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어떤 현상이나 명제가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먼저 가설(hypothesis)이 세워지고 그 가설(hypothesis)을 입증할 만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체계와 실증이 이루어지고 검증되면 이론(theory)이 만들어진다. 이 이론(theory)이, 대다수 경우에 적용이 되어 규칙성을 띄게 되면 그것은 하나의 법칙(law)으로 성립된다. 바로 이 법칙이 형성되어야만 비로소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형성의 기본원리를 굳이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진돗개를 평가하는 풍토는 가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보기를 들어 보자. 아래턱 수염이 뒤쪽으로 꼬부라져야 사납다고들 흔히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경험론에 불과하다. 수염 꼬부라진 것과 성격이 함께 유전된다는 연구보고가 이루어진 적이 지금까지 세계 어디에도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키우던 개가 아래턱 수염이 뒤쪽으로 꼬부라져 있었는데 매우 사나웠다면, 이것은 개인적인 경험일 뿐, 전체를 설명할 정도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볼 수도 있다. 앞서에서처럼 성격이 아주 사나운 수염이 뒤쪽으로 꼬부라진 개가 번식하여 새끼를 낳았다. 그러면 그 새끼들은 성격은 어떨까. 앞서의 속설대로라면 수염이 뒤로 꼬부라진 개는 사납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사납지 않을 것이다. 재차 반복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성격과 외모의 특징이 각각 유전될 따름이다. 성격이 사나운 것은 사나운 대로, 수염의 모양은 모양대로 각각 개별적으로 유전이 되었을 뿐이라는 얘기이다. 번식자가 앞서 수염이 꼬부라진 사나운 개를 다시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후대나 동배의 개들로부터 똑같은 경험을 하기는 어렵다는 부연 설명이다. 그럼에도 번식자들은 마치 새로운 비밀을 알아낸 것처럼 착각을 하고 단정지어 이야기를 하고, 진돗개를 많이 알고 있다는 이들조차 여기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것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객이 전도된 허구일 뿐이다.
진돗개는 개다. 따라서 바라보는 시각도 일반적으로 개가 가지고 있는 범주(category)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바꿔 말해 개가 가져야 할 특성, 예컨대 사지가 발라야 한다든지 균형이 있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인데 이는 정상적인 개라면 우선 갖추고 있어야 할 일반적 법칙이기도 하다. 물론 불독과 같이 특정한 사역을 목적으로 앞다리를 휘어놓은 것도 있지만 치와와에서부터 세인트 버나드까지 적용되는 법칙인 것이다. 외모와 성품, 그리고 유전 가능성을 연관지어 속단을 내리는 일이, 특히 진돗개의 경우에 흔한데, 이는 반론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먼저 개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을 보편타당한 것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실증이 따라야만 한다는 얘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진돗개의 맛을 찾는다고 하여 당당함은 사라지고 꾸부정한 개를 진돗개의 참 표본인양 인식되는 현실이 그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진돗개의 맛이 난다는 개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기갑(機甲)부위가 약하여 후지(後肢)에 충분한 힘을 주지 못하는 개들이 태반이다. 또 가슴부위가 타원형으로 형성되지 않기 일쑤인데, 이는 호흡을 할 때 폐 확장에 방해되고, 상완골과 전완골의 연결이 좋지 않아 앞다리가 약간 안짱의 다리 형태를 하기 쉽다. 뿐만 아니라 통통 튀는 걸음걸이를 좋은 보양으로 당연시하는 풍조인데, 이 또한 좌골이 짧고 경사가 급하며, 충분한 후지각을 갖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모습의 개가 바람직한 순종으로 인정되고, 당당한 개는 일단 잡종으로 의심받는 상황이 되는 것에 있다. 이는 어떠한 결과를 낳을까. 개에 대한 기초지식만 있는 일반 진돗개 애견가가 전람회에 참석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언젠가 한 전람회 행사 중 AKC 심사위원에게 진돗개들을 소개하며 소감을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진돗개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은 없었지만 다른 견종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진돗개에 관한 소감은 이러했다.. "진돗개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이 짤막한 한마디는 사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완성된 진돗개 모습, 즉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옛날 개를 논하면서 정작 앞으로의 진돗개의 모습을 구체화 시키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옛날 개라고 하지만 그 시점이 백년전도 이백년전도 아닌 불과 몇 수십년 전의 개를 보며 옛날 개 타령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옛날 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오히려 진돗개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진돗개는 우리 민족과 같이 생활하면서 우리의 정서에 많이 길들여져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보기를 들면 대문이 없는 섬 지방이 주서식지였던 진돗개는 그 지방 특성에 걸맞는 생활습성을 터득했다. 도베르만처럼 집앞을 오가는 사람을 마구 물지도 않고, 주인이 좋다고 앞발을 들어 주인의 옷에 족적을 남기지도 않는다.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진돗개는 그해 여름 식탁에 주저없이 오르게 될 것이고, 하얀 옷을 즐겨 입는 우리네 전통에서 주인의 옷에 앞발을 들어 족적을 습관적으로 남긴다면, 역시 그해 여름에 무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너무 사납거나 설치는 개는 도태되고 진돗개의 일반적 품성인 은은하며 소박하고, 정을 밖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주인을 보면 좋아 어쩔 줄 모르지만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그러한 성품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진돗개의 성격적 특성이다.
이러한 내적 특성을 진돗개의 외모와 연관지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진돗개의 모습은 본디 개의 일반 범주 내에서, 그리고 북방견의 특성을 벗어나서 얘기 할 수는 없다. 소박하다는 표현만 해도 그러하다. 사람의 모습으로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사람 가운데는 마당쇠와 같은 모습도 있고 박찬호나 신성일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독 마당쇠같은 모습만을 한국적이라 하는 것은 억지이다. 편협한 사고가 빚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다양성도 각 개체마다의 기본 골격, 뿌리를 이해하고 출발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가 진돗개를 바로 알기 위해서도 다른 견종의 연구도 병행해야만 하는데, 개라는 종의 일반적 특성을 가장 잘, 가장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만약 진돗개를 잘 아는 사람이 리트리버나 도베르만 또는 셰퍼드, 푸들 등의 심사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결과는 타견종 전문심사위원과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그 흐름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철칙이다. 개에 대해 두루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개는 잘 모르는 사람이 유독 진돗개만은 잘 안다는 것은 한낱 착각일 뿐이다. 개라는 동물에 대해 섭렵한 뒤, 각 견종마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뽑은 진돗개는 독일 심사위원이나 미국 심사위원이 보아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진돗개가 세계적 개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심사결과가 보는 이의 공감을 도출해 낼 수 있어야만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우리가 뽑은 진돗개를 그들이 좋아하지 않다고 했을 경우 그들은 진돗개의 맛을 모른다고 우리 스스로가 무시해버리면 결과는 어떤가.
"진돗개이기 이전에 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당신들이 진돗개의 맛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지 극히 주관적 자기 관점인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따끔한 충고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편협한 세계에 빠져 고착화 되고 이로써 객관성을 잃고 있음으로써 대중적지지 기반을 상실하는 단적인 사례인 셈이다.
여기 사진 두 장을 소개하겠다.(사진생략)
전람회가 이루어지기 전인 1940년대의 일본기슈견들을 살펴보면 우리 진돗개가 보여주는 결함들을 비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기슈견과는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결함이 두드러지게 제거된 것이다. 비단 기슈견만이 아니라 세계의 토종개들은 과거에는 진돗개들이 갖는 결함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개들이 세계시장에 나올 경우에는 이 결함들을 제거하고 나오는 것이 보편적이다. 주로 인위적인 선택번식에 의해 그 결함들이 제거되는데 오늘의 기슈견과 1940년대의 기슈견이 차이가 나는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진돗개는 어떠한가. 결함 제거는커녕 결함을 인식조차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시장에 나온다면, 진돗개라는 개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마저도 인정받지 못하고 비웃음거리가 될 것은 뻔하다. 혹간에 이 말을 잡종화하자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는 이도 있을 것 같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필자는 진돗개들 중에서도 각 부위별로 우수한 형질의 개들이 있는데 이를 선택 계통번식하자는 이야기이다.
우리 진돗개의 가장 큰 문제는 결함을 결함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진돗개의 특징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눈에 익숙해진 모습만을 표준으로 단정하고, 개체적 결함을 결함으로 인정하지 않고 진돗개의 고유특성으로 생각하는 한 세계화는 묘연한 얘기다. 이제는 진돗개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슴을 열고 서로 일인자라고 주장하는 쇄국 정치와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 서로 힘을 모으자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