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이곳에 올려도 될지....
지난 주 월욜부터 금욜까지 주독일한국문화원에서 9월 4일부터 개최하는 행사관련으로
독일(베를린)을 다녀오게 되었고.... 시간내어 몇 곳을 방문한 이야기를 올리고자 합니다.
부족하지만 .... 좀더 자세한 사항은 ... 아래 주소 공지사항으로 오삼
등록자 : 이칸이(열아홉회) 제 홈피 www.iksart.com
5일간의 독일(베를린) 여행기
19회 동문 김익환입니다. 저는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가보고 싶었던 독일 (베를린)을 건국 60주년 기념으로 9월 4일부터 주독일한국문화원과 독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개최하는 한국음식축제 사업 관련 전시행사 사전답사 차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2006년 11월 프랑크푸르트와 퀠른은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그 때 역시 베를린을 들리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행사관련으로 방문을 하게 되었지만 뜻 깊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녀오신 동문 여러분께서도 계시지만 독일은 유럽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843년 게르만 민족이 동프랑크 왕국을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중세기에는 수 많은 나라로 나누어 있던 후진국가에 불과 했으나 지금은 정치, 경제적으로 유럽의 시대에 걸쳐 지어진 수많은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복지시설 등이 독일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면서 여러 가지 혼란도 겪었지만 지금은 국민소득 4만불이라는 잘 사는 나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독일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1.6배 이고 인구 는 8천 2백 50여만 명이고 수도는 베를린 인구는 350만여 명으로서 서울의 3분의 1 밖에 안 되는 질서 있고 맑고 정갈한 조용 한 수도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행사관련 업무를 마치고 잠시 잠을 내어 베를린과 인접주변을 둘러 볼 기회가 있어 몇 곳을 다녀왔지만 비가 왔기 때문에 상세한 관람은 다음기회로 미뤄야만 했습니다.
처음으로 간곳은 베를린 도시를 잠시 벗어나 아름다운 숲과 아우토반을 경유 도착한 곳은 포츠담 상수시 궁전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포츠담은 현재 독일의 16개주 중 하나인 브란텐부르크주의 수도로 인구 14만명의 소도시로 도시라기보다 시골의 전원도시에 와 있는 듯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역사에는 포츠담이 993년부터 기술되기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1000년기념 경축행사가 거대하게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또한, 상수시 궁전은 1745년부터 47년까지 프리드리히 국왕 시 건축되었다고 하며 상수
시는 불어로 걱정이 없다는 뜻으로 프리드리히 대왕이 학문을 탐구하고 사색을 위해 건축
한 여름궁전 이라고 합니다. 1954년부터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동아시아 도자기를 수집
하고 진열해 왔고 1755-57년대는 미술관을건축 하였다고 합니다.(상수시궁전 사진 1)
궁내에서 볼거리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가장 선호하던 궁전과 프리드리히 대왕에 의한 설계 로 세워진
포도밭을 연상케 하는 정원이 특징이 고 궁과 온실, 사원 그리고 금빛의 중국식 정자, 프리드리히 대왕
무덤 등이 있다. 또한, 이궁전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가정교사가 프랑스 인이라 프랑스 문화를 좋아 했고
해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하여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전 앞 풍차이다. 이 풍차는 궁전 건립시 풍차방앗간 주인이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궁전이
막아서서 풍량이 줄었다는 이유로 보상을 요구 했던 일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상수시 궁전 내 풍차 사진2)
세계유네스코는 이 궁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역사적 의미가 더하다고 한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샬로덴부르크 궁전 이다.
이 궁전은 1665-99년까지 프리드리히 1 대왕이 왕비 “소피 살로테”에게 선물할 여름 궁전으로 건축하였다고 하며, 이후 현재의 규모로 2차 확장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1951년 동독이 베를린 돔 맞은편에 있던 구프로이센의 궁전이었던 시궁전을 폭파 하자 서베를린에서 복원하였다고 한다. (살로텐부르크 궁전 사진3)
건축 구조는 유럽 방식의 바로크 양식이고 베르사이유를 모범으로 삼아 양측으로 확장하였고 건물내부는
바로크에서 비더마이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을 혼합하였다고 하며, 총 길이는 505m로 거대하고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이곳 역시 17-18세기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는 중앙건물의 도자기 전시실이 유명하다.
다음은 그 유명한 베를린 장벽..... 우라 나라 현 상황처럼 당시 동서독으로 나뉘었던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 곳은 베를린 대 성당과 브란덴부르크의 문 등 역사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하던 중에 성당 건축물과 비슷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 있기에 차안에 함께 있던 한국인에게 물어 보았으나 우리 나라로 보면 구청 정도의 자치단체라고 하였다. 나는 역시 서구적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름 모를 구청 건물 사진 4)
잠시 후 브란덴부르크의 문이 눈 앞에 다가 왔다. 이 문은 아시는바 와 같이 독일의 분단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문입니다. 높이가 654m, 전면 폭이 65.7m, 측면 폭이 11m로 웅장하다. 건축 시기는 1788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지시에 의해 착공되었고 1791년에 준공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1806 년 베를린을 함락시킨 나폴레옹 군대의 군사퍼레이드와 1933년에는 히틀러의 집권을 축하하는 나치스 돌격대의 횃불행진 거행, 1990년에는 통일기념 축제와 최근 2000년에는 성문을 중심으로 밀레니엄 파티가 개최되는 등 시대적으로 다양한 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 사진5)
이 작품은 제가 묵었던 숙소에서 멀지 않은 모 건물 앞에 세워진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작품으로 승화시켜 설치한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의 원래 목적은 동독주민들의 대
탈출을 차단하기 위하여 1961년 서베를린을 둘러싼 경계선 도로차단 시설과 철조망 울타리
로 사용되었으나 1989년 동서독 통일을 앞두고 장벽을 철거하게 되었고 지금은 전시용으로
각 도처에 기념으로 설치되어 있다. 베를린 장벽 설치 후 탈출시도 중 7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여명이 총격으로 부상을 입었고 3,000여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분단의 아픔을
이겨내고 철조망이 없어지는 통일의 그날을 하루 속히 맞이하고 싶은 게 모든 국민의 꿈과 희망일 것이다.
(베를린장벽 작품 사진 5)
이제 주어진 시간도 얼마 남지 않고 날씨도 고르지 않아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베를린 대성당을 향해 떠났다. 베를린 대성당은 1747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러나 제2차 대전 당시 엄청난 폭격으로 인해 검게 그을린 듯 한 벽면과 푸른빛의 돔 지붕의 아름답고 화려함은 거의 손실되었다고 하지만 퀼른 역사 주변에 있는 퀼른 대성당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 웅장함은 아직도 건재함을 뽐내고 있었다.
베를린 대성당은 워래 호엔 총레 가문의 묘지 용도로 성당이기 때문에 지금도 안 에 들어가면 눈부시게 화려 한 호엔촐레 가문의 사람 들의 관들이 있다. 지금은 넓은 잔디정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시민들과 관광객들 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클래식 음악 등 공연장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 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베를린 대성당 사진 6)
끝으로 이글은 제가 아는 만큼 상식선에서 작성한 것이므로 독일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개인적으로 더 소양을 넓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점 이해하시고 봐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유익한글 잘보았고 멋진사진 잘보았네~~~사진보다는 실물이 더 잘생겼네 ㅎㅎㅎ 건강하세~~^&^
햐~~~대단 합니다
사진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아마추어 수준은 넘은것 같네요 ~~ 좋은곳 다녀 오셨네요 ~~ 저도 유럽 한번 가보고 싶은데... 워낙 멀어서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 그리고 ... 행님여 ~ 자주자주 들려주세여 ~~ 네 ? ~~
좋은 여행하셨습니다. 자주 들러주시고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덕분에 돈 안들이고 베를린구경 잘했습니다 !!!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