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촌초등학교
여기 교촌동에는 옛날에 진잠향교가 있었어요. 아니 지금도 있어요. 그래서 향교말 또는 교촌(校村)이라고 했어요. 향교가 오늘날 중등학교잖아요.
그리고 이곳 교촌동 북쪽에는 7개의 바위가 마치 북두칠성의 형상을 갖추고 있어요.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매년 칠월칠석날 이곳에서 당재를 지내고 있어요. 이 마을 당재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언젠가부터 중단되었었는데 마을에 자꾸 좋지 않은 일이 자주 발생하자 최근 몇 년전부터 다시 지내기 시작했대요. 그러자 마을에 나쁜 일이 안 생긴데요.
그런데 이 칠성바위는 사실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예요. 정식 명칭은 칠성당지석묘군이예요. 다 아시죠? 전세계 고인돌의 약 60%가 우리 한반도에 있다는 거. 그중 남한에는 강화와 화순 그리고 고창에 많이 있고,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는 것을. 우리 대전에도 몇기의 고인돌이 있어요. 비래동 비래사 가는 길 입구에도 한기 있어요.
그리고 이 칠성바위에는 이런 전설도 있어요. 옛날 교촌 마을에 사는 아낙이 아들을 못 낳아 근심하던 차, 칠성바위에 대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100일간 치성을 드렸더니 아들을 낳았다네요. 혹시 알아요? 필요하시면 한 번 빌어 보세요. 근데 저도 아들이지만 아들 별거 아니예요. 차라리 딸이....^^
대전대정초등학교
말 그대로 마을에 큰 우물이 있어서 한 우물, 또는 대정이라 불리던 마을이예요. 한밭이 대전되었듯이 한 우물도 대정이 되었어요. 옛날 이 마을에는 큰 샘이 두개나 있었답니다. 이름은 팽남샘과 한디샘이라고, 근데 이 우물이 얼마나 큰지 매년 한 사람씩 우물에 빠져 죽었고, 아무리 모진 가뭄에도 우물물이 마르지 않았답니다.
또한 이 마을 동쪽에는 원댕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옛날에 고을 원님이 살던 곳이랍니다. 근데 이 원님이 정사는 뒤로하고 정자를 짓고 매일 매일 낚시질을 하며 소일하였답니다. 그러다가 원님이 죽자 그날 밤 큰 폭우가 내리더니 그곳에 있던 큰 연못이 메워졌다하여 그후 마을 사람들이 여기에 원당(願堂)을 짓고 소원 성취를 빌었다고 합니다. 원님이 소요하고 마을 사람들이 원당을 만든 마을이라 하여 ‘원댕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학하초등학교
이곳은 학이 내려앉는 형국이라 하여 학하동(鶴下洞)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옛날 이곳 학하동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했던 숲이었데요. 그래서 이곳 송림에 수많은 학이 날아들었다고 해요. 지금은 여기도 개발 바람이 불어 대단위 주택지가 들어서고 또 몇몇은 아파트 단지도 들어섰어요. 아파트 이름도‘학의 뜰’학하동에 어울리는 이름이예요.
그런데 이곳 학하동의 끝자리 수통골 입구에 언제 만들었는지 팔각정자(?) 하나 만들어 놓고 이름을 학무정(鶴舞亭)이라 했네요. 그 옆엔 돌로 학 형상도 하나 만들어 놓았고요. 그런데 원래 학무정이 이 자리에 있었지는 않았을 거예요. 문헌에 의하면 학무정은 학하동 서쪽에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는 학하동이 아니라 계산동이거든요. 그런데 학하동을 돌아다니다 보면 학하초등학교 앞길 위쪽 학하삼거리에서 수통골 쪽으로 한 300여미터 나아가면 교차로가 나오는데 이 교차로 이름이 학무정네거리예요. 아마도 이 교차로 근처가 예전 학무정 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학무정 흔적은 찾아 볼 수 가 없어요.
학하동 학무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고려말 이곳에 정착한 고씨가 소나무 열두 그루를 심고 정자를 지었는데 학들이 날아와 춤추고 놀기에 학무정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해요.
또 다른 설은 학하동 동쪽, 덜레기 마을은 목씨들의 집성촌으로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해 가뭄이 몹시 들어 다른 씨족들은 연명하기조차 어려웠는데, 한 탁발승이 목씨집에 와서는 시주를 하라며 목탁을 두드렸답니다. 그러자 목씨는 머슴에게 쇠똥을 가져오게 하여 중의 바랑에 넣어주며 문전박대를 했답니다. 그러자 스님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되돌아가며 목씨가 잘사는 이유는 마을 앞 탑 바위 덕분 이라고 중얼거렸데요.
그러자 그걸 들은 마을 총각이 곧바로 마을 입구에 있는 탑 바위로 가서 탑을 해체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하얀 학 두 마리가 날아올랐답니다. 그러자 총각은 깜짝 놀라 돌을 던졌는데 그중 한 마리가 그 돌에 맞아 날개를 다쳤는지 크게 한번 울부짖고는 마을의 남서쪽에 있는 들에 앉았데요. 그래서 그곳을 학(鶴)다리라 부르고, 나머지 한 마리는 좀 더 멀리 날아가 현재의 학하동(鶴下洞)으로 내려앉았데요. 그래서 그곳을 학하리(鶴下里)라 부른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암튼 이때 탑을 해체하고 그 안에 살던 학이 날아가자 그 후로 목씨가 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 겠지요.
대전계산초등학교
계산초등학교가 있는 계산동은 바로 앞 빈계산에서 유래 했어요. 우리말로 하면 닭 산이죠. 빈계산은 산모양이 암탉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예요. 계룡산에 사는 계룡은 숫용, 빈계산의 닭은 암탉. 빈계산의 빈(牝)자가 암컷 빈자예요. 그러니 이산에 사는 닭은 암탉이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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