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정성구 목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장 1~3절)
아마 히브리서 11장에 대한 설교는 오랫동안 예수를 믿어온 분이시라면 아주 여러번 들었을 것입니다. 모두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이 세상의 책과 같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와 능력과 진리를 제공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도대체 믿음이란 뭡니까? 이렇게 물어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은 그냥 믿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그저 꽉꽉 믿는 거라고 말합니다. 물론 믿음은 그와 같이 꽉꽉 믿는 것이 좋은 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꽉꽉 믿느냐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 될 것입니다. 정작 신앙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얼른 정리하기가 곤란할 때도 더러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보통 뭐라고 말합니까? 믿음장이라고 말하지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아주 정확하게 교훈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을 읽기 전에 히브리서 10장의 끝부분과 12장 첫 부분의 말씀을 눈여겨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개 이 두 부분을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히브리서 11장의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자칫 그냥 지나쳐버리기 쉽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부터 38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을 잘보면 히브리서 10장을 마감하면서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는데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구약 성도들이 기대하고 바라던 그 신앙의 내용이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냥 덮어놓고 꽉꽉 믿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잠시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약 이사야의 말씀은 구약의 성도들에게 잠시 후면 오실 메시야가 오실 터이니 그 메시야를 내다보고 힘있게 믿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신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과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잊지 말라고 권고한 것이 바로 히브리서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 생각해 봐야 될 것은 왜 히브리서를 썼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히브리서를 받은 성도들은 본래 유대교에 속했던 사람들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복음이 너무 좋고 감사해서 아주 열심히믿었는데 신앙 생활을 하던 중 차츰 옛날 유대교의 습관에 이끌려서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들이 교인들 사이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유대교로 다시 돌아갈려고 하는 운동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아마 사도 바울)가 이 편지를 쓰게 된 줄로 이해합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 제도의 내용들은 곧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히브리서 10장 끝부분에 기록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약속된 말씀을 히브리서 10장 끝부분에 인용한 다음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히브리서 11장에서 밝히고 있는데, 먼저 12장 2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10장 끝부분에서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라."고 말씀하고 12장 2절에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했습니다. 10장 끝부분의 말씀과 12장 첫 부분의 말씀은 딱 맞아 떨어짐니다.
즉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무슨 뜻입니까? 구약의 성도들이 믿었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인 대상과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 맨습니다. 성경은 10장 끝 부분과 12장 첫 부분이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듯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진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하는 것을 우리는 이제 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구약의 성도들은 결국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줄 믿습니다.
이제 이런 배경을 이해 하면서 히브리서 11장을 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독립된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계시사의 흐름 속에서 이 11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신앙의 인물을 절대로 영웅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초점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이삭, 요셉 등과 같은 성경의 모든 영웅적인 위대한 인물들이 있지만 성경은 그들의 영웅주의적인 것을 절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삭이 믿었던 그 믿음의 진리가 무엇인가? 바로 그런 것을 우리들에게 명백하게 가르쳐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자칫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가령 모세처럼 되게 하여 달라고 하는 사람들, 특히 주일학교 교사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 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됩니다. 모세처럼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든지 다니엘처럼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그런 신앙고백이 나오도록 가르치면 안됩니다. 우리가 가르쳐야할 것은 다니엘이 믿었던 그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인가를 가르쳐 줄 때에 우리 마음 가운데 뜨거움과 확신과 감사가 넘치는 줄 믿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생입니다. 사실은 모세도 실패자가 아닙니까? 그렇죠? 아브라함도 실패자입니다. 야곱은 또 어떻습니까? 아니 세상에 눈이 어두워서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자기가 형 에서라고 속였던 사람이 바로 야곱 아닙니까? 그런데 왜 성경은 야곱의 생애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택하여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인 줄 믿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 기록의 골격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사람을 영웅시 하거나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에게만 영광과 감사와 존귀와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성경을 관통하는 그 사상의 골격이라는 사실을 먼저 우리가 이해하고 그것을 봐야 될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실상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실제입니다. 그림자에 대한 실제를 뜻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림자를 잡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잡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특별한 목적 - 치병이나 사업의 성공이 이루어질 줄 믿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꼭 깨달아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는 소원, 내가 믿는 어떤 소원 사항이 우리의 신앙에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참으로 믿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소원해야 되겠지만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대상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흔들림이 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별하지 못해 가지고 이번 주 안으로 돈 백만원이 필요하니 꼭 주실 줄 믿는다는 식의 믿음이 많습니다. 그런 믿음도 보통 믿음은 넘지요. 또한 그런 믿음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인 대상되시는 분은 돈 백만원이 아니고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실패없고 실망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내용이 내가 간구하는 소원 사항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간구하는 소원을 당장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목자장이 되시고, 나의 창조주가 되시고, 나의 구속수가 되시고, 나의 심판주가 되신다고 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할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불교나 무슨 이상한 것을 믿는 종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의 목적만 달성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믿음은 내가 단순히 무엇을 소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되게 하여 주시는 만군의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주시요 나의 심판주가 되신다는 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질 때에 비로소 온전한 신앙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질 때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들어주면 좋고 안 들어주면 돌아서도 그런 정도의 이기주의적인 자기 중심의 신앙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중심한 신앙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앙의 완성이요, 최종선이란 것입니다. 구약의 믿음도 결국 오실 그리스도를 내다보고 믿는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은 율법으로 구원받고 신약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하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구약도 신약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줄로 확실히 믿습니다. 구약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내다보고 믿었고 신약의 성도들은 오신 메시야를 뒤돌아보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의 신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고,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 감정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쪽에서 일어나는 어떤 느낌이 아닙니다. 믿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줄 믿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고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족장들이 뭘 믿었습니까? 메시야가 오실 것을 내다보고 믿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긴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모세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명쾌하게 가르쳐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신앙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신념입니다. 신앙과 신념은 아주 다릅니다. 그런데 그 나타나는 양상은 구별이 안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챤들이 신앙과 신념을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아주 확신을 갖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콜럼버스가 바다를 계속 항해해 가면 대륙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신념이지 신앙은 아닙니다. 또 이 곳을 파면 석유가 나올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도 신앙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신념과 신앙을 구분짓지 못하고 오해를 합니다.
신앙과 신념은 무엇이 다릅니까? 신념이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나온 것이라면 신앙은 위에서부터 온 것인 줄 믿습니다. 바로 그런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나타날 때는 아주 비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해는 열심이 대단한 것 같으면서도 쉽게 쓰러지는 사람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그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목되어 있다기 보다 자기 신념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실수하고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된 그린 확실한 신앙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신앙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아니 여러분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무엇인가를 봐야 증거가 되든지 하는 것이지 보지 않고 무슨 증거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독특한 표현입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이해될 줄로 믿습니다.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하나님이 마음속에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또 손으로 만져보지는 못했지만 마음 가운데 확신이 있습니다. 신앙은 생명의 운동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했지만 본 것보다도 더 확실한 증거와 확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는 찬송이 우리의 확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눈에는 안보여도 다 확신할 수 있고, 눈으로 본 것보다 더 확실한 예수의 증거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있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했는데,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신념과 신앙은 다르다는 것을 이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중심의 신앙 생활이 아니라 언제라도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통하여 우리의 증거가 그리고 믿음의 증거가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무슨 심리작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단순한 심리작용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2장 8절에 보면 믿음은 누구에게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인 줄을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선물인데 어떤 사람은 믿음을 마치 자기가 제작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한번 믿음을 좀 만들어 봐야겠다"하고 결심을 하지만, 성경을 보면 오직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참된 믿음이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비로소 참된 믿음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내가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된줄 믿습니다.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고 바라볼 때 그 말씀이 정상적인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의 소유자는 믿는 대로 초자연적인 성취를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참 믿음은 사람의 생각 밖의 초자연적인 기적의 은혜, 축복의 은혜를 받게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내맡기면 그 때로부터 몸이 뜨거워 집니다. 우리가 내힘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허둥대지 말고 참 하나님의 말씀에, 주님의 장중에,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다 맡겨버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믿음의 축복을 주시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