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17-26
스스로 팔린 아합 / 김영주 목사
1.서론
고속도로 운전 시 옆 차들을 따라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과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옆 차들만 보지 말고, 속도계를 자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준은 ‘옆 차’들이 아니고 내 차에 달려있는 속도계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누가 옆에서 어떻게 하느냐 보다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까딱 하면 남의 말에 넘어가 믿음에서 벗어나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예:
① 아담- 하와에게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인류에게 치명적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창2:16~17)“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비교(창3:6,12)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② 아브라함-사라에게 넘어가 여종 하갈과의 사이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창15:4~5)“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비교(창16:2,4)
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4“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③ 아나니아, 삽비라- 재산 숨기고 거짓말 했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행5:1~5)“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나님께서 분명한 말씀을 주셨는데도 옆에서 충동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린 나머지 인생의 큰 실수한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말이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 기준입니다. 사람들 의견 듣다가 낭패를 맛본 사람들 많습니다.
2. 본문의 아합
배경인 왕상21:1~16을 읽어보면 아합 왕이 어느 날 왕궁 옆에 있는 포도원을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누가 주인인가 알아보니 나봇이라는 사람이 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봇에게 사람 보내서, “네 포도원을 내게 주라. 그러면 더 좋은 포도원을 주든지 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조상이 남겨준 유산을 파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합이 드러누웠습니다. 21장 4절을 봅시다.
(왕상21:4)“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그의 부인인 이세벨이 소식을 듣고 와서 왜 그러십니까? 하면서 물어봤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서, “ 뭘 왕이 그런 것을 가지고 고민합니까? 내가 해결하겠습니다.” 하고는 나봇이 사는 마을 장로, 귀족들에게 편지를 보냤습니다. 지령을 내렸습니다. 사람을 사서 거짓 증인을 세우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모독했다고 해서 죽이라 했습니다. 성읍 장로, 귀인들은 이세벨이 무서워 그대로 했고, 나봇을 죽였습니다.
(왕상21:13)“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서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내려갔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서 아합 왕을 만나 아합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엘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네가 힘 있다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빼앗아”?(19절) - 너도 그대로 죽게 만들겠다.
②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내가 재앙을 내려 너와 네 집안을 쓸어버리겠다.”(20절)
③ “이 일을 주도한 이세벨도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하겠다”(23절)
3. 아합은 왜 그랬나?
1) 사명을 모르니까 헛된 것에 집착했습니다.
돈 있고, 힘 있고, 높은 자리 있을 때 제일 위험한 것은, 내가 원하는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위험할 때는, 성공의 꼭지 점에 있을 때입니다. 소인배가 성공하면 비극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없는 자가 높은 자리에 가면 여러 사람이 불행합니다. 세상에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 없는 성공’입니다. 왕으로서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르니까 궁 주변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나 뺏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냥 욕심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2절)“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이 포도원이 왕궁 가까이 있는데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 포도원 가져서 채소밭 만들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도서관을 짓든지 건물을 짓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포도원을 채소밭으로 만들어 싱싱한 채소를 먹고 싶었습니다. 돈을 준다고는 했지만 왕이라는 이유로 그냥 갖고 싶은 맘이 있었습니다. 남의 것이 좋아 보이니까 그냥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아합과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는 나봇이 대립합니다. 그런데 결국 아합이 힘으로 밀어붙여서 이겼습니다.
4. 아합의 문제
20절과 25절에 반복해서 지적하는 것은, 아합은 옆에서 충동할 때 스스로 팔려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20절)“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5절)“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아내 이세벨이 옆에서 충동질 할 때 그는 이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옆에서 꼬드겼다고 해도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하는데, 그 결정이 잘못되었고, 하나님은 그 책임을 본인에게 묻고 계십니다.
*이세벨은 왜 이런 충동질을 서슴없이 했나?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바알의 이름 뜻은 주인입니다. 이 신은 탐욕의 신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게 해주는 신이 바로 바알과 아세라 신입니다. 바알은 ‘주인’이 되는 신이요. 아세라는 풍요의 신입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 주인이 되니까 풍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신을 믿으면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여 원하는 모든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게 합니다. 내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입니다. 여기에는 윤리, 도덕, 질서, 상대에 대한 존중도 없습니다. 오직 ‘탐욕’ ‘성취’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신을 믿는 이세벨이니 나봇의 포도원이라고 해서 못 가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세벨 입장에서 들어보면 우스운 겁니다. 아니, 왕인데 왜 그걸 못 가져? 그 포도원도 내가 주인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옆에서 무슨 좋은 조언을 하겠습니까? 그까짓 것 죽이고 가져버려! 하는 식의 부정적이고 탐욕적 조언을 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신을 믿으면 남의 것도 내 것이고, 내가 주인이고, 불가능이 없고,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도 믿는 자들끼리 결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니면 서로 생각이 다르고 철학, 삶이 방식이 달라서 남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5. 하나님은 왜 아합에게 이 책임을 묻는가?
이것은 타인(他人)의 문제가 아닌 아합 자신의 문제입니다. 자기 스스로 탐욕에 자신을 팔아서 악을 선택한 것입니다.
1) 아합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나봇이, 이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입니다 하면, 멈춰야 하는데, 알고도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말겠다는 태도입니다. 이 죄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2) 분별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기도, 하나님의 말씀 외에 이성, 지식, 상식, 합리성 이런 것들이 영적 분별력의 요소들인데 이런 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다는 게 정상적 생각입니까? 그것도 부정한 방법으로?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죽이고 빼앗을 수 있습니까?
3) 양심의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내면의 양심이 ‘아니다’ 소리칠 때 그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예)불신자들도 그나마 양심이 있어 죄 짓고 나면 맘이 걸립니다. 그러다가 일 터지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의 소리는 고민과 갈등과 번민이 있게 합니다.
(21:4절)“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근심하고, 답답하고,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 하니’ 양심의 소리가 아합을 짓누르고 있는 시간입니다. 이 소리를 들었어야 하는데 안 들었습니다.
4) 충동질에 넘어갔습니다.
충동에 넘어갔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기울어 있는데 누가 옆에서 건드니까 저항 없이 못 이기는 척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하기 싫은데 누가 그럴듯한 이유(핑계) 거리를 제공하면 ‘옳다’하고 그 핑계를 붙잡고, 안 해버립니다. 충동도 문제이지만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자기 의지를 가지고 저항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내 이세벨의 충동에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세벨을 통해 접근해 온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사단은 항상 가장 가까운 사람, 거절하기 어려운 인간관계를 통해 접근해서 우리를 충동질 합니다. 여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왜 믿음, 분별력, 양심, 자신의 의지를 사용치 않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홀딱 넘어 갔느냐?’ 이것은 유혹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팔아 버린 것입니다.
우리 평생에 유혹을 항상 우리를 따라 옵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단은 와서 충동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