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한류와 K-literature의 가능성을 위하여
홍 용 희
1. ‘지구문화론’과 한류의 가능성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지구화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구화는 근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지구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질서와 생활양식의 출현을 가리킨다. 자본주의의 급격한 발전과 정보통신기술 체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지역, 국가, 대륙 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 질서와 생활양식을 불러오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 중심의 질서 체계가 점차 지구공동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구공동사회는 지구문화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지구문화론은 이미 1960년대 이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교통, 정보, 통신, 미디어 등의 기술혁명에 따라 세계 중심부 문화가 확산되는 현상에서부터 제기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구문화론은 세계 중심부 문화의 전체주의적, 일방적 확산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정보화 산업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지역문화의 세계화가 현실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구문화론은 세계화와 지역화의 상호 관계성 속에서 재구성되는 지구지역화의 양상을 보인다. 아르준 아파두라는 전지구적 문화현상의 요인과 양상에 대해 5가지를 들고 있다. ➀이민, 피난민,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민속적인 양상(ethnoscapes), ➁ 다국적 기업, 직접 투자, 기술 현상의 확산(technoscapes), ➂ 통화시장과 주식거래에서 화폐가 급속하게 이동하는 금융의 양상(financescapes), ➃ 신문, 잡지, 텔레비전, 영화에 의해 생산되고 분배되는 매체의 이미지와 정보 양상(mediascapes) ➄ 서구 계몽주의적인 세계관의 요소로 이루어진 국가나 반국가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양상(ideoscapes)등이다.
이와 같이 지구문화론은 다양한 정치, 경제, 문화적인 생활양식의 초국가적 이동, 지구적인 것과 지방적인 것의 상호 영향 관계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이러한 지구문화론은 세계사회론에 입각해 보면, 보편적인 세계문화 모델의 지구적 확산과 적용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세계사회론은 지구화 과정에서 보편적인 세계문화의 표준을 중요시하고 이를 제도적인 차원에서 동의와 적응을 추구해 나간다.
한류는 지구화 시대에 한국에서 출발한 지구문화론의 구체적 현상으로 파악된다. 1999년 중반 중국 언론매체에 처음 등장한 한류는 이제, 중국, 홍콩, 일본,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 지역에서부터 이집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미주지역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국문화에 대한 인기와 관심을 지칭하는 말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지속 가능한 한류의 방법 찾기에 있다. 물론, 한류의 발전은 기존의 서구 중심의 식민주의적 지배 문화에 대응하는 한국중심의 문화적 패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한류의 바람직한 전개 방향은 아시아 각국의 문화는 물론 서양의 문화부흥까지도 선도하고 추동하는 창조적 보편의 문화 창출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한류는 스스로 서구 중심 문화의 하위 범주에 해당하는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서 지구화 시대의 세계문화 모델을 창조하는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서양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지구화 시대의 지구문화론을 창조하는 주역으로서 한류의 역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요, 드라마, 영화 등의 대중문화는 물론 이를 넘어 문학, 예술, 철학, 전통 민예 및 종교 등의 고급문화까지 확산될 때 가능할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포스트 한류의 지향성과 글로벌 한국문학에 해당하는 K-literature의 미적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기로 한다.
2. 한류를 넘어서는 한류: 인류 문화 원형을 향하여
포스트 한류는 대중문화를 넘어 K-literature를 중심으로 한 고급문화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갈 때 지속가능할 것이다. 포스트 한류를 주도할 k-literature의 성향은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를 바탕으로 가늠해 보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근자에 어느 때보다 비교적 활발하게 우리 문학이 해외에 진출하여 성과를 얻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파악된다. 2003년 이래로 영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 등 언어권에서 20여 종의 국내 문학이 국제무대에서 수상작으로 오르면서 주목 받았다.
고은, 『만인보』, 황석영, 『오래된 정원』,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한강, 『채식주의자』,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안도현, 『연어』,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김이듬, 『히스테리아』, 김금숙, 『풀』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이승우의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세계문학 시리즈 "폴리오" 문고에 포함되었다.
이들의 작품 세계를 일별해 보면 대부분이 한민족적 정체성 보다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미적 원형의식의 역동이 주조를 이루거나 공식화된 지배 담론에 대한 일탈, 부정, 저항의 상상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2011년 미국에서 발행된 지 한 달 만에 현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면서 크게 주목 받았던 신경숙의 소설은 ‘엄마’로 상징되는 가장 원초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소재와 인간 삶의 보편적인 주제의식에 입지를 두고 있다. 우리 문학의 성공적인 미국 입성이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정서에 해당하는 어머니에 대한 재발견이라는 점은 새삼 관심을 환기시킨다. 영국의 맨부커상으로 이목을 모은 한강의 경우 역시 욕망, 죽음 등의 파토스와 여성성 등 인간 본연의 문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이승우의 경우는 인간의 동물성의 욕망과 그 초극으로서 식물성에 대해 성(聖)과 속(俗)의 변증을 통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있다. 영국 Hunger TV에서 현대우화 톱5 중 하나로 뽑힌 안도현의 경우는 ‘성장’ 문학의 한 전형적 서사이다. 2019년 미국 뉴욕타임즈와 영국 가디언에 의해 ‘2019 최고의 만화’, ‘2019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각각 선정되고 2020년 미국 하비상Harvey Awards ‘최고의 국제도서상에 선정된 ’김금숙의 만화 『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평화운동가로 살아가는 자기 초극의 삶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편, 김혜순은 시집 『죽음의 자서전』으로 2019년 스웨덴 문학상 ‘시카다상’과 그리핀시 문학상을 수상한다. 김혜순의 시들은 문명적 균열을 드러내는 복수적이고 집단적인 참상과 사회적 죽음들에 대한 애도의 주술적 제의이다. 심사평에서처럼 “여성의 몸에 실재하는 감정과 정체성에 충실하면서 다정함과 격분이 공존하는 언어의 목소리로, 악몽과 어둠을 관통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적 황홀을 열어 보인다”.
2020년 김이듬의 시집 『히스테리아』 가 미국 문학번역가협회가 주관하는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 심사위원단의 언급처럼 『히스테리아』는 “의도적으로 과도하고 비이성적인 시들로 구성된 흥미롭고 놀라운 작품”으로서, “민족주의, 서정주의,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면서 한국 여성 시학의 계보를 잇는” 특성이 표나게 드러난다.
이렇게 보면, 해외에서 주목받는 한국문학의 경우 대체로 한민족 정체성보다 세계 문학의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미의식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개인적 콤플렉스는 개인적 편견의 영역을 넘어서기 어렵지만 원형은 한 나라 한 시대에 영향을 주는 특정 종교, 철학, 예술을 탄생시킨다.”는 명제를 거듭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 보편적 공감을 얻는 작품은 보편적 인간 영혼의 깊은 배후로부터 연원한다는 점을 재확인시킨다.
따라서 k-literature의 화제작은 한국에서 창조하는 인류사적 원형의 서사와 일탈의 상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k-literature의 핵심적인 미의식이 세계문학의 보편적인 미학과 깊이 연관된다는 점은 앞으로 k-literature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류는 한류를 벗어나야 한다’는 명제를 낳는다. 한류가 ‘한국적인 것’으로서의 동양주의가 아니라 아시아의 다양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으로 열린 타자의 거울이 될 때 오리엔탈리즘의 폐쇄적인 지역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3. 글로벌 한국문학과 문단 재편에 대해
한류는 한류를 넘어서야 한다. 이 명제는 지속가능한 한류란 ‘한국적인 것’으로서의 동양주의가 아니라 아시아의 다양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으로 열려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글로벌 한국문학의 활성과 이를 위한 문단 재편성의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 앞에 오늘날 재외한인문학과의 긴밀한 소통의 네트워크를 제안하고자 한다.
앞으로 재외한인문학은 현지어로 창작되는 빈도가 비약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재외한인디아스포라의 성격은 오늘날 지구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새로운 전환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는 더이상 추방, 망명, 이산의 유랑자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이 자발적인 이주자로서 현대 노마드의 한 유형에 속한다. 쟈크 아딸리가 규정한 현대의 노마디즘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며 창조적인 행위를 위해 이주하는 자들이다. 현대 노마드 문명에서는 주변과 중심, 피부색과 언어, 모국과 현지국 간의 위계 서열적인 정체성 갈등과 문화적 혼란도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지역적으로 생활하고 세계적으로 사유하는 지구시민사회의 사고가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날 교통 통신이나 미디어의 비약적 발전을 넘어 호모 모빌리안(모바일이 신체의 일부가 된 인종)이 일반화되면서 전지구적 일상성이 구현되고 있다. 그래서 한순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지구의 노래가 되고, 방탄소년단이 수억 명이 환호하는 지구사회의 스타로 떠오르기도 한다. 지구사회에 상응하는 지구 문화가 도처에서 한순간에 떠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구사회에 대응하는 한국문학과 문단의 성격과 지향성도 새롭게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 중심의 문단을 내세워 지역과 해외 한인 문단을 서열화, 주변화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폐쇄적인 ‘우리식 문학주의’로 고립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로벌 한국문학에 상응하는 문학 환경과 질서의 재편이 요구된다. 이것은 탈중심의 중심, 즉 서울 중심을 벗어나서 전 세계 각지가 모두 제각기 중심이 되는 문단을 구축해 나갈 때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고려인문학의 아나톨리 김, 재미한인문학의 캐시 송, 이민진, 게리 박, 이윤하, 일본한인문학의 이회성, 유미리, 최실 등을 포괄할 수 있는 열린 문단질서의 재편이 요구된다. 우리 문학은 이러한 수평적인 다중심의 열린 시각을 추구할 때 문학적 자산은 물론 비약적 발전의 가능성역시 열릴 것이다.
세계 220개국 중 180 여개국에 체류 혹은 거주 하고 있는 재외 한인은 현지화, 세계화의 전략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실현해 나가야 할 글로벌 한국의 주역이다. 지구사회에서 재외 한인들의 현지 문화와의 교섭 과정에서 지니게 되는 혼종성, 이중성, 경계성, 통문화성(cross-cultural)은 글로벌 한국문학의 매우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지구사회에 대응하는 지구문화는 개별과 보편, 주변과 중심이 혼융되면서 새롭게 열어나가는 차원 변화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종과 혼융의 이중적 교섭을 재외 한인 문학에 적용하면 적응과 극복의 방법론으로 확장 해석하여 응용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지 주류 문학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주류 문학의 한계 및 결핍의 지점을 극복하는 창조적 소수자의 길을 상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에 이르면, 한민족적 정체성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첫째,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문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재외 한인 작가들은 인터넷과 모바일의 생활화를 통해 한국 사회와 시공을 초월한 소통의 네트워크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그래서 지구 어느 구석에 있어도 한국 사회의 지적 활동과 문화 현상과의 밀접한 상호 교감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민족문학의 창작 공간을 국민국가(nation-state)의 단위로 제한하여 논의하는 속지주의는 큰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 둘째는 첫 번째의 연장선에서 장거리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설정해 볼 수 있다. 노마드 시대에는 자연스럽게 지역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초국가적 장거리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말했듯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이다. 장거리 민족주의 역시 상상의 공동체의 새로운 범주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 지구화 시대 글로벌 한국문학으로 나아가는 소통의 네트워크 방식과 가능성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단순히 한국문학의 확산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지구 문학으로서의 가치 창조의 기여도에 궁극적 목표가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4. k- literature의 민족 미학의 가능성 탐색: 김지하의 ‘흰 그늘’을 중심으로
포스트 한류의 주역으로서 k-literature가 인류사적 보편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해서 민족적 고유성과 특성을 간과해도 무방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k-literature는 한국에서 창조하는 인류문화사적 원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류문화사적 원형과 보편성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형성되어지는 구성체이다. 특히, 여기에서 강조하는 원형 담론이란 과거형의 기억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인류 삶의 창조적 가치와 방향과도 연관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구현할 수 있는 인류 보편문화의 미적 요소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자각적으로 문제의식을 제기한 시인은 김지하이다. 그는 직접 ‘한류’라는 제목의 시편을 쓰고 있다.
“우리 된장,/김치에/식혜까지//명품가치 매기는 것보고/ 뭘 생각해?// 웰빙이라며?//
삭힘이야//이 사람아//음식 그러하니/예술은 어때?/욘사마가 뭐야?//그러면 이젠/사상이라//안 그런가?//시김새 알지?//삭힘의 명사야/한국미학이지//(중 략)//예끼 이 사람아/바로 그것이/소프트 파워야//부드러운 카리스마지.”
- 김지하, 「한류」 일부
시적 화자는 한류에 대해 “시김새”를 내세우고 있다. “시김새”는 “삭힘”의 명사형이다. 우리의 전통 음식에 해당하는 “된장/김치/식혜”의 명품가치는 “삭힘”의 신묘함에 있다. 삭혀서 나는 깊은 여운의 맛, 그것이 “한국미학”이란 것이다. “음식”의 삭힘으로 설명되는 “시김새”의 미학은 “욘사마”로 표상되는 대중문화의 원형이면서 동시에 “예술”, “사상” 등을 포함하는 고급문화의 원형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류의 핵심적인 “소프트파워”이며 “부드러운 카리스마”이다.
한편, 김지하는 다음 글에서 시김새의 미학적 본질과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직접 설명한다.
‘시김새’는 판소리와 우리 민족예술의 핵심미학이다. ‘시김새’는 ‘흰그늘’이다.
15세기 피렌체와 베네치아 르네쌍스의 핵심미학, 그 브랜드•토오치는 ‘어둑어둑한 저녁 강물 속에서 문득 빛나는 희끄무레한 한 물빛(야코브 브룩하르트)이었다.
한국의 네오• 르네쌍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시김새는 흰그늘이다」 -시집 『시김새』에 부쳐
한류의 미학적 원형이 “시김새”인바, 그것은 곧 “흰 그늘”이라고 적시한다. 그리고 이 “흰 그늘”의 미학은 비단 우리 한민족 뿐만 아니라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학적 표상이기도 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시김새”, 즉 “흰 그늘”은 한국에서 출발하는 제 2의 인류사적 문예부흥운동 즉 “한국의 네오르네쌍스”의 미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김새”, 즉 “흰 그늘”이란 “아시아로부터 전 세계에로 새로운 문화의 발신”의 “요청”(「文化」, 『흰그늘의 산알소식과 산알의 흰 그늘 노래』,)에 대응하는 문예미학이다.
그렇다면, 시김새, 즉 “흰 그늘”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판소리를 비롯한 민족민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 그늘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도달된다. ‘그늘’은 신산고초의 현실에 대한 인욕정진의 산물이며 ‘흰’은 그늘에서 배어나오는 초월적 아우라이다. 즉, 중력과 초월, 속과 성, 지상과 천상의 통일이 사람을 통해 성립된 경지가 ‘흰 그늘’이다. “병과 고통이라는 이름의 그늘에 흰빛은 자생적인 “약이요 처방이다. 그래서 “흰 그늘”의 미학은 오늘날 시대정신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오늘날은 어느 때보다 작게는 한 개인의 정체성 상실부터 크게는 전지구적 생명가치 상실로 요약되는 극심한 피로와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K-literature가 지향해 나갈 미학적 원형으로서 우리의 전통 미학인 “흰 그늘”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지구적 질병의 시대에 소통과 치유의 미학은 지구적 차원의 문화론으로서 보편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5. 열린 결론
앞으로 포스트 한류는 k-literature를 중심으로 한 고급문화가 선도해 나가야 한다는 당위적 인식 속에 k-literature의 주요 사례를 일별하면서 세계문화의 보편적 미의식에 대한 지향이 요구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지구사회에 대응하는 글로벌 한국문학의 지향성과 문단질서의 재편에 관한 방법론을 제기하였다.
한편, 여기에서 강조하는 인류사적 문화 원형은 폐쇄적인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지 민족 미학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대의 인류사적 문제에 창조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민족 미학을 깊이 탐색하는 것이 요구된다. 포스트 한류는 지구화 시대에 대응하는 지구문화론으로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김지하의 ‘흰-그늘’의 미학은 이러한 문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기후위기, 인간성 상실, 생명파괴 등으로 인한 전지구적 질병의 시대에 ‘흰 그늘’과 같은 치유의 미학은 지구사회의 보편적 미의식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홍용희
1966년 안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9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저서 『김지하문학연구』, 『꽃과 어둠의 산조』, 『한국문화와 예술적 상상력』,『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대지의 문법과 시적 상상』,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고요한 중심을 찾아서』 등
젊은평론가상,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애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유심문학상 등 수상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장 역임, 미래문명원장,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한국비평문학회 회장,
계간 문예지 <<시작>> 주간, 대산문화 편집위원,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편집위원, 문화예술지 <<쿨투라>> 기획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