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22일 토요일 맑음 후 비.
아침식사로 소고기 양념장에 소고기를 볶아서 식탁에 놓고, 밥을 하고, 야채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대학생 2명을 초청해서 진하고 풍성하게 식사를 했다. 고추장에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든든해 보였다. 밥을 구경한지 정말 오래란다. 대학생들은 식사를 한 후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와 함께 지프를 타고 일터로 나갔다. 상지대와 경희대를 재학 중이다. 주인아저씨는 한국 학생들을 위해 한 번 쌀을 사다가 식사를 만들어 준적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의 친절함에 몇 번이고 감사를 하면서 작별을 했다. 짐을 챙겨 오면서 근처 밭에 있던 사탕수수 하나를 칼로 베어왔다. 먹어보니 아직 단물이 나오지 않았다. 때가 아닌가 보다.
메리보로(Maryborough)까지는 117km, 거기서 짐피(Gympie)까지는 또 89km, 션사인 코스트 북부에 위치한 Noosa Beach를 목적지로 삼고 차를 몰았다. 인구 20,000여명의 휴양도시로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 관광의 거점으로 삼기에 편리한 도시다. 누사해변에는 나무보다 높은 건물을 제한하고 있어서 고층 빌딩은 볼 수 없다. 또한 누사 바로 북쪽에는 세계 최대의 모래섬 프래이저 섬(Fraser Island)이 있다. ‘누사’는 원주민 언어로 ‘유령 혹은 나무 그늘’이라는 의미의 느구스르 Nguthura에서 유래한 지명이란다. 누사 해변에는 주차장이 많으나 워낙 사람과 차가 많아 주차할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빙빙 돌아 겨우 주차 시킨 후 인포메이션에 가서 우리 일정에 맞는 정보를 찾았다. 72종류에 이르는 다양한 색깔의 모래가 있는 해변인 테에와 비치(Teewah Beach)는 지프가 없으면 갈 수 없단다. 일단 수영하기로 했다. 날씨도 무지하게 덥고 주변에 샤워시설도 많고 또 기회가 언제 주어질지 몰라 기회가 될 때 하기로 했다. 화장실에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선텐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상의로 티셔츠를 입고 해변으로 걸어간다. 아담한 수영장으로 제주도 협제 수영장보다 깨끗함이나 아름다움은 떨어졌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피부가 벌겋게 변하도록 수영을 하고 놀았다. 파도가 밀려올 때 파도를 타며 즐겁게 놀았다. 김 선생은 판자로 된 도구를 빌려 몇 번이고 물 위 미끄러지기를 시도했다. 번번이 외국인의 웃음만 자아냈다. 한참을 놀다보니 얼굴도 따갑고 배가 고파서 모두 나와 길에 있는 샤워시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워를 했다. 아무리 샤워를 해도 왠지 소금 끼가 남아있어 찍찍했다. 해변은 모래사장이 수평선 끝으로 둥그렇게 길게 늘어져 있어서 한참을 돌아야 끝이 보였다. 차에서 옷을 갈아입고 점심과 휴식을 위해 누사 국립공원(Noosa National Park)으로 차를 몰았다.
10분 거리에 있는 공원이다. 432ha 규모에 울창한 열대림으로 뒤 덮인 해변을 낀 큰 산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잔디밭이 있는 평상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밥과 양상추, 양파가 전부다. 그래도 고추장 덕에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는 잔디밭과 그늘에는 커다란 도마뱀이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기어 다니고 있다. 참으로 이렇게 큰 도마뱀이 공원에 어슬렁거리는 것은 처음 본다. 어른 팔 보다 커 보이는 크기다. 잡는 사람도 쫓는 사람도 없다.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운이 좋아서 야생 코알라도 볼 수 있었다. 키 큰 유칼리나무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코알라가 두 마리나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멈춰서 쳐다보았다. 25m 정도 높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다는 2.7km의 코스탈 트랙으로 해변을 끼고 돌아보았다. 절벽에는 아름다운 바위들이 보인다. 배도 부르고, 너무 덥고 지쳐서 1km정도를 걷다가 돌아섰다. 다음 목적지는 The Big Pineapple이다. 누사 해변을 벗어나 남으로 내려오다가 만나는 도시 남부어(Nambour)에서 남쪽으로 6km 지점에 있다는 파인애플 농장이다. 국도 같은 길을 꼬불꼬불 가다가 소낙비를 만났다. 억세게 비가 내려 뜨거운 대지를 식혀주고 차에 붙었던 새똥과 벌레 시체들이 씻겨나가 한결 차가 깨끗해졌다. 차 앞의 메뚜기 시체들도 많이 떨어졌다.
10여 분간 강하게 내리더니 금방 그쳤다. 싱가폴에서 하루에 한 번씩 내리던 스콜과 비슷했다. 파인애플 농장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비가 내리고 나니 김이 모락모락 나고 안개가 뿌옇게 일어난다. 입구에는 대형 파인애플 모형이 설치되어 있어 찾기 쉬웠다. 옛날 가이드북에는 구경이 공짜였는데, 이제는 입장료를 받고 있다. 8달러씩을 내고 슈가 케인 미니열차에 올랐다. 승객은 우리가 전부였다. 노란색 기차가 장난감 같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기차 길 주변에는 각종 과일나무가 있다. 망고, 감, 아보카도, 멜론, 소시지 트리, 블루베리, 슈가케인(사탕수수) 등 다양하다.
거기에 캥거루 등 몇 가지 동물들이 자유롭게 길러지고 있었다. 넓은 파인애플 밭이 언덕에 가득했다. 이 기차가 과일을 수확해서 나르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동물원 앞에서 두 어 명의 승객이 더 탔다. 농장을 한 바퀴 도는데 약 30~40분이 소요되는 것 같다. 원 위치에 내려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각종 파인애플로 만들어진 요리와 과자들이 있고 파인애플과 관련된 기념품이 가득했다. 옷과 모자 등은 거의 중국산이었다. 호주 국기와 캥거루 모양을 샀는데 이것도 중국산이다. 특히 눈을 끈 것은 팔고 있는 변기였다. 조개를 집어넣은 예쁘고 투명한 변기가 인상적이다. 뭐니 뭐니 해도 코알라 인형이 제일 인기였다.
땅콩 종류를 샀다. 마카데미아 너트다. 마카데미아는 호주산 상록수 또는 그 열매를 말하는데, 너트(견과류)의 왕이라고 불린다. Macadamia nuts는 본 고장이 하와이가 아니고 이곳 호주란다. 1875년 브리즈번의 북쪽으로 약 50km 지점인 북 모튼만 부근의 바닷가 다우림 지역과 관목지대 숲속에서 저명한 식물학자인 존 마카담이 희귀한 녹색 열매를 발견하였다. 마카다미아라는 식물명은 호주의 식물학자이자 의사인 존 마카담 박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마카다미아가 식용 가능한 견과류란 사실을 밝혀냈다. 1887년 하와이는 호주에서 마카다미아를 수입했고 현재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1위 수출국이 되었다.
견과는 둥글고 윤이 나며 열매가 익는 동안 과피라고 부르는 두꺼운 껍질이 한쪽 면을 따라 갈라지게 된다. 칼슘, 인, 철, 비타민 B가 많이 들어 있으며 73%가 지방이다. 재배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값이 비싸다. 호두 까는 기구도 보았다. 사탕도 사고 군것질 거리를 산 후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로 달렸다. 브리즈번으로 달려가는 길에는 교통량이 많은 탓인지 중앙 부리대가 있고 차선도 4차선이 되었다. 브리즈번(Brisbane)에 도착 시간이 오후 5시경이 되어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숙소 구하기가 어려웠다. 몇 군데 캐빈을 가 봐도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밥을 못해 먹어도 잠을 잘 수 있는 모텔을 찾기로 했다.
모텔을 78달러에 구했다. 2층 숙소에 올라가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숙소를 구한다고 거의 2시간을 소비한 셈이다. 저녁식사는 햄에 남은 밥과 고추장으로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수영과 이 곳 저곳을 종일 다니니 무천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