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면서
자주 입는 거위털 패딩 자켓이 있는데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웃음이 납니다.
왜 웃을까 궁금하시죠?
보름 전, 남편이 등산용 패딩 자켓을 사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등산용품 매장들이 주로 시내 대로변에 있다보니
주차하기가 마땅치 않아 저는 차 안에 있고
남편만 매장 몇 곳을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한 번 돌아보고 나오는 시간이 길어야 10분 정도 걸리는데
어느 매장에 들어가더니
30분이 지나도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살 거면 얼른 사고 나오지 왜 이렇게 안 와'
투덜거리고 있을 때,
남편이 매장 밖으로 나오더니 저더러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피를 마시고 있던 주인과 남편이 저에게도 커피를 권했습니다.
제가 기다린 건 생각안하고 커피나 마시고 있나 싶어
뾰로통한 말투로 물었습니다.
"왜 들어오랬어?"
"저기 노랑색 좀 입어 봐"
자기 것을 봐 달라는 게 아니라 제 것을 사주려고 부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패딩 자켓이 필요해서 남편이 자기 것 살 때 같이 사주면 입고,
안 사주면 혼자 사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남편이 입어보라고 하자,
이왕 얻어 입을 거 마음에 드는 것을 입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보나마나 이 옷이 연말선물이 될텐데 좋은 걸로 입어야지'
매장을 둘러보니 마네킨에 입혀진 검은색에 빨간 색이 배색된
패딩 자켓이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
"노랑색 말고 이 옷을 한 번 입어볼 수 있을까요?"
노랑색을 워낙에 좋아해서 노랑색이면 될 줄 알았는데
노랑색은 입어보지도 않고 다른 옷을 가르키자 남편이
"아이고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그 건 노랑색의 두 배 값이야"
두 배든 세 배든 간에 평생 처음 얻어 입는 거위털 패딩 자켓인데
내 마음에 드는 걸로 얻어 입자는 생각에
직원이 마네킨의 옷을 벗겨주자 얼른 입었습니다.
입어보니 마치 맞춘 것처럼 제 몸에 꼭 맞았습니다.
주인도 직원도 모두 잘 어울린다며 한 마디 씩 했습니다.
거울을 보니 정말 배색도 잘 되어있고
부드럽고 옷에 무게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남편의 얼굴도 잘 어울리네 하는 표정인데
문제는 옷값이었습니다.
예상했던 금액의 배였으니 고민스러웠겠지요.
남편은 노랑색 옷도 입어보길 권했지만
전 그 옷이 마음에 들어
지퍼를 목까지 올린 뒤, 양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계산이 끝날 때까지 벗지를 않았습니다.
억지로 벗길 수 없는 일이라
결국엔 남편도 포기를 하고 자신도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계산을 하고 보니 예상했던 금액의 두 배였습니다.
짠돌이(?) 남편이 큰 인심을 썼습니다.
계산이 끝날 때까지 옷을 벗지 않는 제 모습을 보며
주인과 직원이 웃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제 행동이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좀 챙피하고 웃음이 났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다는 만족감에
매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그 날 집에 돌아 와 밤까지 그 옷을 계속 입고 있는 걸 보면서
남편이 어이가 없는지 웃으며 묻습니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 너무 가볍고 부드럽고 따뜻해"
비록 예상보다 지출이 많았지만
제가 그렇게 좋아하니 남편도 뿌듯한 모양입니다.
"그 옷 입고 산에도 가고 운동도 가. 춥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딸아이에게도 자랑을 했습니다.
"예쁘지? 아빠가 너랑 같이 입으라고 사 주신거야"
비슷한 옷을 살까봐 미리 선수를 쳤더니
"엄마 난 이런 스타일 아니야. 난 거위털 조끼 사입을거야"
"그래 그럼, 이상한 것 사 입지 말고 제대로 된 것 사 입어"
체격이 비슷해서 가끔 딸아이가
제 옷장을 뒤져 마음에 드는 옷을 가져다 입습니다.
어느 날, 생각해 둔 옷을 입으려고 찾아도 없는 옷은
딸아이가 가져다 입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다음 날, 딸 아이와 같이 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안방에 오더니 그 자켓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좀 철이 없긴 하지만
옷 가지고 딸과 실랑이 하는 건 모양새가 아닌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전에부터 입던 코트를 입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옷만큼 따뜻하지를 않았습니다.
언제는 자기 스타일 아니라며 안 입을 것 처럼 하더니....
그 후로 헬스 갈 때. 친구네 갈 때,
며칠 전에는 학교에까지 입고 갔습니다.
그 옷 얻어 입은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더니
"아 그렇게도 옷을 얻어 입을 수 있구나.
나중에 나도 한 번 써 먹어봐야지" 하며 웃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왜 그렇게 뻔뻔해졌는지 모르겠어.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는데 말이야....."
첫댓글 또 랑이 자랑이냐고 하시겠네^^
일상을 있는 그대로 올리는 것이 연우의 신변잡기니 이해하세요^^
오토맨 선배님 안녕하셨어요? 솔직히 축하 받을 일은 아니에요. 기분 좋게 얻어입은 게 아니라 좀 치사한 방법으로 얻어입은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