을 세운다.
2) 1845년 11월 17일; 그는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쟝 트레쟝」이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2년 뒤 제목을 「비참한 사람들」(Les Misères)로 바꾸었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작업은 중단되고 1851년 다시 손을 대지만 쿠데타로 다시 중단되고 브뤼셀에서 마지막 부분을 쓰게 된다. 이것은 1927년 간행되었는데 『레 미제라블』보다 에피소드가 적은 4부로 구성되었고 모험도 덜 파란만장하다.
3) 『레 미제라블』; 서정성이 훨씬 풍부해지고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1860년 브뤼셀 여행 중 워털루 전투의 서사적 묘사를 열정적으로 구상했다. 마리위스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청년기 모습을 부여하면서 새로운 터치를 가했다. 귀에른지 섬의 격렬하고, 열정적이며 관대하면서도 민주 신념을 가진 한 영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방대한 분량과 때로 궤도를 벗어난 장황함에도 불구하고 『레 미제라블』은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소설이다. 출간 당시부터 1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화제를 불러모았다.「레 미제라블」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란 의미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하층계급, 인간을 소외시키는 사회제도에 저항하는 사람들까지도 의미한다. 그래서 출간 이후 판금을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워털루 전쟁, 프랑스 7월 혁명, 파리시의 깊은 하수구 터널을 통해 도주하는 장 발장의 모습 등을 생동감 넘
치는 뛰어난 문장으로 묘사해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시대,어느 공간에서든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삶의 진실을 전하는 작품의 주제는 소설이 쓰여진 지 1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리얼리즘은 힘차고 정밀하다. 장 발장, 팡틴, 코제트, 가브로슈 그리고 자베르 등 등장인물은 대중의 영혼에 의해 실물화되고 전형적 인간상이라는 영예에 도달했다.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은 여러 가지의 전개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장 발장과 자베르의 기나긴 숙명의 싸움, 결국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 장 발장이 자베르를 압도하는 순간까지 숨막히는 긴장과 반전으로 독자의 주의력을 이끌고 있다.7) 위고 자신 이렇게 이야기한다. “단테가 시에서 지옥을 그려냈다면, 나는 현실을 가지고 지옥을 만들어 내려 했다.” 그러나 이 지옥은 단테의 그것과 다르다. 지옥을 표상하는 어두운 심연에 갇히는 대신 위고는 창공을 향해 올라간다. 거기에서 하늘의 전망, 하늘의 시선을 느끼며 보게 해 준다. 8)
위고는 사회의 모순, 억압에 대한 투쟁을 넘어서서 좀 더 본질적인 죄의 문제를 생각했고, 증오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부르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죄인의 죄를 묻기보다 사랑으로 용서받았을 때 진정한 반성과 회개 즉 법과 윤리를 넘어서는 종교적 차원에서 생기는 진보를 내다보았던 것이다. 프랑스혁명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것은 기독교의 사랑, 평등, 박애의 정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7) 이규식, op.cit., pp. 83-85.
8) ibid., p. 86.
장 폴 사노아 감독의 영화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빅토르 위고의 말이 나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세계의 이 암울한 시대에 인간이란 이름의 존재는 비참하다. 그는 모든 풍토 아래 신음하고, 모든 언어권 아래에서 고뇌한다.” 그런데도 장 발장은 죽으면서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 미제라블』을 관통하는 것은 낭만주의와 인도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9)
3. 미국 영화 「레 미제라블」(1998년 작)
「정복자 펠레」로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받았던 덴마크 출신 감독 빌 오귀스트(Bille August)가 만든 영화로, 리엄니슨과 우마 서먼(팡틴 역), 클레어 데인즈(코제트 역), 제프리 러시(자베르 역) 등이 연기한다.
빌 오귀스트는 1948년 11월 9일 덴마크 태생이다.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촬영과 영화를 공부하고 카메라맨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연출가로 진로를 바꾸어 TV시리즈물 「버스터의 세상 Buster's World」를 제작하였고, 1978년 첫 장편영화 「내 인생 My Life」를 발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19세기 덴마크 이민 노동자들의 삶을 한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 번째 작품 「정복자 펠레」 (1987)가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아 주목받은 감독은 「최선의 의도」로 다시 칸느영화제에서 수상하여 할리우드로 진출, 대서사극 「영혼의 집The House of the Spirits」(1993)를 감독하였다.
군부독재 시대의 칠레를 배경으로 복잡하게 얽힌 한 가족의 애증관계를 그린 이 작품은 제레미 아이언즈, 위노나 라이더, 메릴 스트립, 글렌클로즈 등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종교영화 「예루살렘」(1996), 미스터리 스릴러물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Smilla's Sense of Snow」(1997), 우리가 볼 「레 미제라블 Les Misérables」(1998) 등을 내놓았지만 초기 작품들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9) 김성곤, 『문학과 영화』, 민음사, 1997, p. 318.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출옥한 장 발장이 은그릇을 훔쳤다가 신부님에게 용서 받고 갱생을 다짐하는 도입부. 둘째 10년 뒤 시골의 시장이 되어 불쌍한 미혼모 팡틴과 딸 코제트를 도와주는 부분. 셋째 9년 뒤 장성한 코제트를 데리고 파리에 숨어 살다가 자베르와 부딪히기까지.
오귀스트는 세월을 건너뛰느라 흐름이 분절되는 것을 무릅쓰고라도 1000쪽이 넘는 명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담으려고 했으며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상당한 규모도 갖추었다. 대부분 프라하에서 찍은 고풍스런 19세기 건물과 거리들이 미려하면서도 스펙터클하게 시네마스코프로 펼쳐진다.
장 발장 역을 맡은 리엄 니슨은 겉으론 흠 한 점 없지만 내부로 갈등하는 성자의 모습을 공감이 가는 연기로 구현한다. 그는 원래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 출신인데, 교육학을 전공하기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우연히 연극무대에 서게 되면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존 부어맨이 아더왕의 전설을 영화로 만든 「엑스칼리버」에 가웨인 경으로 출연하며 데뷔했다. 92년 그가 출연한 연극 「안나 크리스티」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은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 역할을 그에게 맡겼다. 그는 이 작품으로 오스카 상을 받았다. 조디 포스터와 공연한 「넬」, 제시카 랭과 공연한 「롭로이」, 메릴 스트립과 공연한 「비포 앤 애프터」 등으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
우마 서먼, 클레어 데인즈도 연기가 괜찮지만, 「샤인」의 제프리 러시는 단조로운 톤으로 일관해 아쉽다. 마지막 셋째 부분을 이루는 코제트의 사랑 이야기도 조금 어설프다.
「레 미제라블」은 연출, 영상, 연기에서 큰 흠 잡을 데 없이 두루 무난하다. 그러나 그 무난함이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격정적인 절정의 순간이 없다. 코제트와 마리위스의 사랑 이야기나 질풍노도와도 같았을 공화파의 혁명 움직임을 그리기에 부족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이야기의 가장 큰 줄기인 장 발장과 자베르의 대치 국면, 두 사람의 내면의 갈등을 그리기에는 부족한 감을 준다.
프랑스 영화와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면, 장 발장이 발 아래 밟고 있던 40수 동전을 소년에게 주지 않는 장면과 샹마티외라는 인물이 진짜 장 발장으로 오해를 받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고 해서 고민하는 장 발장의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팡틴과 마들렌 시장 사이에 특별한 연애 감정이 싹튼 것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장 발장이 코제트를 찾아가기 위해 떠나려고 할 때 그를 잡으러온 자베르를 때리고 도망가는 장면에서 그의 부하 경찰이 자신의 권총을 주면서 자기 머리를 때리라고 하는 장면이나, 뒤쫓아가던 자베르가 마차를 몰고 있는 다른 사람을 장 발장으로 오인하는 장면 등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프랑스 영화에 비해 미국 영화는 상당히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자베르에게 쫓겨 장 발장이 수녀원으로 숨어드는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이 있다.
그리고 테나르디에의 딸인 에포닌이 마리위스를 사랑했고 그를 위해 대신 죽는 이야기, 파리에서 장 발장을 알아본 테나르디에가 그를 협박하여 거금의 돈을 뜯어내려고 한 일 등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또한 장 발장이 자베르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장면, 자베르의 자살장면도 아주 다르다. 자베르는 수첩에 일기를 쓰고 자살을 하는데 죽기직전 장에게 하는 말, “법대로 해. 법의 중요성을 모르는군. 명령에 복종해. 이젠 자넨 자유야.” 자기 손목에 스스로 수갑을 채우고 드러누워서 세느 강에 빠진다. 얼마나 이상한 장면인지 자베르는 드라큐라가 죽는 것 같은 기묘한 인상을 준다. 그 직전에 “왜 날 살려주었지? 넌 날 증오하잖아?” 이에 장 발장은 “내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당신을 증오하지 않는
다.”고 답한다.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면서 기뻐하며 걸어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원작과 프랑스 영화에서는 테나르디에가 협박하고 괴롭히는 것이 중요한 사건이며, 늙은 모습의 장 발장이 코제트가 마리위스와 결혼한 후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고 혼자 쓸쓸히 살다가 죽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니 미국영화는 원작의 거의 절반을 다루지 않은 것 같다.
4. 프랑스 영화 「레 미제라블」 (1982년 작)
우리가 보고자 하는 영화는 로베르 오셍(Robert Hossein)이 만든 1982년 작이다. 1927년 파리에서 태어난 오셍 감독은 본명이 Robert Hosseinoff로 지휘자 앙드레 오셍의 아들로 태어나 연기학교를 다닌 후, 몽 마르트르의 극단에서 배우, 연출의 길을 닦고 몇 년 간 정통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1955년 「라피피」에 출연함과 동시에 1958년「나쁜 놈들은 지옥에 간다」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1967년 「나는 라스푸친을 죽였다」와 같은 필름 느와르를 주창하며 범죄영화들을 만들었다. 1982년 이 영화를 만든 그는 1997년 클로드 를루슈감독의 「20세기 레 미제라블」에서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리노 벤추라는 1919년 이탈리아 파마에서 태어나 1987년 사망했다. 1953년부터 프랑스영화계에 배우로 입문하여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감독들과 함께 작업했으며, 형사, 범죄, 스릴러 등 필름 느와르의 단골배우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현금에 손대지마라」(1954),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7), 「두 번째 숨결」(1966),
「일요일의 연인들」(1980), 「레 미제라블」 등이 있다. 자베르 역은 미셸 부케, 테나르디에 역은 장 카르메, 코제트 역은 크리스티안느 장, 마리위스 역은 프랑크 다비드가 연기했다. 미국 영화와 큰 차이를 보이는 9개 장면을 선택하여 비교해 보겠다.
1) 미리엘 주교의 용서
프랑스 영화를 보면 처음 미리엘 주교님이 경찰에게 잡혀온 장 발장에게 은촛대와 함께 400프랑의 돈까지 주며“그 돈을 좋은 일에 쓰시오. 선생은 더 이상 악인이 아닙니다. 성공을 빌겠소.”
이렇게 말하지만, 미국 영화에서는 “은촛대는 왜 안 가져갔나?”
“잊지 말게, 절대로. 새 사람이 되기로 한 약속.”
“자네는 이제 우리의 형제네. 난 이 은으로 자네 영혼을 샀네. 이제 증오에서 벗어나게.”
그러나 소설에서는
“잊지 말아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은식기를 사용하겠다고 내게 약속했어요.”
아무 약속도 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주교는 정중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미 악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오. 선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영혼에 대해 내가 값을 치렀어요. 나는 당신의 영혼을 어두운 생각과 멸망의 정신에서 구출하여 하느님께 바치려 합니다.”10)
이렇게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
2) 프티 제르베(Petit-Gervais)의 은전
프랑스 영화에서 주교의 집을 나온 장은 산에서 빵을 먹고 있는데, (소설에는 생각에 잠겨 있다고 되어 있음.) 어떤 소년 (10살 쯤 된 사부아 아이인데 이름이 프티 제르베이다.)이 노래부르며 동전 몇 개를 가지고 공기놀이를 하다가 40수짜리 은전이 장 발장의 발 아래 굴러들어간다. 그것은 그 아이가 일주일 일해서 번 돈이다. (프랑스 영화에서. 소설에는 아마 그 소년의 전재산일 것이라고 한다.) 그 사실을 모른 장 발장은 동전을 달라고 하는 소년을 귀찮아하며 그냥 쫓아버린다. 소년은 가면서 “치사한 도둑!”이라고 욕을 하고, 그가 멀어져간 후 그 동전을 발견한 장 발장은 그것을 돌려주려고 아이를 부르지만 들리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또 도둑
10) 오증자 역, 『레 미제라블』, 어문각, 2005, p. 76.
이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 ‘도둑’이라는 소리가 계속 그의 귀를 때리며 그는 귀를 막고 괴로워한다. 미국 영화에는 이 중요한 사건이 빠져 있다.
3) 팡틴의 해고
마들렌 시장이 된 장의 공장에서, 미혼모인 팡틴은 해고된다. 코제트를 맡긴 테나르디에가 보낸 편지 때문에 미혼모인 것이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그 편지를 개봉해서 읽고 놀리는 공장 직공들. 그들과 싸우는 팡틴. 해고된 후 공장 밖에서 물끄러미 구경하는 팡틴과 중간 관리자에게 항의의 표시로 작업 테이블을 두드리는 직공들. 이런 장면도 미국 영화에는 없다.
4) 팡틴의 변모
팡틴은 해고되자 점점 더 가난해지고 얼굴은 점점 더 피폐해 간다. 테나르디에는 자꾸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돈이 없는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멀쩡한 이빨을 뽑아 판다. 코제트의 모직 치마로 10프랑이 필요하다, 또 전염병이 걸려 40프랑의 약값이 필요하다, 그 이후에는 100프랑이 또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팡틴의 변모는 얼굴의 변모로 나타난다. 짧은 머리로, 이빨 빠진 모습으로, 드디어 창녀로.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기는 했으나 원작에 충실하다.
반면 미국 영화에는 이런 변모가 없고 바로 창녀로 나타나며, 자신을 자베르에게서 구해주는 시장에게 침까지 뱉으며 항의한다. 자신을 해고시켰다고.
프랑스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없고, 시장은 점잖게 그녀를 풀어주라고한다. 그리고 팡틴과 시장 사이에 로맨스가 형성된 것 같이 스토리를 만든 것은 미국 영화이다. 두 사람 사이에 연애 감정이 싹트고 결혼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5) 샹 마티외 사건
팡틴을 간호하는 시장을 찾아온 자베르는 자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시장이 장 발장이라고 의심하여 상부에 고발 편지를 썼는데, 진짜 장 발장이 아라스에서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사표를 내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장은 십자가 아래에서 고민한다. 진실을 밝혀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편하게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갈등 속에서 밤을 새우며 고민에 빠진다. 이 장면은 소설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미국 영화에는 전혀 나오지 않아 실감이나지 않는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아라스의 법정에 도달한 그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밤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무려 5시간이나 자지 않고 방안을 걸어다니며 두 가지의 유혹 사이에서 고민하며 방황하는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운명은 자기 대신 타인인 한 사나이를 암흑의 밑바닥에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이미 결정된 것이다. 되는 대로 맡겨 두자. 만사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쁨이 없다. 그것은 비열한 짓이며 위선적인 일이다.
장 발장이라고 자수할 것인가, 아니면 장 발장의 흔적인 푸른 무명옷, 헌 바지, 낡은 배낭, 굵은 지팡이, 그리고 40수짜리 은화, 두 개의 은촛대까지 다 불에 태워버리고 마들렌 시장으로 우아하게 늙어갈 것인가? 그는 내면으로부터 촛대를 부숴버리고 주교도 잊어버리고 시장님으로 살아라,
모두 없애버리라는 소리를 듣는다. ‘네가 여기서 기쁨과 광명에 젖어 있는동안, 누군가가 너 대신 붉은 죄수복을 입고 치욕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네가 매여 있어야 할 쇠사슬을 끌고 유형장에 갈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 용케 견디어 왔다! 아아, 미제라블!’11)
그는 일신의 안위와 영혼의 구원이라는 진퇴양난의 딜렘마에 빠지게된다. 그는 자신 안에서 이중화된 두 존재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미리엘 주교와 만남 이후에 장 발장은 완전히 새로운
11) ibid., p. 174.
다른 사람이 되어, 이미 이중적인 존재로 나타났다. 현재의 명예로운 마들렌 시장과 예전의 죄수 장 발장은 현재의 장 발장이 동시에 구현하고있는 자아의 여러 면일 뿐이다.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마들렌 시장과 장발장의 영혼을 페르소나(persona)와 자기(Soi)라고 불렀을 것이다. 바로 그 때, 그에게는 “죽음으로 더욱 현존하는” 것 같은 주교가 ‘그의 얼굴’ 혹은 ‘그의 양심’을 보고 있음에 반하여, 세상 사람들은 ‘그의 가면’ 혹은 ‘그의 생활’만을 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미리엘 주교에 의해서 그의 영혼이 구원된 적이 있었던 장 발장에게 있어서 그의 일신의 안위보다 그의 영혼의 구원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12) 그러므로 그는 아라스에
가서 가짜 장 발장을 풀어주게 된다.
장 발장대신 장 발장으로 혐의를 받은 샹마티외는 미국 영화에서는 완전 백치, 바보 같은 사나이로 나오지만, 프랑스 영화에서는 바보는 아니다. 장 발장이 그에게 “당신은 자유인이오.”라고 말하자 샹마티외는 눈물을 흘린다. 소설에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사라졌다. 모두 미친 사람이라 여기며, 앞서의 광경이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샹마티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6) 테나르디에와의 협상
코제트를 테나르디에로부터 구해낼 때도 그와 협상하는 것이 다르다. 프랑스 영화에서는 “얼마면 되겠소?”라 물어보고 1500프랑이라는 돈을 주고 데려온다. 미국 영화에서는 테나르디에가 500프랑에서 출발해서 자꾸 올려 1500프랑까지 요구하다가 법적인 문제이므로 안된다고 하자, 장발장은 팡틴으로부터 받은 위임장을 보여주고 코제트를 데려온다. 소설에서는 1500프랑을 받고 보낸 테나르디에가 다시 돈을 더 뜯어내려고 두 사람을 좇아갔다. 15000프랑이라도 요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아이를 넘겨줄 권리가 없다고 하자, 장 발장은 위임장을 주며, 35프랑만 주면 되지만, 1500프랑이나 주었다고 말하며 노려보자 테나르디에는 무서
12) 김희경, Victor Hugo의 견자적 소설『레 미제라블』, 불어불문학회 하계학술대회
2002. pp. 28-9.
워 돌아섰다.
이 영화는 몇 군데 사소한 부분을 빼면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살린 경우로 유명하다. 세 시간 칠분의 이 장편영화는 그 구성이 마치 책처럼, <프롤로그 1815년>, <제1권 1820년 몽크레유 쉬르메르 시>, <제2권 1830년 파리>, <제3권 1832년 파리>, <에필로그1835년 파리>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1815-1830년의 연대기>라는 부제도 달려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작품을 장 발장의 개인사라기 보다는 19세기 프랑스의 근세사로 보게 만들어준다.13)
7) 마리위스와 코제트의 만남
프랑스 영화는 미국 영화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며 원작에 충실하다. 마리위스와 코제트의 첫 만남도 다르다. 프랑스 영화가 더 서정적이다. 미국 영화에서는 왕정을 반대하며 투표권을 요구하는 내용을 대중에게 연설하는 마리위스를 코제트가 구경한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에서는 공원을 산보하는 장과 코제트를 마리위스가 바라본다. 마리위스의 친구가 그에게 말한다. “사랑하면 눈이 멀지.” 소설에서도 공원을 산책하는 두 사람을 마리위스가 여러 번 보고 점점 사랑에 빠진다.
8) 자베르의 죽음
자베르의 죽음도 매우 다르다. 그는 죽기 전 수첩에 감옥에서의 온갖비리를 적고 “내 죽음으로 이 모든 비리가 깨끗이 청산되어야 할 것이다.”고 말한 다음, 물에 빠진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모자와 옷, 지팡이가 강둑에 남아있을 뿐이다. 미국 영화에서는 앞에 언급했듯이 매우 부자연스럽게 죽는다.
9) 장 발장의 죽음
마지막으로 장 발장이 죽는 장면을 보면 코제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13) 김성곤, op.cit., p. 318.
선물한 인형 카트린을 보며 첫 만남을 다시 추억하면서 쓸쓸히 죽어간다.영화의 첫 장면- 무거운 쇠사슬이 발목에 묶인 죄수들이 발을 질질 끌면서 줄줄이 걸어가는 장면이 다시 나오며 영화는 장엄하게 끝난다.
결 론 미국 영화는 테나르디에 일가의 이야기를 거의 생략하고 장 발장과 팡틴, 자베르, 코제트와 마리위스를 중심으로 단순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대부분의 미국 영화처럼 단순하면서 코믹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전개는 빨라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원작의 재미나 아름다움을 많이 훼손하고 있다.
이에 반해 프랑스 영화는 원작에 아주 충실해서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다소 지루한 감은 있지만, 원작만큼이나 영혼의 아름다움과 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테나르디에라는 악한이 장 발장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감옥에서 탈출하는 장면과 마리위스를 구출하기 위해 파리의 하수도를 기어나오는 장 발장의 이야기, 2월 혁명 중의 사회의 혼란 등이 잘 그려져 있다. 또한 테나르디에의 아들과 딸인 가브로슈와 에포닌을 통해 사회 하층민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영화에서 더 큰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참 고 문 헌
박흥순, 『소설과 역사』, 청동거울, 2002.
이규식, 『빅토르 위고』,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6.
김성곤, 『문학과 영화』, 민음사, 1997.
위고, 오증자 역, 『레 미제라블』, 어문각, 2005.
빅토르 위고, 이휘영, 정기수, 방곤 역, 『레 미제라블 I』, 정음사, 1979.
서정기, 빅토르 위고의 낭만주의적 화해정신, 한국방송통신대학 논문집
10집, 1989.
이성배, Dieu dans les Misérables de Victor Hugo, 동의대학교 동의논
총 9집, 1984.
김영철, 소설 『레 미제라블』을 읽고 나서; 한 교육학적 독후감, 교육인
류학 연구, 2002.
김희경, Victor Hugo의 견자적 소설『레 미제라블』, 불어불문학회 하계
학술대회 2002.
<Résumé>
Une analyse sur les films Les Misérables
-la comparaison entre le film français et le film américain
Kyong-Nyon Jine(PuKyong National University)
Nous avons montré aux étudiants Les Misérables le film français de
Robert Hossein(1982) et Les Misérables le film américain de Bille
August(1998) dans les cours de La compréhension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Nous avons eu l'impréssion très différente entre les 2 films.
Voilà ce que nous avons analysé ces 2 films.
D'abord, nous avons étudié l'écrivain Victor Hugo et Les
Misérables son roman. Ensuite, nous avons étudié les différences des 2
films. Nous avons trouvé que on s'est déroulé simplement en
accentuéant Jean Valjean, Fantine, Jabert, Cosette et Marius, et en
ométtant les épisodes de la famille Ténardier dans le film américain de
Bille August. C'est un film très simple et comique comme les autres
films américains. Nous avons pu le voir intéressant, mais il a détruit la
beauté du roman original.
Au contraire, le film français de Robert Hossein était très loyal au
roman original. Et nous avons senti la beauté de la littérature et celle
de l'esprit. Il nous a donné l'émotion et l'amusement plus grands que
le film américain.
주제어(mots-clés) : pardonnement, amour, espoir, révolution, repentir
-----------<본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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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랑스문화연구」 제12집 2006. pp. 275~294
논문투고일 2006년 4월 10일
심사완료일 2006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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