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6호 익산고도리석불입상(益山古都里石佛立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약 200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상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冠) 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정이다.
목은 무척 짧게 표현되어서 어깨와 얼굴이 거의 붙어 있는 셈이다.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도포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없이 몇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와 불상을 같은 돌에 새겼는데, 앞면을 약간 깍아 대좌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다리꼴의 돌기둥 같은 신체나 비사실적인 조각수법이 마치 분묘(墳墓)의 석인상(石人像)과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불상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로 보인다.
⇨ 현지 안내문
[한글 설명]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은 돌로 만든 불상으로 두 개의 불상이 약 200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서 있다.
두 불상이 평소에는 떨어져 지내다가 매년 음력 12월이 되면 만나서 회포를 풀고 새벽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두 개의 불상은 머리부터 받침돌까지 돌기둥 한 개를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머리 위에 높고 네모난 갓 모양의 관을 쓰고 있다.
고려 시대에 돌로 만든 불상은 신체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큰 돌을 사용하였는데,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역시 그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영문 설명]
Stone Standing Buddhas in Godo-ri, Iksan
Treasure No. 46
These two stone standing buddhas face one another about 200 m apart. Each statue, including its pedestal, was carved from a single piece of stone.
The huge size of the buddhas and their roughly expressed bodies are typical characteristics of stone Buddhist statues made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According to a local legend, these two stone buddhas meet at midnight once a year in the twelfth lunar month. They spend the night catching up with one another until a rooster crows at dawn, when they separate and return to their usual spots.
※ 출처 : 위키백과
卍 20090323(음0227) SUN 07:10 원각사 해동선원 선불장 통일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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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대불 : 대한불교 조계종 원각사 해동선원 선불장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친환경로 2346번길 4(평촌리 540)
전화번호 : 055-973-9560
☸ 20060315(음0216)WED 西光寺 大雄殿 닫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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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집(당가)
- 연원 및 변천
닫집은 산개(傘蓋)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면 주인공 머리 위에는 항상 양산이 받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인도의 불교와 힌두교 사원에서 신상위에는 항상 천으로 만들고 화려한 장식을 한 보개(寶蓋)가 씌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산개와 보개가 건축화하여 닫집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산개나 보개는 모두 양산에서 기원하여 닫집으로 발전해 갔음을 알 수 있다.
- 내용
불전이나 궁궐 정전에는 불단이나 어좌 위에 작은 집 모형을 만들어 걸었는데, 이를 닫집이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당가(唐家)라고 쓴다.
『인정전영건도감의궤(仁政殿營建都監儀軌)』등에는 어좌위에 설치되었던 닫집의 도면이 수록되어 있다.
‘닫’은 ‘따로’라는 옛말이므로 ‘따로 지어놓은 집’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산개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불전의 닫집과 궁궐의 닫집은 별개로 발전과정을 거쳐 왔다고 추론할 수 있다.
부처를 중앙에 모셨던 고대 불전에서는 금당이 부처님 집이었으므로 닫집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예불의례가 금당 바깥을 도는 요잡(繞匝)중심이었다가 차츰 금당 안으로 들어가 절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마루가 깔리고 불단이 뒤로 밀리면서 금당 안에 부처님의 집을 별도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닫집으로 정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닫집은 불국정토의 궁전을 가리키는 적멸궁, 칠보궁, 만월궁 등을 상징하는데, 이들은 각각 석가, 아미타, 약사를 모시는 궁전이다.
닫집은 모양에 따라 보궁형(寶宮形), 운궁형(雲宮形), 보개형(寶蓋形)이 있다.
보궁형은 공포를 짜 올려 건물처럼 만든 화려한 닫집으로 가장 많다.
공포 아래에는 짧은 기둥이 달려 있는데 이를 헛기둥[虛柱]이라고 한다.
운궁형은 앞쪽에 장식판재인 염우판(廉遇板)이나 적첩판(赤貼板)만을 건너지르고 안쪽에 구름, 용, 봉, 비천 등으로 장식한 천장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개심사 대웅전, 봉선사 금당에서 볼 수 있다.
보개형은 천장 일부를 감실처럼 속으로 밀어 넣은 형태인데 고대 불전에서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무위사 극락전과 봉정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
보개형은 닫집이라고 하기보다는 보개천장으로 불리며 천장의 한 종류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미와 역할은 닫집과 같다.
인정전에서는 닫집과 보개천장이 동시에 설치된 사례도 볼 수 있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20211221(음1118)TUE 15:12 영축총림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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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초파일(四月初八日) 석가탄신일 부처님오신날
☯ 음력 4월 8일에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행사.
성격 : 불교행사
유형 : 의식행사
행사시기 : 음력 4월 8일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음력 4월 8일에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행사.
☞ 내용
음력 4월 8일이며,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2018년에 공식명칭을 '부처님오신날'로 변경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불교인이든 아니든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명절로 전승되어 왔다.
대체로 이 날은 연등행사(燃燈行事)와 관등(觀燈)놀이를 중심으로 한 갖가지 민속행사가 행해진다.
연등행사의 경우, 연등을 하는 등을 만들 때에도 민속적인 취향에 따라 수박등·거북등·오리등·일월등·학등·배등·연화등·잉어등·항아리등·누각등·가마등·마늘등·화분등·방울등·만세등·태평등·병등·수복등 등을 만들어 연등에 곁들인 민속신앙의 의미를 더한층 가미시키고 있다.
등을 다는 데에도 등대(燈臺)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하고 휘황찬란한 연등을 하며,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 일색으로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축제 분위기의 연등행사는 자연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를 관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연등과 관등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민속놀이도 성행하게 된다.
우선 형형색색의 등과 그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등놀이가 있다.
이를 영등(影燈)놀이라고 하는데, 이 때의 영등 안에는 갈이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이리·사슴·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갈이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흔들려 빙빙 돌게 되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쳐 나온다. 그리고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 개의 등을,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의 등을 달았다.
이와 같은 등대를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이나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게 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일가일등운동(一家一燈運動)을 전개하고 있으나, 대개 사찰에서만 연등하고 있다.
그리고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모든 식구의 이름을 써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초파일행사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관민(官民)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민속행사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불교 관계인들만의 행사로 제한되고 있다.
재래의 사월초파일이 비단 불교적 의미만이 아닌 민속행사였다는 것은 그 날이면 즐기는 여러 가지 민속놀이에서 충분히 짐작되는 것이다.
이 날이면 온 장안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등을 달아 놓은 광경을 구경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관등의 즐거움과 더불어 각종 풍악을 울렸으며, 장안에는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불의 성을 만든다.
한편, 이 날이면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콩, 미나리나물을 벌려 놓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에 간소한 음식물로 손님을 맞이했다가 즐기는 뜻의 놀이라고 한다.
그리고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데, 이 놀이를 수부(물장구)라고 한다.
이와 같은 민가의 놀이와 함께 사찰에서는 사월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신도들은 성불도(成佛圖)놀이와 탑돌이 등 불교적인 놀이를 행하였다.
특히, 어린이날이 따로 없었던 때에는 이 날이 어린이날 구실을 하였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성대한 장이 섰는데, 대부분이 어린이용품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절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진기한 장난감을 얻어 들고 오는 즐거운 날이었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제등행렬은 이전의 관등놀이가 일제 암흑기에 없어진 것을 광복 후에 새롭게 시작한 행사이다.
사월초파일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을 준 날이라는 뜻에서 일차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와 같은 의미가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여 민중의 축제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에 대한 불교적 의미는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 중에 등공양이 있는데, 부처 앞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맑고 바르게 하여 부처의 덕을 찬양하고,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초파일 연등은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인도 등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
☯ 2020년 12월 16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라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불교식 축제.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대에 팔관회와 더불어 국가적인 행사로 시작되어 주로 고려시대에 성행했다.
불교에서는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 중에 등공양(燈供養)이 있는데, 이는 부처 앞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맑고 바르게 하여 부처의 덕을 찬양하고,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연등회의 종류에는 상원(上元) 연등과 초파일(初八日) 연등이 있다.
상원연등은 매년 정월 보름날에 왕궁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이틀 동안 등불을 밝혀 다과를 베풀고, 음악과 춤으로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며, 부처를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비는 행사이다.
상원연등은 불교적인 의미와 함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풍년기원제와 결합된 행사이다.
신라시대 정월 15일에 행해진 연등은 바람과 비의 신인 용신(龍神)과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별자리(天文太一星宿)에 드리던 풍년기원제와 불교의 등공양이 결합되어 행해진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등회는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에 의해 거국적인 행사로 행해졌다.
이후 성종 때 유학자들의 강한 반대로 일시 폐지했다가 1010년(현종 1) 윤3월에 다시 행했다.
그로부터 매년 2월 보름에 연등회를 베풀었다.
초파일 연등은 석가 탄생을 축하하는 연등으로 현재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행사이다.
4월 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서 볼 수 있는데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했다고 씌여 있다.
당시에는 초파일 연등을 열면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초기 억불책의 일환으로 1415년(태종 15)에 초파일 연등을 금지시키면서 연등회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414년 이후 계속해서 베풀어진 수륙재(水陸齋)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계승한 행사라 할 수 있다.
연등회는 2020년 12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살아있는 유산으로 시대를 지나며 바뀌어 온 포용성으로 국적, 인종, 종교, 장애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허물고 기쁨을 나누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석가탄신일 또는 석가탄신일 ( Buddha Jayanti , Buddha Purnima 및 Buddha Pournami 라고도 함)은 고타마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의 탄생을 기념하여 남부 ,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 대부분에서 기념되는 주로 불교 축제입니다. 부처님 과 창시한 불교 .
불교 전통과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Gautama Buddha, c. 기원전 563~ 483년 네팔 룸비니 에서 태어났다 .[2]
티베트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탄생(4월 7일)을 부처님의 깨달음과 마하파리열반(4월 15일)을 축하하는 연례 축제인 사가 다 와 두첸( Saga Dawa Duchen )과 별도로 축하합니다. [5] 동아시아, 베트남, 필리핀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과 죽음을 별도의 명절로 지킨다.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국가( 베트남 과 필리핀 제외 ) 캄보디아 와 몽골 에서는 불교력 바이사카( Vaisakha) 달의 보름날과 힌두력 의 보름날에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며 , 보통 4월이나 5월에 해당합니다. 서부 그레고리력. 이 축제는 부처님 푸르니마(Buddha Purnima)로 알려져 있는데, 푸르니마(Purnima)는 산스크리트어로 보름달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다 자얀티(Buddha Jayanti)라고도 불리며, 자얀티는 산스크리트어 로 생일을 의미합니다 .
부탄에서는 부처님 반열반(Buddha Parinirvana)이 국경일이며 사가 다와 (Saga Dawa )(티베트 달력의 4번째 달) 15일을 사가 다와(Saga Dawa)라고도 합니다.
성월(聖月)의 관찰은 사가다와(Saga Dawa), 베삭월 (Vesak Month) 의 1일부터 시작됩니다 .
이 달의 보름날인 15일에 부처님 생애의 세 가지 성스러운 행사를 축하하며 끝납니다.
탄생, 깨달음, 죽음(Mahaparinirvana).
사가 다와 베삭의 달 (Saga Dawa Vesak Month ) 내내 가정, 사원, 수도원 및 공공 장소에서는 거룩하고 고결하며 도덕적으로 윤리적인 활동이 이어집니다.
신자들과 추종자들은 사가 다와(Saga Dawa) 달 내내 엄격한 채식 식사를 따르고 비채식 음식 섭취를 피합니다. 부처님 열반의 날에는 신자들이 수도원을 방문하여 기도를 드리고 버터 램프를 밝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민족의상을 입고 절에 가서 수호신의 축복을 받습니다.
중국 본토에서는 이 날을 일반적으로 중국어 로佛誕( Fódàn )이라고 부르지만, " Yùfú Jié (浴佛節, "목욕(정화) 부처님 축제")), Guànfó Huì (灌佛會, "쏟아지는 날" 이라고도 합니다.
부처님 회중 회의"), Lóng-huá Huì (龍華會), Huayán Huì (화嚴會)" 또는 심지어 " 衛塞節( Wèisāi jié, "Vesak Day)), 偉大的衛塞節꽃節偉大的滿月( Wěidà de Wèisāi-jié Huā-jié Wěidà de MĎnyuè , "대베삭의 날 꽃 축제 꽃 달의 보름달").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등불이 켜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기원하기 위해 사찰을 방문합니다. 부처님 동상 목욕은 이 도시에서 열리는 부처님 오신 날 축하 행사의 주요 특징입니다. [18] 마카오에서는 마카오의 모든 불교 사원에서 " Ng5 Heung1 Seui2(五향수 "오향수")" 로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 Lung4 Wa4 Wui5 (龍화會)" 의식을 거행합니다. 마카오 의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 [19]
몽골에서는 석가탄신일을 ( 몽골어 키릴 문자: Багшийн Их Дүйцэн удѩр, Burkhan Bagshiin Ikh Düitsen Ödör , " Lord Buddha's Great Festival Day")이라고 부르며, 그 날짜는 몽골 음력 에 따라 결정됩니다 . [26]
결과적으로 이 날짜는 이웃 동아시아 국가가 아닌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국가의 부처님오신날/베삭을 축하하는 날짜와 일치합니다. [27] 2019년 12월, 많은 몽골 불교도들이 대중적으로 기념하는 축제가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28]
이 날을 부처님 오신날 ( 한글 : 부처님 오신 날 )이라 부르며, 부처님(부처님)이 오신 날이라는 뜻으로 , 석가 탄신일 이라고도 합니다.
"( 한글 : 석가탄신일, 한자 : 釋迦誕辰日), 즉 " 석가모니 부처님 의 탄신일 "이며 때로는 Chopail 이라고도 합니다 ( 한국어 : 초파일 Chopa-il ; 한자: 初八日, "(매월 첫 번째 8일) 음력 에서 )"). 연꽃 등은 한 달 내내 사원에 걸려 있고 등은 집과 거리에 걸려 있습니다. [36]
부처님 탄생일에는 많은 사찰에서 모든 방문객에게 무료로 식사와 차를 제공하고 연등회 (한글: 연등회, 한자: 燃燈會, "연등 축제")라는 대규모 등불 축제를 개최합니다.
아침과 점심도 제공되며, 여기에는 종종 산채 비빔밥이 포함됩니다 . 석가탄신일은 한국에서 인기 있는 명절이자 민속 축하 행사이며, 모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6]
베트남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일을 베트남어 로 Lễ Phật đản/Phật dan (佛誕, "부처님의 탄생일") 또는 Ngày Hội Hoa Phật (부처님의 주 꽃 축제의 날)이라고 부르며 베트남 전역에서 축하합니다.
많은 불교 사찰에서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축하 행사를 열고, 전국의 탑은 장식됩니다. [40] 1958년부터 1975년까지 부처님오신날( 베트남 달력 으로 4월 8일 )이 남베트남 의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 [41] 거리에서 수레와 등불 행렬을 즐겼습니다. 현재 부처님오신날은 베트남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축제이지만 공휴일은 아닙니다.
이 연못은 조선 전기의 농학자인 강희맹이 세조 9년 명나라에 다녀와 중국 남경에 있는 전당지에서 연꽃 씨를 채취해, 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관곡에 있는 연못에 씨를 심어 재배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안산군의 별호를 1466년 세조 12년부터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관곡지는 강희맹의 사위인 권만형의 집 가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 소유가 되어 관리 되어오고 있으며, 현재 시흥관내의 연성초등학교, 연성중학교 등 교명과 연성동의 동명 및 시흥시의 문화제 명칭인 《연성문화제》라는 이름은 이 못에서 유례되었다.
관곡지의 연꽃은 다른 연꽃과는 달리 꽃은 색은 희고, 꽃잎은 뾰족한 담홍색을 지니고 있는게 특징이다.
※ 출처 : 위키백과
█ 청계사(淸溪寺)
시대 : 고대/남북국
문화재 : 지정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호
건립시기 : 신라시대
성격 :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산11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남쪽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 문화재자료.
대한불교조계종 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대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1284년(충렬왕 10) 시중 조인규(趙仁規)가 막대한 사재를 투입하여 중창하고 그의 원찰로 삼은 뒤부터이다.
그때부터 이 절에는 100명이 넘는 수도승이 상주하였다.
자손들이 여기에 그의 사당을 짓고, 전장과 노비를 두어 대대로 제사를 지냈다.
1407년(태종 7) 조정에서는 이 절을 자복사(資福寺)로 지정하고 천태종에 소속시켰으며, 1431년(세종 13) 조인규 영당을 중건하였고, 연산군이 도성 내의 사찰에 대한 폐쇄령을 내렸을 때 이 절은 봉은사(奉恩寺)를 대신하여 선종본찰(禪宗本刹)의 기능을 행하는 정법호지도량(正法護持道場)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이 절의 소속 전장과 노비를 모두 관에 소속시켰고, 1689년(숙종 15) 3월 화재로 모든 건물이 불탔을 때 성희(性熙)가 중건하였다.
1761년(영조 37) 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이 절에 원당을 설치한 뒤 밤나무 3,000주를 심고 원감(園監)을 두었으며, 1798년(정조 22) 조무의(趙武毅)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1876년(고종 13) 3월 26일 실화로 수십 칸의 건물이 소실되자 4년 후인 1879년에 음곡(陰谷)이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종교 탄압정책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이어 오다가 1955년 비구니 아연(娥演)이 주지로 취임한 뒤 중창을 시작하였고, 월덕(月德)·탄성(呑星)·월탄(月誕) 등이 그 뜻을 이어 당우를 회복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산신각·종각·수각(水閣)·봉향각(奉香閣)·대방(大房)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양식으로 처마는 이중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사인비구(思印比丘)가 제작한 동종이 보물 제11-7호로 지정되었으며, 청계사 소장 목판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신중도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입구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8호 청계사사적기비(淸溪寺事蹟記碑)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76호 청계사조정숙공사당기비(淸溪寺趙貞肅公祠堂記碑)가 있고, 사찰 주위의 계곡이 좋다.
☛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경기도 의왕시, 『京畿道文化財資料 : 實測調査報告書 淸溪寺 極樂寶殿』(의왕시, 2012)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國際(世界) 佛敎旗 와 WFB
國際(世界)佛敎旗(국제 불교기)는 불교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국제 불교기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파랑, 노랑, 빨강, 흰색, 주황색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오른쪽 열에는 5개색을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줄무늬로 되어 있다.
색은 각각 의미가 담겨있다.
불교기는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세계 불교도 우의회(世界 佛敎徒 友誼會)'에서 만국공동의 불교기로 정식 승인되었으며, 현재 세계 불교국가의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원래 불교기는 1882년 영국인 불교도이면서 미국 국적을 가진 올코트(Colonel Henry Stell Olcott)대위가 창안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시에 성체에서 육종의 색광이 방출되는 것을 근거하여 일면육색기(一面六色旗) 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불교기의 5색의 가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타내고 5색(청.황.적.백.주)의 세로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 불멸하다는 뜻을 상징 한다.
불교기에 사용한 색깔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청색 :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며 살아가는 힘을 의미하므로 정근과 지혜를 뜻한다.
- 황색 : 찬란한 부처님 몸의 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며 금강의 지혜를 뜻한다.
- 적색 : 대자대비한 법을 닦아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자비와 정진을 뜻한다.
- 백색 :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악업과 번뇌를 없앤 청정의 지혜를 의미한다.
- 주황 :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꾀임에 잘 견디어 내는 인욕의 지혜를 뜻한다.
■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세계불교도우의회(WFB: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는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불교 단체이다.
1950년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27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설되었다.
본부는 태국에 있으며, 역대 회장은 모두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배출되는 등 상좌부불교(테라와다불교)가 가장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지만, 모든 종파가 WFB에서 활동중이다.
미국,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 등 35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
대한민국에는 1963년에 지부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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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도우의회의 역대 회장
현재 회장은 태국의 en:Phan Wannamethee이다.
1950년 - 1958년 : Dr. G.P. Malalasekera, 스리랑카
1958년 - 1961년 : Hon. U. Chan Htoon, 미얀마
1963년 - 1984년 : H.S.H. Princess Poon Pismai Diskul, 태국
요약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왕자 효명과 보천이 창건한 암자. 월정사.
서대사(西臺寺) 또는 수정암(水精庵)이라고도 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산내 암자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주처(住處)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에 왕자 효명(孝明)과 보천(寶川)이 창건하였고, 그 뒤 이곳에 미타방(彌陀房)를 두어 백색의 원상무량수불(圓像無量壽佛)을 중심에 두고 1만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그려 봉안하였으며, 낮에는 『법화경』을 염하게 하고, 밤에는 미타예참(彌陀禮懺)을 염하게 하였다.
1392년(태조 1) 가을에 원인을 모르는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자 조계종의 시승(詩僧)인 나암 유공(懶庵游公)과 목암 영공(牧庵永公) 등이 시주를 받아서 1393년 봄에 한강의 시원지라고 하는 우통수(于筒水) 옆에 절터를 잡아 중건에 착수하였다.
공사가 시작된 며칠 뒤 그 자리의 흙을 파자 창건 당시의 주춧돌이 발견되어 사람들은 서로 경하하면서 “하늘이 화재를 내어 옛터를 계시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해 가을 법당과 욕실을 낙성하고 미타팔대보살(彌陀八大菩薩)을 그려 법당에 봉안하였다.
이곳에는 옛 전통대로 아미타불상을 안치하였으나 번창하였던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근대에 들어서 수정암이라 하였다가 1990년대 초에 염불암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