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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나발루 시편>
교토의 귀 무덤에서 외 9편
오세영
내 어릴 적
집에서 공연히 앙탈을 부리면
어머니께선 “순사가 온다” “에비*가 온다”
고 말씀하셔서
그때마다 정체모를 공포에 울음을 뚝
그치곤 했나니
그 무서운 에비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일본국日本國 교토시京都市 히기시마야구東山區 도요쿠니 신사豊國神社 앞
미미즈카耳塚,**
500여 년 전 동해 한쪽에
무단히 이웃나라를 침략한*** 섬나라 하나가 있어
양민 십이만 6천명을 학살하고 그 코를 베어
합사合舍한 곳.
내 평생 이 세상천지를 주유周遊하며 사는 동안
그 어디에서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듣도 보도 못했도다.
자고로 한국은 수 천 년에 걸쳐
그들에게 문자를 전수하고, 학문을 가르치고
의식주 생활의 지혜를 깨우치게 해
오늘의 일본을 만들어 주었건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무색하게
제자가 스승을
능욕, 강탈, 살해하였구나.
한국의 옛 속담에
털 없는 짐승은 키우지 말라하고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이라 했거니
이제 부터는 항상 눈을 크게
치켜뜨고
이 섬나라를 지켜볼 일이다.
*에비: ‘에비’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존재’라는 말로 예컨대 ‘계속 울면 에비가 온단다’, ‘에비, 이런 거 만지면 안 된다.’ 등의 경우에 쓰인다. 그런데 어원적으로 ‘에비’는 ‘耳鼻爺이비야’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耳’와 ‘코鼻’와 ‘사람爺’이라는 단어들로 결합된 합성어로 ‘이비야’는 곧 ‘귀나 코를 베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왜군은 전리품으로 한국인의 수급은 물론 한국인의 귀나 코를 베어 이 전쟁을 일으킨 그들의 관백關白(일본의 왕을 대리하여 정무를 관장하는 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풍신수길에게 바쳤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이나 왜군의 포로가 되었다 돌아온 강항姜沆의 『간양록看羊錄』에도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지만 이 전쟁에 종군했던 일본인 승려 게이넨慶念은 그의 임진왜란 종군일지인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에 이렇게 쓰고 있다. "역사상 이 전쟁처럼 슬픈 것은 없다. 일본 병사들은 가는 곳마다 살육을 일삼았고 불을 지르니 그 연기가 고을 고을 마다 가득하였다. 조선 사람의 머리와 코를 잘라 대바구니에 담으니 대바구니가 가득했고 병사들은 모두 피투성이가 된 바구니를 허리춤에 달고 싸웠다.” 그런 까닭에 일제 강점기 시기에도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일본 순사巡査(일본 경찰)를 ‘에비’라 부르기도 했다. ‘어비’, ‘에비야’, ‘이비야’, ‘어비야’ 등 지역마다 조금씩 그 명칭이 다르다.
**미미즈카Mimizuka耳塚: ‘코무덤’. 글자 자체로는 ‘귀를 묻은 무덤’을 뜻하는 말이지만 실제 묻힌 것은 대부분 사람의 코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조선의 생사람이나 죽인 자들의 코를 베어 일본으로 가져가 묻은 무덤이다. 후대에 ‘코무덤鼻塚’이라는 명칭이 섬뜩하다고 하여 ‘귀무덤耳塚’이라는 말로 바꾸었다고 한다. 일본에는 이 같은 코무덤이 수십 개가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교토京都시 히가시야마구東山区의 토요쿠니신사豊国神社(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받드는 신사)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이총에는 조선인 12만 6000명의 코가 묻혀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일본을 통일한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조선朝鮮의 선조宣祖 연간 1592년부터 7년까지 한반도를 침략한 전쟁.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 한․ 중․ 일 등 동아시아 유교 국가에서 유교가 지향하는 최고의 인간덕목들 중의 하나. 왕과 아버지와 스승은 동일하다는 뜻임.
정창원正倉院에서
—1988년 어느 가을, 일본의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시인대회韓日詩人大會를 마치고
최하림, 박현서, 차한수 시인과 더불어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더니라.
내 우연히 일본의 왕실 창고
정창원*에 들려
일 년에 꼭 한 번만 전시한다는 그
진기한 보물들을 보았나니
거기엔
이제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고대 한국의 유물들도 적지 않구나.
그 옛날 한韓․일日 간에 주고받은
교역품인가.
백제나 신라** 왕실이 왜倭***에 내린
하사품인가.
아, 황홀하기도 할 진저.
그 중에서도 양이두****에 12현을 맨
금박의 신라금新羅琴,*****
몸통의 앞면에 그려진 꽃과 새를 보면
그대는 분명 하늘을 날아와서
이곳에 꽃씨를 심으려 했구나.
그러니 일본국 왕이시여.
이제는 이 보물을 지금처럼
청창원 창고에 꽁꽁 숨겨두지 말고
일상 공개하시라.
옛 신라인들은 음악으로
이 세상 모든 근심, 걱정, 미움과 저주를
한 번에 물리친다 했으니******
내 이 신라금을 한번 울려 온 누리에
평화를 불러오리라.
*쇼소인Shosoin正倉院(정창원): 일본 나라현奈良縣 나라시奈良市의 도다이지Tōdai-ji東臺寺(동대사) 북서쪽 약 300m 거리에 있는, 오래된 일본의 왕실 유물 창고. 덴뵤天平연간(729~749)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756년에 쇼무 덴노聖武天皇가 죽자 교묘光明子왕비는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실 보물 600여 점을 49재齋에 맞춰 도다이지에 헌납했는데 이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다수의 국보급 한국의 고대 유불들을 포함하여 나라 시대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전통 미술 공예품들 90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내용물을 확실하게 공개하지 않아 지금까지 한국 유물의 전모를 밝힐 수 없다. 평상시에는 일체 공개하지 않다가 다만 매년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순에 걸쳐 나라 국립박물관에서 ‘정창원전正創院展’을 개최할 때 20-100점 정도의 소량만을 특별히 전시하는데 아쉬우나마 이들 역대 전시회를 통해 확인된 한국의 유물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신라금新羅琴, 신라 비파琵琶, 신라 유기 세트, 숟가락과 젓가락, 신라 종鐘, 신라 백동 가위, 신라 양탄자(毛氈모전). 신라 인삼, 신라 먹墨, 고대 일본왕실에서 사용한 신라의 적칠관목주자赤漆欟木廚子(불상 불경을 모시는 느티나무 궤), 백제 괴목장槐木欌, 신라장적新羅帳籍(755년 경의 신라 관청 문서), 면류관과 이와 관련된 의복과 베개, 신라 토오土偶, 백제 무왕이 자신의 공주를 일본 왕에게 시집보낼 때 호위무사였던 후지와라노가마타리勝原鎌足에게 선물로 하사한 일본 최고最古 바둑판과 바둑알. 그리고 752년 도다이지 대불大佛 개안식開眼式에 참석한 신라의 사절이 기증한 문화재들 등이다. 학계에서는 정창원의 소장품들을 정밀히 연구할 경우, 역사가 12번도 바뀔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학자는 물론이고 일본 학자들에게조차 연구를 잘 허락하지 않는다. 한반도와 관련된 유물 일체를 공개할 경우 한국에 대한 일본의 고대사 기술을 상당부분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에 그리한다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백제百濟(BC.18-AD.660), 신라新羅BC 57-AD.935) : 고구려高句麗(BC 18- AD 668)와 함께 한국 고대 삼국시대를 구성한 왕국들.
***왜倭 또는 왜국倭國; 오늘날 일본 열도의 남서부에 위치했던 고대 부족국가들을 일컫던 말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서는 이들의 국호를 ‘왜倭’라 기술하고 있다. 왜는 5세기 경 통일 국가를 이룩하고 670년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바꾼다. 따라서 그 이전까지의 ‘왜’는 일본인 자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일본’의 공식적인 대외 명칭이었다.
***신라금新羅琴; 신라의 가야금. 정창원에는 신라가야금 3점이 소장되어 있다. 6현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와곤和琴(わごん), 13현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쟁箏, 6현 또는 7현으로 이루어진 가야伽耶의 가야금과는 달리 신라금은 12현으로 이루어진다. 이외에도 몸체 끝에는 ‘양이두羊耳頭’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중국, 일본의 금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신라금만의 특징이다. 정창원의 신라금은 서기 700년경 신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금갑金甲, 안족雁足, 양이두 등이 한 셋트로 이루어져 있다. ****양이두羊耳頭: 이름 그대로 금의 몸통 끝에 있는, 양의 귀 모양을 닮은 부속 장치. 현에 연결된 부들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만파식적萬波息笛 :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결된다는 신라의 전설상의 피리. 신라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주 동쪽 바닷가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는데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은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내왔다. 그래서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온 나라가 평온해졌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권2 기이紀異 「만파식적」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
일본국 오오사카부 히라카타시
그 소란스런 거리를 지나 후미진 골목을 돌아
내 물어물어 여길 찾아 왔나니
바람은 항상 구슬픈 피리소리로 불고
구름은 항상
만장挽章처럼 펄럭이는 곳.
누군가는 여기서
하늘 나는 비천飛天을 보았다 하고,
누군가는 또 바다건너
낙화암落花巖에서 떨어지는 삼천 궁녀들을
보았다 하나
본 것 본 것이 아닌,
오직
마당가 신목神木 가지 위에서 우는
갈가마귀들 만이 보았다는 곳.
인간과 명계冥界의 경계에 선
그 백제왕신사.*
내 물어물어 여길 찾아 왔나니
허물어진 돌계단을 올라
불이 꺼진 석등石燈들을 지나
바람은 항상 구슬픈 피리소리로 불고
구름은 항상
만장처럼 펄럭이는 곳.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校方市의 주큐中宮에 있는 사당. 모시는 제신祭神은 백제국왕과 우두천왕牛頭天王이다. 같은 지역 서방사西方寺의 「백제왕영사묘유래기百濟王靈祠廟由來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737년 3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의 직계 후손 남전南典은 종삼위從三位라는 관직에 올랐지만 병에 걸려 같은 해 9월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세이무왕聖武王은 백제왕사묘百濟王祠廟 및 백제의 사찰을 주큐中宮에 건립하도록 명하여 백제왕씨족 선조의 영靈을 그곳에다 안치하게 하였다”.
화렌花蓮에서
—타이완을 노래하며
아름다움은 변덕이 심해
언제나 처음처럼 아픔답지가 않나니
아름다운 여자는 곧 늙게 되고
아름다운 꽃은 또 쉽게
시들어버린다.
그래서 영원한 아름다움을 꿈꾸는 자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
절정의 수간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여자의 뱃속에 들어간 남자가, 아니
독배를 드는 남녀의 정사情死가
그렇지 않더냐.
나 오늘 화렌에서 타이중으로 가던 중
중횡공로* 해발 3000m 대 협곡 타이루거**의
아름다움에 취해
불현 듯 차를 멈추고
샤카당 트레일,*** 그 아름다운 벼랑길에 홀려
한 발짝 두 발짝
발걸음을 옮겼나니
그 역시 길이 끝나자 죽음이
기다리고 있구나.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맞는 죽음은
영원한 것.
그런 즉 장춘사長春祠****그대는
영원한 미美의 안식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중횡공로中橫公路 : 중서부 타이중臺中에서 동쪽 해안의 화롄花蓮을 .연결한 타이완 섬 최초의 동 서 횡단 주간선도로主幹線道路. 전장 약 190km이며 해발 3000m 이상의 산봉우리 19개를 넘는다.
**타이루거太魯閣峽谷Taroko국립공원: 중횡공로 입구 화렌 쪽에 있는 대협곡. ***샤카당石卡礑Shakadang트레일: 타이루거 협곡의 일부로 화렌에서 천상天祥까지 수직에 가까운 경사 80°, 깊이 수백 미터의 대리석 벼랑에 걸쳐 있는 19km의 탐방길 . 경관이 뛰어남 ‘사카당’이란 이 곳 원주민인 아미족阿美族의 언어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장춘사長春祠: 중횡공로는 3년 9개월 18일의 공사 기간 중 1만 여명이 넘는 퇴역군인들이 동원되어 사망 212명, 부상 702 명의 희생을 치르고 1960년 5월 9일에 개통되었는데 이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 사카당 트레일의 종착지에 있는 장춘사이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싱가포르에서
달 탐험선 아폴로 제 17호가
항해 중
잠시 정박을 하고 있는 것인가.
밤하늘에
선박 한척 멈춰 서 있다
선창으로 내다보이는 발아래 허공은
온통
명멸하는 별들의 꽃밭인데
가까이
부지런하게 운행하는 소행성들과
멀리서 가물거리는 카시오페어 좌
건너야 할 은하수의 철석거리는 파도소리도
지척에서 들린다.
싱가포르,
말라카 해협 입구 까마득한 공중에는
성층권을 향해 떠나는 우주선들의
첫 번째 휴게소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있다.
*Marina Bay Sands Hotel :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에 있는 세계적 건축물이자 종합 리조트 5성급 호텔. 이스라엘인 모셰 사프디Moshe Safdie가 설계하고 한국의 쌍용건설이 건설하여 2010년에 개장하였다. 두 장의 카드가 각각 52°의 각도로 마치 사람 人인자처럼 맞대고 선 200m 높이의 세 빌딩이 그 옥상에 배 모양을 한 인피니티트 풀infinite pool을 이고 있어 경관이 매우 특이하다. 이 호첼의 그랜드볼룸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8000㎡로 1만1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톤레샵* 호수
얼었다 녹았다,
물이 눈이고 눈이 물이니
인생사 또한
눈처럼 물처럼 사는 것 아니냐.
눈 내리는 겨울 한철을
저지대에 내려와 살던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이
가축을 좇아
눈 그친 여름엔 고지대에 올라와 살 듯
동남아의 열대 호수 톤레샵 어민들도
물고기를 좇아
우기엔 뭍 가까이 가서 살고
비 그친 건기에는 물에 가서 사나니
톤레샵, 그
바다 같은 수면이 실은
대 초원이었구나.
그런즉 바다와 초원을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느냐.
인생사,
기쁨과 슬픔을 또한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느냐.
*톤레샵 호수Tonle Sap Lake: 시엠립Siem Reap 남쪽 14km 지점, 메콩강과 연결된 곳에 있는 캄보디아 최대의 호수. 건기乾期에는 길이 150km, 너비 30km, 면적 3,000㎢의 크기이지만, 불어난 메콩강의 물이 역류하는 우기雨期에는 평소의 3배나 되는 9,000㎢까지 넓어진다. 이 호숫가에는 옛날부터 캄보디아의 수도가 건설되었고 지금도 앙코르 와트 유적이 남아 있다. 담수어의 어획량이 많아 캄보디아 사람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하다. 증수기增水期에는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 캄퐁참Kampong Chang, 시엠립, 바탐방Battambang등의 도시까지 항행할 수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
물이 물이고 산이 산이듯*
하나가 하나 됨은 당연한 이치이나
내 일찍이
여럿이 하나 됨은 보지 못했거니
타이국 치앙라이** 루악***강가에서
세 강이 하나 됨은 볼 수 있었노라.
아, 그래서
이위일체二位一體나 사위일체四位一體라는 말은 없어도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말은 있는 것,
옳도다. 옛 서방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을 하나라 주장하고****
동방의 옛 현인들이
하늘, 따, 인간을 하나라 했음이여.*****.
대저
하늘 없이 어떻게 인간이
있을 수 있으며
인간 없이 어떻게 하늘과 땅이 있으리.
그러므로 진정한 하나는
하나가 하나가 아니라
셋이 하나 되는 하나이어야 하나니
굳이 이 세상에서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고
우겨대는 자,
라오스, 타일랜드, 미얀마,
그 셋이 하나 되는 메콩강****** 골든 트라이앵글,*******
삼각주를 한번 가서 보아라.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1981년 한국의 성첨性澈스님이 조계종 종정宗正으로 취임할 때 내린 법어法語.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이외에 진리가 따로 없느니/시회대중示會大衆은 알겠느냐/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山山水水”
중국의 송宋나라 때 서승禪僧 청원유신靑原惟信도 이와 유사한 게송을 남겼다. “이 노승이 30년 전 아직 참선공부에 들지 않았을 때 산을 보니 산이었고 물을 보니 물이었다.老僧 三十年前 未參禪時 見山是山 見水是水 그러나 나중에 여러 선지식들을 친히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은 후 보니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무은 물이 아니었다.乃至後來親見知識有個入處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허나 진정 깨쳐 마음 쉴 곳 얻은 오늘에 이르러 다시 그 예전의 산을 지금 보니 사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而今得居休 歇處 依前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
그러나 성철은 ‘산은 산이요山山水水……’라 했지만 청원유신은 ‘내가 보니……’ 라는 조건법을 차용해서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이라 했으니 그 뜻이 다르다.
**치앙라이Chiang Rai : 타이 북쪽 루악강과 메콩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소도시. 북쪽은 루악강을 경계로 미얀마와, 동쪽은 메콩강을 경계로 라오스와 국경을 접해 소위 골든 트라이앵글을 이룬다. ‘치앙chiang’은 '도시', ‘라이rai’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치앙라이 분지에서 산출하는 쌀, 잎담배의 집산지이다.
***루악Ruak 강: 타이와 미얀마의 경계를 흐르는 강. 미얀마 샨Shan 주에 있는 산에서 발원하여 타이의 치앙라이 주 반 솝 루악Ban Sop Ruak에서 메콩강과 합류한다.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啓示한 하느님은 성부聖父, 성자聖子 및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즉 하느님 아버지聖父인 유일신唯一神은 그의 독생자獨生者:聖子를 이 세상에 보내어 성령(보혜사)으로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이 교의는 325년 니케아공의회公議會Councils of Nicaea에서 교회의 정통신조로 공인하였으며 451년 칼케돈공의회公議會Council of Chalcedon에서 추인, 이후 오늘날까지 그리스도교의 정식 교의敎義로 지켜져 왔다.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 유학儒學에서 우주를 주관하는 삼원三元인 하늘과 땅과 사람. 달리 말해 우주와 인간 세계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면서 그 변화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하는 천天, 지地, 인人을 일컫는 말이다. 이 같은 견해는 자연의 밑바탕이 되는 천과 지에 인간을 참여시킨 것이니 인간의 위격을 천, 지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인간 중심적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삼재론三才論 사상은 『주역周易』을 해석한 『십익十翼』에서 본격적으로 개진되어 있다.
******메콩Mekong강: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 등을 관통하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다. '모든 강의 어머니'란 뜻을 지니고 있다. 총 길이 4200km, 유역 면적 80만km2에 달한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강들과 마찬가지로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건기와 우기의 수량 차가 매우 크다. 강의 하류에는 넓은 평야가 위치해 있어 벼농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루악강과 메콩강의 합류로 타이, 라오스, 미얀마 3국의 국경이 만나게 되는 산악지대. 세계 헤로인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아편 경작에 최적의 기후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특히 미얀마 살윈Salween강 동부에서는 연간 약 100만 톤의 생아편이 채취되고 있다. 황금의 삼각지대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이유이다. 이곳의 소수 민족들은 오랫동안 마약왕 쿤사Kunsa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 세력의 강압과 비호아래 양귀비 재배로 생업을 유지하면서 살인ㆍ폭행ㆍ강간ㆍ징집 등의 횡포에 시달려왔다. 1996년 쿤사의 항복 이후 쿤사조직은 쇠퇴했으나 군소조직이었던 와족ㆍ링민샨 등의 세력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황금의 초승달 지역Golden Crescent’이라고도 한다.
푸켓에서
— 코끼리 사파리를 하며
때리지 말아요.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사정없이 목덜미를 찔러대자
소스라쳐 뒤뚱대는
코끼리,
둔덕의 구덩이를 빠져나오려
안간, 안간힘 쓰는 그
가엾은 코끼리.
거대한 체구가 어찌해서
등에 매미처럼 둘러붙은
조련사의 말 한마디에 그토록
굴종한단 말이냐.
때리지 말아요, 제발
나 그만 등에서 내리겠어요.
당신은
전생의 업이니 그리해도 된다 하지만
아니야. 그것은 당신이
어릴 때부터 때리고, 굶기고, 얼러서
길들인 삶.
우리의 북쪽 사람들처럼
이념에 의식화된 인간이 또한
그렇지 않더냐.
내 평생 대학의 교수로
학생들을 거두고 가르쳤다 자랑했으나
혹
어린 코끼리 길들임이 아니었더냐.
*푸켓Phuket: 태국에서 가장 큰 섬이자 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아시아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방콕에서 남쪽으로 862km 떨어진 안다만해에 있으며 1992년에 내륙과 연결된 사라신 다리Sarasin Bridge가 놓이면서 섬이지만 육로로도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인구 약 1만 4000명. 푸껫은 ‘산’이나 ‘언덕’을 의미하는 말레이어 ‘Bukit’에서 유래되었을 만큼 아름다운 해변 외에도 높은 산과 절벽, 정글, 호수 등 다양한 지형을 갖고 있다. 관광에는 많은 엔터테이먼트, 액티비티와 더불어 코끼리 사파리로도 유명하다.
인레 호수*에서
아비규환 약육강식
그 아수라를 피해서,
피에 젖은 흙을 밟기 싫어서
뭍을 떠나 물에서만 사는
종족**이 있더라.
솔거해 수미산*** 어느 한 기슭에서 살 생각
아에 없지는 않았다지만
제석천이**** 하늘 문을 열어 주지 않으니
어찌하랴.
청정한 물 위에 연꽃 같은 집을 짓고
밤 낮
수면에 어리는 하늘 길을 엿보기.
한 쪽 발로는 노를 젓고
다른 한쪽 발로 쪽배를 딛고 서서
망연히
물고기를 여수는 그 모습,
아, 그대들은 진정
물에 내린
학鶴들의 후예였구나.
진흙탕 아귀다툼 그 뭍이
싫어서,
피에 젖은 그 흙이 싫어서.
*인레 호수Inle Lake : 미얀마 북동부 샨Shan 주, 해발고도 880m의 나웅쉐Nyaung Shwe에 있는 길이 22km, 폭11km, 면적 116㎢의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 주위는 온통 푸른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타Intha족: 미얀마 160여 소수민족들 중 인레 호수 주변에는 샨족, 인타족, 파오Pao족 등이 거주하는데 그 가운데서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수상족水上族, 인타족이 숫적으로 가장 많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호수 위에 대나무나 통나무로 집을 짓고 어업과 토마토, 고추 등 각종 채소를 수경水耕재배하며 살아왔다.
***수미산須彌山: 힌두교의 메루 산이 불교화한 것으로 불교 우주관의 중심 산. ‘수미須彌’ 혹은 ‘소미루蘇迷漏’ 등은 산스크리트어 ‘수메루Sumeru’를 음사音寫한 것이다. 우주는 최하부에 풍륜風輪이, 그 위에 수륜水輪, 금륜金輪, 지륜地輪이 겹쳐 있으며, 금륜 위에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있는데 그 중심에 수미산이 있다고 한다. 수미산은 4보寶, 즉 황금, 백은白銀, 유리瑠璃, 파리玻璃로 이루어졌고, 중허리 사방에 사천왕四天王이 살며 정상에는 제석천帝釋天이 주인인 33천天의 궁전이 있다. 해와 달은 수미산의 허리를 돈다. 그리고 이를 둘러 싼 바깥쪽 바다에는 4게의 섬들四洲이 있는데, 그 중 남쪽에 있는 섬, 즉 남염부제南閻浮提에 인간이 산다고 한다.
****제석천帝釋天: 불교의 수호신으로 고대 인도의 신인 인드라Indra(벼략의 신)를 수용한 것이다. 제석천은 수미산 정상의 하늘인 도리천忉利天(수미산 정상에 있는 욕계欲界 6천六天의 제2천)의 주인으로 수미산 중턱의 사천왕四天王(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 혹은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을 거느리며 불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코모도 왕 도마뱀
내 무엇을 보려고
사우해* 그 거친 격랑을 헤쳐
예까지 왔던가.
무엇인지,
무서운 듯 두려운 듯
세찬 계절풍에 얼굴을 묻고
인도양 그 망망한 바다에 홀로
떨고 있는 섬
린차.**
내 무엇을 보러왔던가.
제 이웃을 잡아먹어,
제 난 새끼를 잡아먹어,
제 사랑하는 아내를 잡아먹어
항상 입안에 독과 피를 머금고 사는
인도네시아 코모도
왕 도마뱀.***
내 너를 보러 여기에 왔나니
진정 너는 악마가 아니고 무엇이더냐.
사람들은
제 앞에서 신神을 보기 원하나
항상 신의 곁에 있는 그,
악마를 우선 알아야 신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자바해, 순다해협**** 그 거친 바다를
위태 위태
쪽 배를 타고 건너
간신히 여기 왔나니,
실은 내 안에 든 악마를 보러
여기 왔나니.
*사우해Sawu Sea: 남쪽으로 사우Sawu섬, 동쪽으로 로테Rote섬과 티모르Timor섬, 북쪽으로 플로레스 Flores섬, 서쪽으로 숨바와Sumbawa섬으로 둘러싸여 있는 인도네시아의 내해內海. 남쪽과 서쪽은 인도양, 북쪽은 플로레스해, 북동쪽은 반다Banda해와 연결된다.
**린차Rinca섬: 사우해와 플로레스해 사이 숨바와sumbawa 섬 동쪽에 있는 작은 섬. 코모도왕도마뱀의 서식지들 중의 하나.
***코모도 왕 도마뱀Komodo Dragon: 인도네시아 남부 자바섬 동쪽 코모도 섬과 그 주변 섬에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마뱀. 원시적인 형태로 성격은 매우 포악해서 제 새끼나 교미중의 상대를 잡아먹기도 한다. 몸길이 3m가 넘는 것도 있으며 몸무게는 최대 165kg에 이른다. 몸통은 육중하고 튼튼하며 거친 비늘로 균일하게 덮여 있다. 네 다리와 꼬리 근육이 매우 발달해서 최고 시속 18km의 속도로 달리기도 한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긴 혀를 둥근 주둥이 밖으로 내밀어 10km나 떨어진 사체의 피냄새를 맡을 수 있다. 새끼는 짐승의 썩은 고기, 곤충, 작은 새, 작은 포유류, 작은 파충류, 뱀 등을 식용으로 하지만 태어나 약 8개월이 지난 뒤부터 몸집이 큰 사슴, 산돼지, 물소 같은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무는 힘이 강력해서 이빨로 상대의 뼈를 일격에 부러트릴 수 있으며 이빨 사이에 있는 독샘의 치명적인 독을 이용해 상대를 물어 죽일 수 있다. 한 번에 자신의 몸무게의 80%에 달하는 먹이를 먹고 사냥 중에는 포악한 성격이 두드러져 먹잇감을 두고 서로 싸우다가 동족을 물어 죽이기도, 잡아먹기도 한다.
****자바해Java Sea: 인도네시아 서부, 수마트라 남동안, 자바 북안, 보르네오 남안 등으로 둘러싸인 해역.
순다해협Sunda Strait: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을 가르는 해협. 길이는 150km, 너비는 26∼110km이다. 자바해와 인도양을 잇는 중요한 수로이다. 해류는 서西계절풍일 때 유속이 커진다. 폭이 좁고 수심은 낮고 모래톱과 거센 바람, 험한 파도, 유전 등이 있어 항해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시작 노트
김형,
여행을 마치고 자카르타의 한 호텔 방구석에 앉아 마지막 엽서를 씁니다. 내일은 아마 서울로 가는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 석에 쭈그려 앉아 몇 시간을 허공중에서 보내야 하겠군요. 막상 오랜만에 고국을 떠올리니 이 세상에서 그래도 살만하고 아름다운 곳은 우리 한국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40일에 가까운 여행이었습니다. 앞뒤에 배낭을 메고 꼭 가야할 길이 아닌 길을, 굳이 가야 할 목적도 없는 곳을 그저 타성처럼 헤매고 다녔습니다. 야간 버스를 타기도 하고, 지프를 대절하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70대 중반에 들어선 사내가 무엇 때문에 철없이 굳이 그런 고생을 사서 했느냐고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훌쩍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산이 옆에 있으니까 산에 오른다는 어느 유명한 등반가의 말처럼 길이 앞에 있으니까 걸어본 것이지요. 한국의 어떤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한 적이 있었습니다(천상병). 다른 어떤 시인은 어머니의 심부름이라고도 하셨습니다(조병화), 나는 언제인가 한 시에서 인생이란 학교에 다니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졸업이 가까이 다가 왔으니 기념 삼아 수학여행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세영 전남 영광 출생. 1965-6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시집『바람의 아들들』 외. 정지용문학상 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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