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라 할지라도
조 윤옥
오늘 토종닭을 해 먹자는 약속이 있었다. 그동안 정신없이 바쁜 날이 겹쳐 문화 행사가 끝나고 나니 쉬고 싶기도 하였다. 그래도 약속을 한 것이니 떠나자. 본인 차로 데려다 준다는 사람도 있으니 미룰 수가 없다. 더욱 쉼터 가족이 무더운 한낮에 잠시 쉬게 해 드리는 것이 내가 힐 일 같았다.
누가 또 갖다 날 옥수수를 갖다 줘 쪄서 가방에 넣고, 온 다는 사람이 기다려도
안 온다. 전화를 했더니 시의 문화강좌에 공부하고 있었다.
본인의 스케줄에 맞춰 연락조차 없이 뒤집는 젊은이들의 행동이 서운다고 말도 못했으나 마음이 자꾸 쓰인다. 약속을 식은 죽 먹듯이 쉽게 하고 쉽게 잊는다. 시간관념도 마찬가지. 보통 30분의 늦는 것은 기본이다. 끝까지 안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건망증의 중년은 여기서 제외한다. 이 증세는 본인이 더 황당하다. 그러나 알면서 자기 스케줄에 맞춰 변동해버리는 행동. 연락조차 없었던 것을 그대로 두자니 속이 끓는다.
우선순위에 밀릴 만큼 내가 평상시 허술했던가 하는 반성도 든다. 아니 좋게 생각하여 나의 며칠 너무 바쁜 일정을 아는지라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배려차원. 아니면 여행을 간단하게 확정한 것이 무리였을까. 이 생각 저 생각이 밀려온다. 약속을 하기 전에는 가와부를 본인 위주로 까칠하게 결정해도 상관없다. 무리하게 눈치보며 약속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약속을 했으면 작은 것 일지라도 지켜야 하며, 혹 불가피하게 변동해야하고 못 지킬 수가 있다. 그때는 꼭 연락해야하지 않을까. 둘이 한 약속이라도......
모두 약속이 잘 지켜져 왔다면 비가 와 작업을 못해 밀린 일이 뒤쳐질 판이다. 평상시 일도 못하고, 닭도 잡아야 하고 섬기느라 일에 차질이 생긴다. 형편을 아시고 이롭게 하기위해 약속을 헝크셨다. 이것이 종교의 힘이다. 그 상황을 반전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 그리고 기뻐하는 것. 만사가 이로워졌다 믿는 것이 은혜다.
그러나 작은 약속이라 하여도 잘 지켜졌으면 한다.
재활용 수거
조 윤옥
삼계탕은 내일 먹기로 하고, 가구단지로 보물을 찾으러 떠났다. 쉼터 사람들은 재활용을 보물이라고 한다. 사모님이 트럭을 운전하고 나는 조수석 선발로 나갔다. 그 목사님은 재롱이가 새끼를 낳아 나무그늘에 새집을 지어주고 따라 나오기로 하였다.
봉담 가구단지를 다니며 분리수거를 한다. 스트로-폴과 주변 쓰레기도 비닐 봉투에 담는다. 돈대는 것만 가지고 가는 것은 비양심이라는 사람들이라 말끔히 대청소를 해 주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나는 아직 실력이 없어 돈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잘 모른다. 박사가 되면 지나가면서도 훤하게 보인다는 이들. 손놀림이 달인이다. 컴퓨터나 하면서 집을 보라했는데 나는 야외체질이라고 따라나섰다. 박스와 비닐 깡통 분류를 하여 트럭에 던진다. 높이 가로막이 설치되어 골인하는데 힘이 든다. 처음에는 기초적인 비축된 힘이 있어 잘 하는 듯 했는데 한 시간이 넘으면서 땀이 범벅. 눈에 눈물이 들어가 앞이 부옇게 보였다. 박스를 뜯어 공중으로 던져 트럭 안으로 골인. 체질인 듯싶어 신이 났는데 왼손잡이인데 전에 좋지 않던 오른쪽 어께가 통증이 온다. 허리는 체중에 눌려 아프기 시작. 한계가 보인다. 트럭이 한 대 나타나자 구세주가 오신다하는 나의 환호에 모두 웃었다. 가족이 합세한 후에는 아예 맨바닥에 앉아 작업하며 노숙자 체질이라며 능청을 떨었다. 대장은 나를 웃기느라 입도 분주하다. 종이 흰 것 120원. 누런 것 100원. 깡통300원 스텐 천원. 철문은 오늘 특별히 내려주신 보물이라고 재미있게 고물장수를 전수해 주고 있다. 바람이 불어 스트로-풀이 날아다닌다. 그래도 나는 좇아가지도 못하고 엉덩이가 바닥에 달라붙어 있어 빨리 일어나지 못했다. 병든 자는 일을 안 시키나 멀쩡한 사람은 놀고먹는 꼴을 못 보니 앉아서 스트로-폴만 잡고 있으란다. 일은 재미있게 해야 한다며 싱글벙글. 타고난 일벌레를 누군들 따를 수 있을까. 어느 사람들은 이 분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피한다. 천한 일을 왜 하느냐 말도 듣는다. 무슨 떼돈을 벌려고 등에도 말없이 묵묵히 일을 한다.
이 일을 통해 삶의 길을 잃은 사람이 함께 일하면서, 자립 의지를 키워 사회로 나가도록 길잡이를 해주는 일이다고 한다. 공동체에 오면 자기 능력 한도 내에서 작게 든 크게 든 일을 함께 한다. 나는 재활용 수거작업에 참여하지 말고, 공동체 프로그램 개발과 사무관계 일을 하라 하는데 몸을 쓸 수 있는 내가 더위에 모두 일터로 나가는데 앉아 있으라니......, 각자에게 할당을 준다고 지도자들이 나서지 않고 종 부리 듯 하는 것은 착취다. 사람에 맞게 적당히 하는 것은 물론 함께 해야 즐겁다. 서로 웃으며 건강한 육체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 믿는다.
아이고 힘들어 엄살도 심하게 부리고, 빈둥대다보니 4시간. 그래도 32도가 넘는 대낮에 지열이 올라오는 길에서 우와 더워.
안 하던 일을 조금 했다고 입안이 불거졌다.
이 분들의 수고가 귀하고 귀하다. 같이 위기투합해서 돕겠다 약속은 했는데 나는 이들을 닮아 갈 수 있을까?
함께 하는 것 만 으로 기쁘게 여기도록 열심히 닮아보자.
포토아일로 재동이
조 윤옥
재동이는 쉼터의 개 이름이다. 포도아일로 순종이다. 선물로 들어왔다. 민간치료 효과가 좋은 봉삼을 줬더니 롯또를 자꾸 비싼 것이라 강조하는데 신경이 쓰이고, 공짜로 줬다는 소리가 싫어 삼십 만원을 개 주인에게 드렸다는 사연의 주인공이다. 왜 들 선물하고 가격을 들썩이는지......
그 재동이가 새끼 아홉 마리를 낳았다. 비오는 날 출산을 했는데 주인이 해산 날짜를 몰라 산실이 없이 새끼를 낳았다. 재동이가 스스로 땅을 파고는 몸을 풀었다.
일에 파 묻혀 귀족이 해산을 해도 쉼터는 똥개와 같은 개에 불과하다. 그래서 재동이도 집에서 크는 잡종과 인연을 맺었다. 금방 똥개 취급. 사람을 보살피느라 동물들까지 귀족 대우는 만만의 말씀이다. 그러나 식사는 이마트에서 처지는 최고의 음식을 제공한다. 새끼는 첫배다. 그래서인지 키울지 몰라 네 마리는 깔아 죽이고, 한 마리는 건강이 나빠 재동이가 밖으로 밀어내고 젖을 주지 않아 죽였다. 어미가 자식을 유기하였다. 짐승도 이렇게 야멸찬 어미가 있다. 롯또는 귀족들이 좋아하는 품종이다. 새끼보다 자기를 우선한다. 이놈이 자기가 키울 자식을 선택 중이다. 자기와 전혀 다른 누렁이 하나 키울 확실한 의사가 있다. 지금도 셋은 자꾸 밖으로 내 놓는다. 주인이 야단하니 억지로 젖을 잠깐 주고는 땅 파 놓은 시원한 곳으로 한마리만 데리고 나와 그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즐긴다. 자식이 낑낑대도, 젖을 줄 시간이 되어도, 새끼가 있는 울안으로 가지 않는다. 산 것은 키워보라 재롱이를 몬다. 재롱이의 선택에 달려있다. 개들의 세계도 새끼에 대한 애착에 철저한 규칙과 법칙이 있는 모양이다. 행복의 쉼터는 약삭빠른 롯또와 같지 않다. 모두 함께 가는 것이다. 약해도, 병들어도, 누워서 아무 일을 할 수 없어도, 서로 부딪기고, 서로 도우며, 강자와 약자를 구분 안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쉼터인데 이놈이 반기를 들고 있다. 더운 탓도 있다. 재동이가 목사님의 착한 마음을 닮아 남은 새끼를 잘 키웠으면 좋겠다.
2009. 8. 15
첫댓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시인님이 건강이 걱정 됩니다 오셔도 마중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래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