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없이 좋은 장미들이 많지만 그래도 명화를 꼽으라면 제일 먼저 세계 장미 연합의 명예의 전당에 등록된 장미가 우선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등록된 장미는 매 3년 마다 열리는 정기 총회에서 WFRS 회원국 대표의 투표에 의해 선정합니다. 15년 이상 상업적으로 판매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품종 중에서 한 품종을 심사하여 선정하고 이를 명예의 전당에 등록합니다. 따라서 여기에 등록된 장미는 우선 상업적으로 성공하여야 하며 상업적으로 성공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시험 재배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 됩니다.
장미의 명예의 전당은 세계 장미 연합(World Federation of Rose Societies, WFRS, WWW.WORLDROSE.ORG) 이 “Rose Hall of Fame” 이라는 제목 하에 운영합니다. WFRS는 세계 장미의 정보 교류와 진흥을 목표로 1968년 미국, 영국 등 8개국이 발의하여 결성된 조직으로서 각 국가를 대표하는 장미 협회를 회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4년 현재 36개국의 회원국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국가를 대표할 장미 협회가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WFRS에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장미로 문화의 우열을 논할 수는 없지만 방글라데시나 짐바브웨 같은 나라도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하는군요.
2004년 현재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11품종은 위의 WFRS 홈피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 내력을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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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장미 피스(Peace)
품종: 하이브리드 티(HT)
개발: 프란시스 메이양 (Francis Meilland )프랑스, 1936
부모: 모계 – [ George Dickson x Souvenir De Claudius Pernet ]
부계 – 마가렛 맥그레디(Margaret Mc Gredy)
수상: AARS 수상 (1946) 미국
RNRS Gold Medal (1947) 영국
헤이그 금메달 (1965) 네델란드
포들랜드 금메달 (1944) 미국
명예의 전당 (1976)
아래는 제가 딴 목적을 위해서 써 놓았던 글인데 경어가 생략되어 있어서 죄송하지만 고치지 않겠습니다.
------------------------경어 사용 안함-------------------
3-35-40 - 이것은 피스가 태어날 때 붙여졌던 품종 식별 번호이다. 이러한 번호 체계는 메이양(Meilland) 가문에서 대대로 사용하던 것인데 1935년의 세 번째 교배로서 다음해 더 면밀한 관찰을 위해 선정한 50 품종 중 40 번째를 의미한다. 한 품종의 장미의 탄생 과정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듯 소상히 기록되어 전해지는 것은 '피스'의 시간을 초월한 인기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메이양 가문은 5 세대에 걸쳐 숱한 명화를 배출하고 지금도 해마다 세계적인 장미 Show 에서 수상 작품들을 내고 있다. 그 가문의 자서전인 'The Grand Rose Family(1998)'에서 그들이 최고의 꽃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직도 '피스' 이다. 2000년도에 미국 장미협회(ARS)가 편찬한 '모던 로즈 XI' 의 표지 모델이 피스이다. 또한 서론에서는 피스의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칭송하고 피스를 암술 부모 및 수술 부모로 했던 수많은 명화 자손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양재동 꽃 시장에서는 묘목 업자들이 좋은 장미이면 모두 '피스장미' 라고 권한다. 웃지 못할 해프닝이지만, 이 또한 피스의 명성을 우리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한 사례라 하겠다. 여기에 피스의 전설과 영광을 적어 본다.
먼저 꽃의 모습을 보자. 아래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피스는 노랑색의 꽃으로 시작하여 개화하면서 꽃잎 끝이 분홍색으로 변한다. 개화 초기에는 고전적 하이브리드 티의 특징인 '모아진 중심'(Centered)을 보여 주다가 꽃이 만개하였을 때는 꽃잎 하나 하나가 자연스럽게 곡선을 이루어(Frilled) 꽃 전체의 모양은 풍성한 모습이 된다.
피스는 꽃 뿐만 아니라 윤기 나는 잎새의 모양도 감상할 만하다. 누군가 꽃이 없어도 키워보고 싶을 만한 품종이라고 쓴 것이 기억난다.
이 꽃의 탄생은 이러하다.
1935년 6월 15일, 남 프랑스의 앙띠브(Antibes)에서는 23세의 프란시스 메이양이 아버지 앙뜨완 메이양( Antoine Meilland)과 함께 피스를 위한 교배 작업을 한다. 수술 부모는 왕성한 성장력과 저항력을 가진 '마가렛 맥그레디(Margaret Mc Gredy)' 이었으며, 암술 부모는 메이양 가문에서 교배하여 만든 2가지의 이름 없는 장미 사이에서 태어난, 역시 이름이 없는 장미이다.
[ ARS 의 'Modern Rose XI' 의 28쪽의 '피스' 가계표에는 Margaret Mc Gredy의 조상이 잘못 표기되었다. 'The Grand Rose Family'에 기록된 내용이 옳을 듯하다. 아래의 '피스' 가계표 참조.]
1936 년 가을 프란시스와 아버지 앙뜨완은 피스의 첫 꽃 모습을 보고 대단히 만족하였다. 이들은 이 새 장미를 번식하여 1939년 6월에는 앙띠브를 방문한 많은 장미 재배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꽃이 '피스'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드라마는 전쟁과 함께 시작된다.
1939년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대항하여 선전포고를 하였고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프란시스 메이양은 전시 체제하에서 전쟁 동원령과 위궤양으로 고생을 했지만 터어키, 독일, 이탈리아로부터 접수된 주문에 대해서는 3-35-40 의 접눈을 보내 주었다. 몇 개의 눈이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였을까? 장미를 받은 재배자들은 무어라 했을까? 프란시스는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전쟁은 모든 소식을 끊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일꾼들을 앗아 갔고 프란시스의 가족과 4명의 10대 도제들만이 일을 계속하였지만 결국 20만그루의 장미를 캐내어 불 태울 수밖에 없었다. 프란시스의 가족은 리용 근교의 타쌩(Tassin)으로 이주하여 육종을 계속하였으나, 이번에는 해충 구제를 목적으로 타쌩을 포함한 인근 지역의 관목형 나무를 무조건 철저히 제거한다는 프랑스 당국의 방침이 프란시스를 당황케 하였다. 농무성 감독관의 입회 하에 계속적이고도 철저한 방제 작업을 하겠다는 약속으로 겨우 농원은 파괴를 면하였고, 이렇게 피스는 살아 남았다.
3-35-40 은 여러 나라에서 4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프란시스와 앙뜨완은 3-35-40 을 '마담 A. 메이양'( Madame A. Meilland )으로 부르기로 했다. 프란시스의 어머니 끌로디아 드브로이는 3-35-40 이 태어나기 전인 1932년에 타계하였다. 프란시스가 20세가 되던 해이니 프란시스는 어머니를 일찍 여읜 셈이다. '마담 A. 메이양' - 아내와 어머니에 대한 두 남자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이름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장미가 그렇게 불린다.
3-35-40은 1939년 뭇솔리니 통치하의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장미를 무어라 했을까? 공포와 광기 어린 전쟁의 혼란 속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름 - 기쁨이란 뜻의 '죠이아'(Gioia)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 이름은 아버지의 장미 일을 도우며 늘 즐거웠던 프란시스의 어머니 끌로디아가 들었으면 기뻐했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3-35-40 은 독일에 도착하였다. 해마다 타쌩을 방문하여 장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독일의 메이양 친구들은 3-35-40 을 '글로리아 데이( Gloria Dei)-신의 영광' 이라고 이름 지었다. 앙뜨완은 이 피스를 볼 때 그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쳤던 Madame Mivière를 회상한다. 그녀는 앙뜨완에게 신의 경이로운 창조물을 올바로 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다.
이 장미에게 '피스'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은 미국인들 이었다.
1940년, 상황은 더 악화되어 독일군은 프랑스를 침공하였고 1942년 11월 11일에는 프랑스의 전 지역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프랑스에 주재하던 조오지 위팅힐( Mr. George Wittinghill ) 영사는 리스본에 대기하고 있던 쾌속선으로 미국에 귀환할 예정이었으며, 그는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프란시스가 코나드 파일(Cornard Pyle) 사의 로버트 파일( Robert Pyle) 에게 보내는 소포를 전달하는 배려를 베풀었다. 이 일은 피스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또 하나 있기 힘든 경이로움으로 간주된다. 그 시기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으며 오직 리스본에 장미 소포가 도착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일로 보아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해방되고 아직 전쟁이 독일 영토에서 진행될 때, 메이양의 미국 친구 로버트 파일(Robert Pyle)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배달 되었다. 리스본을 떠난 그 접눈은 긴 여행을 견뎌냈을 뿐만아니라 로버트 파일의 손에 도달하여 그 전문가의 눈을 압도하였으며 '세기의 장미'라는 찬사를 담은 편지를 보내도록 하였다. 로버트 파일은 이 장미의 발표식을 1945년 4월 29일, 캘리포니아의 파사디나(Pasadena)에서 열리는 태평양 지역 장미 협회의 전시회에서 갖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이름을 전쟁의 고통으로 지쳤던 세계인의 염원을 담은 이름 - '피스(Peace)'로 하기로 하였다. 그 날은 우연히도- 정말 피스가 겪은 수 많은 우연처럼- 연합군에 의하여 베를린이 함락되었다.
그후 1945년 5월 8일, 유엔의 창설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던 49개국의 대표들이 모인 회의 장소에는 미국 장미 협회로부터 전달된 '피스'가 다음과 같은 메시지와 함께 놓여 있었다.
여기에 베를린이 함락되던 날
파사디나에서 세례를 받은
'피스'라는 장미를 보냅니다.
이 장미가 모든 사람의 선한 의지를 일으키고,
그래서 평화(Peace, 피스)가 영원히
전 세계를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한 사연으로 피스는 유엔의 상징화가 되었다.
1995년, 유엔은 5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고 여기에는 프란시스의 아들 알랑 메이양이 참석하여, 그의 아들이 유엔기를 들고 20세기 평화의 상징인 '피스'를 헌정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별 것 아닌 장미 하나를 놓고 별 요란을 다 떤다고 할 독자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피스가 진정으로 위대한 점은 꽃 모양, 잎새 모양, 성장 특성, 내병성 등 장미의 여러 가지 우수한 형질을 한 품종에 모아 놓았다는 데 있다. 이러한 우수한 형질은 피스를 부모로 하는 많은 명화를 낳게 하였으며 그 성과는 하이브리드 티 계열이 최고의 인기 품종군으로 자리 잡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피스를 암술 부모로 하여 개발된 명화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콘피던스 (Confidence)
핑크 피스(Pink Peace)
그레이스 드 모나코 (Grace De Monaco)
피스를 수술 부모로 하여 개발된 명화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크리스천 디올( Christian Dior)
가든 파티( Garden Party)
로얄 하이니스 ( Royal Highness )
프린세스 드 모나코(Princess De Monaco)
그러나 이 꽃들을 다시 부모로 하여 개발된 꽃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첫댓글 우와 피스는 개화때도 너무 예쁜데 만개될때는 무슨 드레스의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모양같은게 신비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