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일기(1)
만남
김빨스타일
화장하기
사춘기
이름을 불러줄 때
생리
군것질
쓰레기
상벌점
워킹
시 쓰기
.
.
18. 졸업
여중일기 (1) - 만남 -
2월 말 발령을 받고 부임 인사를 하러갔을 때, 꽃샘바람이 푸른 바다에 하얀 파도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햇빛은 부드러워지고 있었으나 아직 겨울 끝자락 추위가 남아있는 학교는 스산한 풍경이었지요.
“애들이 참 씩씩합니다.”
교감선생님께서는 첫인사로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들이 씩씩하다? 아니, 남자애들도 아니고 여학교인데? 저는 지금까지 여학생들이 씩씩하다는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와, 정말이지 이건 씩씩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첫날 1교시 후 쉬는 시간, 우당탕 뛰어다니는 복도엔 여학생이 아니라 멧돼지떼가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괴성을 있는 대로 지르면서 달려가는 여자아이들.
“끼야호.” 그리고 우당탕.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선생님 한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건 약괍니다.”
수업을 들어갔지요. 인사를 받고 아이들을 바라본 나는 첫인상을 정리하기가 참 어렵더군요. 일단 얼굴빛은 하얀색깔이 아니라 대부분 검은빛이 도는 거무잡잡한 얼굴이었고, 또 대부분 힘깨나 쓸 것 같은 등치들. 허벅지가 내 허리만 한 아이들도 있고. 그리고 무슨 화장은 그리 했는지 빠알간 입술들. 청초하다거나 가련하게 느껴지는, 시집을 읽는 문학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간단한 소개 끝에 질문을 받기로 했습니다.
“묻고 싶은 것 있어요?”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듭니다.
“쌤, 결혼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무려 환갑을 바라보던 때입니다. 근데, 결혼하셨냐고?
“손주 볼 나이다.”
“에이.”
그리고는 질문이 없습니다. 볼짱 다 봤다는 뜻이지요. 쌤이고 뭐고, 결혼한 남자한데는 관심없다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그러고는 하나둘 책상 위에 엎드려 잡니다. 교무실로 돌아와서,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건 김빨스타일이다!”
여중일기 (2) - 김빨스타일
이곳은 김 양식의 역사가 깊습니다. 역사가 긴만큼 김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지요. 그리고 잘 사는 가정이 많습니다. 특히 요즘은 전복 양식까지 많이 하는 까닭에 섬 전체가 활기가 넘칩니다. 따라서 학생들도 부티가 나고 표정도 자신감에 넘칩니다.
문제는 애들이 김빨스타일이라는 점이지요. 김은 가을에 발을 치고 겨울철에 수확을 합니다. 이 발에 김 포자가 붙고, 겨울이 되면 물김을 따고, 민물에 불리고 말려서 우리가 막는 김을 생산합니다. 김빨스타일이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거무잡잡한 김 색깔과 같은 피부, 그만큼 강인한 삶에 단련된 건강한 사람들.
김을 거두는 겨울. 그 김을 거두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겨울이라 바다는 춥고 바람이 거셀 수밖에 없지요. 옛날에는 지금처럼 좋은 배가 없었고, 뗏마라고 부르는 노 젖는 배를 타고 김을 거둬들였답니다. 참 고생스러웠을 겁니다.
섬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가부장적 가정을 이루고 사는 곳입니다. 왕 노릇을 한다는 뜻입니다. 집안 대소사 모든 결정을 남자들이 하고, 여자는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들이 왕 행세하면서 바깥으로 돌면, 당연히 힘든 일은 여자들이 도맡아 하지요. 그러니, 집안 생계를 여자들이 책임지는 가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겨울 김은 누가 기르고 누가 수확하겠습니까. 여자들이 했겠지요. 거친 바람과 파도를 헤치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는 여자들. 피부는 해풍에 거칠어지고, 노를 젓는 팔뚝은 굵어졌겠지요.
노을이 진 바다, 배를 저어오며, 사공의 뱃노래도 흥얼흥얼 불러도 봤겠지요. 소주 한 잔에 시름도 잊어보았을 것입니다. 삶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힘차게 바다를 헤쳐 나갔던 완도여인들. 여기는 그 낭만의 여인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김빨을 치고, 겨울바다를 헤치고 김을 수확하고, 말리고 다듬어서 머리에 이고 나가 김을 팔고, 생계를 유지했던 강인한 여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그 건강하고 씩씩한 완도여인들의 후손입니다. 멀리는 바다를 지배하던 장보고의 후예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애들이 생겨난 겁니다.
그래서 조회시간 애국가가 나오면, 그 음약에 춤을 출 줄 아는 애들이었던 게지요. 벌써부터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춤과 노래로 풀 줄 아는 애들이 된 것입니다. 하루종일 충 추고 노래하고 뛰어다니고 꽥꽥 소리 지르며 학교생활을 합니다. 참 대단한 김빨스타일들이지요.
쾌활한 만큼, 성격도 화끈합니다. 아무리 선생님이 혼내더라도, 그 앞에서는 울상을 짓더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씩 웃습니다. 거기다가
“우리 아무개는 말썽은 부려도 인성은 참 좋아.”라는 말이라도 들을라치면
“그렇지요, 쌤?”
하면서 방긋 웃습니다. 뒤끝을 남기는 애들이 아니지요.
수업시간 공부 안하고 속 썩이면서 살더라도, 의리도 남자들만큼 좋습니다. 한번은 깜박 잊고 수업시간을 빼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필이면 교장선생님이 순시를 했더랍니다. 당연히 저는 교실에 없었지요. 교장선생님이 “선생님, 어디 가셨냐.”고 물었겠지요. 우리 애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우리 선생님, 교무실에 프린트물 가지러 가셨어요.” 하더랍니다.
아이고, 우리 귀여운 김빨스타일들. 그러나 이 김빨스타일들도 화장을 한답니다. 예뻐지고 싶어한다는 뜻이지요.
여중일기 (3) - 화장하기 -
교실에 들어서면, 드문드문 화장을 한 애들이 보입니다. 우리 애들 속에서도 참하게 느껴지는 그런 단아한 애들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애들이 화장을 하는 겁니다.
당연히 교칙은 이를 금합니다. 얼굴들이 하도 울긋불긋하니까, 좀 참해지라고, 그리고 학생은 성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금하는 겁니다. 그런데 애들이 말을 들어야지요. 당장 이뻐야 하는데, 그리고 학원에 가면 남학생들도 있는데, 어쩌라고요. 그래서 우리 애들은 화장을 합니다.
문제는 화장의 기초를 잘 배워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애들은 그냥 얼굴 하얗고 입술만 빨갛게 하면 이쁜 줄 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숨어서 저희들끼리 몰래몰래 하니까, 더욱 괴상망측하게 합니다. 하여튼 주둥이만 빨갛다고 보면 됩니다.
어느 섬마을 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땐데, 학급 장래 희망을 적은 란을 살펴보다가 누군가가 장래 희망을 ‘다방레지언니’라고 써 놨더군요. 깜짝 놀라서, 데려다가 물어보니 이렇게 답하더랍니다.
“얼마나 멋있는데요?”
하긴 그 아이가 섬마을에서 무엇을 봤겠습니까. 대부분 섬마을 여학생들 손은 거칩니다. 어릴 때부터 바닷일도 하고, 논밭일도 해야 하니, 당연히 손이며 피부가 거칠고 험하지요. 근데 마을에 다방 아가씨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옵니다. 얼마나 멋져보였겠어요? 그러니 누군가는 장래희망이 ‘다방레지언니’였겠지요.
바로 우리 애들 화장도 그 ‘다방레지언니’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김 색깔 나는 얼굴 감추느라 하얗게 칠하는 것이고, 당장 이뻐질 것 같지 않으니까 주둥이에 빨간 루즈만 칠하면 되는 줄 압니다. 대체로 ‘다방레지언니’ 흉내를 내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우리 여선생님들처럼 화장을 한 듯 안 한 듯, 옅고 품위 있게 하는 법을 좀 가르쳐야 할 것도 같습니다.
하여튼 이런 애들이 반에 대여섯 명은 되니까, 반 전체가 요상하게 보입니다.
“화장은 왜 하는 거냐?”
뻔한 걸 물어봅니다.
“이뻐 보일려구요.”
“뭣 땜에 이쁘게 보이고 싶은 건데?”
“그냥요.”
곧 죽어도 남학생들한테 이쁘게 보이고 싶다는 말은 안합니다.
“내 보기엔 화장 안하는 아무개가 더 이뻐 보이는데?”
그러면 멀쑥하게 쳐다봅니다. 다들 웬일이야? 하는 표정입니다. 한 마디 더해 주지요.
“그게 뭐여. 다방레지처럼 주둥이만 빨개면 다여? 어이고, 누가 그런 걸 화장이라고 하냐? 천박해 보인다야.”
그러면, 물휴지 꺼내서 싹싹 닦습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엎어지지요. 누구처럼 이뻐져야 하는데, 이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데, 제가 찬물을 끼얹어버린 거지요. 속으론 훌쩍거리고 있을 겁니다. 며칠은 저만 보면 눈 흘겨가며 삽니다.
아침 교문 앞에서 그 애를 만납니다. 또 한 마디 해줍니다.
“오, 오늘은 참해 보이는데? 완존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여.”
반응이 어떨 것 같습니까? 그 녀석,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얼굴이 확 펴집니다.
“나도 쌤이 좋아요.” 하면서 룰루랄라 왼발 오른발 Two 스텝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친해집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밉니다.
어때요? 우리 김빨스타일들, 다루기가 너무 쉽지 않습니까. 그러나 안심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 아이들은 약도 없다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여중일기 (4) - 사춘기 -
수업을 45분 다하는 선생님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한 30분 열심히 하고, 이야기를 들려준다든지 아니면 재미있는 다큐를 보여준다든지 해야 합니다. 그냥 수업만 하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까 잡니다.
한번은 그런 짜투리 시간이 되어서 자연을 다룬 다큐멘타리를 틀어주었지요. 두꺼비들이 산란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초봄, 웅덩이에 산란을 위해 모여든 두꺼비들. 암컷 한 마리에 수십 마리 수놈두꺼비들이 모여듭니다. 어떤 놈은 등에 올라타고 어떤 놈은 다리 붙들고 어떤 놈은 발로 차고, 왼다리 오른다리 그런 야단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참 징그러운 장면이지요.
그런데 우리 애들은 다릅니다. 대부분 입을 ‘헤에’ 벌리고 있는 모습이 징그럽다는 표정이 아니라, 아예 눈빛마저 몽롱해지는 겁니다. 누군가 혼잣말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메, 부러워라.”
뭣이여? 그 소리를 듣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어서 다른 말도 들립니다.
“나였으면...”
나였으면 얼마나 졿을까. 수십 마리 수놈, 수십 마리 두꺼비 같은 남학생들. 그리고 사랑의 고백을 듣는 나. 아이고 얼마나 좋을까.
얼씨구? 기가막힙니다. 그 꼴 보기 싫어서 컴퓨터를 확 꺼버립니다. 드디어 꿈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아따아, 선생니임!”
한창 좋은데, 왜 끄냐 그겁니다.
사춘기란 ‘봄을 생각하는 시기’, 춘정이 오르고 이성이 그리워질 때를 말합니다. 그 시기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항을 하는 것이지요. 반항한다는 것은 떠나고자 하는 몸짓입니다. 사랑하는 이성을 찾아 부모로부터 떠나간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불쾌해야 할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학교는 문제가 됩니다. 여학생들에게 있어서 남선생님은 선생님이자 이성이 됩니다. 특히 잘생긴 남선생님은 아이들의 로망이지요. 별놈의 일이 다 생깁니다. 시기부터 질투, 배신과 호소가 난무하고, 선취특권을 주장하는가 하면, 양보의 미덕이 생겨나는 곳도 여학교입니다.
“야, 너 다 가져라 가져. 엉엉”
한마디로 사회에 나가기 전, 미래의 인생을 미리 경험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을 단련하는 곳이 여학교인지도 모릅니다. 남선생님들은 그 연습 대상 혹은 실습물인 셈이지요.
TV화면, 웅덩이에 모여든 수놈 중에는 움직이는 거라면 무조건 달려드는 놈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무토막을 껴안고 있는 놈도 있지요. 암컷을 차지하지 못하고 나무토막이라도 껴안고 있는 수놈을 보면, 우리 애들이 보입니다. 누구든, 나무토막이든 수놈이든 우선 껴안고 보는 것이 사춘기 아닐까요?
우리 선생님들은 절대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연습대상이라는 점. 그러므로 혼자 샐쭉하게 빠쳐있거나, 숙제 안 해 왔으면서도 “아잉, 선생니임.”하면서 몸을 비비꼬아 보이는 것도 이성을 홀리기 위한 연습이니, 속지 마세요.
어? 이렇게 하면 되네? 그렇게 깨닫게 되면, 우선 아양부터 떤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붉은 루즈 두툼하게 바르는 것도, 누군가에게 효과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절대 잘못된 일을 칭찬하면 안 됩니다.
반면 여선생님들에게는 그런 짓 안합니다. 어떤 물정 모르는 녀석이 여선생님 앞에서 아양을 떤다?
“아잉, 선생니임.”
반응이 즉시 튀어나옵니다.
“너, 어디 아프냐?”
그 녀석,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현실을 인정합니다. 몸속에 같은 ‘여우 DNA’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사춘기는 건강한 사춘기여야 합니다. 모쪼록 중심 잡으시고, 속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가끔씩 우리 애들에게 이렇게 복창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학교에는”
“우리 학교에는”
“여우들이”
“여우들이”
“무럭무럭 자란다!”
“무럭무럭 자란다!”
나는 너희들이 여우라는 것을 알고 있음을, 그리고 절대 속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여중일기 (5) - 이름을 불러줄 때 -
사춘기를 겪는 여학생들에게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관심과 사랑의 출발은 이름을 불러줄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여자애들은 압니다. 그러기에 선생님들이, 그것도 좋아하는 선생님이 자기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뚜렷한 증거이지요.
“오메, 우리 쌤이 내 이름을 불러줬어야.”
당장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는 서로서로 이름표를 눈앞에 들이댑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부를 때는 ‘야 야!’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놈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서면 그놈이 그놈 같고. 그리고 같은 이름이 어디 한둘이라야지요. 웬놈의 ‘슬기’는 그렇게 많고, ‘하늘’이도 많고, ‘예슬이’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너는 내개로 와서 꽃이 되고, 하나의 의미가 된다는 것. 생각할수록 행복해지는 일일 겁니다.
송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얼굴과 이미지와 행동이 참 시골스러워서 ‘컨츄리 걸’이라고 하는 아이인데, 이름이 송이이지요. 제가 이렇게 말했지요.
“송이아, 쌤이 너의 색깔과 향기에 어울리는 이름 하나 지어줄까?”
“어머나, 정말요? 좋아요!”
“춘자, 어때?”
“네에?”
“춘자, 얼마나 독특하냐?”
“독특해요?”
“그러엄, 남 안 짓는 이름이 얼마나 창의적인데.”
“좋아요, 춘자.”
그 후로 저는 그 아이를 춘자라고 부릅니다.
오늘도 아침 교문 앞입니다. 송이가 옵니다.
“춘자야, 안녕!”
“네에, 선생님!”
싱글벙글 웃으며 신나게 갑니다. 춘자든 뭐든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여중일기 (6) - 생리 -
수업시간 엎어져 있는 애들이 한두 명은 꼭 있습니다. 절대 건들면 안 됩니다. 물정 모르고 건들었다가는 대번에 무식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한번은
“야, 넌 왜 엎어져 있냐.”
옆에 있는 애가 답해줍니다.
“애, 지금 생리 중이에요.”
그 정도 되면, 일단 거짓말이건 진짜건 따지지 말고 물러나야 합니다. 만약
“얼씨구, 야 넌 한 달에 몇 번씩이나 하냐?”
고 했다간, 당장 몰상식한 쌤으로 몰리게 됩니다.
“어머머, 쌤이 그런 말 하면 돼요?”
“어머, 무식해라.”
“여자 맘을 그렇게 무시해도 돼요?”
그러니까, 진짜건 아니건 간에 ‘생리’라는 말이 나오면, ‘무조건 존중하라’는 그 뜻입니다.
안 그러면
“남자가 개무식하게.”
눈이 흘겨지고, 비난이 쏟아집니다.
할 수 없이 엎어진 그대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닙니다. 수업시간 도중에 벌떡 일어나는 애들이 있습니다. 놀래서
“왜에?”
“화장실 갈 거예요.” 하고 나갑니다.
“안 돼, 못 가.”라고 할라치면, 또 개무식하고 몰상식한 쌤이 됩니다. 여자는 오줌을 못 참는다나 어쩐다나. 별 도리가 없습니다. 가라고 해야죠.
오늘도 한 놈이 벌떡 일어납니다. 짐작은 가지만 한 마디 합니다.
“뭔일이여?”
“똥 마려워요.”
“멋이여?”
“똥이요.”
기가막힙니다. 여자애가 저질스럽게 ‘똥’이라니요.
“안 돼, 거기서 싸.”
“어떻게요.”
“사물함 뒤에서 싸.”
그러면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집니다.
“어머, 무식해라.”
“쌤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한대?”
또 할 수 없이 빨리 싸고 오라고 보냅니다.
이러니 매일매일이 드라마틱합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조마조마합니다. 제발 오늘도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하늘에 빌어본 적도 많습니다.
여중일기 (7) - 군것질 -
사춘기를 겪는 우리 애들 중에는 하루종일 먹어대는 애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먹어댈 수 있는가. 신기할 때도 있습니다. 아침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쮸쮸바 정도는 기본으로 물고 들어옵니다.
“야, 너 그렇게 먹어대다가 뚱땡이 되면 어쩔래?”
그러면 가차없이 대답합니다.
“포기했어유.”
겨우 중학교 2학년이 자기 신체에 대해서 포기했다는 겁니다.
저는 평소 뚱땡이가 되면, 멋진 옷도 못 입을 거고, 남자 친구도 없을 거고, 비행기 타기도 힘들 거고, 하면서 겁을 많이 줍니다.
“비행기는 왜요?”
“비행기 좌석이 얼마나 좁은데, 네 등치로 타겄냐?”
그러면, 조금은 심각한 표정이 됩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물고 다닙니다.
“포기했어유.”
따라서 그런 애들은 빼고, 좀 몸매에 신경 쓰는 애들에게는
“야, 너 요즘 먹이활동이 활발하더라.”
하고 시비를 겁니다. 그러면 쑥스럽게 웃으면서
“아 예, 배가 고파서.”
“월동준비 하는 거여?”
“아니요.”
“배에 기름기가 꽉 차보이는데?”
“흡!”
숨을 들이 마십니다.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는 거지요.
“에이, 똥배는 그대론데?”
그러면, 들어마신 숨을 내쉬면서, 주먹을 쥐고 달려듭니다.
“쌤, 미워이.”
아무리 김빨스타일이라지만, 학교엔 키도 크고 몸매 좋은 애들도 있습니다. 그런 애들에겐 우회적으로 다가갑니다.
“야, 넌 키도 크고, 날씬하고,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하고. 뭐, 빠진 게 없는데.”
키도 크고 날씬하고 얼굴 이쁘고, 말이 이어질수록 애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해지지요. 행복해서 눈도 깜박깜박 하면서, 즐거워서 몸을 비비꼽니다. 그러나
“근데, 왜 똥배가 나오는 것일까.”
하면, 눈이 하얗게 뒤집어집니다. 높이 올라갔다가 뚝 떨어지는 기분.
“아이잉, 쌤 너무해요.”
“또 처먹을 거여?”
“아니요. 이젠 안 먹을래요.”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물고 다닙니다.
애들은 먹는 즐거움으로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환경부를 맡고 있는 까닭에 죽을 맛입니다. 문제는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애들이 먹고 난 쓰레기가 교정 곳곳 산지사방에 쌓이기 때문이지요.
여중일기 (8) - 쓰레기 -
저는 여학생은 깨끗할 것이라는 선입관에서 깬 지 오랩니다. 얼굴 곱고 참한 여학생. 마치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상상은 환상이 분명합니다. 분명 어떤 면은 깨끗할 수도 있습니다. 옷차림, 얼굴 등. 그러나 그것은 제 것에 한정된 이야기이지요. 공동의 공간과 물건은 더럽거나 말거나 관심 없습니다.
당연히 교실은 쓰레기가 넘치고 더럽습니다. 특히 쓰레기통 주변은 온갖 과자봉지가 쌓여 있고, 먹어대는 만큼 질과 양이 풍부합니다.
애들 셋이 걸어옵니다. 다들 먹으면서 옵니다. 드디어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셋이 둘레둘레 주위를 살핍니다. 마침 철쭉꽃밭입니다. 주저없이 구겨넣습니다. 그러니 철 지난 철쭉꽃밭에 때 아닌 꽃들이 피어납니다. 쓰레기꽃들이지요.
장면을 복도로 옮겨 보지요. 복도를 먹으면서 걸어옵니다. 복도 중간쯤에서 다 먹었습니다. 창문으로 다가갑니다. 역시 창틀 사이에 구겨넣습니다. 교실 창틀 사이에도 복도 창틀에도 어김없이 쓰레기가 쑤셔 박혀 있습니다. 덕분에 겨울에는 보온이 좀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들켰다? 그러면 씨익 웃으며 한다는 말이
“어머어, 나쁜 쓰레기. 요게 왜 여기 있을까?”
하고는 등 뒤에 숨기고 갑니다.
드디어 열 받은 교감교장님이 칼을 빼듭니다. 담임선생님들을 독려하고, 열심히 청소를 시킵니다. 청소, 청소, 청소, 자나깨나 청소….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쓰레기가 산입니다.
요즘은 하도 쥐잡듯이 하니까, 깨끗해진 거죠. 2년 전에는 교내 전체가 쓰레기장이었습니다. 결국은 먹는 것을 잡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시 이릅니다.
“야, 그만 처먹어라이.”
이쁜 옷도 못 입고, 남자친구도 없고, 비행기도 못 타고... 주문을 외우듯 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단 한 마디.
“포기했어유.”
오, 마이갓. 두통이 일어납니다.
여중일기 (9) - 상벌점-
결국 상벌점 카드를 꺼내 듭니다. 쓰레기 버리면 몇 점, 수업시간 떠들면 몇 점 이런 식인데, 요게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왜냐하면 벌점이 21점이 넘으면, 자치법정에 서야 하거든요. 자치법정이란 학생들 스스로가 처벌을 하는 제도입니다.
물론 법정이니까, 검사도 있고 판사도 있는가 하면 변호사도 있습니다. 그 애들이 벌을 청구하기도 하고 선고하기도 하지요. 벌이야 청소를 하거나 혹은 영어단어 몇 백 개 쓰기 정도라 큰 것은 아니지만, 자존심 상하게 법정에 서서 처벌을 받는다는 게 죽도록 싫은 일이거든요.
오냐, 쓰레기 버리는 놈들 혼 좀 나봐라. 벌점을 준다고 열심히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퍼지니까 저만 보면 도망갑니다. 설사 걸리더라도 아예 생떼를 씁니다.
“쌤, 제가 이거 안 버렸어요. 진짜예요. 정말이에요. 하늘에 맹세할 게요. 진짜 진짜아!”
생떼 이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붙잡지 못하는 이상, 설사 현장에서 잡는다 해도, 씩 웃으며 도망가면 그만. 그러면 좋다. 그래서 묘안을 낸 게 녹색봉사단을 동원한 겁니다. 무조건 쓰레기 버린 놈 잡아라. 그러면 너희는 상점을 준다.
오, 아주 효과적입니다. 자기들끼리는 절대 다투거나 싸우지 않습니다. 같은 여우들이라 수법도 아주 잘 압니다. 쓰레기 버리는 타임과 장소를 기막히게 잘 알지요. 하루 수십 명이 걸려듭니다.
그렇구나. 여우는 여우가 잡는 거구나. 호랑이는 호랑이가 잡는 거고,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가 연마를 하는 것. 그 다음부터는 학교가 깨끗해지기 시작합니다.
벌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아는 아이들은 그 다음부터는 상점을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재학쌤, 어디 청소 할 것 없어요? 저 청소 좀 시켜주세요.”
아주 공개적으로 사정을 합니다.
“없어.”
“왜 없어요. 왜요? 교문 앞이 저렇게 더러운데.”
교문통 오르막길에 벚꽃이 떨어져 있습니다. 화사한 그 벚꽃잎이 낙화되어 떨어져 내리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꽃비가 내리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게 더럽다는 겁니다. 그리곤 시키지 않아도 쓸어댑니다. 대충 쓸고는 곧 손바닥을 들이밉니다.
“쌤, 상점!”
“몇 점?”
“많이많이 주세요.”
“2점.”
“안 돼요. 벌점이 벌써 10점을 넘었단 말이에요. 3점 주세요, 이이잉.”
“안 돼. 남 준만큼 줘야지. 너만 많이 주면 나는 어쩌라고.”
그 애만 많이 주면, 저는 그 즉시 성토의 대상이 됩니다. 쌤이 누구한테 많이 주고 누구는 차별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눈이 흘겨지고 따지고, 자기도 그만큼 주라고 그런 야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상과 벌에 대한 기준은 엄격해야 합니다.
상점으로 재미를 본 저는 그 다음부터는 대상을 넓힙니다. 주둥이 빨갛게 칠하고 다니는 놈부터 수업시간 자고 있는 놈이며 수업 방해하는 놈, 대들고 따지는 놈까지 풍성하게 줍니다.
한번은 상벌점 월말 통계가 있는 날인데, 교내가 시끌벅적거리더라구요. 어떤 놈이 무려 67점 벌점을 기록한 겁니다. 박수치고 노래하고 축하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이 올라오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 쌤 때문이에요, 잉.”
실은 그 벌점 절반은 내가 준 거거든요.
“그러게, 청소 하라고 했잖아.”
“지금이라도 줄 거예요?”
“그러엄, 가서 빨리 청소해봐.”
그렇게 되어서, 급식실 앞 풀도 다 뽑혔습니다. 학교가 한결 깨끗해진 것도 깨끗해진 것이지만, 그 소동이 지나고 난 뒤, 이 녀석이 아주 얌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못된 버릇은 어느 정도 잡아갑니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 아이들이 숙녀다운 몸가짐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것들을 어떻게 하면, 곱고 우아한 아가씨들로 만들까
여중일기 (10) - 워킹 -
아무리 김빨스타일이라지만, 우리 아이들 속에도 곱고 단아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참 곱구나, 아주 참하구나 하는 아이들. 그리고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일단 몸가짐이 단정하고 우아합니다. 게다가 얼굴도 이쁘구요.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도 뭔가 허전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침 등굣길. 멀리서 공부 잘하고 곱고 참한 아이가 걸어옵니다. 아침이라 더욱 싱그럽습니다. 방긋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데, 어그적 어그적. 뭐냐구요? 걸음걸입니다. 이름하여 워킹. 그 워킹이 어그적어그적입니다.
두 발을 쭉 뻗어 모으고 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걷는 우아한 모습이 아니라, 흔들흔들 어그적어그적 걸어옵니다.
“야, 좀 이쁘게 걸으면 안 되냐?.”
“예?”
“좀 우아하게 걸어.”
“?”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 걸어갑니다. 어떻게 걸어야 한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입니다. 어떻게 걸어야 우아하고 이쁘다는 거지?
당연히 김빨스타일들은 씩씩하게 걸어옵니다. 어그적 정도가 어니라 주먹깨나 쓰는 포스입니다. 떡 벌어진 어깨, 우람한 다리로 참 건강하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쌤, 안녕?”
이럴 경우엔 우아하게 인사 받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른 애들, 특히 김빨스타일에다 어그적어그적이면, 이건 인생 다 산 워킹입니다. 하긴 공부는 하기 싫지요. 늦잠은 잤지요. 아침은 굶었지요. 그러니 전체적으로 기운 빠지고 나른한, 살기 귀찮은 포스라고 보면 됩니다.
이러니, 아침 등굣길은 대부분 어그적어그적, 학교 교문 앞 풍경이 모두다 어그적어그적입니다.
반면, 하굣길은 신납니다.
“끼야호”
아주 날아다닙니다. 조잘재잘 그런 참새들이 없고, 다시 멧돼지가 등장합니다. 우당탕탕 뛰어오면서,
“재학쌤 안녕!!!”
하고 갑니다.
한 30분 교문앞이 그렇게 시끄럽다가 하교가 끝나면, 이내 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아이들이 가고 난 텅 빈 운동장을 보며, 이 아이들 정서에 문학이 들어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시를 쓰는 아이들, 시적 서정에 잠겨보는 아이들. 단정하고 우아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로 만들기를 소원하여 봅니다.
여중일기 (10) - 시 쓰기 -
좋다, 우리 김빨스타일들에게 시를 가르치자. 이렇게 생각한 저는 지역문인협회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활동을 했지요. 시화도 만들어 전시하고요. 그러자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쌤, 수목원에 전시된 시화 중에 쌤 시가 있던데요. 그거 진짜예요?”
“진짜여.
“진짜 쌤이 쓴 거예요?”
“그려.”
“에이, 못 믿겠는데.”
시집도 한 권 줘 봅니다. 반응이 좋습니다.
“와, 진짜네.”
잠깐 우러러봅니다. 그러나 워킹은 변함없이 어그적어그적입니다.
지역행사 때마다 시화를 만들어 걸어보기도 하고, 신문에 글도 실어봅니다. 반응이 더욱 좋아집니다.
“오메, 우리 재학쌤이 진짜 시인인갑다.”
그냥 재학쌤이 아니라 우리 재학쌤입니다. 오케이, 뭐가 되어갑니다.
4월초 학교에 벚꽃이 만발합니다. 비가 내리고, 저는 창밖을 무심히 바라봅니다. 3학년 다홍이가 젖은 듯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저에게
“쌤, 시 쓰세요.” 합니다.
“그럴까?”
이렇게 남긴 한 마디가 숙제가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졸라댑니다.
“쌤, 언제 쓸 거예요?”
“언제든 쓰겠지, 뭐.”
“안돼요, 이번 주 금요일까지 쓰세요.”
금요일, 시를 받으러 옵니다. 시를 보더니, 희희낙락 어디론가 갑니다. 곧 방송이 울립니다.
봄 비
/정재학
사랑은 스며드는 것
소리와 몸짓을 버리고 오직 갈망하는 눈빛의 의미만 남을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한다.
지난 겨울, 하얀 냉정이 얼어있는 들판
혹은 가슴 속
가볍게 두들기는 빗소리가 들과 밤을 지나간 뒤
아침 젖어있는 눈빛에서
스며든 사랑을 알았다.
네가
어젯밤 빗소리와 함께 들어와 있음을
사랑은 그렇게 스며들고 젖어오는 것이다.
소리없이 내리고 간 봄비
소리와 몸짓이 사라진 너를 위하여
오늘 아침 목련이 피고
벚꽃, 가지마다 다홍(多紅)이 흔들리는 것
2016.4.4.
3학년 2반
다홍이 찾아올 때
시가 나가자, 수업하러 들어간 반마다 아이들이 감격에 젖어서 바라봅니다. 이젠 됐구나 싶습니다. 이제 시 쓰자고 하면 되겠네, 속으로 아주 즐거워집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30분이 지나자 하나둘 책상 위에 엎어집니다. 보다못해
“야, 일어나!” 하고 꽥 악을 지릅니다. 꼼짝도 않습니다.
“일어나, 일어나.“ 책상을 두들깁니다.
겨우겨우 눈 게슴츠레 뜨고 일어난 아이들,
“오메, 뭔 시인이 저런대?”
저희들끼리 돌아보면서,
“시인도 악 쓰냐?”
“순 가짜 아니여?”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여중일기 (11) - 시험 -
김빨스타일들도 긴장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시험입니다. 아무리 놀고 뛰고 즐겁게 살더라도, 시험 때가 되면, 긴장을 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시험 보는 분위기로 흐르면, 잠도 덜 잡니다.
어떤 녀석들은 교실에서, 어떤 녀석들은 복도에서 공부를 합니다. 물론 포기족들은 엎어져 자고 있지만요.
그러다가 시험 막바지에 이르면 급해집니다. 쉽게 내달라고 아우성이고, 어떤 애는 내 손가락 잡아다가 지 손가락에 도장도 찍고 복사도 합니다.
“쉽게 내주시와요.”
오냐오냐 하면서도, 속으로는 ‘오냐, 이 녀석들아. 어디 혼 좀 나봐라.’하면서, 시험을 좀 어렵게 냈습니다. 그러다가 수많은 경험들이 뒤통수를 잡아챕니다.
“이거 평균 50점도 안 나올 텐데.”
할 수 없이, 평소 형성평가를 본 내용을 중심으로 시험문제를 냈지요. 시험 결과가 나오고 희비가 엇갈리고 난리가 납니다. 왜 이것이 답이 아니냐고 따지고, 지가 공부한 데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탄하고, 그럴 줄 몰랐다고 눈 흘기고, 별 쑈가 다 벌어집니다.
한번은 어떤 애가 은근하게 다가와서
“쌤, 이거 답 고쳐주세용.”
“왜에?”
“그러면 100점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한 문제 틀렸는데, 100점을 맞아야 하니까, 정답을 고쳐주라는 뜻이지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못 찾고 있는데, 다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따아, 쌔앰”
이건 중간고사 때 이야깁니다. 기말고사는 전 과목을 보지요. 그때는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저는 대부분 경비가 해제되는 6시면 학교에 갑니다. 관사가 학교 내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일찍 가서 글을 쓰는 게 목적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해가 뜨기 전이라 사방이 컴컴합니다. 2층 교무실을 열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옆 3학년 2반 교실에서 이상한 인기척이 있었습니다. 확인하고자 문을 열었는데, 누군가가 교실 바닥에 누워있는 게 아니겠어요.
간이 철렁했습니다. 시체 같았거든요.
“너 누구냐?”
그러나 시체는 아니었습니다.
“저예요, 쌤.”
부스스 일어나 앉는 아이는 공부 안하고 말썽부리기로 1등가는 아이였습니다.
“뭔 일이여, 이 시간에?”
“쌤, 저 잠 한숨 못 잤어요.”
그러니까, 시험은 걱정되고, 공부는 안 되고, 잠을 자면 안 되겠고, 해서 밤을 보내다가 새벽 택시를 타고 학교에 왔다는 겁니다. 아이 집에 전화를 해봤더니, 사실이더군요.
커피 한 잔을 타주고
“자라 자.”
해놓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저게 시체였으면 어떡할 뻔했어요.
여중일기 (12) - 사탕주기 -
“아무개야. 너 내 호주머니 손 한번 넣어봐.“
“네?”
“여기 호주머니에다 손 한번 넣어보라고.”
“왜요?”
하면서, 멈칫거립니다. 쌤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전혀 뜻밖인 상황이겠지요. 멈칫거리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손을 넣습니다. 넣자마자
“?”
이게 뭐지? 하는 표정입니다.
“가지고 가고 싶은 만큼만 가져가.”
“와!”
무척 감격해 합니다. 호주머니 가득 사탕이 있고, 아무개는 가져갈 만큼 손에 사탕을 들고 행복해 합니다.
왜 사탕을 주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애들 유인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 때문이지요. 사탕은 우선 달콤합니다. 단 것을 먹으면 애들은 기분이 좋아집니다. 기분이 꿀꿀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사탕을 물고 있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표정을 보고, 뭔가 침울한 분위기의 애들이나 칭찬을 해주어야 할 때, 저는 사탕을 줍니다.
“아무개야, 사탕 줄까?”
당장 기분이 풀어집니다.
“네에, 쌤. 근데 어떤 사탕이에요?”
싼 것은 안 먹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교감교장님 책상 사탕은 인기가 없습니다.
“전설의 사탕이여.”
“예?”
“한번 입에 넣으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녹지 않는다는 사탕. 무려 십리를 가도 녹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지.”
“와. 주세요.”
그래서 제 사탕은 인기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완도장날이 되면, 그 전설의 왕사탕, 혹은 십리사탕을 사려고 갑니다. 만원어치면 10일은 갑니다.
또 다른 사용처도 있습니다. 우리 애들 대부분은 정리하는 습관이 부족합니다. 특히 사물함을 보면 기절할 정도지요.
“사물함 정리 좀 해라.”
“에이.“
싫다 이겁니다.
“사탕 넣어줄게.”
“오!”
당장 정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다음날이면 살펴보면서 넣어주지요. 몇몇 애들 것만 빼고, 지금 1학년 3반 사물함은 세상에서 가장 정리가 잘된 사물함일 겁니다.
사탕이 없는 사물함을 보는 애들의 상실감은 곧바로 습관의 교정으로 나타납니다.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애들은 없을 것이기에, 달콤한 사탕은 아주 효과적인 행동수정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사탕을 주는 것이고, 사탕을 주다보니 별 알도 많습니다. 애들이 저만 보면 우르르 달려듭니다. 애들 본질이 멧돼지떼들 같은데, 우르르 달려들면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를 뒤지는 것이지요. 어떤 때는 한꺼번에 한 호주머니에 대여섯 개 손이 들어올 때도 있습니다. 호주머니가 찢어질 것 같지요.
요즘은 안되겠다 싶어, 안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쌤, 사타앙.”
하면서, 손을 내밀면
“나중에 줄 거여.”
하고 도망칩니다. 이 녀석들이 보통내기들이어야지요. 우선은 살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13) 봉숭아
결국 정서부터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정서는 환경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면, 이곳은 참으로 좋은 환경이지요. 바다는 푸르고 넓습니다. 바다에 달이 뜨면, 얼마나 그 달이 커 보이는 지요. 바다안개가 퍼지면, 세상은 은색 파도위에 실려 있는 것 같지요. 또한 파도 없는 날, 갈매기 나르는 오후의 고즈녁한 바닷가는 얼마나 고요한지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 애들 어딘가에는 푸르고 넓고 아름다운 정서가 숨겨져 있으리라 믿는 것이지요.
봉숭아를 심었습니다. 하얀색 빨간색 분홍색 보라색 봉숭아 꽃씨를 골고루 심었습니다. 싹이 트고, 좋은 모종을 골라 화분 50개에 옮겨 심었습니다. 6월 장마가 지는 날부터 하나둘씩 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탐스럽게 봉숭아 꽃그루가 온통 붉고 하얗고 보라색으로 물들자, 아이들이 몰려 왔습니다.
“쌤, 나도 물들여 주세요.”
저마다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것입니다. 봉숭아 물 들인 손톱에 어여쁜 꽃물이 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이지요. 우리 아이들도 첫사랑에 대한 동경이 크답니다.
곧 학교에 봉숭아 물들이는 풍경이 보입니다. 백반을 사다가 봉숭아꽃과 잎사귀를 넣어서, 콩콩 찧습니다. 뭉근하게 반죽이 되면 손톱 위에 얹고 일회용밴드로 묶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가만 놔두어야 해.”
“왜요?”
“아따, 궁금해서 열어보면, 첫사랑이 도망갈지 몰라.”
제일 예쁘게 물든 애들은 사탕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보물처럼 새끼손가락을 안고 갑니다. 댜음 날 아침, 교문 앞.
“쌤, 이렇게 물들여졌어요.”
정말 예쁘게 물들여진 애들이 있습니다. 사탕도 주고 시도 적어줍니다. 그것을 본 다른 아이들이 너나없이 찾아와 새끼손가락을 눈앞에 내밉니다.
“저두요. 저두요.”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까지 아이들은 첫사랑에 대한 동경을 품고 봉숭아물을 들이고 갔습니다. 저도 우리 아이들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물들인 손톱을 간직했으면 합니다. 사랑을 아는 것은 아이들이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사랑을 알게 되면, 아마도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 그 바다 위에 뜨는 크고 밝은 달의 정서가 살아날지 모릅니다.
(14)독서
가을이 옵니다. 탱자나무에 탱자가 노랗게 익어가고, 유자나무에도 굵은 열매가 열립니다. 가을햇빛이 싱그렇게 부셔지는 바다와 갈매기, 바닷가 언덕 위 하얀 억새꽃이 어울려지면 그 풍경이 얼마나 그림 같은지요.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다시 먹어대기 시작합니다. 고구마를 보면 고구마를 먹고, 뗏밤 혹은 잣밤을 만나면 잣밤을 먹고, 이것저것 없으면 새우깡이라도 입에 달고 삽니다. 물론 먹는 것에 비례해서 몸무게는 늘어나겠지요. 천고마비의 전형적인 학교 모습입니다. 하늘은 높고, 애들은 살찌고.
독서의 계절입니다. 독후감 작성대회도 열리고, 백일장 대회도 많이 열리지요. 우리 애들도 많이 그리고 자주 나갑니다. 그러나 참가자 선물을 목표로 나가는 애들도 있지요. 남학생들 온다는 소식이라도 있으면, 아주 많이 나갑니다.
“쌤, 책 읽을 거예요.”
“정말?”
책 읽는다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근데, 무슨 책?”
“맹꽁이 서당요.”
“맹꽁이 서당?”
만화책입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어서,
“만화책도 좋지. 교양을 다룬 만화책은 접근하기도 쉽고, 이해도 쉽지.”
“그러지요, 쌤?”
아주 자랑스럽게 ‘맹꽁이 서당’을 가슴에 품고 갑니다. 물론 혼자 가는 것은 아니지요. 몇몇이 깔깔거리면서, 운동장 벤치로 가는 겁니다. 잠시 후, 2층 창문에서 벤치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책 본다는 녀석들은 없고, 벤치엔 과자봉지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습니다. 벌써 다 먹고 간 것이지요.
(15) 개슬이
학교에 동네 강아지들이 찾아옵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애들이 먹을 것도 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예뻐하니까, 따라온 것이지요. 큰 개는 애들이 무서워하지만, 작은 강아지는 너도나도 예뻐해서 심지어 교실까지 따라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우리 학교는 교실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는 학교이지요.
한번은 얼굴은 치와와인데, 몸집은 발바리인 강아지 하나가 학교에 들어왔습니다. 생긴 게 참 귀엽더군요. 애들이 이쁘다고 달려듭니다. 저 먹을 것도 강아지한테 나눠주고, 피 같은 용돈으로 햄도 사다주더군요. 강아지가 아예 눌러 붙어 살 모양으로 학교에서 곧장 살았습니다. 날마다 교문 앞에서 선도부 학생들이랑 같이 서서 애들을 맞이하고 있었지요.
“샘, 강아지 이름 지어주세요.”
선도부 예슬이가 하는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방울이’라고 짓자. 아냐, ‘뽀삐’라고 짓자. 소란이 일어나더군요. 정리를 해줬지요.
“개슬이라고 하자.”
“네에?”
“예슬이 동생 개슬이, 어때?”
선도부 예슬이가 치와와처럼 눈이 동그랗고 자그마한 얼굴이었지요. 그 강아지하고 이미지가 너무 닮았더랍니다. 설명을 해주자, 결국 그 강아지 이름은 개슬이로 낙착이 되었지요.
그 다음부터 개슬이는 일약 우리 학교 명물이 되었습니다. 쌤들도 친해지려고 수업 끝나면 곧바로 달려갑니다.
“개슬아, 좀 친해지자.”
그러나 애들 말고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막 짖어댑니다. 하는 짓이 귀여운 녀석이더군요. 아참마다 학교에 와서는 선도부 곁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개슬이. 그래서 할 수 없이 개집을 하나 장만해 줬지요. 목걸이도 좋은 걸로 바꿔주고요.
애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우리 애들이 자기 먹을 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참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지요. 개슬이는 학교의 모든 사랑이며 먹을 것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월요일 출근해 보니, 개슬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애들도 개슬이를 찾아다니느라 온 읍내를 뒤지고, 어떤 애들은 학교 뒷산으로 가서 찾아다녔습니다.
“개슬아, 개슬아!”
소식이 없었습니다.
“쌤, 개슬이 찾아줘요, 잉.”
징징거리며 졸라대다가, 나중에야 개슬이 주인이 와서 데려갔다는 말을 듣고 소동이 가라앉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거두는 일이라는 것이 많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애들도 알았을 겁니다.
(16) 축제연습
어느덧 이곳에도 눈송이들이 하나 둘 내리고, 헐벗은 나무들이 시린 겨울바람 앞에 서면, 학교엔 축제 연습이 시작됩니다. 우리 애들 전공이 시작된 것이지요. 평소에도 애국가 가락에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들인데, 얼마나 좋겠어요. 게다가 기말고사 시험도 끝났겠다. 이거 뭐 걱정할 것도 없어졌고. 아주 신이 납니다. 더구나 축제 연습한다고, 평소보다 용돈도 많이 타고, 집에 늦게 들어가도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열심히는 하는데, 좀 수준이 낮습니다. 한번은 학급 카페 한다고 어떤 반 애들이 장사를 하더군요. 메뉴가 식빵 등 먹거리였습니다. 어떻게 만드느냐 궁금해서 봤더니, 이거는 돼지도 안 먹겠더라구요. 식용유 엄청 두르고, 설탕 범벅 가득 넣고, 요상한 햄 집어넣고 만들어놨는데, 누가 그걸 먹겠어요.
어쩌나 보자 했는데, 파장 무렵 웬 학부모 한 분이 반으로 올라오시더군요. 그리고는 만 원짜리 몇 장을 내고 그 놈의 식빵을 가득 사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팔리지는 않고, 처치는 해야겠고 하니, 아빠를 부른 것이지요. 그 아빠가 무슨 죄로 돼지도 안 먹을 식빵을 사서 먹을까 싶으니, 갑자기 그 아빠가 불쌍해지는 겁니다.
담임선생님들이 축제 기획할 때 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수준을 높여야 창의도 나오는 법이고, 예술성도 높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하여튼 축제는 열심히 신나게 준비합니다. 어떤 반은 무슨 큰 비밀이라고, 창문에 신문지 덕지덕지 바르고 남모르게 준비합니다.
공부를 저렇게 한번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도록 열심히 합니다. 반 전체가 빠지는 아이 없이 힘을 모아, 대열을 맞추고 춤을 춥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별놈의 꼴 다 본다 싶지만, 당연히 응원은 해주어야지요.
“애들아, 너희는 참 좋겠다. 우리 때는 학예회라고, 그저 그런 게 좀 있었지. 지금처럼 음악이 있었냐. 신나는 춤이 있었냐? 열심히 해라. 파이팅!”
(17) 졸업
“쌤, 사진 찍어요.”
“저두요.”
“저두요.”
이 얼굴 저 얼굴이 마구 다가옵니다. 이 놈이 찍고 가면 저 놈이 오고. 하여튼 한 시간은 소란을 떱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진은 찍는데, 천방지축 신나하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웃음소리도 뭔가 과장이나 억지 같은 게 묻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오늘은 애들 마음이 조금은 착잡하게 가라앉는 날입니다. 하긴 그렇게 요란스럽게 사는 아이들이지만, 오늘은 얌전해질 수밖에 없지요. 졸업식입니다.
졸업사진 찍을 때만 해도 화장하느라 바쁘고 희희낙락하던 애들이 시무룩해서는 자꾸 발끝만 보고 있어요.
분위기 좀 바꾸려고,
“오메, 오늘은 왜 이렇게 이뻐 보이냐?”
라고 해도 웃지도 않습니다. 마치 누가 건들기만 하면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습니다. 큰 눈들이 잔뜩 눈물을 물고 있습니다. 어떤 녀석은 얼굴을 어깨에 기대면서
“재학쌤, 우리 잊으면 안 돼요.”
하도 징그러워서 빨리 잊고픈데, 잊지 말라는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우리보다 더 빨리 잊는 애들이 요것들일 겁니다. 여학생들이란 고등학교 올라가면, 누구보다 빨리 중학 시절을 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거든요. 그러니까 저희는 빨리 잊더라도 쌤은 저희들을 잊지 말라는 뜻이지요.
드디어 졸업식이 시작됩니다. 국민의례가 있고, 졸업축사, 졸업장 수여 및 각종 상장 수여, 송사 답사를 하면서부터 애들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드디어 졸업식 노래를 부릅니다. 누군가 작은 소리로 훌쩍입니다. 훌쩍이는 소리가 옆으로 옆으로 전염되어갑니다. 곧 전체가 웁니다. 창피하지도 않은가, 누군가는 엉엉 웁니다. 우리 선생님들 눈가에도 이슬이 맺힙니다. 잘 살기를,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각자의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교문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애들아, 잘 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울지 말고, 아무리 현실이 어둡더라도 넘어지지도 말고, 잘 살아야 해, 응?”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