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公 元年(紀元前 494年)
元年春, 楚子圍蔡, 報柏擧也. 里而栽, 廣丈, 高倍. 夫屯晝夜九日, 如子西之素. 蔡人男女以辨. 使疆于江汝之間而還. 蔡於是乎請遷于吳. 吳王夫差敗越于夫椒, 報檇李也. 遂入越.
원년춘, 초자위채, 보백거야. 이이재, 광장, 고배. 부둔주야구일, 여자서지소. 채인남여이변. 사강우강여지간이환. 채어시호청천우오. 오왕부차패월우부초, 보취리야. 수입월.
[解釋] 애공 원년 봄에, 초나라 임금이 채나라의 도성을 포위하였으니, 이는 柏擧의 전역에 보복하려는 것이었다. 성곽에서 1리쯤 떨어진 곳에 판축을 높이 쌓아 둘러치는데, 담의 넓이가 1장이고, 높이는 2장이었다. 군사가 담장 안에 주둔하면서 채나라 군대를 방어하기를 주야 9일 동안이나 하였으니, 이는 초나라의 영윤 자서의 계획이 본래 9일에 이루어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蔡나라 사람의 남녀 양대로 나누어서 성에 나와 항복하였다. 초나라가 채나라를 양자강과 여수의 사이로 국도를 옮겨 분수를 지키게 하고 회군하여 왔다. 그러나 채나라는 또다시 반하여 오나라로 옮겨가기를 청하였다. 오나라 임금 부차가 夫椒에서 월나라의 군사를 격파하였으니, 이것은 추리에서의 실패를 보복한 것이다. 드디어 진군하여 월나라로 들어갔다.
越子以甲楯五千保于會稽, 使大夫種因吳大宰嚭以行成. 吳子將許之, 伍員曰 : 「不可. 臣聞之, 樹德莫如滋, 去疾莫如盡. 昔有過澆殺斟灌以伐斟鄩, 滅夏后相. 后緡方娠, 逃出自竇, 歸于有仍, 生少康焉. 爲仍牧正.
월자이갑순오천보우회계, 사대부종인오태재비이행성. 오자장허지, 오원왈 : 「불가. 신문지, 수덕막여자, 거질막여진. 석유과요살짐관이벌짐심, 멸하후상. 후민방신, 도출자두, 귀우유잉, 생소강언. 위잉목정.
[解釋] 월나라 임금은 이에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든 군사 5천 명을 끌고 물러가 회계산에 이르러 버티고 있으면서, 대부인 종을 시켜 오나라의 태재 비를 통하여 오나라 임금께 호평을 요구하게 하였다. 오나라 임금은 장차 허락하려 하는데, 伍員이 이렇게 말하였다. 「불가합니다. 신이 듣건대, '은덕을 베푸는 데는 많은 것만 같음이 없고, 악질를 제거하는 데는 깨끗이 뿌리를 빼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옛적에 過라는 나라의 澆가 斟灌이란 나라를 쳐 없애고 곧 斟鄩이라는 나라를 공격하여, 하후상을 멸망시켰습니다. 이때 하후상의 부인 后緡은 임신 중이었더니, 땅굴로 빠져 도망하여 나와, 친정인 有仍國으로 돌아가, 少康을 낳았습니다. 少康이 자라서 有仍國의 목마의 장관이 되었습니다.
惎澆能戒之, 澆使椒求之, 逃奔有虞, 爲之庖正, 以除其害. 虞思於是妻之以二姚, 而邑諸綸. 有田一成, 有衆一旅, 能布其德, 而兆其謀, 以收夏衆, 撫其官職, 使女艾諜澆, 使季杼誘豷. 遂滅過戈, 復禹之績, 祀夏配天, 不失舊物.
기요능계지, 요사초구지, 도분유우, 위지포정, 이제기해. 우사어시처지이이요, 이읍저륜. 유전일성, 유중일려, 능포기덕, 이조기모, 이수하중, 무기관직, 사여애첩요, 사계저유희. 수멸과과, 복우지적, 사하배천, 불실구물.
[解釋] 요가 해를 끼칠까 걱정하여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더니, 과연 澆가 저의 신하인 椒를 시켜 소강을 찾아 죽이려 하므로, 도망쳐 달아나 有虞國으로 가서, 庖正이 되어, 자신에 대한 박해를 무리 칠 수 있었습니다. 虞나라의 임금 虞思가 이에 두 딸 二姚를 소강에게 시집보내 사위를 삼고, 綸지방에 가서 도읍을 삼아 머물게 했다. 그랬더니 사방 10리의 전지를 이루어 영유하고, 5백 인의 백성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덕성을 널리 펴고, 지도력을 발휘하여, 하나라 여러 백성을, 도와 官職을 주고, 신하 女艾로 하여금 澆를 정찰하게 하고, 그의 아들 <季杼>를 시켜 요의 동생인 <豷>를 유인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요의 나라인 <過>와 豷의 나라인 <戈>를 멸망시키고서, 禹임금의 치적을 모두 회복하였으니, 夏의 조상을 제사하여 하늘에 배향 하는 등, 옛적의 일을 잃지 않았습니다.
今吳不如過, 而越大於少康. 或將豐之, 不亦難乎? 句踐能親而務施, 施不失人, 親不棄勞. 與我同壤, 而世爲仇讎. 於是乎克而弗取, 將又存之, 違天而長寇讎, 後雖悔之, 不可食已.
금오불여과, 이월대어소강. 혹장풍지, 불역난호? 구천능친이무시, 시불실인, 친불기로. 여아동양, 이세위구수. 어시호극이불취, 장우존지, 위천이장구수, 후수회지, 불가식이.
[解釋] 이제 우리 오나라는 과만 같지 못하고, 월나라는 소강보다 강대합니다. 그러니 장차 이와 화의를 하여 더욱 풍하게 하여 주려 하시니, 이 또한 오나라의 화란이 되지 않겠습니까? 구천이 백성을 잘 친애하고 은혜를 잘 베푸니, 베푸는 이는 사람을 잃지 않고, 친애하는 이는 조그마한 노력도 버리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월나라는 우리나라와 국경을 같이하고 있으면서, 대대로 원수를 맺어오고 있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지금 넉넉히 이겨 그 나라를 빼앗을 수가 있는데도 취하지 않고, 장차 또 보존하게 하여, 천명을 어기어 가면서 원수의 적국을 더욱 자라나게 하고 있으니, 이후에 비록 뉘우친다 하여도,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姬之衰也, 日可俟也? 介在蠻夷, 而長寇讎, 以是求伯, 必不行矣.」 弗聽, 退而告人曰 : 「越十年生聚, 而十年敎訓, 二十年之外, 吳其爲沼乎.」
희지쇠야, 일가사야? 개재만이, 이장구수, 이시구백, 필불행의.」 불청, 퇴이고인왈 : 「월십년생취, 이십년교훈, 이십년지외, 오기위소호.」
[解釋] 희성을 가진 우리 오나라가 쇠퇴하여 위태로울 것은, 너무나도 뻔하여 날을 헤아리며 기다릴 수가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만이의 중간에 끼어 있는, 원수를 길러 주고 있으니, 이러한 방법으로 천하의 패주가 되기를 구한다면, 반드시 이를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왕 부차는 허락하지 않으므로, 오원은 물러나와 옆 사람에게 말하기를, 「월나라가 10년 동안 모으고 10년 동안 교육하여 놓으면, 20년 후에는, 우리 오나라의 궁실은 무너져 연못이 되고 말 것이다.」고 하였다.
三月, 越及吳平. 吳入越, 不書, 吳不告慶, 越不告敗也. 夏四月, 齊侯衛侯救邯鄲, 圍五鹿. 吳之入楚也, 使召陳懷公. 懷公朝國人而問焉曰 : 「欲與楚者右, 欲與吳者左.」
삼월, 월급오평. 오입월, 불서, 오불고경, 월불고패야. 하사월, 제후위후구한단, 위오록. 오지입초야, 사소진회공. 회공조국인이문언왈 : 「욕여초자우, 욕여오자좌.」
[解釋] 3월에, 월나라와 오나라가 화평하였다. 오나라가 월나라에 진격한 것을, 경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오나라가 경하의 뜻을 노나라에 고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월나라도 패전의 까닭을 노나라에 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름 4월에, 제나라 임금과 위나라 임금은 邯鄲을 구하려고, 진나라의 五鹿지방을 포위하였다. 정공 4년에 오나라가 초나라로 공격하여 들어갈 때, 사람을 시켜 진나라 회공을 불렀다. 이때 회공은 귀족들을 불러놓고 묻기를, 「초나라에 동조할 사람은 오른쪽에 서고, 오나라에 동조할 사람은 왼쪽에 서라.」고 하였다.
陳人從田, 無田從黨. 逢滑當公而進曰 : 「臣聞, 國之興也以福, 其亡也以禍. 今吳未有福, 楚未有禍, 楚未可棄, 吳未可從. 而晉, 盟主也, 若以晉辭吳, 若何?」
진인종전, 무전종당. 봉활당공이진왈 : 「신문, 국지흥야이복, 기망야이화. 금오미유복, 초미유화, 초미가기, 오미가종. 이진, 맹주야, 약이진사오, 약하?」
[解釋] 그러자 진나라 사람들은 전지가 있는 사람은 그 땅의 위치를 따라 좌우로 나누고, 전지가 없는 사람은 친척을 따라 적당히 서게 되었다. 그러나 逢滑만은 좌우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진나라 희공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진은 듣건대 국가가 흥성할 때는 복의 징조가 있고, 쇠망할 때는 화란의 징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오나라에는 이러한 복이 있지 않고, 초나라에도 아무런 화란이 보이지 않으니, 초나라를 버릴 수도 없고, 오나라를 따를 수도 없습니다. 그런 중에 진나라는, 우리의 맹주이니, 진나라를 이유로 삼아서 오나라의 청을 물리침이, 어떠하겠습니까?」고 하였다.
公曰 : 「國勝君亡, 非禍而何?」 對曰 : 「國之有是多矣, 何必不復? 小國猶復, 況大國乎? 臣聞, 國之興也, 視民如傷. 是其福也. 其亡也, 以民爲土芥, 是其禍也.
공왈 : 「국승군망, 비화이하?」 대왈 : 「국지유시다의, 하필불부? 소국유부, 황대국호? 신문, 국지흥야, 시민여상. 시기복야. 기망야, 이민위토개, 시기화야.
[解釋] 이에 희공이 말하기를, 「초나라가 오나라에게 패하여 그 나라 임금이 도망하였으니, 화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봉활은 대답하기를, 「국가에 이러한 일쯤은 많이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부흥하지 못하겠습니까? 소국도 오히려 부흥하거든, 하물며 대국이겠습니까? 신은 듣건대, 나라가 흥할 때는, 백성 보기를 자기 수족을 상할까 두려워하는 것같이 합니다. 그러면 민심이 돌아오므로 이것이 복이 됩니다. 그러나 망할 때는, 백성을 흙이나 풀을 대하듯이 하므로, 이것이 화가 되는 것입니다.
楚雖無德, 亦不艾殺其民, 吳日敝於兵, 暴骨如莽, 而未見德焉. 天其或者正訓楚也, 禍之適吳, 其何日之有.」 陳侯從之. 及夫差克越, 乃修先君之怨. 秋八月, 吳侵陳, 修舊怨也.
초수무덕, 역불애살기민, 오일폐어병, 폭골여망, 이미견덕언. 천기혹자정훈초야, 화지적오, 기하일지유.」 진후종지. 급부차극월, 내수선군지원. 추팔월, 오침진, 수구원야.
[解釋] 초나라가 비록 덕은 없으나, 또한 그 백성을 베어 죽이지는 않고, 오나라는 항상 백성을 전란 중에 끌고 다녀, 백골이 풀더미 같이 널려 있는데도, 德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하늘이 혹시 초나라를 깨우쳐 가르치심이니, 禍亂이 오나라에 닥칠 것은, 어느 날인가 멀지 않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래서 진나라 임금은 이에 따랐다. 그래서 부차가 월나라를 이겨, 이내 선군 합려의 원한을 풀게 되었다. 가을 8월에, 吳나라가 陳나라를 침공하였으니, 옛날의 원망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
齊侯衛侯會于乾侯, 救范氏也. 師及齊師衛孔圉鮮虞人伐晉, 取棘蒲. 吳師在陳, 楚大夫皆懼曰 : 「闔廬惟能用其民, 以敗我於柏擧, 今聞其嗣又甚焉, 將若之何?」
제후위후회우간후, 구범씨야. 사급제사위공어선우인벌진, 취극포. 오사재진, 초대부개구왈 : 「합려유능용기민, 이패아어백거, 금문기사우심언, 장약지하?」
[解釋] 齊나라 임금과 衛나라 임금이 전후에서 회합하여, 范氏를 구하였다. 노나라의 군사가 제나라의 군사와 衛나라의 孔圉와 鮮虞 사람과 함께 진나라를 정벌하여, 棘蒲를 점령하였다. 吳나라의 군사가 그대로 진나라에 주둔하고 있을 때, 楚나라의 대부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오왕 闔廬가 그의 국민을 잘 부려서, 우리들이 柏擧에서 패했었는데, 이제 그 후사인 부차는 더 사납다 하니, 장차 어떻게 대처하리오?」라고 하였다.
子西曰 : 「二三子恤不相睦, 無患吳矣. 昔闔廬食不二味, 居不重席, 室不崇壇, 器不彤鏤, 宮室不觀, 舟車不飾, 衣服財用擇不取費. 在國, 天有菑癘, 親巡孤寡而共奇乏困, 在軍, 熟食者分而後敢食, 其所嘗者, 卒乘與焉, 勤恤其民, 而與之勞逸.
자서왈 : 「이삼자휼불상목, 무환오의. 석합려식불이미, 거부중석, 실불숭단, 기부동루, 궁실불관, 주거불식, 의복재용택불취비. 재국, 천유치려, 친순고과이공기핍곤, 재군, 숙식자분이후감식, 기소상자, 졸승여언, 근휼기민, 이여지노일.
[解釋] 子西는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대들은 서로 화목하지 못하는 것이라 걱정할 것이요, 오나라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소. 왜냐하면 옛적에 합려는 음식에 두 가지 반찬을 먹지 않고, 거처하는 데도 겹자리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집을 짓는 데도 단을 높이 돋우지 않았고, 기구에 붉은 꽃을 새기는 등의 조각을 하지 않았으며, 宮室에 대사를 만들지 않았고, 배와 수레는 전연 장식을 차리지 않았으며, 衣服 등 財用에 있어서는 견고한 것을 취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사용하지 않았소. 나라 안에, 불향하게도 천재나 전염병이 있을 때에는, 몸소 고아와 과부 등 딱한 사람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없는 물건을 도와주었으며, 군중에는, 좋은 음식은 모두 모든 장병들에게 나누어 먹이고 나서야 자기도 먹어, 그가 먹는 진미는, 사병들까지도 함께 먹게 하였으며, 항상 백성을 돌보아 어루만지고, 수고롭고 편안함을 한가지로 하였소.
是以民不罷勞, 死知不曠. 吾先大夫子常易之, 所以敗我也. 今聞夫差, 次有臺榭陂池焉, 宿有妃嬙嬪御焉, 一日之行, 所欲必成, 玩好必從, 珍異是聚, 觀樂是務, 視民如讎, 而用之日新, 夫先自敗也已, 安能敗我?」 冬十一月, 晉趙鞅伐朝歌.
시이민불피로, 사지불광. 오선대부자상역지, 소이패아야. 금문부차, 차유대사피지언, 숙유비장빈어언, 일일지행, 소욕필성, 완호필종, 진이시취, 관악시무, 시민여수, 이용지일신, 부선자패야이, 안능패아?」 동십일월, 진조앙벌조가.
[解釋] 이러하므로 백성들은 지쳐 피폐하지 않고, 주검도 내 버려지지 않았을 것인 줄로 알고 있었소. 그런데 우리 초나라의 先大夫 子常은 이와 반대로 잘못하였으므로, 우리들로 하여금 패하게하였던 것이오. 그러나 이제 듣건대 夫差는, 3일을 묵을 정도의 곳이면 臺榭와 연못의 경치가 있고, 하룻밤을 머무는 데도 妃嬙과 嬪御 등의 시봉하는 여인이 있으며, 1일의 출타에 있어서도,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이루고,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반드시 따랐으며, 진기하고 특이한 것을 모두 모아, 유람하며 즐기기를 힘쓰며, 백성을 원수와 같이 보아, 날로 전쟁으로 끌고 다니니, 대저 제 스스로 먼저 패망하여 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우리를 패망하게 하리오?」라고 하였다. 겨울 10월에, 晉나라 趙鞅이 朝歌를 토벌하니 范中行氏를 토벌하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