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수 천 년이 흐른 뒤에 사람들은 이 그림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著畵看来定好事, 自多千載擬相傳]” – 안평대군 1450년 정월 대보름-
내 마음을 평정하게 지키고 싶다. 내 마음은 평화롭고 온화할 권리가 있다. 마음의 권리는 천부인권과 같이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인격권이다. 마음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미술책을 읽는 것이다. 미술책은 시각적 이미지를 글로 풀어가면서 호흡을 이완시킨다. 숨 고르기로 우리는 격렬한 삶에서 마음의 거리를 두고, 관조하도록 여유를 얻는다. 이것이 미술책을 읽는 이유이다.
- 안평대군 몽유도원도에 붙인 시 '제시(題詩)', 안휘준, 이병한 '몽유도원도'(예경, 1987)에서 재인용.
나는 삶을 관조할 만큼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일에는 담담하다. 몇 년전 미술책을 붙들고 운 다음부터 그렇다. ‘몽유도원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을 때, 긴 줄을 서서 그림을 보았다. 그림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림 오른쪽에 ‘몽유도원도’라는 제목 다음에 표구된 시가 있었다. 안평대군이 감색 비단에 주사(朱砂)의 붉은색으로 감정이 달리듯이 초서로 쓴 시였다. 붉은 글씨가 부적같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무엇을 쓴 것일까?
미술품만 보는 것 맹목 미술책만 보는 것 공허… 미술품과 미술책은 함께 가는 두 바퀴 자전거집에 오자마자 안휘준, 이병한의 ‘몽유도원도’(예경·1987)의 미술책을 정신없이 탐독했다. 그의 불안과 슬픔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 책에 이병한 교수님이 시를 탈초해 놓은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이 복받쳤다. 1450년 아버지 세종이 이미 임종을 다투던 밤에 쓴 시라는 것을 알았다. 그 내용은 “세상 어느 곳에서 도원을 꿈꾸겠는가, 평민들은 그대로다. 그림을 보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러니 수 천 년이 흐른 뒤에 사람들은 이 그림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3년 뒤 정월 밤에 치지정에서 그림을 열어보고 쓴다. 청지 (世間何処夢桃源 野服山冠尚宛然. 著畵看来定好事. 自多千載擬相傳. 後三年正月一夜. 在致知亭. 因披閱有作. 清之)”(선승혜 번역)라는 내용을 알았다.
그림만 볼 때, 알 수 없었던 깊은 불안과 슬픔이 미술책을 보면서 가슴을 후볐다. 안평대군은 아버지의 임종을 예감하며, 다가올 혈육 간의 피 비린 권력 투쟁을 직감한 것이다. 이 그림이 혼자 펴보면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부적을 쓰듯이 붉은 초서로 쓴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서 다시 책을 펼쳐서, 제발을 모두 읽었다. 구구절절, 집현전의 학자들이 안평대군에게 시기가 위험하니 목숨을 지키라는 하는 진심 어린 충고들이 녹아있었다. 내가 미술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두 알 수 없었을 삶의 깊이였다. 삶의 다사다난함, 그것을 이겨나간 마음의 힘이 미술책에 있었다.
- “미술품만 보면 맹목이고, 미술책만 보면 공허하다”
칸트의 철학처럼 미술품만 보는 것은 맹목이고, 미술책만 보는 것은 공허하다. 미술품과 미술책은 함께 가는 두 바퀴와 같다. 관심이 생긴 미술품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더 많은 것이 느껴진다. 물론 인터넷으로 미술품의 이미지와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지만, 체계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술책을 읽자. 미술책을 읽는 요령을 다섯 가지로 알려 드리고 싶다.
미술책을 읽자… 미술책 읽는 다섯 가지 요령먼저 미술의 통사를 이해하자. 기본서를 여러 번 읽어서 흐름을 외우자. 역시 암기가 학습의 시작이다. 미술의 이해도 예외는 아니다. 미술책의 빠르게 읽기와 외우면 읽기를 번갈아 해보자. 어느새 미술사의 흐름이 마음속에 정리되고 있다. 미술사의 흐름이 파악된 후에, 내가 선호하는 방법론의 시각으로 쓴 미술책을 읽자. 예를 들면
사회학적 방법론, 정신분석학적 방법론 등. 희한한 일이지만 같은 그림도 보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미술책을 읽다 보면, 마음의 다양성을 부지불식간에 인정하게 된다.
두 번째, 도판이 좋은 미술책을 읽자. 좋은 그림은 책을 통해 보아도 좋다. 도판이 많이 실린 책을 읽다 보면, 하나씩 인터넷으로 검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집중하게 된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은 양질의 도판이 많이 실린 책이 연구서보다 저렴하다. 왜냐하면 전시를 위해 만들어지는 도록은 이미지 저작권료를 상호 면제하기 때문에, 도록의 질에 비해서 가격이 저렴하다. 그래서 미술관 도록을 사는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 미술책은 글이 좋은 미문(美文)의 책을 고르자. 어떤 미술책은 지루하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이 다루는 미술품에 충분히 감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미술책의 저자가 미술품의 아름다움과 엎치락 뒷치락 공감하는 호흡으로 써 내려간 글을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을 느낀다. 타인의 글을 통해 미술품이 진정으로 당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네 번째, 미술책의 구매는 방향성을 세우자. 지역, 장르, 사조, 작가 등등, 내가 호기심이 있는 분야와 관련된 미술책을 산다. 나의 전문이나 일과 다른 나만의 평생 ‘미술 리서치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자. 즐거운 인생이 시작된다. 예를 들면 미인도에 관한 책만 집중적으로 읽어보면, 미인에 대한 다각적인 탁견이 생긴다. 여러 자리에서 미인론을 설파하며, 즐거움을 전파시키자.
다섯 번째, 미술책 독서클럽을 만들자. 한 달에 한 번 미술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만들자. 의외로 미술책이 많지 않다. 아마 5년만 투자해도 한국어로 출간된 웬만한 미술책은 다 읽을 수 있을 수 있다. 미술책을 함께 읽고 나서, 그 그림을 함께 보는 미술관 산보를 하자. 책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책으로, 이것이 바로 감성의 케미스트리의 구조이다.
미술 감상은 책을 읽으며 깊어진다. 읽은 만큼 느끼고, 느낀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마음이 풍요롭다. 당연하지만 진정한 폼은 풍요로운 마음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