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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고현 출신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박숙이 할머니가 지난 6일 저녁 8시30분께 남해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3년 전부터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온 박숙이 할머니는 끝내 숙환을 이기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온의 땅으로 돌아갔다.
박 할머니는 1922년 남해군 고현면 관당 마을에서 태어나 남해에서 살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6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 남해군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숙이공원을 조성하고 박 할머니의 모습을 재현한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박 할머니는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있으면서도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 활동을 해왔다. 생전에 남해군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기 위해 매년 50만원에서 250만원에 이르는 장학금을 내놓기도 하면서 일본의 사죄를 받을 그날을 기다려왔다. 또 젊은이들을 만나 "일본이 우리 조선 사람 애를 많이 먹였다. 부국이었던 조선을 일본 놈이 와서 다 뺏어 갔다"며 "어찌 하든 공부 열심히 해서 일본 나라에 지지마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박숙이 할머니 장례식은 할머니가 2012년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이후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픔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등 폭넓은 사회활동을 한 점 등을 기려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시민사회장은 할머니를 보살펴 온 남해여성회와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 남해지역사회단체 등이 준비했다.
할머니의 빈소는 남해병원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이곳에는 남해여성회 등 시민사회단체가 할머니에 대한 기록물과 영상 등을 마련해 조문객들에게 할머니의 삶을 조명했으며, 여성가족부, 남해군, 남해군의회, 남해교육지원청 등이 근조화환 등을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했다.
여성가족부 강은희 장관도 이날 오후 3시40분께 관계공무원과 함께 빈소를 방문했다. 강 장관은 조문 후에 빈소를 찾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위안부 소녀상이 있는 숙이공원을 들렀다.
강 장관은 "할머님이 살아 계실 때 어려운 환경에서도 장학금을 주시는 등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 뜻에 늘 감사하게 생각해 왔는데 생전에 할머님을 보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장위원회는 7일 저녁 7시 장례식장에서 추모제를 지냈으며 8일 오전 10시 숙이공원에서 영결식을 통해 다시 한번 할머니의 아픔 삶을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겨나지 않아야 한다고 상기했다.
영결식은 고통의 세월을 보내신 박숙이 할머니의 혼을 달래드리는 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이수자 김선숙 선생의 진혼굿을 시작으로 박영일 군수, 박득주 군의회의장,일본군 위안부피해자와 함께하는 남해군민모임 이숙번 자원봉사자, 시민사회장례위원장 김정화 남해여성회장의 추모사와 김효윤 유족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참석자들의 헌화와 묵념 순으로 진행됐다.
박 할머니는 "남해 숙이공원 소녀상 아래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으나 할머니의 육신은 추모누리에서 화장돼 수목장됐다. 박숙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39명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