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조씨 시조 이하 5세조까지의 설단 아래에는 양절공 조온의 묘와 한풍군 조완의 묘가 있다
제각 옆에 신도비를 모셨던 두 분의 묘소이다
양절공 조온 선조는 어려서부터 외삼촌인 이성계를 잘 따랐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 때 이조판서로 참여하여 회군공신에 책록되었다.
1392년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으로 평양윤(平壤尹)에 임명되고 한천군(漢川君)에 봉해졌다.
평안도 수주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하시고,군인을 훈련시키고,호적을 정리하여 나라의 터전을 충실히 하는데도 힘을 쏟으셨다.
1393년(태조 2) 서북면도순문사로 수주(隋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했고, 연의주도(鍊義州道)의 장정들을 군적에 올려 병력 강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친군위도진무(親軍衛都鎭撫)로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이 되었고, 중추원사를 거쳐 의흥삼군부 좌군동지절제사(義興三軍府左軍同知節制使)·상의문하부사를 역임했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 참찬문하부사로 이방간(李芳幹)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같은 해 상왕(태조)의 명으로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 등을 죽인 죄로 완산부(完山府)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삼사좌사에 올랐다.
1401년 태종이 즉위하자 참찬의정부사로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고 부원군에 진봉되었다. 이듬해 의정부찬성사·동북면찰리사가 되었다. 청렴검소하기로 유명하다.
돌아가신후 조정에서 시호 양절공,부조묘를 명받았다.
한풍군 조완은 공민왕 21년 임자년에 양절공의 2자로 출생했다.
조선 세종 2년에 가선대부(종2품) 판홍주목사,우군총제,세종 12년 경주부윤으로 계시면서 공법의 稅法이 좋지 않음을 보시고 호조에 건의하여 시정하였고,
잠시 우군총제에 전임되셨다가 그해 10월에 다시 선위사총제로 함길도(함경도)에 파견되셨다.
세종 22년 자헌대부(정2품)지중추원사에 승진되시고,익년 8월 15일 돌아가셨다.
백씨 첨지공 휘 의께서 무후로 조졸함으로 공이 태종 17년 종통을 이어 받아 한양조씨의 주손(종손)이 되셨고, 세조3년 공신의 적장손중 품계가 2품 이상에 이른 자는 '군'에 봉하고,작호를 물려받도록 하라는 왕명에 따라 한풍군에 추봉하였다.
묘는 파주 교하 오도리 부공인 양절공 묘계하 쌍분이었는데 2008년 충남 홍성군 홍북면 대인리 매산 제각곡 시조이하 5세조의 단소 아래에 부공인 양절공의 묘소와 함께 이장하였다.
양절공 조온의 부조묘는 매년 10월 2일 홍북면 대인리 노은동 손자인 조증의 제각인 매산제각에서 거행한단다
제단 아래엔 후손녀 사위에 해당하는 홍일경 부부의 묘가 있고 주변에 예안공 조윤찬, 면천공 조윤상 선조의 묘소가 있는데 거기까지는 가보질 못했다
성승 장군 묘로 오는 길 정략장군 조우의 묘가 있어 잠깐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