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망국론
아내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갑자기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사전에 양해를 얻고자 해도 법인세인하를 거부하는 야당의원처럼 좀처럼 승인해 주지 않는다. 자기집에 자신의 친구를 데리고 올 수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집안에 달러뭉치라도 숨겼단 말인가. 혹은 집안에 남이 봐서는 안 될 수치스러운 비리라도 있단 말인가. 나는 아내의 친구들이 간혹이라도 놀러오면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이라 반갑기만 한데 아내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왜일까. 그것은 바로 아파트라는 가옥의 구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파트에서는 화장실에 가도 거실을 거쳐야 하고 부엌에 있어도 물소리 말소리가 건너방에서 들린다. 더구나 여름에는 손님이 있으면 내의바람으로 왕래하기가 난처하기 때문에 여성 쪽이 더더욱 민감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아파트는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집안의 모든 것이 노출된다. 100평을 능가하는 아파트처럼 방이 뚝뚝 떨어져 있고 화장실이 너다섯개 있어도 친구의 방문을 싫어할까. 마당있고 사랑방있는 한옥이라도 싫어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좀 떨어진 한옥의 뒷방이라면 친구와 뒷방에 앉아 떠들든 말든 자욱한 연기속에서 담배를 피우든 말든 가족들은 집안에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 개의치 않는다.
아파트생활은 앞집 뒷집의 생활스타일이 비슷하다. 마트에서 사 온 서로 꼭같은 야채과 생선들. tv 전자세탁기 진공청소기는 삼성 아니면 LG. 그리고 넘쳐나는 두루말이 화장지. 그래서 사고의 진행방향도 속도도 비슷한 것 같다. 옆에서 한마디 하면 그 다음말이 무엇이 될지 짐작할 수 있다. 생각이 다양해야 다양함 속에서 탁월한 아이디어가 나올 듯 한데 사람들의 모습은 사료를 먹여 획일적이고도 속전속결 생산되어 진열된 가게앞 철사줄에 매달려 있는 통닭처럼 별 개성이 없다. 우리나라 최근세만 해도 우리가 존경했던 인물은 모두 시골출신들이다. 그들은 어린시절부터 산과 강과 별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부모의 타이름에 순응하면서 자연속에서 자연이 주는 법칙 속에서 생각하고 꿈을 키웠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뛰어난 기능인은 있어도 만인을 포용하고 어우러는 위대한 인물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파트의 시멘트벽돌 속에서 소음과 공해 속에서 한치의 양보없는 생존경쟁의 스트레스가 태교에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자연의 정기가 탈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소음은 귀도 눈도 없는 식물에게 조차도 성장을 저해한다고 들었다.
세종시는 미래의 수도라고 자랑하지만 그야말로 하늘이 보이지 않게 아파트의 숲이다.
아파트천국이 아니라 아파트지옥이다. 서울은 그나마 도심속에 경복궁도 있고 비원이라도 있지만 그곳은 도심 안에는 실개천은 보이지만 자연은 없다. 밤이 되면 인적이 끊어져 집에 차가 없는 사람은 밖에 나가기도 무섭다. 길에 사람은 없고 자동차만 질주한다. 그나마 종합청사는 나지막하게 구불구불하게 배열되어 건물의 미적감각이 돋보여 다행스럽다. 이처럼 아파트 외엔 아무것도 없는 도시로 발령받은 공무원은 자신의 부인에게 세종살이를 권유할 명분이 없다.
서울은 일본의 동경보다 거주지로서의 아파트의 비율이 훨씬 높다. 강남은 강북보다 아파트의 비율이 훨씬 높다. 일본도 옛날에는 동경에서 아스라이 후지산이 보였다고 한다. 개포동에서 북한산의 멋진 산세가 한 눈에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봉은사 앞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사방을 포위한 고층아파트가 천하대장군 장승처럼 밑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이 모든 자연으로의 시야를 막는 것은 다름아닌 아파트들이다. 정겹던 강북의 골목과 거리들이 갈 때마다 아파트로 변신해 있어 더 이상 발길을 돌리게 한다. 아파트가 남발하는 것은 이유가 명백하다. 주택으로서 수요는 많고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늘을 향해 올리는 수 밖에 없다. 60년대를 기점으로 수도권으로 특히 서울로의 인구집중현상이 오늘날 지금의 아파트군을 만들었다. 30년후의 서울이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는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강남에서는 그나마 양재천이 있다고 열심히 산보하고 휴식하고 있지만 시골출신인 나에게는 진정한 자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흐르는 양재천을 자세히 보면 여전히 물은 더럽고 수초들은 부패해 있다.
전라도 경상도에서 상경하여 입신양명하였고 기반을 잡은 노령층들은 주변 아파트에 자식가족을 거느리고 죽어도 시골로 내려가지 않는다. 정년퇴직한 이후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좀 편리할 따름인 타향아닌가. 그 자리를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하여 양보하는 것은 어떨지. 젊은이들은 살 집이 없어 결혼도 포기하고 살기 힘들어하고 있다. 한달 월급의 절반이 주거비로 빠져버리니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보이지않고 그들이 퇴직할 때까지 국민연금이 파산하지 않고 제 기능을 해 주기나 할까 걱정하면서 힘들어하고 있는 오늘이다. 지방자치의 결과 시골생활도 이제는 별로 불편한 점이 없게 전국이 골고루 발전하였다. 굳이 불편함을 든다면 의료시설 정도이다. 경상도출신들이여 전라도출신들이여 객지에서 한평생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시세만 올리지 말고 경상도출신은 경상도로, 전라도출신은 전라도로 이제 돌아갑시다. 해가 서산에 저무려 하는데 서울에 살아 이제 무슨 더 큰 영광이 있겠어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그리운 어머니가 계셨던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첫댓글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평안을 기도 합니다. 새해에도 이야기 보따리 많이 풀어 놓아주십시오. 거듭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