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봉숭아 꽃물/서강이정순
오월이면 나는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내겐 챙겨야 할 부모님도 없는데 말이다. 캐나다는 오월에는 Mother’s Day, 유월에 Father's Day 가 있다. 한국은 오월에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다. 왜 나는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이 떠오르지 않고 봉숭아꽃이 먼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내 유년의 기억은 여름이면 우리 집 장독대 앞 화단에는 흐느러지게 봉숭아꽃이 피어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봉숭아는 원래 이름은 봉선화다. 봉선화의 활짝 핀 꽃송이가 마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것 같은 봉황을 닮았다고 해서 봉선화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봉선화의 형형색색의 그 작은 꽃이 봉황처럼 고고하다. 그래서 우리 집 장독대는 늘 봉숭아꽃으로 화려했다.
엄마는 봉숭아꽃이 피면 꽃잎을 따서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네 딸 손톱에 곱게 꽃물을 들여 주었다. 멋쟁이 언니는 언제나 손톱에 예쁜 꽃물이 들여져 있었다. 엄마는 꽃이 다 지기 전에 꽃잎을 따서 모아 명반을 넣고 짓이겨 냉장고가 없는 시절 소금 독에 묻어두고 언니 손톱에 꽃물을 들여 주곤 했다. 그래서 내 호주머니에는 봉숭아 꽃잎이 항상 들어있었다. 호주머니에서 봉숭아 꽃잎이 짓이겨져 내 작은 손은 온통 꽃물이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니는 일 년 내내 손톱에 봉숭아 꽃물이 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희를 훌쩍 넘긴 언니 손톱에는 지금도 고운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한 봉숭아 꽃물을 손톱에 물들이면 붉은색이 벽사(辟邪)라고 해서 악귀로부터 몸을 보호한다는 미신적인 의미도 담겨있다. 어머니는 많은 딸들이 행여나 모를 나쁜 것들로부터 보호하고자하는 마음에서 딸들의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열심히 들여 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꽃물이 손톱에서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다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설도 있어 과년한 처녀들은 겨울이 오기 직전에 봉숭아 꽃물을 들인다고 했다.
해방직후 애국가만큼이나 즐겨 불렀던 가곡이 있었다. 봉선화다. 그 가곡은 일제 강점기 때 홍난파가 작곡하고 김형준이 작사한 국민의 노래였다. 일본 무사시노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천애 선생이 전국을 순회하며 이 노래를 불러 한 민족의 애창곡이 되었다. 일제는 나라 잃은 설움을 봉선화에 비유한 가사를 문제 삼아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봉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노래다. 어머니는 딸들의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여 주면서 곧잘 이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나도 그 가사를 아직도 외우고 있다.
-봉선화-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이번 주간이 어버이 주간이다. 주일 날 교회 목사님 설교 주제가 ‘행복한 3세대의 비결’이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3세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핵가족화가 본격화되어 3세대가 공감하며 함께 사는 가정이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가 요즈음 자식들의 필요에 의해 3세대가 함께 사는 가정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3세대가 함께 살면 참 많은 장점이 있단다. 그중 아이들이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고, 윗세대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고 전통을 알아 감으로 아이들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자존감이 생긴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는 말씀이었다. 아이들은 할머니 말을 배워가고 할머니가 쓰는 단어를 아이들은 쓴다. 옛날이야 할머니 하면 무식하고 무대보라는 게 인식되어 며느리도 손주도 할머니를 꺼리는 성향이 짙었다. 하지만 요즈음 할머니들이야 많이 배워 지혜롭고 해박한 지식으로 어찌 보면 참 좋은 보육교사다.
지난 년 말에 두 아들 가족이 왔다. 뜻밖에 초등학생인 큰손녀 손톱에 클로버가 예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손녀 손톱을 보는 순간 엄마가 봉숭아꽃물을 들여 주던 생각이 났다.
“하나 손톱 예쁘네. 엄마가 해주었니?”
“아니요. 네일아트에서 했어요.”
어린 손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옛날 내 엄마가 봉숭아 꽃물을 딸의 손톱에 예쁘게 물들여 주듯이 엄마가 직접 할 수 없으니 네일아트에서 해 주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3세대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요즈음 유행하는 네일아트도 할머니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하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살아내느라 힘든 이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엄마가 자연스럽게 봉숭아꽃으로 딸들과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듯이 말이다. 그것이야 말로 ‘3세대가 행복한 비결’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하나야, 혹시 봉숭아 꽃 아니?” 하고 손녀한테 물었다. 손주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때다 싶어 증조할머니 봉숭아꽃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 네일아트보다 예뻐?"
"그럼, 예쁘지 않고."
요즈음 한국에서 봉숭아꽃물을 손톱에 물들이는 아이들이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다. 이 아이들이 봉숭아꽃물의 미신적인 첫사랑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손주들과 나눌 수 있다면 그야말로 3세대가 대화의 통로가 되는 행복의 비결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목사님이야 3세대가 함께 예배하라는데 더 깊은 뜻이 담겨있는 줄 안다.
나의 어릴 적 여름이면 봉숭아꽃물을 내 손톱에 들여 주던 엄마의 거칠지만 따듯한 손길이 있었다. 내 유년의 추억은 봉숭아꽃을 늘 가까이하시던 어머니가 생생히 살아있다. 오늘따라 봉선화의 고고한 모습이 애틋하게 그리운 어머니! 나는 그래서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면 카네이션보다 봉숭아꽃이 더욱 더 기억이 선명하다. 며칠 전에 어머니 산소에 가서 어릴 적 떼쓰듯 응석을 부리고 왔다.
첫댓글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생각하며 썼어요. ..
축하해요 토론토 문협 집필진이 되셨군요
네, 감사합니다.
거의 2년 넘었습니다.
매월 한편씩 중 수필을 쓰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