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지도사 심화 제8강 올레12코스
답사 2024. 5. 1 용수포구 ~ 생이기정
오랜만에 서쪽 나들이다. 애조로를 타고 평화로를 거쳐 중산간 마을 조수1리를 지난다. 덩굴장미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했는지 길게 이어지는 붉은 오월의 장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용수포구에 다다르니 흐린 하늘 아래 차귀도가 반긴다. 잔잔한 듯 보여도 꽤 험한 바다를 품은 용수포구에는 슬픈 부부의 이야기가 서린 '절부암'이 있었다. 울창한 나무 엉덕(언덕)에 숨겨진 절부암은 모르면 그냥 지나치고 말리라.
큰 바위에 새겨진 절부암 글자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김대건 신부의 흔적이 있는 '용수성당'은 가톨릭 성지였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이며 순교자로 라파엘 호를 타고 귀국하다가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절부암과 김대건 신부를 뒤로하고 12코스를 역방향으로 걷는다. 이름 모를 정말 예쁜 꽃들이 흐드러진 해안 절경을 따라 걷는 길. 방사탑, 차귀도, 생이기정에 얽힌 이야기는 재밌고 적당한 바람과 온도는 종일 걷고만 싶은 날이었다. 문화탐방지도사 심화 과정에 웬 올레코스인가 싶었지만, 잠시나마 제주올레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책상 서랍에 잠자고 있을 제주올레 패스포트엔 스탬프 없는 깨끗한 길이 수두룩하다. 때마다 챙겨 나오지 못해서이고, 올레 완주 목적만으로 길을 나서는 경우가 몇 번 없기도 했다. 일과 나들이가 버무려진 일상으로 제주 몇 바퀴는 돌아 본 것 같지만, 아직도 발길 닿지 못하고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처음 장기간 걸은 것은 목적을 가진 행보였다. 새만금방조제 사업을 반대하며 눈보라 치는 바닷가를 행진하고, 삼보일배를 뒤따르고, 촛불을 받쳐 들고 걸었다. 그렇게 걷던 길에서 만나고 깨닫고 좌절하며 국토종단을 하고 백두대간을 올랐다.
인류학자 낸시 루이즈 프레이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순례자가 걷기 시작하는 순간 세계를 느끼는 방식 몇 가지가 한꺼번에 변하는데, 그 변화는 여정 내내 이어진다. 시간 감각이 바뀌고, 오감이 예민해지고, 자기 몸과 그것을 둘러싼 자연경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긴다. 걷는 경험 속에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사유가 된다.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기란 불가능해진다."
왜 걸었을까. 저항인가 성찰인가 깨달음을 찾는 순례인가. 어쩌면 다 사람의 욕망이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제주올레가 만들어진 배경에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 올레는 마을 길에서 집안으로 드나드는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그 어원은 문(門)을 뜻하는 순우리말 ‘오래’에서 파생하여 제주에서 ‘올레’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발음상 ‘제주에 올래?’라는 이중의 의미도 담고 있다.
걷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콘크리트보다는 흙길과 숲길을 찾고, 마소가 다니던 잊혀진 길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제주올레라는 이름으로 제주도 한 바퀴를 이었다. 놀멍 쉬멍 걷는 그 의미와 정신을 높게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간세, 리본, 캠페인 등 성공한 브랜드가 되어 세계 여러 나라가 제주 올레길로 연결되었다.
제주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는 일은 저자라는 가이드를 따라가는 일이다. 문화탐방지도사 과정 또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 가는 길이고 제주 올레길 역시 간세와 리본을 따라 제주를 여행하는 길이다. 우리가 항상 인도자의 말에 동의하고 무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 길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걷는 내내 다시 와서 12코스를 올곧게 걸어야지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늘 생각하고 늘 다시 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결국 걷고 있을 때가 많다. 그 길에서 오늘처럼 절부암을 보고 김대건 신부를 만나고 들꽃을 만지고 생이(새) 소리를 듣는다.
차귀도(막을 차, 돌아갈 귀)에 얽힌 진시황이 보낸 고종달 설화부터 당산봉 알봉 이중화산에 인근 지질 연대까지. 궁금한 것 많은 동기들 질문에도 막힘없는 해설을 경청하고 보니 어느새 배가 고픈 한낮이었다.
소리가 무척 예쁜 섬휘파람새가 지저귀는 생이기정(생이:새, 기정:절벽)에서 제주올레의 가치를 되돌아본 일정은 아쉽게 마무리되었다.
끝으로 문화탐방지도사 심화 과정을 밟는 우리는 이제 알기 위함 보다 남에게 전하고자 함이니, 안내판 하나 허투루 넘기지 말고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차귀도가 보이는 용수포구, 13코스 시작이면서 12코스 종착지점에서 시작
조선시대 용수리에 살던 고씨는 차귀도로 대나무를 하러 갔던 남편을 풍랑에 배가 뒤집히는 사고로 잃고 시신 조차 찾지 못했다. 식음을 전폐한 채 슬픔에 잠겨 남편의 시신을 찾아 헤매다가 고씨는 끝내 바닷가 엉덕 나무에 목을 매고 만다. 그 뒤 3일 만에 남편의 시체가 부인이 목을 멘 엉덕 아래로 떠오랐다고 한다. 조선시대 지조와 정조를 지켰던 절부 고씨를 기리며 1866년(고종 3) 판관 신재우가 바위에 '절부암'이라 새겨 후대에 기리게 하였다.
당산봉 생이기정 쪽으로 걷는 해안 올레12코스 역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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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술술읽으니 복습이 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후기로써 본론은 꿍쳐 두고 제 사유가 다인지라
아주 쬐끔 도움이 됐을까요^^;;
꿍친 본론에 근접한 검색 키워드
#절부암 #용수성지 #생이기정 #고종달 설화 #차귀도 #당산봉 #올레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
제주의 자연 역사 문화 생태 등이
그 길의 가치를 높여주고
올레 또한 제주의 가치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봐요.
멍~ 한 상태로 걷는 순간 아마도
치유의 시간이 시작될겁니다.
수고하셨어요~
만방에 견줄 이 없이
제주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리며
참 제주인을 배출하고 계신
천석꾼ㅋ 곶간 지기 님과의 시간은
힐링 그 잡채(자체)입니당 ㅎ
그냥 술술 읽어내려가는 글과 함께 사유도 있었어, 더 풍부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정리가 뇌리에 꽂힌니다.
"문화탐방지도사 심화 과정을 밟는 우리는 이제 알기 위함이 아니고 남에게 전하고자 함이니 안내판 하나 허투루 넘기지 말고 잘 살펴보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현님 문탐심화반이라니!!! 유려한 솜씨로 써내려간 글을 읽다 보니 제주 올레길을 걷고, 오름을 오르며 걷던 시간들이 떠오르네요. 땅이 나에게 기운을 주던 시간, 함께 걸은 분들의 다정함, 교수님이 귀에 쏙쏙 넣어준 제주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열공하삼. 조만간 공부 잘했는지 확인하러 가겠음.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처럼
'그리운 미소 혜연' 님
오월의 장미처럼 붉은 열정
오름의 지금처럼 싱그러운 벗이여
이봄의 햇살처럼 환한 미소
산딸처럼 곱고 종꽃처럼 향긋한
청초한 벗이여
댓글 한 자 한 자 반갑기 그지없어라
그때 그시간 우주적 만남
언제나 영롱하리오
~~ 손꼽아 기다리며 ~~
자주 결공이라 뜨끔 따끔 ㅎ
@이현 💖💖💖
이제 봤어요. 잘 읽었어요. 수고 많으셨어요^^다다음주에 꼭 얼굴보고 싶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