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의군 이영은
약 600년전 태어나시어
65년여 생을 살으신
세종의 18분의 왕자분들중
대군이 아닌 군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이신 분이다.
즉, 왕후의 자녀가 아닌 분중에서는
가장 큰 형이다.
아버지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창제에도 관여할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이복형인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왕이 된후 조카인
단종복위운동에 관여하여
세조의 미움을 사서 벌을 받기도 한다.
* 화이군 이영의 묘역
조선시대 왕의 자녀들은
다 헤아리기 힘들정도로 많지만
그 분들의 묘소를 다 확인할 길도 없다.
물론,
도처에 왕의 자녀를 선조로 둔
유적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도 화이군묘역은
관리가 잘 되어진 묘역이다.
이곳 묘역에는
화이군 이영의 묘를 비롯하여
화이군의 첫째, 둘째아들을 비롯한
자손들의 묘 7기가 같이
모셔져 있다.
* 신도비
여기에 모신 분이 화영군이시며
이 분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내용이
한자로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홍살문
저기 저 특이한 문이 홍살문인데
붉은 창살 같은 문이죠!
이 곳은 신성한 곳이라는 표시도 되고
못 된 무리들의 침입을 막으려는
의미를 가지고 이런 문을 세워둡니다.
왕릉과 향교
그리고 효자,열녀를 기리는 곳 등에
세워져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인도에서 전해졌구요.
비슷한 것으로 중국, 일본,
동남아국가에도 있습니다.
* 정려문
충신, 효자, 효부임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이 곳에 계신분이 조선에 충성을
다하신 분이다라는 표시입니다.
후손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왕과 국가에서 인정하여 세운겁니다.
* 충경사
충경사라 하니
스님이 계신 절인가 하시지만
절이 아닙니다.
옛 사람들은
사람은 육신과 정신이 따로 있어
살아 있을때는
육신과 정신이 같이 있지만
돌아가시면
육신은 묘에다 모시고
정신은 따로 사당에 모십니다.
종로에 있는 종묘가
왕과 와후의 사당이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실겁니다.
충경사는
화의군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 화의군묘의 곡장
묘지를 만들때
묘지주변을 담으로 둘러쌓는 양식을
곡장이라 합니니다.
일반인의 묘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왕릉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입니다.
왕자의 묘에서도 거의 볼 수 없는
양식인데 이 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