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 국방대학교 명예교수/한국시니어과협 평의원, 2022년 4월 18일
4.19 민주화 운동, 10월 부마사태,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과 6.10 민주화 운동 이어지는 와중에 남한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하에 독재 그리고 부정부패 및 정쟁경화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지식인들이 많았고 더구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외환송금 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을 때 북한 김일성의 학비지원은 가뭄에 단비였으며 1960년대까지 북한이 남한보다 GNP 높아서 같은 한국민족인 북한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북한을 비난하지 않았으나 간첩활동은 미미했다. 북한은 남한의 불평분자들 틈에 북한의 간첩을 침투시키고 종북세력을 확장시켰다. (김옥화 간첩 은폐 사건, 동백림(東伯林)사건. 이석기 사건 등)
일찍이 김일성은 4.19 때 어떤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을 통탄하고 남한에 간첩들을 남파하고 남한에 민주화운동가 및 불평분자들 틈에 활동하도록 하고 남한에 있는 소위 좌파 세력에 침투시켜서 종북 세력을 확대해고 외국유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하여 친북인으로 전환시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8년 121사태는 북한이 대남적화공작을 위한 유격전활동을 전개하기에 앞서 시도한 탐색행위로서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향토예비군 창설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자수한 김신조(金新朝)에 의해 청와대 내부구조 및 경비체계 등을 세부적으로 알고 있어서, 경호실 내부에 김옥화가 북한 간첩이라는 것이 밝혀져 경호실장 박종규가 김옥화 옹호에 나서고 중앙정보부 김형욱 부장이 김옥화 검거에 나서 충돌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유야무야(有耶無耶) 되었다. 이 때 간첩을 일망타진하는 1차시기를 잃었다, 그래서 유신(維新)에 반대하는 세력에 북한 간첩들이 침투하여 활동범위를 넓혀 나갔다.
1979년 1212사태 이후 10월 부마사태 그리고 1980년 5.18 광주사태로 전국이 혼란해 지자 전두한 장군이 장충단 체육관에서 간접 선거에 의해 7년 임기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민주운동가 및 불평분자들은 지하로 들어갔으나 그 세력은 지하에서 확대되었으며 북한 간첩들은 불평분자들을 포섭하여 종북세력으로 확대하는 호기로 삼았다.
국가안보에 관한 상식이 있는 자들에 의하면, 안국안보상 한미관계 단절은 절대로 있을 수없는 일이다. 미국과의 단절은 종북세력과 간첩만이 할 수 있는 구호이다. 좌파세력 틈에 스며든 간첩들은 구호를 만드는데 귀제들이다. 효선 미선 어린 중학생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을 확대하여 미국 물러가라고 국민들을 충동질했고, 반정부 그리고 반미 운동을 주창하는 종북 촛불세력들은 미국 소 광우병(엉터리로 조작했음)으로 미국을 한국에서 추방하려했다. 그리고 최근에 세월호 사건을 호도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게 했다. 좌파들은 정권을 잡았으나 그들 중에는 북한에 포섭된 종북세력 및 간첩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 보다 훨씬 잘 사는 남한 현실에서 북한을 좋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잘 사는 한국일지라도 불평분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한국의 속담에 ‘4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 라는 말이 있다. 대기업이 밉고, 부동산 과다 보유자는 더욱 밉다. 사촌이 출세하거나 경제 승세를 타고 부자가 되는 것도 밉다. 이러한 불평분자들은 북한 간첩들이 침투해 포섭하기 아주 좋은 상대다.
4.19 , 10월 부마사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6월 항쟁 중에서 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만 말이 많은가?
「잔인무도한 만행을 일삼았던 계엄군이 폭돕니까? 이 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우리 시민군이 폭돕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국에서는 계속 허위날조, 유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시민군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또한 협상이 올바른 방향대로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 광주 시민군, 1980년 5월 25일 <광주시민군 궐기문>
여기에 광주민주화 운동의 순수성이 들어나 있다. 민주운동을 하다 산화된 청년들 가족의 심정을 누가 알아 줄 수 있겠는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인정된 광주민주화 운동의 사후처리는 민주적이 아니었다,
2001년부터 김대중 정부는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이들을 유공자로 예우하였다.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약칭: 5.18유공자법 ) 중에 제8조(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 조항에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고 하여 5.18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대를 하지 못하도록 하여 민주주의 정신을 위반하고 있다.
이런 반 민주주의 적 조항은 결국 얼토당토 않는 5.18 유공자들을 양산하여 국민의 빈축을 사고 있다. 1998년 김대중 시절에 5.18민주화유공자 수는 3,840명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2017년 오늘까지 늘어난 유공자 숫자는 무려 1,956 명으로 현재는 총 5,796명으로 나타났다. 해마다 평균 100명을 늘려 온 셈이니, 생산공장으로 치면 대한민국 누구도 그 생산품에 시비를 걸지 못할 무결점의 제품을 꾸준히 생산해 온 셈이다. 생산공장은 광주광역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광주교육위원회 교육감이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전남대총장, 전남도지사, 광주검찰청검사장, 광주지방고용노동청장 등 지역 유지들이 위원회를 구성하여 유공자를 생산해 내고 있는 셈이다. 유공자가 아닌 유공자들이 배타적 특혜 독점 귀족 행세를 하고 있다.[출처] 좌파정권의 독재정치 부패실상을 폭로한다!|작성자 안보제일, (https://blog.naver.com/lsh3508/222556496613)
이른바 5.18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라는 단체를 광주시가 운영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국가가 일체 시비하지 못하도록 애초에 법으로 못을 박아 놓았다. 5.18 유공자에 대해서는 그 선정과정 숫자 등을 일체 광주시가 결정하고 국가는 그 결정에 따라 법에 정한 유공자 보상과 특혜를 말없이 집행해 주면 된다. 대한민국을 광주시가 통치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서경원의 카톨릭농민회가 1980년 5월15일 5.18 폭동을 선동하며 주도했고, 윤기권이 대한민국 민주화 발전을 위해 공을 세웠다고 보상금도 챙기고, 북한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평양시 교수강습 및 학생답사견학소 지도교원 노릇을 하고 있다. 윤상원은 공산주의 혁명분자이며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전사다. 윤한봉은 5.18 무장폭동의 실질적 지휘자였고, 그는 공산주의 혁명가요 남민전 전사였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이 참여했다는 심증은 충분이 있을 수 있고 북한 간첩이 침투하여 활동했다고 5.18 민주화운동이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이론(異論)에도 벌컥 하는 것은 5.18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이 비민주주의적이고 국가재산을 낭비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5.18이 4.19, 6월 항쟁의 반열에 오르려면 5.18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를 해체하고 반 민주적인 비난을 못하게 하는 조항을 삭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찬반토론을 자유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당시 민주화 운동과 북한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1997년 한국에 입국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밝힌, “남한 쪽 깊숙한 곳에 북한 쪽 사람이 있으며 남한에 5만여 명의 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증언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번에 정찰총국 고위직 출신 탈북민 김국성씨는 한국에 간첩을 15만 명을 양성하여 보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 BBC와의 대담에서 청와대 침투 간첩 건 외에도 “북한 요원들이 남한의 중요한 기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황장엽과 같은 증언을 한 것이다. 그는 2014년 장성택 처형으로 신변 위협을 느껴 한국에 망명한 사람이나 한국서 박대 받고 BBC 방송에서 북한실정을 폭로한 사람이다.
현재 한국의 많은 좌파 단체들이 반정부 집회할 때 간첩과 종북세력들은 반정부 구호 이외에 반드시 미군철수를 외친다. 미군철수를 외치는 자들은 종북세력 내지 북한이 남파한 간첩임이 들림이 없다. 5.18도 미국의 리건 대통령에 의해 김대중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5.18민주운동을 빌미로 반미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종부세력 내지 북한이 남파한 간첩임이 틀림이 없다. 일찍이 손자는 적을 치려면 먼저 적의 군사동맹부터 파기하라.(上兵伐交)라고 했다, 참고로 1960년부터 1980년도까지 간첩사건 수는 64건이었고 1981년에서 86년까지 70건에 이르렀다. 이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자들이 집회할 때 편승하여 한미관계를 단절시키려고 “미국 물러가라” 라는 구호로 외쳤다.
우리는 4.19 때 시위에 참가한 한성여자중학교 2학년 진영숙양 편지“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https://cafe.naver.com/jookjeonmom; https://aridasom.tistory.com/932)을 기억하며 그녀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 6월 항쟁에 불을 댕겼던 박종철군에게 그의 숭고한 정신(옥중편지; 나무위키 박종철)을 자유민주주이 국민은 알고 있다. 이들 둘은 죽음에 앞서 부보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이것이 우리들의 마음을 뒤 흔들고 있다. 부연(敷衍)한다면, 진영숙양은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산화되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정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