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당들에겐 폭탄주의 뇌관으로 애용되는 위스키는 허다한 증류주 가운데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 고급 술. 명품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축적된 경험과 제조자의 감각이 필요하다.
위스키는 엿기름 옥수수 등 곡물을 발효시켜 얻은 알코올 함유액(양조주)을 증류해 숙성시킨 술이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어렴풋이 알려진 증류의 원리는 아라비아 연금술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응용되기 시작했다.
중세 십자군전쟁을 거치며 이 기술을 전수한 유럽, 특히 북부 아일랜드인들은 맥주를 증류해 얻은 무색투명한 알코올을 '생명의 물'이라 부르며 술이라기보다는 의약품으로 취급했다. 위스키란 이름은 증류주를 이르는 라틴어 아쿠아비테(aquavitar·생명의 물)가 북아일랜드인들의 겔트어로 번역돼 우스게바(Uisge-beatha)로 불리다가 바뀐 것이다.
증류주의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알코올의 끓는 점(78℃)이 물의 끓는 점(100℃)보다 낮다는 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양조주를 가열하면 알코올이 물보다 먼저 증발하는데, 이를 적절한 방법으로 냉각시키면 본래의 양조주보다 알코올 농도가 훨씬 높은 액체를 얻을 수 있는 것. 양조주는 발효에 작용하는 미생물의 성질상 20% 이상의 알코올 농도를 내지 못하지만, 증류주는 원하는 만큼 알코올 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양조술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위스키는 곡물과 이를 발효 증류 숙성시키는 기본 기술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위스키를 생산하려면 고도의 축적된 과학적 경험과 제조자의 감각, 그리고 해당지역의 독특한 풍토가 있어야만 한다. 위스키는 산지에 따라 스카치, 아이리시, 아메리칸(버번 위스키), 캐나디언 위스키로 나뉘는데 이들 지역은 바로 양질의 위스키가 만들어질 조건을 두루 충족하는 곳이다. 국내에서 병입된 이른바 '국산 위스키'는 원액을 100% 수입한 것으로, 용기와 희석시 사용하는 물만 국산이어서 엄밀히 표현한다면 국내 보틀링(bottling) 제품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 나무통도 위스키의 재료
위스키가 럼이나 보드카 진 등 다른 증류주와 구분되는 것은 나무통의 숙성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위스키 제조에서는 나무통도 하나의 재료가 되는 셈. 오크통은 대개 떡갈나무나 참나무로 만드는데, 이 안에 술을 담은지 반년이 지나면 나무 사이의 기공을 통해 들어간 공기가 위스키와 접촉하면서 색깔이 황색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숙성이 진행됨에 따라 짙은 호박색의 완숙한 위스키로 변화된다. 오크통의 용량은 보통 180l와 250l인데, 통이 작을수록 숙성속도가 빠르다. 미국 2년, 캐나다 4년, 스카치 3년 등으로 각국은 법에 따라 숙성 저장 의무기간을 두고 있다.
상품으로 나온 위스키 가운데 프리미엄급은 몰트위스키 원액 중 최하가 12년 이상된 것이라야 하며, 이들 중 맨 마지막해를 제품의 연도로 표기한다. 보통 6~8년산 원액을 위주로 만드는 스탠더드급은 연도수를 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간 숙성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고, 성질에 따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오히려 술맛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 위스키의 대명사 스카치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을 가진 스코틀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 대부분이 제조되고 있는 위스키의 고향. 발렌타인, 앰배서더, 시바스 리걸, 로열 살루트, 커티샥, 글렌피딕, J&B, 조니워커, 패스포트, 올드 파, 화이트 호스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대부분의 위스키가 바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는 제조법에 따라 몰트위스키, 그레인위스키, 블렌디드위스키의 세 종류로 나뉜다. 몰트위스키는 엿기름(malt)만을 원료로 사용해 제조한다. 보리를 발아시켜 만든 엿기름을 건조할 때 피트(peat)라 불리는 이탄(泥炭)을 사용하며 단식 증류장치(pot still)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스코틀랜드 초원에 널려있는 풀인 피트는 연소할 때 자극이 강한 연기를 내뿜는데, 이것이 스모키플레이버란 특유의 훈향을 술맛에 내게 한다.
그레인(grain)위스키는 주로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해 여기에 약간의 엿기름을 가해서 당화시킨 것을 발효, 증류해 만든다. 3년 가량 숙성과정을 거친 이 술은 비교적 맛이 가벼워 몰트위스키와 혼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조한다. 그레인위스키의 제조원가는 몰트위스키의 절반 정도.
블렌디드(blended)위스키는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혼합한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위스키가 여기에 해당한다. 많게는 수십여종의 몰트위스키를 먼저 혼합해 풍미를 결정한 뒤 여기에 그레인위스키를 섞어 제품으로 만든다. 술맛은 이들의 배합 비율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각 제조사의 영업비밀이다. 몰트위스키가 많이 함유될수록 특색 있는(가격도 비싼) 위스키.
▶ 아이리시 위스키
아일랜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whisky라 표기하는 것과 구분해 자신들의 위스키 상표에는 whiskey라 쓰기를 고집한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제조공법 면에서 스카치위스키와 구분된다. 스카치위스키의 원료가 100% 맥아인데 비해 아이리시위스키는 발아시킨 보리 25~50%에 발아하지 않은 보리, 귀리, 호밀(rye) 등을 섞어 원료로 사용한다. 즉 원료면에서 볼 때 그레인 위스키에 가까운 편. 향기도 스카치 몰트위스키보다 가볍다.
스카치위스키가 피트향이 술에 배이는 반면 아이리시는 원료인 곡류를 솥 안에 밀폐한 채 석탄으로 건조시키기 때문에 향이 배이지 않는다. 스카치위스키가 두번의 증류를 거치는 반면 아이리시위스키는 반드시 3회 연속으로 행해지는 것도 차이점.
아이리시위스키는 8군데의 증류소에서 230여종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제임슨이나 올드 부시밀스, 존 파워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아이리시위스키는 생크림과 함께 아이리시 커피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재료이기도 하다.
▶ 미국 역사와 함께 시작된 옥수수술 버번
버번 위스키는 미국 켄터키주의 버번 카운티에서 만드는 술이다. 원래 이 지방에는 프랑스에서 건너와 부르봉(bourbon)왕조를 그리워하는 주민들이 많아 술이름에 지명을 붙였다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버번보다는 켄터키위스키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이술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공식 기점은 1789년으로, 이 해는 마침 조지 워싱턴이 초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해이기도 하다.
버번의 원료는 옥수수가 51% 이상이며 호밀과 보리 맥아 등을 쓴다. 이것은 연속식 증류기에서 40~80도로 증류한 다음 속을 태운 새로운 화이트오크통에 넣어 2년 이상 담았다가 시장에 내놓는다. 맛이 부드러운 버번의 대명사 짐빔을 비롯해 와일드 터키, 얼리 타임스 등이 버번 위스키의 대표 상품들.
▶ 캐나디안 위스키
광대한 지역에서 호밀 옥수수 대맥 등 모든 곡류를 재배하는 캐나다는 위스키 생산대국이다. 호밀과 옥수수를 원료로 한 몰트위스키를 블렌딩한 캐나디안 위스키는 버번위스키보다 짙으면서도 전체적으로 가벼운 것이 특징. 순한 술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맞아 최근 세계시장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온타리오호수 주변에 집결한 위스키 공장들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입맛을 맞춘 제품을 많이 생산하는데, 버번 위스키에 비해 호밀 사용량이 많은 것이 특징.
19세기말 이래 영국왕실에 납품하고 있어 레이블에 왕실 문장이 표시된 캐나디안 클럽을 비롯해,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그램사의 주력제품인 시그램스 V.O와 크라운 로열 등이 대표적이다.
'위스키 대명사' 조니 워커의 모든 것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위스키 하면 떠오르는 상품은 단연 조니 워커. 실크햇을 비스듬이 쓰고 지팡이를 든 멋쟁이 신사 그림으로 친숙한 이 위스키가 인기를 끈 것은 궁정동의 '그때 그 사건'을 계기로 유명세를 탄 시바스 리걸보다도 먼저다.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의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 역시 조니 워커다.
이 위스키는 약 40여종의 몰트와 그레인을 블렌딩하는데, 특히 '빨간 딱지'(레드 레이블)는 스카치 위스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레드보다 피트향이 진한 블랙 레이블은 12년 이상 숙성된 몰트위스키를 사용하는데, 94년 스카치위스키 탄생 500주년 기념 품평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편 블루 레이블은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되는 모든 병에 고유번호가 부여되는 조니워커 최고의 상품이다.
위스키의 색깔은 세금 탓
증류수가 무색을 띠듯 증류주 역시 원래는 무색 투명해야 정상. 그러나 요즘 우리가 즐기는 위스키는 농담의 차이가 있긴 해도 엷은 호박색을 띠고 있다.
18세기 말 영국은 프랑스와의 7년전쟁, 식민지 미국의 독립운동으로 재정이 매우 곤궁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정책은 세금 인상. 당시 영국정부는 자그마치 15배를 인상했다. 정부의 지나친 조치에 위스키업자들이 발끈한 것은 당연한 일. 이들은 인적이 드문 산 속으로 들어가 밀조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산속인 까닭에 이들이 증류 과정에 사용할 수 있는 연료는 이탄 뿐이었고, 운반에는 셰리(알코올 강화 화이트와인)를 담았던 오크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매매조차 드러내놓고 할 처지가 아니어서 집에서 얼마간을 묵혀야 했다. 이에 따라 무색투명해야 할 액체가 감미로운 향기와 함께 아름다운 호박색으로 변해버리고 맛도 일품이 됐으니, 업자들은 세금 덕에 새로운 위스키 제조법을 얻은 셈.
위스키 100배 즐기기
스카치 위스키나 아이리시 위스키는 온더락스나 스카치소다, 스카치워터를 더해 마시면 원래의 부드러운 맛과 향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서양인 가운데는 아이리시 위스키에 우유를 섞는 이들도 없지 않다.
옥수수의 강렬한 맛과 진한 향기가 배어 있는 버번위스키는 술 자체가 달기 때문에 달콤한 콜라나 사이다 등 발포성 청량음료와 섞는 것이 제격. 카나디언 위스키는 가볍고 부드러워 어떤 음료와도 잘 어울린다. 흔히 백포도주의 안주로 알려진 연어는 프리미엄급 위스키와 함께 어울리면 오묘한 술맛과 물고기의 감칠맛이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