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영적전투대상 26 |
제목 | 신도(神道; Shintoism)①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 나타난 신도의 사상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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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세계복음화 신문 2005년 8월 2일 |
모든 자연물에 혼 · 령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
▶이번 달에는 전 세계 렘넌트들이 한 해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계렘넌트대회가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21세기 파수꾼”이라는 총 주제를 가지고 개최된다. 수많은 렘넌트들이 일본을 방문하는 이번 대회가 그 땅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이 결박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이번 호에서는 우리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원령공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작품 속에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인 신도(神道) 사상이 어떻게 숨어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 만화영화에 나오는 정령, 귀신, 초자연적 세계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전통종교, 신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도는 일본 민족의 ‘신(神)’ 관념에 근거하여 일본에서 발생하고 주로 일본인 사이에서 전개된 전통적인 종교적 실천과 그것을 지탱하는 생활태도 및 이념을 말한다. 일본의 신은 ‘가미’(かみ)라고 불린다. 그런데 일본의 ‘가미’의 개념은 신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성스러운 힘이나 초월적인 권능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는 모든 존재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일본의 신개념은 다신교(Polytheism)라기 보다는 ‘정령신앙’에 기초한 ‘애니미즘’(Animism : 동물, 식물, 자연 현상 속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종교적인 사고방식)의 일종이다. 신도에서 신은 일반적으로 原始神(원시신), 自然神(자연신), 人間神(인간신)으로 나누어진다. 원시신은 세계의 창조에 관여한 신이지만, 그리스 신화의 ‘크로누스(χρονο?, Kronos)’처럼 다음 세대의 신들인 자연신들을 창출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자연신은 자연계에 있어 추상적인 대상, 즉 생장과 성장의 신의 개념으로, 아마데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와 같은 태양신이다. 현인신은 인간을 신격화한 것이다.
신도는 초기에는 창시자도 교리도 없었으나,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신전을 짓고 교리를 가르치게 됐다. 현재 신사는 일본 전국에 8만 군데가 있고, 신도 수는 1억 명이 넘어 전체 인구의 90%에 이른다. 하쓰모데(はつもうで : 새해 들어 처음으로 신불을 참배함)나 결혼식 같은 때는 신사에 가는 사람이 많고 현대적인 호텔 안에도 결혼식을 위해 자그마한 신사가 만들어져 있어, 그 곳에서 신주가 축사를 읽어 준다. 도리이(鳥居, とりい : 신사 입구에 세운 기둥 문)는 신사의 상징이며 도시에서는 신사가 자취를 감춘 것처럼 보이지만, 빌딩 옥상과 같은 뜻밖의 장소에 도리이가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일본인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신도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일본인들은 아무거나 믿는다”라고 말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집 앞의 나무도 믿고, 물도 믿고, 죽은 사람도 믿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다 믿는다. 실제로 일본인에게는 모든 것이 신이 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산에는 산신(山神), 밭에는 밭신(田神), 불이 있는 곳에는 화신(火神), 연못이나 우물에는 수신(水神), 주택에는 집신(지방에 따라 地神, 地主神), 도로 경계에는 도조신(道祖神)이나 석신(石神)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나무, 돌, 태양과 같은 자연 만물이 그들의 신이 될 수 있다. 사람도 죽으면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 살아있는 사람이 신이 되기도 한다. 천황이나 영웅 또는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들은 그들이 생존하고 있을 때에도 신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2차 세계대전 후 천황이 ‘인간선언’을 할 정도로, 다른 민족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신으로서의 천황’ 숭배가 일본인에게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의 대명사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는 우리 한국에도 열광적 팬을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작가인데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과 자연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에서 일본인들의 종교관을 잘 엿볼 수 있다.
제작기간 3년, 제작비 20억 엔을 들여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내어놓은 『원령공주(怨靈公主, 원제 : もののけ姬)』(모노노케라는 일본어가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라는 뜻)는 1997년 7월 12일 개봉되어 4개월 만에 일본에서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배경을 무로마치(室町)시대(1333∼1568)의 일본으로 정한 이 작품에서 미야자키는 꾸준한 자신의 철학인 ‘인간과 자연의 상생(相生)’을 역설했다. 배경이 가지는 의미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일본이 철기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일본이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한 시기도 무로마치 시대라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일본 고유의 만물신 개념을 접합시켜 만든 이 작품은 자연의 힘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확고하게 정립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이란 최고의 존재이며 신에게서 선택받은 유일한 존재”라는 개념에 대한 미야자키 자신의 반감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것이다. 수백 년 전의 일본을 배경으로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숲에서 근대화의 과정으로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들과 필사적으로 숲을 지키려는 신들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으로 그린 것이다. 이 영화에서 신은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된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 속에서 인간처럼 상처입고 괴로워하는 신은, 인간과 다르지 않다. 원령 공주는 철저하게 자연신이 존재하는 자연, 즉 신도에 맞추어져 있다. ‘자연에 대한 외경’,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이라는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신도사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모로’와 같은 자연신을 비롯한 자연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재앙신과 저주, 저주가 풀리고 신을 섬기면 다시 행복해지려는 마을 사람들의 염원 등은 신도 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령 공주에서는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자 자연의 신이 보복하고, 그 모습을 통해서 자연신이 존재하고 온갖 산천, 초목 등에 모든 혼과 령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일본의 정령 신앙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제는 신과 인간과 자연은 함께 공존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으로써 자연주의 사상과 연결된 일본인들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이전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작품은 고대의 영웅 신화와 기독교의 메시아사상이 절묘하게 복합되었고, 이분법적인 선악의 갈등이 아닌 상대적 논리로 갈등을 전개하고 있다. 나우시카의 복잡한 텍스트는 새로운 문명사회에 대한 비전을 선보이는가 싶다가도 결말부에는 알 수 없는 미신과 심령주의로 빠지고 만다. 선과 악이 불분명한 세기말의 절망은 “당신의 동료들에게서 적을 분리해 내는 건 불가능해요”라고 외치게 한다. 바람의 정령도, 자연 자체도, 대립되는 존재나 개념까지 모두가 조화되어야 한다. 거대 산업 문명으로 황폐해지고 붕괴된 지구에 남은 건 독성의 균사를 내뿜는 곰팡이들과 ‘오무’ 와 같이 거대하게 변질되는 곤충류들과 소수의 인간뿐이다. 자연의 분노와 이를 이겨내고 살아가고자 길을 모색하는 여자 주인공과의 구조가 앞서 제시한 작품들과 닮아있다. 자연 신에 대한 분노와 그리고 저주에서 이미 자연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이러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길은 자연과의 친화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나우시카와 마을 사람들의 사고에서 신도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은 신들의 세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도 일본의 종교적, 사상적 배경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으며 여기서는 그것을 실내 및 외부 공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함으로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도가 일본의 민족 종교로 그들의 삶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보여주는데 실제로 일본의 번화한 도시에서도 몇 걸음만 걸으면 곧바로 신사나 절의 한적함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즉, 종교란 삶 속에 함께 어우러진 일상적인 것이라는 점인데, 치히로가 이사 겸 전학을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에서 신사로 들어가는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이러한 일본인의 의식이 잘 들어난다. 도로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신사, 즉 인간의 생활 속에 가까운 신도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그 앞에서 행동하는 치히로를 비롯한 가족들의 동작에서 신도자로서의 면모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두드러짐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신들을 만날 수 있다(심지어 오물 신까지). 특정의 절대적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주변의 많은 것들로부터 신앙의 대상을 찾아왔던 것이다.
치히로가 빠져든 미지의 세계에서는 토지신이나 다양한 하급신, 반 요괴와 도깨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수많은 신들이 밤낮이고 줄을 지어 찾는 곳이 있는데, 바로 목욕탕이 그곳이다. 목욕탕에서 신들은 돈을 내고 사람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을 즐긴다. 신을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처럼 목욕을 즐기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곳은 옛날부터 이 나라에 살던 영혼들이 병과 상처를 고치는 온천마을로 치히로가 맞서게 될 신, 령 등도 역시 모두 ‘물’에 집중 되어있다. 그녀가 싸움을 벌이고 상처를 받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곳에서도 물은 빠지지 않는다. 특히 친구인 ‘하쿠’는 물의 정령으로 물을 의인화하여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하쿠에게 신적인 능력을 가미하여 보는 이에게 하여금 신성스러움을 느끼게끔 한다. 즉 자연물에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여기는 신도사상은 자연물에 대한 믿음이 이 작품에서 ‘물’로 정해지고 물을 중심으로 믿음이 성립되고 파괴되고 다시 치유 받는 순환을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신은 배경이 되고 주제가 되고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기둥이 된다. 영화 끝에 나오는 오물의 신, 강의 신, 얼굴 없는 신 등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만물들의 모습을 의인화시켜 보여주면 특히 그들이 인간만큼 고통과 아픔을 겪어왔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이 작품에는 수많은 신들의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낸 상상력과, 그 신들의 캐릭터들이 알맞은 성격을 부여받아 위치하고 있으며 그러한 신들은 특히 신도사상에서 비롯된 자연물과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들어 지는 수많은 신들, 일본인에게 신은 요즘도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인물이 어릴때부터 일본의 종교 즉 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자연스럽게 신도사상이 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인들, 특히 애니메이션의 주 소비층인 청소년들에게 그의 사상이 심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영적인 문제가 따른다는 것은 자명한 일, 그렇다면 태영아 때부터 복음사상으로 물든 우리 렘넌트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나 드라마, 인터넷 게임 등을 만든다면 어떤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인가?
21세기 귀신문화, 흑암문화로부터 전 세계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할 ‘21세기 파수꾼’들로 이번 렘넌트대회에 모여들 우리의 미래 사역자들을 통해 일본의 흑암이 꺾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그리스도의 문화를 꽃 피우게 될 전문성의 응답을 받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김성호목사 · 인터넷총국장 · 대구 제일사랑교회 담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