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 시 : 2021. 5. 15.(토) 07:25 ~ 5. 17.(월) 20:20
2. 탐방지 : 해파랑길 46~50코스 (장사항-통일전망대)
3. 코 스 : 46~47구간 일부 ☞ 장사항-봉포항-청간정-아야진항-천학정-능파대—삼포해변-송지호관망타워-왕곡마을(탐방거리 21.2km, 탐방시간 6시간)
47구간 일부~49구간 ☞ 왕곡마을-가진항-남천교-북천철교-거진항-화진포해맞이전망대-응봉-김일성별장-화진포해변-초도항-대진항-금강산콘도-통일안보공원(탐방거리 32.4km, 탐방시간 12시간 05분)
50구간 ☞ 통일안보공원-제진검문소-통일전망대-금강산건봉사(탐방거리 12.7km, 탐방시간 3시간 17분)
4. 참석자 : 강예구, 고영호, 김명자, 김필성, 이준하, 최홍구 등 6명
5. 탐방후기
탐방기 간 내내 비가 예보되어 있었고, 이번 탐방에는 강 과장과 내 차를 이용하여 명자 씨와 강 과장은 해운대에서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하고, 나는 망미동 집에서 출발하여 연제예식장 앞에서 이준하 회장을 태우고 번영로를 거쳐 고영호, 김필성 회원이 기다리는 구서역으로 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속초 장사항으로 가기로 했다.
7시 25분에 집을 나설 때부터 비가 내렸고, 강릉과 양양을 지날 때에도 계속 비가 내리더니 속초에 도착할 무렵부터 빗방울이 점차 잦아들었다.
장사항으로 가는 도중 중간에 만나는 장소는 비도 오고해서 영덕 부흥리해수욕장 입구가 아닌 지난번에 탐방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조동제 사장이 보고 말한 영덕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였고, 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나누다 고영호 회원이 시장 갈 때 쉽고 편하게 가기 위해 자전거를 구입했는데, 구입하고 나서 3번밖에 타지 못했다는 말에 폭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하다 그만 휴게소 입구를 놓치고 지나쳐 휴게소에서 나오는 일방통로로 차들을 피하며 후진해 들어가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넓은 영덕휴게소는 지나가면서 본 것과는 달리 농협에서 직영하는 주유소 외에는 건물 자체를 폐쇄해 놓았고, 화장실도 주유소를 이용하라고 안내해 놓았다. 이곳뿐만 아니라 보경사휴게소도 그렇고 동해안으로 오가는 휴게소 여러 곳이 여름 성수기가 아니면 이렇게 폐쇄되는 곳이 간혹 있단다.
다행이 비를 막아주는 정자가 있어, 비를 피해가며 명자 씨의 명품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맛있게 먹었고, 이번 탐방이 마지막 탐방이라 그런지 아쉬움이 큰데도 오히려 맛은 더 좋았다.
당일치기 탐방 때에는 소주를 제공하더니만 숙박으로 바뀌면서 출발하는 날이면 매번 새벽에 일찍 일어나 토스트를 굽고, 달걀을 삶고, 과일을 먹기 좋게 썰어 샌드위치를 준비해 오는 것도 해파랑길에서의 마지막이다.
한 두 번은 모르나 매번 이렇게 준비해 온다는 것은 보통의 지극정성이 아니다. 오로지 회원들을 향한 끊임없는 배품이고 보시며, 이러한 것들이 실루엣처럼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은 왜일까? 진심어린 마음에 감사함을 표해본다.
명자 씨! 그동안 함께 먹으며 행복했고, 고마웠으며,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홍일점인 명자 씨를 여성으로 더 살뜰하게 아껴주고 대우해 주지 못한 게 미안하고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샌드위치와 커피로 배를 채우고 굳은 몸을 푼 다음, 영덕휴게소를 나와 7번 국도에 이어 삼척-양양 간 고속도로를 달리다 구정휴게소에 잠시 들렸다가 장사항 어촌체험마을 옆 해변공원에 도착하니 12시 38분이다.
점심을 먹고 탐방을 시작하려고 강 과장 차에 있는 필성 씨에게 연락을 취하니 아직 15km 전이라고 했고, 오후 한 시가 되어서야 장사항에 도착했다.
장사항해변공원 잔디 위에 자리를 깔고 식사를 하였다.
점심반찬은 강 과장은 마늘 찌와 아리고추가 들어간 멸치볶음을 가져왔고, 영호는 잔멸치 볶음에 김치를, 명자 씨도 진멸치 볶음에 다른 반찬을 가져왔는데 기억이 안 나고, 필성 씨는 배추김치와 아삭한 무김치를 가져와 컵라면을 끓여 밥을 말아 먹었고, 나는 깻잎 찌와 김치, 애호박전과 버섯볶음을 준비하는 등 모두가 정성스레 준비해 왔으나, 이준하 회장이 계란말이 외에 커다란 락엔락 통에 가득 담아온 장어구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양가 높은 푸짐한 식탁으로 배들 잔뜩 채웠고, 이때까지만 해도 저녁식사 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13:38) 회원들의 탐방은 시작되었고, 강 과장과 나는 차를 몰고 오늘 탐방 종착예정지인 왕곡한옥마을으로 이동해 내 차는 대놓고 강 과장 차로 돌아와 46코스 시작점 해파랑길 안내판 앞에서 인증 샷을 찍고 탐방에 나섰다(14:35)
날씨는 잔뜩 흐렸으나 비가 내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탐방이 끝날 때까지 이정도의 날씨가 받쳐주면 좋으련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장사항을 빠져나와 도로를 걷게 되며, 바로 고성군이 이어지고 이곳까지 걸어오며 봐왔던 설악산이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도로 오른편 바다 쪽에 바다 속 풍경을 벽화로 그려놓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 ‘바다정원’으로 옥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무언가를 즐기고 있었고, 길가에 늘어진 아카시아 진한 꽃향기와 풀냄새는 흐린 날씨의 낮은 기압으로 인해 우리의 코끝을 자극해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14:50)
길가 오션승마체험장에는 승마교육을 받는 사람과 말과 당나귀들이 보였고, 이곳을 지나 다리를 건너 용촌천을 따라 바닷가 쪽으로 들어서면 켄싱턴 해변이 나온다.
고요하고 한적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한 아름다운 켄싱턴 해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 텐트를 쳐놓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 간이의자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그기에 전동 세발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활발한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켄싱턴비치리조트와 캐러반들이 어우러져 예쁘고 아름답다.
켄싱턴해변을 지나 봉포항 사이의 해변공터에는 파도를 막아줄 데트라포트가 만들어지고 쌓여져 있었고, 이곳을 지나면 봉포항이고 봉포항 북쪽 방파제 너머로 조그만 봉포해변이 나타나고, 펜션과 횟집이 즐비한 마을길을 걷다보면 천진해변과 천진항이 나온다.
고성은 서핑보다 다이버가 더 유명한 줄 알았는데, 파도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데도 천진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네 댓 명의 젊은이가 보였다(15:37).
마을길을 빠져나와 천진해변에서 청간정으로 가는 길을 해파랑길 표식대로 크리스마스펜션에서 오른 쪽으로 접어드는 찰나 해안데크길이 지난 여름 태풍으로 망가져 안전을 위해 통제 중이라 갈 수가 없다고, 묻지도 않은데 펜션집 아저씨가 친절하고 고맙게도 알려주었다.
도로를 따라 천진교와 청간교를 건너 청간정으로 갔다(15:50).
청간정은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32호이며, 관동8경중의 하나로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언덕 위에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 특히 해돋이의 풍경과 낙조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의 심금을 울렸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청간정을 뒤로하고 철조망이 처진 청간정해변으로 들어섰다.
반달같이 생긴 청간 해안가에는 건물 전면 외형이 마치 흑인들의 레게머리를 풀어놓은 듯 특이하게 장식되어 있는 NOMAD카페가 눈길을 끈다.
항구 쪽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평평하게 줄지어 늘어선 너럭바위는 한적한 바닷가에 평화스러움을 더해주고 보는 이의 마음이 편하게 해준다.
아야진항의 활어센터건물 앞에서 앞서가던 회원들을 따라 잡았다.(16:05)
아야진해변 만남광장에는 인공폭포와 정자, 곰 모형의 돌 의자가 놓여 있어 친근감을 더해 주었고, 이곳에 이르자 멈췄던 빗방울이 한 두 방울 씩 떨어지는 가운데 백사장에는 오히려 야영을 위한 텐트가 늘어나고 있었다.
바가 오는데도 에메날드빛 바다와 모래 대신 해안을 감싸고 있는 넓은 너럭바위 위에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교암리 펜션들이 들어선 백사장에는 두 동의 텐트만이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 마치 무인도처럼 조용하고 한가롭게 보인다.
펜션이 늘어선 도로를 지나 교암항 방파제 입구 천학정에 도착했다(16:38).
천학정은 1931년 지역 유지들에 의해 세워진 정자로, 기암절벽 사이로 곧게 자란 소나무가 벼랑 끝 바다를 향해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었고, 청학정 뒤편 야트막한 산 능선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장관을 이뤄 운치를 더해준다.
천학정을 내려와 교암리 마을의 해변 끝 문암항 방파제를 따라 펼쳐져 있는 기암괴석 능파대를 만난다.
능파대(凌波臺)는 바위들이 풍화작용으로 암석의 표면이 벌집 모양으로 변한 타포니 지형으로 특이한 바위 모습으로, 능파는 ‘급류의 물결’ 또는 ‘파도 위를 걷는다.’는 뜻으로 미인의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뜻하기도 하며, 강원 감사로 있던 이 모씨가 도내 순시 중 파도가 해안가의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능파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능파대를 빠져 나오자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점차 굵어져 비옷을 입지 않을 수 없었고, 점심식사를 한 뒤 도시락이 필요가 없던 강 과장이 배낭을 메지 않아 우산도 비옷도 없어 내가 비옷 상의를 빌려주고, 나는 판쵸이를 입고 걸었다.
능파대에서 백도해변으로 넘어가는 경치 좋은 장소는 온통 카페와 상점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백도해변 끝부분과 백도항 입구에는 미륵불이 있는데, 이 미륵불은 풍어를 이루게 하고, 아이가 없는 집안에서는 불공을 드리면 아이를 얻게 해준다는 등 마을에 복을 준다하여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여 마을주민들의 명의로 굿, 고사, 무속인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백도는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앞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갈매기의 똥으로 섬전체가 하얗게 덮인 섬이라하여 백도라 불린다고 하며, ‘흰섬’이라고도 불린단다.
예쁜 바위 언덕 옆 아담한 백도항을 지나고(17:20), 아름다운 백도포구를 뒤로하면 이내 만나는 곳이 문암리 선사유적지이다.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은 신석기시대 유적 중 남한지역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고, 한반도 선사인의 원류 및 이동경로, 당시의 문화계통과 전파과정을 밝히는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라고 하며, 신석기시대 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발굴터만 있고 전시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선사유적지를 뒤로하고 자작도해변과 자작교를 지나면 삼포해변이다.
17시 50분 46코스 종점인 삼포해변에 도착하여 내리는 빗속에서 인증사진은 엄두도 못 내고, 해파랑길 지도책에 스탬프만 찍고 계속 걸었다.
삼포해수욕장 끝 모퉁이를 돌아가면 봉수대해수욕장과 송지호해수욕장이 연이어 나타난다.
봉수대해변에는 해수욕장과 오토캠핑장이 있으며, 캠핑장과 카라반 사용료는 다른 곳과 비슷한 느낌이다.
18시 22분 송지호해수욕장에 들어섰다. 해안가에는 펜션은 기본이고 서핑가게가 두서너 군데가 보이나 파도가 숨을 죽인 듯 고요하고 잔잔한데다 비마저 내려서인지 찾는 이들이 하나도 없어 쓸쓸하고 삭막함마저 감돈다.
송지호해변을 빠져나오면 해파랑길 표식은 해양심층수를 취수하는 강원심층수의 담장을 따라 간다.
세계에서 심층수를 취수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노르웨이, 대만과 우리나라 5개국이며, 특히 우리나라 동해는 세계 해양학계에서도 인정한 천혜의 심층수 해역으로 인정받는 곳이란다. 강원심층수는 동해 최북단 청정해역 수심 605m에서 취수한 해양심층수로 미네랄워터, 심층수소금, 김치 등 주요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하니 다음에 한번 사먹어 봐야겠다.
이어서 석호인 송지호를 만난다.
송지호로 들어서 다리를 건너면 동해북부선을 다시 잇기 위한 염원을 담은 모형 철길을 2020년 10월 24일 만들어 놓았는데, 하필이면 이날 보수공사를 하던 소형굴삭기가 모형철길 바로 옆에 세워져 있어, 사진 찍는데 방해가 되었고, 사진작가인 강 과장이 몹시 안타까워했다.
송지호는 파도나 해류의 작용과 일정한 방향의 바람에 의하여 모래나 자갈이 쌓여서 해안이 생긴 모래톱(사취)이며, 좁고 긴 모양으로 해안가에서 바다로 뻗어나가 만의 입구에 형성된 모래톱이 만의 입구를 막는 것을 사주라 하며 바다와 육지 사이에 형성된 사주의 안쪽으로 호수가 형성된다.
이 호수를 석호라 하며, 담수와 해수가 섞여 있어 염담호, 함수호라 부르기도 하며 염분의 양이 5~15% 정도이고, 경포호, 청초호, 영랑호, 천진호, 송지호, 내일 만날 화진포호도 석호라고 한다.
송지호 호수 가장자리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이날은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고 비가 와서 그런지 송지호관망타워(입장료 천원)를 오르거나 여유를 가지고 세세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철마다 온갖 종류의 철새들이 찾아들어 송지호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평화스럽게 한다는 말이 실감났고, 비 내리는 날 서서히 땅거미가 밀려오는 저녁시간 호젓한 송지호 호수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해파랑길 표식에 따라 아카시아 꽃향기와 풀냄새가 넘실대는 송지호 북쪽 둘레길인 흙길을 밟는 기분은 어떤 말로도 형용이 안 되었다.
송지호 무장애 나눔길은 장애가 되는 계단이 전혀 없는 장애인을 위한 길이란다. 송지호의 아름다움과 주위의 논과 들판을 두 눈에 담으며 2km정도 더 가면 왕곡마을이다.(19:15)
기와집과 초가집이 오손도손 어우러진 왕곡마을을 걷는 것은 고향에 온 것 같이 마음이 푸근하다.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천천히 음미하며 둘러보면 좋으련만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에 뒤처져 오는 회원들을 태우고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아쉬웠다.
여섯 명 모두 한 차에 타고(19:35) 장사항으로 이동, 강 과장 차를 가지고 숙소인 설악포유리조트로 돌아오니 8시가 넘어선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데, 명자 씨가 개인적으로 준비한 장어를 보고 입이 떡 벌어져 다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양을 그렇게 많이 가져왔는지 통이 커도 보통 큰 것이 아니다. 저번에 이 교장샘이 차돌박이를 맛있다고 하여 두 배나 많이 준비해 왔는데.
필성 씨와 명자 씨는 장어와 차돌박이를 구운 다음 내가 준비해 간 해파랑길 쫑파티용 떡케익에 촛불을 켜고 둘러앉아 자축의 축배의 잔을 들었다.
장어와 차돌박이로 배를 다 채웠는데도 아직 절반 이상이 남았다. 이제 남을 음식 걱정을 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고, 수육용으로 구입해 간 돼지고기는 돌아올 때까지 냉장고 밖을 나오지 못했다.
이런 행복한 자리가 지속되다보니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둘째 날 아침을 해결하고 8시가 넘어 숙소에서 나왔다.
날씨는 어제와는 달리 밤새 세차게 내리던 비는 잦아들 줄을 몰랐다.
세찬 비바람에 기온까지 낮아 추위를 느끼게 하였고, 우산을 쓰도 비옷을 입었는데도 사정없이 때리는 비로 인해 옷은 축축하였고, 신발은 물이 고여 첨벙첨벙 그 자체였다.
파도 또한 성난 듯이 달려와 해안 옹벽에 사정없이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그래도 어쩌랴? 우리는 굴하지 않고 탐방을 이어갔다.
어제 탐방을 멈춘 왕곡마을에 회원들을 내려주고(08:35) 통일안보공원에 내 차를 갖다 놓고 어제 차로 왔다 갔다 한 왕곡마을저잣거리는 지나치고 공현진해변에서부터 걸으려고 했으나, 강 과장과 다른 회원들과 가진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기에 공현진해변을 차로 둘러보기로 하고 그곳으로 가니(09:45), 그 시간 회원들도 막 도착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로 이동하는 통에 공현진해변의 황금인어상과 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으로 사진가들 사이 명소로 알려진 수뭇개바위(동해안 최고의 일출장소인 수뭇개바위는 1910년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 의하면 3개의 바위가 묶여있다는 뜻에서 삼속도라는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속도의 한글 표현이 ‘셔뭇뒤’가 ‘스뭇대’를 거쳐 ‘수뭇개’로 구전된 것으로 추측하고 았단다)를 들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대신 스테이가진 펜션 앞 백사장에 작품처럼 서있는 이름 모를 바위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한 컷 찍으며 만족해야 했다.
가진항 입구에서 해파랑길 스탬프를 찍는데, 스탬프 통 안이 비로인해 온통 젖어있어 여간 상그럽지가 않다. 간신히 스탬프를 찍고 회원들과 본격적으로 탐방에 나섰다(10:05).
가진항에서 도로로 빠져나와 세찬 비바람에 해파랑길 표식을 놓치고 도로를 걷다가 향목리로 들어가는 논밭 사이로 난 해파랑길 이정표를 빌견한 다음 농로를 걷다 남천을 따라 7번국도 남천교까지(11:03) 갔다가 반대편 제방길 끝에 있는 동호리해변으로 나아갔다.
남천 주변 논에는 모심기가 모두 끝나 있었고, 건너편 제방길 초입 담장이 화려한 집은 어떤 예술가가 사는 집인지 집 안팎으로 돌과 깨진 기왓장, 옹기, 화분, 판자 등 각종 생활 소품들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재미있는 문구를 곁들여 그려진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1시 26분에 동호리해변에 도착했다.
세찬 비바람에 쓸쓸한 백사장엔 거센 파도가 밀려와 황량함마저 더해 준다.
이곳에선 해변 백사장 길이 아닌 송림 옆 흙길을 걷게 되는데, 지나다니는 차들로 인해 움푹 패인 흙길이 웅덩이가 되어 있어, 이를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생겼다.
세찬 비를 피하느라 우산을 눕혀 들고 걷다보니 동호리 송림과 습지를 느낄 여유가 없었고, 북천하구와 북천철교 갈림길에서는 강 과장의 말대로 북천철교를 가리키는 도로로 향하였으나(11:43), 이내 나타나는 이정표는 두 곳 모두 해안 쪽으로 표시되어 있어, 네비를 이용해 길을 검색하기도 하고 해파랑길 표식을 따라 들어갔다가 물이 고인 길이라 다시 되돌아 나오기도 했다.
거센 바람은 고영호 회원의 우산대를 가만두지 않고 부러뜨렸고, 그나마 판쵸이를 입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북천을 따라 걸어 북천철교에 도착(12:14)했다.
북천철교는 1930년 경 일제가 자원수탈을 목적으로 원산~양양 간 놓았던 동해북부선 철교로서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이 철교를 이용하여 군수물자를 운반하자 아군이 함포사격으로 폭파해야만 했던 비극의 역사현장이기도 하단다.
이후 60여 년간 교각만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었으나, 행정안전부에서 접경지역인 이곳을 평화누리길로 지정하는 기회에 고성군에서 한국도시철도공단으로부터 폐철각을 기증받아 리모델링하고 상판을 설치하여 걷기 및 자전거 마니아를 위한 전용교량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단다.
북천철교를 건너 북천하구의 정자(松江鄭澈亭)에서 지치고 힘들어 하는 회원들과 커피로 추위를 녹이고 떡케익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걸었다.
12시 45분 마산해안교를 지나고, 반암리 솔밭길을 걸어(13:00), 세찬 비를 피해 밥을 먹을 마땅한 곳이 없어 반암마을에 있는 동명막국수집에 도착했다.(13:25)
반암리 마을은 식당 두 곳과 펜션 서너 군데가 있었고, 유명한 해변도 아닌데 마을 전체가 집집마다 민박집 간판이 걸려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앞치마를 한 중년의 남자에게 도시락 먹을 장소가 없어 그렇다고 각각 세 명씩 나눠 앉아 메밀칼국수를 2개씩만 시켜먹겠다고 했더니 사장 부인인 듯한 여자와 상의하더니 여자가 좋다고 해서 우리는 들어가 자리 잡고 앉았고, 사장이 다가와 주문을 하라기에 벌써 시켰다고 말하고 나중에 나온 칼국수의 양이 많다고 생각하며 밥까지 말아 맛있게 먹었는데, 나올 때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3인분씩이라며 6인분을 계산하란다.
아니 4인을 시켰는데 왜 6인분이냐고 내가 항의를 하니 남자 사장은 여자와 중년의 남자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두 사람이 다 아니란다.
남자는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로 갔다 와서 하는 말에 기가 더 찼다. 음식이 남았다면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다 먹어 치웠으니 어쩔 수 없이 계산해야 한다나. 참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함께 서있던 명자 씨와 강 과장이 그대로 계산해 주라는 말에 계산은 해 주었지만 이것은 정말 아니었다(14:15).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필성 씨의 럭셔리한 새 우산을 앞서나간 손님들이 가져가고 없어진 것이다. 하다못해 식당 주인으로부터 허접한 우산 하나를 받아들고 찝찝한 기분으로 식당을 빠져나왔다.
반암리 마을길을 거쳐 해안도로를 걷다보면 성원오션상떼빌 아파트를 지나고 거진1교를 지나면 거진리로, 거진해수욕장이 나오고 이어 거진항이 이어진다.
거진항으로 가는 길목의 고성명태 산업관광 홍보자원센터 앞에서 잠시 포즈를 취하며 한 컷을 하고는 곳곳에 설치된 명태 관련 조형물과 모자이크 벽화를 보며 걸었다. 진열된 벽화 중에는 그림과 함께 ‘명태를 소개합니다. 갓 잡혔을 땐 생태, 생태를 얼리면 동태, 생태를 반쯤 말리면 코다리, 추운 겨울에 얼렸다 녹혔다를 반복하면 황태, 바짝 말리면 북어, 새끼 때는 노가리’라고 적은 벽화도 있었다.
거진항에 들어서니 15시 03분이다.
강 과장은 항구에 있는 군함과 항구 전경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바쁘다.
뒤처져 오던 네 사람도 어느새 따라와 농협바다마트 옆에 있는 48구간 종착지에서 해파랑길 지도책에 스탬프를 찍고 49구간을 향했다.
거진항을 뒤로하고 거진해맞이봉을 향해 있는 가파른 나무계단의 해파랑길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곳곳마다 항구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사진 포인트가 있어 누구나 쉽게 배경을 잡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놓았고, 거진항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모셔놓은 성황당도 보인다.
거진 해맞이봉을 오르게 되면 화진포를 향해 삼림욕장 능선길을 걷게 된다. 능선길 곳곳에는 각종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바다 동물의 형상과 12간지 등이 보였다.
화진포 해맞이교와 삼림욕장, 응봉을 지나고 금강삼사 삼불사를 지나 김일성 별장 앞까지만 갔다 입장료가 있어 다시 입구로 나가 표를 사와야 했기에 들어가지는 않고 사진만 찍었으며, 대신 광개토대왕릉이라는 자료가 발견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화진포 앞바다의 거북이 형상의 금구도를 배경으로 추억의 사진을 남겼다.
이기붕 별장은 해파랑길로 나오는 길에 곁 눈길로 쳐다보고 화진포콘도로 빠져나와 다리교각 네 곳에 돌로 고니의 형상물이 세워져 있는 금부교를 건너면(16:55) 화진포해수욕장이고 입구에는 화진포해양박물관이 있다.
화진포해수욕장을 지나고, 성게의 형상물이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성게의 주산지 초도항을 지나고 대진5리 해변으로 넘어가는 길이 파도에 유실되어 초도마을로 접어들어 해파랑길이 아닌 도로를 따라 걷다 대진항 들어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초도해안 해파랑길을 걸었다.
해안도로가 유실되다보니 표식이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이로 인해 이 회장과 명자 씨가 해파랑길이 아닌 7번국도로 통일안보공원에 가는 일이 발생했다.
대진어촌계 활어센터에서 대진항까지 바다 쪽으로 설치된 해안안전구조물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색이 차례로 칠해져 항구의 이미지를 따뜻하게 해 주었고, 대진항 해상공원 옆 바다에 놓여있는 사각 데트라포트에도 빨·주·노·초의 네 가지 색으로 예쁘게 칠해져 있어 보기가 좋다.(17:40)
강 과장과 나를 제외한 네 명의 회원은 이날 총 30km를 넘는 거리를 탐방을 해야하다보니 걸을수록 우리보다 많이 뒤처지고 있었다. 지난 8월 태풍으로 인해 바다로 뻗어있는 데크의 상판이 파손되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해상공원을 바라보며 우리는 휴식을 취하며 회원들을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었다(18:01)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해상공원과 대진항을 지나고, 우리나라의 동해안 최북단 대진등대와 간판에 최북단의 중국집이라고 쓰여 있는 고성반점을 지나, 해안가를 따라 가다보면 금강산콘도가 나온다.(18:23) 이곳을 지나 조금 가다보면 오늘의 종착지인 49구간 종점 통일안보공원이다.
18시 30분 종착지 도착해 해파랑길 50구간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차를 몰고 역방향으로 가면서 명자 씨에게 연락을 취하니, 준하 씨와 함께 길을 잘못 들어 7번국도로 걸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영호, 필성 씨는 대진항에서부터 뒤처져서 오고 있다고 했다. 바로 필성 씨에게 연락을 하니, 두 사람은 금강산콘도 옆 바닷길을 걷고 있다고 하여 대진1리 해변에서 금강산콘도 앞 도로로 올라오는 길목에서 차를 대고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를 않아 차를 몰고 금강산콘도 앞을 지나가니 콘도너머 해안가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두 사람을 태우고 다시 통일안보공원 입구로 달려가 그곳에 도착한 명자 씨와 준하 씨를 태우고(18:40) 가진항에 들려 강 과장 차를 몰고 숙소로 돌아오니 19시 38분이다.
왕곡마을에서부터 걸은 회원 네 사람은 이날 걸은 걸음수가 54,000보를 넘게 걸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모두가 하나같았다.
비에 젖은 몸을 깨끗이 씻고 말린 다음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몸을 씻고 내려온 명자 씨와 필성 씨가 장어를 굽기 시작했고, 모두가 씻기가 마쳐졌을 때 차돌박이가 구워지기 시작됐고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술이라 술술 잘 넘어간다고 했던가? 피곤한데도 장어와 차돌박이 구이로 술을 마시니 술술 잘도 넘어갔다. 귀하고 맛있는 안주로 시작된 술자리는 시간가는 줄 몰랐지만 마지막 날만은 날짜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강 과장의 의견에 따라 자정이 되기 전에 술자리를 마쳤고, 내일은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7시에 기상하기로 했다.
늦게 일어나기로 했지만 모두가 7시 전에 일어나 설쳤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 43분 숙소를 나와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로 절반 정도 가고 있을 때 강 과장 차에 타고 있던 명자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명자 씨가 혼자 사용하던 방에 전화기를 나두고 나와 돌아가 찾아오느라고 숙소에서 지금 출발하고 있단다.
우리는 먼저 도착(09:16)하여 차안에서 강 과장 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강 과장 차는 9시 45분에 도착했고, 우리는 출입신고를 하면서 1인당 입장료 3천원과 주차비 5천원을 지급하고 출입증을 받았다.
10시가 넘어서 출발하라는 출입신고소 직원의 말에 우리는 걷지 않고 차로 바로 가기로 하고, 10시 1분에 출발하여 통일전망대 차량출입통제소인 제진검문소를 통과하여 전망대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DMZ박물관 입구에는 우리가 찾은 날이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고, 통일전망대 주차장에는 10시 15분에 도착했다.
먼저 전망대 건물 옆 데크로 올라가서 북녘을 향해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며 건강하게 이곳까지 올 수 있음에 감사했다.
자리를 옮겨 구 통일전망대 옆에 새로 신축한 통일전망타워 앞에서 기념사진들을 찍고 통일전망타워로 올라가 더 넓은 북녘 땅을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전망타워에서 내려와서는 전망대 주변 산하의 풍경과 조형물들을 눈과 가슴에 담고는 6.25체험관을 들렸다 나오니 11시 43분이다.
통일전망대를 빠져나와 곧 부처님 오신 날도 있고 해서 인근 고성군 거진읍 금강산에 있는 삼국시대 고찰 건봉사를 찾기로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건봉사는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고찰로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고 있었다.
한때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건봉사는 법흥왕 7년(520년)에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킨 곳이기도 하다. 1878년 건봉산에 큰불이 나면서 당시 건봉사의 건물 중 3천 칸이 소실되었다고 하며, 그 뒤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단지 절 입구의 불이문만 남아 있고, 절터와 대웅전 사이 좁은 계곡에는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라 하는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 그나마 형상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란다.
12시 16분 건봉사에 도착, 불이문을 통과하여 염불원과 대웅전, 독성각, 적멸보궁 등을 둘러보았고, 특히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절로서 진신 치아사리 총 15과 중 스리랑카의 불치사에 3과가 있고, 나머지 12과가 건봉사에서 보관되어 오다가 문화재 도굴꾼들이 훔쳐갔다가 꿈에 나타난 부처님의 꾸짖음에 도굴꾼으로부터 8과는 돌아오고, 4과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으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안내되어 있다.
불심이 깊은 강 과장과 필성 씨는 들르는 곳마다 삼배의 절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경내를 둘러보고 속초 아바이마을의 유명한 회국수를 먹기 위해 아바이회국수집으로 향했고,(13:18) 14시 정각에 아바이회국수집에 도착했지만 앞서 출발한 강 과장 일행은 도착하지 않았다.
양을 많이 달라는 말과 함께 회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 고영호 회원이 막걸리를 시키려는 것을 말렸으나 현직인 이준하 회장에게 오늘 월급날이니 막걸리 한 병 사 주면 안 되겠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한 병을 시켜 맛을 보니 맛이 좋았고, 더 마시고 싶었으나 운전을 해야 해서 참았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 강 과장 차가 도착해 회원들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먹음직스럽게 회국수가 큰 스텐사발에 한 가득 담겨져 나왔고, 얼큰하고 맛있었으며,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권해볼 만한 음식이었다.
이준하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회원들은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2시 45분에 식당에서 나왔다.
강 과장의 차를 타고 있던 필성 씨를 보경사 입구에서 내차에 옮겨 태우기로 하고 한 차에 세 사람씩 타고 우리는 보경사로 향해 출발하였다.
우리가 보경사 휴게소에 도착한 후 30분이 넘게 지나서야(17:43~18:15) 강 과장의 차가 도착했다. 젊은 사람도 꺼리는 운전을 하며 탐방을 했으니 오죽 피곤했을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필성 씨가 차를 옮겨 타자마자 출발하여 집으로 가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작동했는데. 이놈의 네비게이션이 동해고속도로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바람에 청룡동과 구서동에 내려줄 회원들을 위해 유턴하고 다른 길을 달리다 겨우 경주톨게이트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부산으로 올 수 있었다.
세 사람을 차례대로 집 가까운 곳에 내려주고 집에 도착하니 8시 20분이다.
탐방을 마쳤다는 생각에 초저녁에는 잠도 잘 안 오더니만 안도감에 긴장감이 풀리다보니 피로가 엄습해 와 다음날은 늦잠까지 자게 되었다.
해파랑길 모두가 그렇겠지만 이번 마지막 탐방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3일 중 이틀은 비가오고 둘째 날은 세찬 비바람으로 걷기조차 힘든 탐방이었는데도 똘똘 뭉쳐 서로 위로하며 이겨냈다는 것으로 정말 대단하다.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불평 없이 희로애락을 함께해 준 여러 회원님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며,
특히 젊은 사람도 꺼리는 운전을 해주신 강예구 과장님, 소주와 새벽 일찍부터 샌드위치를 준비해 제공해 주신 김명자 회원님, 그리고 탐방경비 일부를 지원해 준 등마루산악회 이준하 회장님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없이 힘차게 밀려오는 푸른 동해바다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해파랑길 종주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거듭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