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법
할렐루야!! 누구 못지 않은 죄인이 사랑에 대해서 글을 쓰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이렇게 글을 쓰면서 겸손에 대해서 깊이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모든 분이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용기를 내어서 죄와 맞서고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도 깊이 회개를 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랑은
고린도 전서 제13장 [개역개정]
[사랑]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공동 번역]
제13장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NIV]
Chapter13
1. 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but have not love,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 2. If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can fathom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have not love, I am nothing. 3.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surrender my body to the flames,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 4.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5.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6.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7.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8. Love never fails. But where there are prophecies, they will cease; where there are tongues, they will be stilled; where there is knowledge, it will pass away. 9.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10. but when perfection comes, the imperfect disappears. 11. When I was a child, I talked like a child, I thought like a child, I reasoned like a child. When I became a man, I put childish ways behind me. 12. Now we see but a poor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n we shall see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n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13.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2. 사랑하는 법
1) 회개
사랑은 위와 같이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보면서 자신의 모습과 대조를 해 봅니다. 자신의 모습과 성경의 말씀이 다르면 성경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회개는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삶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고 잘못에 대한 고백만으론 부족하고 반드시 위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한 말씀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회개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하라고 하셨고 세례 요한도 역시 회개를 맨 먼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형식적인 율법의 준수도 좋고 인간적인 도적적인 기준에 따른 선한 삶도 좋지만 그렇게 살고 있던 당시의 유대인에게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지금의 세상에서 국법을 준수하고 지금의 세상의 규범에 따라 잘 살고 있어도 역시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물질이 우선시 되는 풍조에서 많은 부를 누리며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사람도 역시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사랑하지 못하고 살던 사람이 위의 사랑의 정의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나가고 죄를 고백했지만 여전히 위의 사랑의 정의대로 살지를 못하고 있으면 회개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이 됩니다. 회개가 없으면 성령의 선물이 절대로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회개 자체가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2) 위의 말씀의 암송과 실천
사랑하는 것은 위의 말씀을 그대로 암송하고 늘 모든 삶의 문제에 있어서 위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선 사랑이 무엇인지 반드시 암송하고 묵상하고 그대로 해야 됩니다. 가령 성질이 급한 사람은 화를 급히 내는 자신의 성질을 죽이고 화를 더디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가 부족한 사람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잘 참아야 합니다. 예의가 없는 사람은 이제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친절히 대해야 합니다. 거만과 무례는 절대로 사랑이 아니며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기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이 잘 되면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야 되는데 배가 아프고 잘 되는 것을 깎아내리고 잘 되는 것을 막으려 하는 행동들을 다 포함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자랑은 자신의 공로는 주장하고 타인보다 자신의 나음을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많은 사람의 공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만은 스스로를 잘 났다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돈을 잘 버는 사람, 육체적으로 남보다 힘이 센 사람 등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천시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거만한 마음과 함께 멸망과 패망의 선봉이 되는 마음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하고 유리하게 판단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자신의 유익이 되는대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공직자가 사욕을 품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과 물질을 다루고 있는데 나라와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속을 악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속에 악한 생각이 생기면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속히 그런 생각을 지워야 합니다.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런 상태가 지속이 되면 생각대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악한 생각이 오면 즉시 물리치고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사랑을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불의가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경우 불의를 묵인하고 또 그 불의를 따라서 행하려는 욕구가 생깁니다. 오천만이 사는 좁은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가 허용하고 국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토지나 집을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보면 불의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의 소유가 필요 이상으로 증가하면 주변의 이웃은 틀림없이 어렵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의 구약의 법은 이러한 것을 강력하게 막고 있고 구약의 율법을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함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께서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오셔서 지키지 아니하여도 되는 제사 규정 외에는 반드시 다른 규정은 국법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키며 살아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신 말씀을 어떤 신학이 주장하고 어떤 설교가가 해도 된다고 설교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많은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예를 무시하고 믿으면 천국이고 행위는 상급이다란 주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쓴 모든 서신과 로마서의 잘못된 해석을 통해서 바울이 주장하지도 않은 주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 즉 4 복음서의 내용을 무시하는 것 등). 예수님께서 부자에게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하신 그 부자가 지금 이 시대에 한국에 사는 크리스천과 비 크리스천을 포함해서 약 순 재산 10억 이상이면 모두가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10억은 백만 달러로 미국의 기준으로 백만장자이고 우리가 400만 원씩 한 달에 수입이 있는 경우 약 50년 즉 한 인간이 일생을 그렇게 벌어야만 모을 수 있는 큰 금액이고 이는 세계적인 부의 기준으로 보아도 큰 부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온갖 부의 축적을 장려하고 독려하고 광고하는 것들은 부하려는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 다른 가르침입니다. 진리를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이고 성경 말씀을 즐거워한다는 것이고 올바른 것들을 기뻐한다는 것이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불의는 타인을 힘들게 하는 것들입니다. 모든 성경의 가르침은 구약과 신약을 다 포함해서 정의롭게 사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삶을 가르칩니다. 자본주의의 경제제도는 부의 창출에 탁월하며 청교도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에서 꽃이 피고 그 가르침은 성경의 부지런한 삶과 소유권의 인정과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보장과 닮은 부분도 있으나 분배를 개인의 의사에 거의 100%를 맡기고 있으니 내가 부를 소유하고 남에게 주지 않으면 국가가 강제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참고 인내한다고 했습니다. 불신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참되 모든 것을 참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또 참으라고 하십니다. 사랑은 참으로 참아야 하는 것이 많고 또 참고 인내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고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폭력이 난무하고 불법이 난무하고 세상의 핍박이 몰아쳐도 이를 폭력으로 응수하고 또 즉시 보복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신념과 다른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려 하던 모습에서 매 맞고 돌에 맞고 옥에 갇히고 멸시와 천대를 겪으면서도 참으면서 복음을 전했으며 수많은 크리스천이 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정의롭고 민족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행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3) 복음의 전파와 실천
이렇게 사랑을 하면서 또 사랑하는 방법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옥에 가고 영 벌에 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하고 사는 것은 절대로 사랑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친구나 이웃이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도 묵인하는 것은 사랑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님을 전해서 죽은 영혼을 살리고 구원을 해야 합니다. 가족, 친지, 친구, 이웃 구원 프로젝트를 반드시 되는 전도법(이 카페의 코너에 있음)에서 하고 있으니 동참하시고 그대로 하시면 멀리 있는 가족 구원이 일어나면 주변과 이웃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성장이 됩니다. 같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4) 율법에의 순종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율법 613 조문이 있는데 이 조문은 248개의 해야 하는 조항과 365개의 하지 말아야 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 5경을 읽으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잘 실천을 해야 되는데 이를 줄이면 10계명이 되고 또 이를 줄이면 2개의 큰 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정리가 됩니다. 즉 사랑을 하면 모든 율법을 잘 지키게 되고 사랑이 없으면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내용을 모르면 구체적인 상황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율법을 잘 이해하고 지키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 됩니다. (엡 5:3)
5)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 사랑법과 이웃의 사랑법
(1) 하나님 사랑법: 신명기 6장 4-5절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개역개정)
4.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 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5.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공동 번역)
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5.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NIV)
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5.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ine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ght (KJV)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여기에다가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마태 22:37) 위의 고전 13장의 말씀을 하나님께 대해서 마음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그리고 목숨과 뜻을 다해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계명의 1-4계명이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이고 또 세부적인 계명들이 있는데 이도 반드시 잘 지켜야 합니다.
교회에 충성하고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에서 선하게 사는 것도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 위와 같이 사랑해야 된다고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셨고 신약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실수를 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도 잘하고 봉사도 잘 하고 세상에서 돈도 잘 벌고 잘 살지만 고전 13장의 말씀과 같이 살지 못하면 사랑하지 않고 사는 것이 됩니다. 국법도 잘 순수하고 국가의 표창과 존경을 받을지라도 위와 같이 사랑을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님께 회개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즉 사랑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고 여전히 교회에서 세례도 받고 모든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다 해도 성령의 선물은 없습니다. 이러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에 성령을 그때 받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권능이 임하고 주변과 멀리 있는 곳에 증인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도할 생각도 이웃이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생각도 없고 행함도 없이 여전히 자신의 문제에 매달려 믿지 않을 때와 똑같이 신자가 살고 있다면 누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 주겠습니까? 성령을 받은 증거는 방언도 이에 대한 식별로 때로는 사용이 될 수도 있으나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증거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 즉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비록 성경에 대해서 잘 몰라도 자신이 성령을 받은 지 잘 몰라도 복음에 대한 열정이 샘솟고 또 복음을 잘 전하고 있으면 이분들은 대부분 성령을 받아서 그렇게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 대해서 교회만 벗어나면 부정적이 되면 이런 분을 어떤 분이든 반드시 성령을 받았는지를 진실 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만큼 정확한 기준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지식이 넘치는 시대라 로마서 강의를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시오, 그리스도시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도 인정도 없이 로마서를 강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에 대한 이해도 믿음도 체험도 없이 성경을 가르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없이 성령의 인도도 없는 지적인 가르침이 무슨 생명을 살리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모든 가르침(성경에 대해)은 부분적으로 맞을 수는 있으나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설명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은 모든 내용이 틀리게 되는 것이니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성령의 임하심은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잘 가르친 분들도 기다려서 받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잘 읽어 보시면 세례자 요한의 세례만 알고 받은 분도 나중에 사도를 통해서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세례를 받은 분도 성령의 세례를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도 바울의 안수로 성령을 받고 그리고 성경을 아볼로가 잘 가르치고 있었지만 성령세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가 바울의 제자 아굴라와 브리스 길라를 통해서 이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더 잘 전하게 된 경우도 있음을 보면서 우리가 베드로의 고백대로 (행전 2장 38절)과 같이 틀림없이 성령을 받을 수 있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에 따라서 시간이 필요하며 그때는 어떻다 단정을 지을 수 없음을 알 수가 있으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며 반드시 사모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지도 않은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그래서 능력도 없고 전도할 마음도 실천도 없이 사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바울이 성령을 받고 나중에 성령을 받지 않고 사는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성령의 세례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성령이 임하도록 한 것과 같이 이 시대에도 누군가는 틀림없이 그렇게 성령이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이 성도에게 아직 임하지도 아니하였는데 성령의 세례(선물)을 받았습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다음에 성령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6) 이웃에 대한 사랑법
구약과 신약의 이웃에 대한 사랑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구약 성경에 수많은 이웃을 사랑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10계명의 마지막 두 계명이 있고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 이웃에 대한 사랑 조항이 모세 5경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레위기에 이 조항이 있습니다.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8.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 18.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one of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 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즉 이웃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만큼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도 드물 것입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큰 사랑 중의 하나는 삶에서 늘 모범을 보이면서 지속적으로 사랑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일 것입니다. 전도자는 대부분의 분들이 이렇게 사랑하면서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이상에서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사랑에 대해서 더 잘 설명을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위와 같이 실천을 저도 하는데 아직도 많은 부족이 있지만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살려고 하면서 전합니다.
사랑은 말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즉 상대방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자신은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나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잘 사랑할 수가 있는데 확실한 것은 사랑은 실천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위의 사랑의 정의 고전 13장에서 실천이 없는 사랑의 정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반드시 행동해야 되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사랑은 하는 것과 아니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위와 같이 이해하고 반드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 믿음만으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넘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약삭 바르고, 나만 부자로 살면 되고 그래서 선점과 투기와 무제한의 재산의 소유가 비방이 없이 오히려 자랑이 되고 불의를 행하고 인정이 없어 약자가 죽어 넘어가도 모르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믿음도 잘 될 것이라는 믿음도 좋지만 사랑하자 반드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는 믿음과 부자도 사랑에 대한 부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생을 선한 일에 부자가 되세요라고 설교를 하신 목사님도 계십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입니까?
내가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운전을 해 보시면 양보하시는 분이 거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선 모든 크리스천은 운전하는데 있어서 방어운전하고 양보 운전하는 것부터 실천해 봅시다. 반드시 양보하고 방어운전하시기 바랍니다. 방어운전은 상대방이 내 차를 추월하고 내 차에 위협을 가하고 내가 운전하는 것을 방해하고 기분이 나쁘게 해도 같이 맞받아쳐서 나도 난폭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운전자의 운전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반응하며 교통질서를 잘 지키면서 하는 운전을 의미하고 양보운전은 급해서 혹은 다른 사정으로 나보다 빨리 가려는 운전자에게 길을 내주고 방향을 틀기 위해서 나의 앞으로 지시등을 켜고 진입하는 차량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서 내 차의 속도를 줄이고 상대방의 차량이 편안하게 진입해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이런 운전을 기본으로 알고 사는데 한국에 와서 난폭하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서 가장 인상 깊은 세 가지 중의 하나로 꼽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미군부대에서 운전면허를 땄는데 선배들의 배려와 가르침으로 우선 차를 모는 연습을 하고서 시험 날 시험장에 갔는데 시험관께서 제 차에 앉으시고 자신이 가라는 곳으로 운전을 하게 하며 건널목을 건널 때 보행자를 배려하는지 속도 규정은 지키는지 그리고 다른 교통질서도 잘 지키는지 차의 조작은 익숙한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안전하게 잘 태우고 가는지 등을 직접 확인한 후에 면허를 주었습니다. 반드시 양보와 방어운전을 해야 됩니다. 크리스천의 10%만 이를 지키면 교통사고 많이 줄고 운전도 편안해지고 세상도 참으로 넉넉해질 것입니다.
이 작은 실천으로도 세상은 참으로 여유롭고 안전해질 것입니다. 힘을 내서 같이 실천합시다.
7) 십자가를 묵상하며 사랑하는 법
어려움과 고난과 용서를 해야 될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묵상에 관해서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살다가 전처가 읽던 천주교에서 발행한 이 분야에 대한 책을 읽고서 조금 배웠습니다. 제 간증을 읽으신 분은 저의 과거와 사정에 대해서 잘 아시겠지만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전처와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났는데 몸도 마음도 너무나 아팠습니다. 아픈 제 마음이 보이는데 반으로 갈라져 끝부분만 조금 붙어있었습니다.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권사님께 기도를 부탁을 드려서 기도를 받고 홀로 성전에 있다가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주께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어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생각을 하니 주님의 몸은 무게가 있어 아래로 쳐지고 못이 손과 발에 박혀있으니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이 나면서 저보다도 훨씬 더 아프시고 힘이 드셨겠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그렇게 아프든 제 마음의 고통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다 순식간에 고통과 아픔이 사라진 것입니다. 힘이 들고 사랑하기 어려울 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힘을 얻고 치유를 받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잘 배우셔서 큰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사랑도 제대로 잘 못하는 사람이 감히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용서를 해야 사랑할 수 있고 용서를 하자면 용납이 되어야 하는데 이 분야에 대해서 좋은 책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했고 이로 인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자신의 죄 때문에 풀리지 않던 축복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복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사순절이라 아들이 40일 동안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성경 구절을 찾아서 적고 또 제게 체크도 받고 있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굴 탓할 처지가 절대로 되질 못합니다. 같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기도하시면서 모든 용서 못한 이들을 예수님을 바라보며 용서하시고 이를 통해서 내 죄를 용서받고 예비 된 모든 축복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사랑하는 법!
알려주신 말씀대로,
사순시기에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치유와 힘을 얻으며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아들과 함께하는 성경필사와 공부(!)는 성가정의 모습이군요
늘 축복속에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