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박찬호 컬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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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원리에 관해서는 너무나 미시적인 세계의 일이라 현대과학은 아직 잘 모르고 밝혀 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물질의 진 동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대상이 고체, 액체, 기체의 상 태입니다. 예컨대 무겁고 딱딱한 얼음의 상태는 진동이 가장 느린 상태이고, 액체인 물의 상태는 진동의 빠르기가 중간 상 태, 그리고 진동이 더욱 빠르고 높아지면 액체는 기화(氣化) 됩니다. 즉 물은 가벼운 수증기로 변화되고 하늘로 증발돼 날 아가 버리지요. 그리고 이러한 물질의 상태가 차이나는 이유 가 바로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회전속도에 의해 좌우된 다는 의미입니다.그리고 <알파파>라는 개념은 뇌파(腦波)의 특정 파장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14Hz~7Hz의 주파수대를 의 미합니다. 이 알파파 상태는 일종의 명상이나 참선의 입정과 같은 이완 상태에서 잘 나타나는 뇌파인데, 흔히 창의력과 영 감이 극대화되는 파장대라고 하지요. 21:미국 정부는 달 착륙을 1969년 성공했다고 전세계에 발 표했는데요, 많은 음모론 자들은 미국은 당시 달에 우주선을 보낼 능력이 되지 않았으며, 소련을 의식해 조작을 했다고 말 합니다. 미국이 진짜 달 착륙에 성공했습니까? 그리고 미국이 달 착륙에 성공했다면 그 기술을 취득하게 된 배경을 알려주 세요. 다른 질문도 드립니다. 기독교에서 종종 발생하는 성흔 (聖痕) 현상은 무엇입니까 교황청에서는 성 프란체스꼬 성자 외의 성흔 현상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요, 세계에 서 일어나는 성흔 현상에 대해 알려주세요 답: 미국의 달 착륙이 조작된 쇼라는 주장은 여러 사람들이 주장해 왔고 여러 저서들도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견해로는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갔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정황증거로 볼 때 이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단지 이것이 조작이라는 주장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주요 원인으로는 미국정부가 달에 관한 진실을 일반 대중들에게 그대로 알리지 않고 은폐하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합리하게 보이는 문제점들을 노출시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은 달에 실재하는 우주인들의 인공건조물이라든가 UFO, 달의 실제 중력(重力), 공기가 존재하는 문제 등등을 사실대로 대중들에게 공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발표내용과 전혀 상이한 여러 증거들이 나중에 과학자들의 조사로 드러났고, 이런 것들로 인해 한 쪽에서 달착륙 자체가 거짓이고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는 주장들이 대두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오히려 당시 미국의 과학기술은 달에 갈 수 있을 정도를 더 능가할 정도였다라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폴로 계획 이전에 이미 미국정부 배후의 세력들은 어둠의 외계인 세력들과의 비밀접촉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상당한 기술전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어찌보면 그들의 아폴로 계획은 더 커다란 것을 대중들에게 감추거나 시선을 돌리게 만들기 위한 위장 이벤트일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현시점에서는 대중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내용의 음모일 겁니다. 이점에서 그들이 달에 갔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 발표 내용의 상당부분이 조작되었다는 점만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성흔(聖痕)이 나타나는 것에는 명백히 어떤 높은 영적존재들이나 외계존재들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그러한 불가사의한 초상현상을 통해 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인류의 고착된 낡은 관념을 변화시키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성흔 뿐만이 아니라 영국의 밀밭에 나타나는 이른바 미스터리 서클, 또는 크롭 서클(crop circle) 역시도 그러한 맥락의 연결선 상에 놓여 있는 현상입니다. 22. 질문: 영, 혼, 백 (靈, 魂, 魄)의 차이점에 관하여 설명하여 주세요. *답: 먼저 영(Spirit)과 혼(Soul)의 차이에 관해서는 <미 국방성의 우주인>이란 책 p.212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영혼백(靈魂魄)에 대해서는 동양의 선도(仙道)나 도가(道家)에서 언급된 개념이 많고, 또 서양의 오컬트쪽의 개념이 있습니다. 흔히 "삼혼칠백(三魂七魄)"이라고 말을 하는데, 선도계통에서 삼혼칠백(三魂七魄)의 용어를 가장 먼저 언급한 책은 지금부터 1600여년 전 중국의 갈홍(葛洪)이 저술한 선서(仙書)인 ≪포박자(抱朴子)≫로서 이 책의 지진(地眞)편에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신령스런 도를 통하려면 마땅히 수화(水火)로써 형체를 분리해야 한다. 형체를 떠나면 곧 내 몸이 삼혼칠백으로 되어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리라(欲得通神, 宜水火分形, 形分則見其身三魂七魄.) ” 이처럼 이 책에서는 인간이 삼혼칠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 송대(宋代)에 편찬된 도교총서(道敎叢書)인 <운급칠첨> 54권에도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무릇 사람의 몸에는 세 혼이 있는데 하나는 태광(胎光)이라 하고 태청양화(太淸陽和)의 기운이다. 또 하나는 상령(爽靈)이라 하여 음기(陰氣)의 변화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유정(幽精)이라 하며 음기의 잡다(雜多)함을 뜻한다.( 夫人身有三魂, 一名胎光, 太淸陽和之氣也; 一名爽靈, 陰氣之變也; 一名幽精, 陰氣之雜也.)” 라고 삼혼의 이름과 성질을 자세히 언급해놓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영혼백(靈魂魄)을 선도에서 말하는 정기신(精氣神)과 대비시켜 말하기도 합니다. 즉 정(精)은 하단전, 기(氣)는 중단전, 신(神)은 상단전을 의미하듯이 백은 하단전, 혼은 중단전, 영은 상단전에 머문다고 하지요. 영혼백의 관계에 대해 동,서양 양쪽의 이론을 종합 정리하여 나름대로 간략히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영(靈)은 신성(神性)과 연결된 속성이자 창조주의 에센스에 해당되고, 따라서 인간과 창조주(우주의식)와의 연결고리입니다. 도가에서는 이 영은 인간이 죽으면 천상의 일신(一神)의 자리로 환원된다고 말합니다. 영이 보다 포괄적이고 전체적 속성인데 비해 혼(魂)은 개체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어머니 뱃속에 수태될 때 들어와 나중에 태어나면 인간적 자아(自我)가 되고 현재의식, 인격(人格)을 형성하는 주체가 됩니다. 흔히 윗사람에게 심하게 야단맞아 정신이 매우 위축된 경우를 표현해서 "혼났다." "혼줄났다."고 하는데 우리말은 참 신묘한데가 있습니다. 여기서 '혼줄'이란 우리의 육신과 혼 사이에 연결돼 있는 영적인 줄을 말하며 서양의 심령과학에서는 흔히 "은줄(Silver Cord)"이라고도 합니다. "혼났다." "혼줄났다."는 말은 아주 심하게 질책을 당했을 때 그 정신적 충격에 의해 혼이 육체에서 밀려나 혼 줄이 밖으로 나올 정도라는 뜻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바로 이 혼 줄이 끊어지면 혼이 육체를 떠나 완전히 분리됨으로써 육체적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죠. 이런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혼은 육신 속에 들어와 정신이라는 주체를 이루는 영적 에너지체를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백(魄)은 육체를 주관하는 영적 에센스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살아 있을 때는 혼과 백이 뭉쳐 있다가 혼 줄이 끊어져 육체가 죽음을 맞이하면 혼은 떠나가지만 백은 육신의 뼈에 그대로 남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백(魄)은 혼처럼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육신과 함께 음(陰)인 땅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지기(地氣)와 합일하여 흩어집니다.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명당(明堂) 자리에다 조상 묘를 쓰면 발복(發福)하고 흉지에다 쓰면 집안 망한다"는 <음택론(陰宅論)>은 바로 이 조상의 뼈에 남아 있다는 백(魄)의 영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이처럼 영혼백(靈魂魄)이란 글자 순서대로 영이 혼을 주관하고, 또 혼은 백을 지배하는 식으로 영이 가장 전체적 포괄적 속성을 지닌 최상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인간의 정신을 담당하는 혼이며, 마지막이 육신을 주관하는 백입니다. 23. 라즈니쉬는 어떤 사람입니까? 답: 라즈니쉬에 관한 내용은 이미 앞서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잠시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질문이 올라 왔으니 한 번 더 개인적 견해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제 답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참고만 하기 바랍니다. 사실 저도 젊어서 한 때는 라즈니쉬에 대해 대단히 매료된 적이 있었습니다. 재수해서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되던 1981년 4월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우연히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띄어 바로 대출받아 단숨에 빨려 들어가듯이 몰입돼 읽은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이 바로 라즈니쉬 책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어 출판된 <마하무드라의 노래>라는 책이었지요. 석지현 스님과 라즈니쉬 국내 제자 1호였던 무용가 홍신자씨가 공동 번역한 책이었는데, 당시 정말 감탄하며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때만 해도 라즈니쉬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아마 출판 된지 약 2달 만에 제가 그 책을 보았던 것으로 생각이 나는데, 그 이후로 라즈니쉬 책이 국내에 1년에 1~2권씩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새 책이 나올 때 마다 즉시 사보고는 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라즈니쉬는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인도의 해탈한 스승으로 점차 알려졌고, 80년대 후반~90년대 초부터는 국내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과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요. 그 후 점차 우리나라 독자들 가운데는 라즈니쉬의 제자가 되기 위해 직접 인도의 라즈니쉬 센터로 가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또한 예컨대 '한국판 라즈니쉬' 혹은 '라즈니쉬의 아류'라고 할 수 있는 해탈했다고 자처한 <소공자>와 같은 같은 사람도 국내에 등장해서 제자들을 모아 설법하며 스승 행세를 했었습니다. 아마도 1980년대 중반이후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정신세계 분야에서 "깨달음" 운운하며 행세했거나 행세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라즈니쉬 흉내를 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라즈니쉬는 분명 매우 명석한 천재적 두뇌와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철학교수 출신이라는 화려한 지적 배경과 방대한 독서량, 거기서 엮어져 나오는 현란한 언어(言語)의 유희와 박식한 강론(講論) --- 대개의 지성인들은 거기서 그가 '위대한 현인(賢人)' 또는 '살아 있는 붓다(Buddha)'라고 착각하게 되고 완전히 매료되어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판단하건대, 본인은 라즈니쉬도 소공자도 진정으로 해탈했던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드러났던 그들의 여러 가지 추문(醜聞)과 제자들의 증언을 들어 보았을 때, 결코 그들은 깨달음과 높은 초월의 경지에 갔던 사람들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라즈니쉬만 해도 그는 평생 동안 탄트라(Tantra)를 빙자한 프리 섹스 때문에 여자 제자들과의 너무나 무분별하고 난잡한 관계로 방사(放射)를 너무 심하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라즈니쉬의 최측근인 경호 대장 출신 제자의 폭로 내용을 보면, 말년에 라즈니쉬는 정신적, 육체적 혼란과 이상 증상이 심하게 와서 마약을 복용하지 않고는 제대로 몸과 마음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해탈의 중요한 척도인 '성초월(性超越)의 경지'는 고사하고 최소한 성(性)을 자유로이 콘트롤 할 수 있는 단계도 못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양의 선도(仙道)의 경지로 보자면 그는 이른바 "연정화기(練精化氣)"의 단계인 <소주천(小周天)>도 안된 상태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알다시피 깨달음의 경지란 결코 단지 말로 떠드는, 장황한 설법(說法)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실천적인 행(行)으로, 몸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모두 허위일 뿐입니다. 그리고 설사 일시적인 어떤 초견성(初見性)적인 체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다시 타락할 수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는 소위 깨달았다고 자처하며 스승 행세를 하고, 또 구세주를 자처하는 수많은 구루(Guru) 병 환자들한테서 우리가 얼마든지 목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도자가 지켜야 할 <계율(戒律)>은 절대 멋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라즈니쉬는 젊어서 한때의 어떤 영적 체험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수련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깨달았다는 착각과 자아도취 상태로 계율을 멋대로 무시하고 함부로 탄트라(密敎)를 남용하거나 흉내 내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18, 517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수도자의 가장 중요한 항목중 하나는 性(sex)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비 종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주의 여신도와의 성에 관련된 사항이다.---필자 註) 24. 외계인들은 왜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답:외계인들이 아직 미확인이라는 것은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상 외계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들을 인간들에게 알리기 위해 직. 간접으로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지배하고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이 그러한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부정하는 방해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이런 점들이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대다수의 지구인들은 UFO나 외계인의 실체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죠. 물론 외계인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지구에 관여하는 종족들이 한 둘이 아니다 보니 각 종족에 따라 우호적이거나 비우호적인 차이가 있고 지구에 대한 그들의 목적도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부정적 세력을 제외하고 인류의 진화, 발전에 도움을 주려는 다수의 우호적인 그룹을 전제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미 국방성의 우주인>같은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책의 내용만 보더라도 이미 50년 전에 외계인이 워싱턴에 직접 나타나 미국 정부의 대통령과 수뇌부들을 직접 접촉했었던 사실들을 소상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때 외계인들은 전 세계 인류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공개적으로 공표해 줄 것을 미국정부쪽에 공식 요청한 바가 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그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 문제 때문에 이를 거부했던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외계인에 관한 정보들을 지구의 지배세력들이 공개하지 않고 계속 은폐하다 보니 외계인들은 부득이하게 개별적으로 지구인들을 선택하여 그들을 통해 현재까지 자신들의 존재를 인류에게 알리고 메시지를 전달해 왔던 것입니다. 이런 역할을 한 사명자들이 전세계에 퍼져있는 수많은 UFO 접촉자들과 채널링 수신자들인 것입니다. 외계인들이 이런 간접적인 방법 외에는 아직까지 자신들을 아직 본격적으로 인류 앞에 드러내지 않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1.우주의 '불간섭법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외계인들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는 행성에 아주 특별한 사유가 없이는 강제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점. 2.방해세력들에 의해 인류의 대다수가 UFO와 외계인들에 대해 무지하다보니 그들이 공개적으로 지구상에 착륙할만한 여건이나 분위기가 성숙돼 있지 않고 준비가 아직 대단히 미비되어 있는 점. - 이런 상황에서의 무리한 개입은 상당한 대중적 혼란과 공황적 상태를 초래할 수가 있다. 3.따라서 그들 나름대로의 단계적인 모종의 인류와의 접촉 프로그램이나 신중한 작전계획에 의해 그 시기 선택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는 점.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인류는 향후 차원상승 문제와 지구 대변동 문제와 연관되어 어차피 필연적으로 외계문명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쯤이냐가 문제인데, 그 시기도 그리 멀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예상하건대, 아마도 향후 4~5년 이내에 그러한 접촉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25. 태양이 뜨겁지 않다는 점에 관하여 말씀하여 주세요. 답:일찍이 조지 아담스키와 디노 크라스페돈을 비롯한 몇몇 UFO 접촉자들이 만난 우주인들이 이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측컨대 태양이 뜨거운 불덩어리 별이라는 관념은 우리 인간들이 착각하고 있는 대표적인 잘못된 고정관념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주인들이 가르치고 있는 메시지의 요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양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타오르는 뜨거운 별이 아니다.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방사선은 그 자체가 강한 빛과 열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태양의 열과 빛은 지구의 대기권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생겨난다. 다시 말하자면 태양에서 방사된 +의 역선(力線)과 지구에서 나오는 -역선이 부딪쳐 스파크가 발생할 때야 빛과 열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빛과 열의 강약은 태양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느냐는 거리에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의 역선과 행성의 -역선이 교차하는 각도에 달려 있다. 따라서 태양과 가장 가까운 수성이나 가장 먼 거리에 있다고 알려진 해왕성, 명왕성이나 동일한 조건인 것이다.” 우주인들의 가르침대로라면, 수성이나 금성이 태양과 가까우니 온도가 섭씨 400~500백도 이상이고 해왕성이나 명왕성은 반대로 영하 몇 백도일 것이라는 우리 지구 과학자들의 상상은 완전히 빗나가버린 것이죠. 거리에 관계없이 태양계 내의 모든 행성들은 지구와 비슷한 환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지구외에는 생명체가 서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도 수정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고무적이게도 최근 지구상의 과학자들 중에서도 일부 진보적 과학자들은 우주인들의 가르침과 비슷한 학설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상온 핵융합을 실험하여 성공한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루시 테일야칸' 박사, 프라이즈만, 폰즈, 존스 박사, 불란서의 생물학자 겔브란 박사, 일본의 고마끼 히사도끼 박사와 같은 과학자들입니다. 이런 학자들은 우주인들의 메시지와 비슷하게 태양에서의 핵융합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여기에서 생기는 에너지는 열로 변하지 않고 초미립자의 에너지 형태로 방출되어 지구의 대기나 또는 지각과 교차하여 비로소 열과 빛을 발생시킨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이 진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증거들은 NASA에서 공개한 해왕성과 그 위성 트리톤을 찍은 사진들입니다. 이 사진들을 보면 기이하게도 매우 경탄할 만큼 밝게 빛나고 있는 해왕성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해왕성이 지구보다 태양에서 30배나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머나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에너지가 충분히 도달하는 데는 지구와 별 차이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치상으로 계산해 본다면 해왕성에는 지구의 약 일천 분의 일 밖에는 태양에너지가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과학이론대로라면 해왕성도 트리톤도 빛은 거의 없는 암흑의 별이어야 하는 것이죠. 이 모든 증거들로 유추해 볼 때, 태양은 분명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불덩어리 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도 어떤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컬트(=비교학, 秘敎學)에서는 태양에는 영적으로 고도로 진화된 존재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 도서출판 은하문명에서 출판한 <예수 그리스도의 충격 메시지(1)> 91 페이지에도 보면, 그리스도가 언급하기를 ‘태양은 우리 태양계를 관리하는 높고 위대한 빛에너지 존재들의 거주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8, 511. (이와 같은 이론은 우리의 일반 상식을 뒤엎는 것이다. 관측과 이론에 의하여 수립된 오늘날의 천체 물리학 이론에 의하면 태양은 표면 온도가 약 6500 만 도 이며, 내부 온도는 수 억도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위의 이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유연한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진리이면 어떤 것도 받아들인다는 유연하면서도 넓은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곧 현대의 지성인이다. 심령과학이나 지저 세계의 이론도 우리의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있다.) 26. 업보(業報)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세요. 답: 업보 때문에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꼭 업보 때문이 아니라 선하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고(正道), 또 그런 행위가 자연의 이치나 우주의 법칙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업보가 있으니까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어린애들에게 나쁜 짓 하면 회초리를 맞거나 벌을 받으니까 착한 행위를 하라고 훈계하는 것과 같이 사실 좀 수준 낮은 교화방법입니다. 그럼에도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들이 업보(業報), 즉 카르마(Karma)의 법칙을 인류에게 가르치고 간 것은 인간이 우주법칙에 무지함으로써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이른바 사악한 행위를 손쉽게 저지르는 것을 예방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또 인간이 그로 인한 자신의 카르마의 덧에 걸려 불행해 질 수 밖에 없고,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도로 진화되거나 높은 영적 단계에 있는 존재들은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들이 사실상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자타일여(自他一如)임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존재들이 선(善)과 이타적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업보가 두려워서가 아니지요. 이들은 이치적으로 우주의 원리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무위 자연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이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요컨대, 모든 인간의 행위에는 당연히 그에 상응한 에너지적(energy 的)작용이 발생하고 반드시 결과적인 책임이 뒤따른다는 가르침이 바로 <카르마(業)의 법칙>입니다. 즉 이것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원인(因)-결과(果)의 작용>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이해하고 깨달음으로써 인간은 보다 깊은 영적 성숙에 한 걸음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지구상에는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있는 사람보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업보라는 것은 전생이든 현생이든 자신의 행위에 의당 뒤따르는 것이고, 또 당연히 자신의 행위로 인해 자기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스스로 만든 것이니 자기 스스로 청산해야 함도 당연한 것이고요. 기독교의 <대속론(代贖論)>이 문제인 것은 내가 저지른 죄를 예수가 십자가에서 대신 대속했다고 가르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책임모면이나 요행수를 기대케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행위를 자기가 책임지는 진정한 영적 성숙 내지는 진화의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목적은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바로 <카르마(業)>와 같은 우주의 원리나 법칙을 제대로 깨닫고 거기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리나 법칙을 어리석음이나 무지(無知), 또는 사악함으로 인해 어겼을 때, 인간은 우주의 범법자가 되는 것이고, 또 그 법칙의 반작용에 치여 결국 자신이 다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한 무지한 존재들이 바로 스스로 만든 자신의 업장(業障)으로 인해 지구라는 행성에 갇혀 교육받고 있는 다수의 지구인들인 것입니다. 27. 진정한 영성(靈性)이란 무엇일까요? 답: "영성(Spirituality)"이란 말들을 많은 단체들이 제각기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 의도나 의미는 서로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성(靈性)"이란 단어의 개념도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으며, 정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영성"이란 말은 물질적, 육체적 삶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그것을 넘어선 차원, 즉 비 물리적인 영적 본성의 측면을 강조하는 의미로 이런 말을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적(辭典的) 의미로는 "신령스러운 품성"이라는 정도의 뜻인데, 또 기독교나 가톨릭 쪽에서 사용하는 영성이란 개념과 채널링 중심의 모임이나 그룹에서 쓰는 의미가 다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표현하자면 영성이란 말은 소위 불교의 "불성(佛性)" 또는 기독교적인 "신성(神性)"이란 말로 대치하더라고 무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컨대 어차피 우리 인간은 본래 육체적, 물질적 존재는 아닙니다. 분명 영적인 존재이지요. 즉 비 물질의 영혼 체 내지는 의식체가 육신 속에 잠시 들어와 3차원적인 물질적, 육체적 삶을 통해 갖가지 경험을 하면서 모난 성품과 인격을 다듬고 조금씩 배우고 깨달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가 육신을 벗고 본래의 세계로 환원될 때 가져가는 것은 육체적 삶을 통해 얻은 정신적 깨달음이나 지혜만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대다수의 인간들은 본래의 영적본성을 망각하고 이 육체적 ,물질적 삶이 전부인줄 착각하고 이 3차원적 현상계에 집착하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에서 부득이 죄를 짓고 업장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우리 영혼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잠시 배우러 온 이 윤회 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카르마에 의해 기나긴 윤회의 사이클을 돌고 도는 것이지요. 본인의 개인적 견해로는 영성훈련이나 영성개발의 최종적 목표는 결국 "깨달음" 즉 "해탈 득도(解脫 得道)"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기간에 도달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점차 우리의 내면의 본성을 조금씩 주시하고 일깨워 가면서 한 단계씩 올라가며 접근해 가야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영성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의 현실적 삶과 유리(遊離)되어 따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며, 이 부분을 혼동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의 모든 삶 자체가 영적인 것이고 또 영적진화의 한 과정입니다. 따라서 현실을 떠난 영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영성 운운하는 사람들만이 <영성인>이고 농사꾼이나 시장바닥이나 길거리에서 노점상하는 분들이라고 영성이 없고, 영적이지 않은 존재들이 아닌 것이지요. 인간은 빈부귀천을 떠나 누구나 고귀한 영적존재들이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신성과의 합일을 향해 조금씩 진화해 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형성된 영성모임들 중에는 채널링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께서 지적했듯이,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거나 기본적인 인격함양이 미달돼 있는 사람들이 종종 섞여 있습니다. 너무 부정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어찌보면 이들은 사회의 보편적 기준으로 볼 때 인생 낙오자나 사회 부적응자, 현실도피자, 또는 몽상가의 범주에 드는 사람들입니다. 즉 단순히 머리에 넣은 채널링 지식이나 정보에만 사로잡혀 거기에 목을 매달거나 그 메시지가 주는 환상에 들떠서, 또는 일종의 접신(接神) 상태에 빠져서 자신들이 특별하고 사명이 있거나 선택받았다는 식의 자아도취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사소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되는 누가 잘났냐는 식의 극력한 상호비방과 도토리 키재기식의 싸움질도 자주 하더군요. 그런데 그들의 현실적인 행위들을 보자면 인간의 기본적인 측면들이 전혀 안 돼 있어 보통 사람의 눈에도 너무 실망스러운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고로 이런 사람들은 특별히 "영성"이다, "영성인"이다 하고 요란을 떨기 전에 먼저 인간이 갖춰야 할 기초적 수양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부터 배우고 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기본적 예의나 겸손도 갖추지 못한 채, 책임감도 없고 약속 하나 제대로 지킬 줄도 모르는 저속한 인격을 지닌 자들이 근거도 불확실한 접신(接神) 메시지에 의해 부추켜진 에고의 우쭐거림에 도취되어 입만 살아서 "영성"이 어떻고, "빛과 사랑"이 어떻고, "깨달음" 내지는 "차원상승"이 어떻고 떠듭니다. 그러나 인격수양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백날 이런 지식적 이야기 떠들어 보아야 모두 헛소리이고,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한마디로 심각한 망상 증세이고 자기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영적 지식을 머리 속에 가득 채우고 있어 보아야 차원상승이 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컨대 상승은 영혼의 순수성이나 의식의 진정한 확장이 없이 결코 지식 따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영성이란 그 사람의 현실적 삶 자체에 녹아 들어 있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모든 사소한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를 통해 그 영적 향기가 풍겨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특별히 별도로 영성을 찾고, 굳이 따로 영성모임이나 영성훈련을 꼭 해야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치적으로 보더라도 인간이든 물건이든 안으로 꽉 차있으면 소리가 잘 나질 않습니다. 껍데기뿐인 허세적 인간이나 빈 수레, 깡통이 오히려 더 소리가 요란한 법이지요. 이런 이치로 본다면, 인위적인 아닌 무위자연의 삶의 행위를 통해 영적 향기를 발산함으로써 주위를 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영성"이란 말을 굳이 의식하거나 입에 담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요란하게 "영성"을 자주 입에 언급하고 의식하는 사람일수록 역설적으로 실제로는 가장 "비영성적"이고 저급한 영적수준의 사람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이 하루하루의 성실하고도 열심히 사는 삶, 이웃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삶, 자신을 낮추고, 신의를 지키고, 땀 흘려 일하는 진지한 삶을 떠나 영성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조차 안 된 자들이 모여 따로 특별하게 영성을 떠든다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며 너무나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모임 자체나 전체 사람들을 매도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닙니다. 외골수적인 착각이나 파당의식에 빠지지 않는 한,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단순히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한 측면이 많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올챙이 몇 마리가 연못 전체를 흐리듯이 일부 문제 있는 사람들에서 목격되는 인격도야를 떠난 영성, 현실을 도외시한 영성, 실천 없이 말로만 떠드는 영성은 전혀 영적일 수 없고 일종의 착각 내지는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앞서 언급된 기본적인 영적성숙의 계단들을 밟은 이후에야 비로소 영성을 말할 자격이 있고, 그 다음에 내면의 본성(本性), 참자아(眞我)를 찾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28.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답: 마음을 다스리기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완전히 깨달아 마스터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 즉 불교에서 중생이라 표현하는 우리 범인들의 특징은 제 마음이 마음대로 콘트롤(control)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시로 일어나는 여러 잡념과 번뇌, 망상에 시달리기 마련이고, 솟아나는 갖가지 욕망 통제도 쉽지가 않습니다. 심리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현상은 그 개인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움직임이고, 원래 그것은 수많은 윤회전생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업식(業識)의 부분이므로 의식에 의해 쉽사리 지배되고 통제되는 부분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계속 마음을 갈고 닦아 끝없이 노력해가야만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의 숙명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수련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있습니다. 생각컨대, 기(氣) 수련을 하는데 있어서 잘 진전이 안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례가 있다고 봅니다. 1.기수련을 하면 축기가 되는 만큼 정력과 성욕도 증가하게 되는데, 이 때 성욕이 자제되지 않아서 성관계나 자위행위로 인해 정(精)이 계속 누출됨으로써 축기된 기운이 모이지 않고 소모되는 경우. 2.수련을 통해 축기를 열심히 하는데도 전생의 업장(業障)이 두터워 빙의된 수많은 빙의령들에 의해 기운이 갈취당하는 경우. 3.원래 선천적 기운이 약하고 수련에 별 인연이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기운을 못 느끼는 경우. (1)번의 경우는 가능한한 성욕을 조금씩이라도 자제하여 정(精)의 누출을 줄이거나 막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면 소위 방중술(房中術)의 <접이불루(接以不漏)>의 경지를 터득하여 관계는 가지되 사정(射精)은 하지 않는 길을 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마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밖에 안 됩니다. 2)번은 자신의 전생의 카르마로 인한 현상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남에게 빚진 것을 기운을 통해 갚아 나가는 격이니 그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다고 봅니다. (3)번은 역시 다음 생을 기약하고 열심히 해보거나, 인연이 희박하여 현생에서 대성하기는 어려우므로 포기하고 다른 일이나 선택해서 열심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어떤 수련, 수행을 하거나 도(道)를 닦는다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이나 욕망 등을 자제하고 억제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어떤 욕구가 생기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멋대로 해 가지고는 결코 수련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죠. 얼마나 스스로를 자제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 또 남다른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의해서 똑같은 수련을 해도 많은 개인차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모든 수행법이 사실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인데, 대부분의 수련법은 끝없이 날뛰는 우리 마음속의 잡념과 번뇌 망상을 진정시키기 위해 어떤 대상에 집중하거나 관조(觀照)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기수련을 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 자체에만 집중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여러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마음을 조금씩 다스려나가는 과정이 곧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인다면 수련을 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큰 뜻과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개인의 사리사욕을 벗어나서 수련을 통해 능력을 키워 그것으로 남을 돕고 이웃을 건지겠다는 이타적 자비심이나 대아의식(大我意識)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개인적 신통력같은 것이 수련 목표가 된다면, 그런 사람은 높은 단계의 성취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늘에서 기운을 내려 주는 데는 어떤 차별이나 구분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하늘은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수련의 진전이 빠르고 누구는 더디거나 진전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적 카르마의 문제 외에 각자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련에 진전이 없다는 불평에 앞서서 먼저 자신이 하늘의 큰 기운을 받아들일 만큼 제대로 열려 있느냐? 또 기운을 받아들일 자기 마음의 그릇의 용량이 얼마만 하냐를 우선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마음의 그릇은 겨우 사발 크기만 하면서 욕심만 많아 아무리 큰 기운을 끌어 담으려 해도 사발 용량 이상은 담겨질 수가 없겠지요. 따라서 우선 마음을 크게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가짐 여하(如何)에 따라 거기에 응하는 기운도 분명히 달라집니다. 29.우리나라에도 UFO와 접촉한 사람이 있습니까? 답:물론 우리나라에도 UFO 접촉을 했다고 추정되는 몇몇 분들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명확한 확증이 없다는 점입니다. 단편적인 체험 내용들은 들은 바가 있고, 일부 녹음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UFO 접촉사례에서와 같이 UFO 사진이라든가 어떤 물증, 또는 체계화된 메시지와 같은 뚜렷한 것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무조건 그들을 UFO 접촉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무당과 같은 접신(接神)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말들을 지어내 할 수는 있는 것이며, 본인 스스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방언한다고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무슨 우주문자를 쓴다고 이상한 글자를 자동서기 형태로 휘갈기면서 교신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모두가 접신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착각 현상에 불과합니다. 무당들은 그런 글들을 보통 "신(神) 글"이라고 하지요. 금성의 발 토오가 스트랜지스 박사를 선택한 것도 나름대로의 부득이한 고육책(苦肉策)이었을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보복이 두려워 쉬쉬하고 은폐하기 급급할 때, 어쨋든 테러까지 몇 번 당하면서 발 토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은 바로 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스트랜지스가 단순하고 맹목적인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스트랜지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를 초월한 단계로 의식을 끌어올리지 못한 것은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개인적으로 UFO를 목격한 경험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접촉한 사실은 없습니다. 단지 98년 경 아카식 리딩을 받았을 때, 리딩을 해주는 티벳의 마스터가 당신은 UFO를 알리기 위해 태어났고, 장차 우주인들과 접촉하게 될 것이니 그 때 경험한 것을 책으로 쓰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때가 과연 언제인지, 또 정말 UFO와 접촉을 하게 될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는 것이죠. 30. 사나트 쿠마라에 관한 말씀을 해주세요. 사나트 쿠마라는 약 1,800만년 전에 인류의 영적진화를 총체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금성으로부터 지구에 도래했다고 하는 대 초인(大 超人)입니다. 이 위대한 존재에 관한 정보는 신지학(神智學) 문헌에서 찾아 볼 수가 있는데, 그는 행성 지구에다 최초로 "Spiritual Hierarchy(영적인 위계 질서의 의미이나 보통은 대백색 형제단(大 白色 兄弟 團)이라고 한다. 여기서 원래 지구 행성 로고스(logos)였던 사나트 쿠마라 님이원래의 고향인 금성으로 복귀함에 따라서 백색 형제단의 마스터들의 위치가 한 단계씩 상승하여, 현재는 행성 로고스 또는 ‘세계의 주님’에 석가모니 붓다, 그 아래의 행성 붓다(Planetary Buddha)에는 미야트레야(=미륵, 彌勒, 보통은 미륵 보살이라고 함) 님이고, 그 아래의 세계의 스승(=World Teacher)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스터 쿠트후미(master Kuthumi)가 맡게 되었으며, 그 아래의 6광선 초한은 레이디 나다(lady Nada=이 나다님의 전생이 바로 예수님의 트윈 프레임, twin flame=쌍둥이 영혼, 즉 천생 연분의 배필임)이다. 당시 인류는 동굴에서 혈거생활을 할 정도로 미개한 진화상태로 추락해 있었고, 야만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가 이러한 인류의 영혼들의 진화를 촉진시키고 구원하기 위해 저차원의 물질계로 강림한 것은 자기희생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성경과 불경을 비롯한 모든 지구상의 종교적 경전에서 언급하는 구세주의 원형은 바로 사나트 쿠마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실존하는 신비의 세계 텔로스 1’의 p369에는 과거 석가모니의 스승인 다보여래, 多寶如來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다보여래가 바로 이 사나트 쿠마라 님이라고 한다.) 모든 아바타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존재인 사나트 쿠마라는 행성 안의 모든 생명들을 자신의 오라(Aura) 안에 품고 있는 행성로고스적인 역할을 맡아 왔으며, 모든 마스터들의 스승격인 존재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현재 지구라는 행성을 관리하는 영적조직은 "영단(Spiritual Hierarchy)"과 "샴발라(Shamballa)"로 구분되는데, "Spiritual Hierarchy" 보다 상위조직이 샴발라입니다. 이 샴발라가 오랫동안 사나트 쿠마라가 머무르며 주관해온 에테르 차원의 일종의 지구의 영적중앙청에 해당되고, 중앙청 안의 대통령,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왕(靈王)격인 존재가 바로 사나트 쿠마라였습니다. 그리고 "Spiritual Hierarchy"는 실무적인 행정부 조직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현재 "Spiritual Hierarchy"의 수장(首長)은 불교에서 언급하는 미래불(未來佛)인 "마이트레야(彌勒)"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그는 일종의 국무총리격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쿠트후미라든가, 생 제르맹, 사난다 등의 마스터들은 행정부 안의 각부 장관(국무위원) 정도의 존재들인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비교해 본다면 사나트 쿠마라의 위상이 어떤 존재인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31. 2012 지구의 정화 작업에 대하여 말씀해 주세요. 답: 2012년 경에 관연 무슨 일이 일어날런지는 그때 가보기 전에는 아무도 장담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다수의 채널 메시지에서 공통적으로 그 때를 차원상승의 시기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모종의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잠정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여러가지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과거 사이비 종교의 종말론 마냥 그런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외계인들이 우리를 모두 구원해주리라는 식의 발상도 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계통의 정보나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구해 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영성활동을 하고 스스로 빛의 일꾼이니 뭐니해서 자칭한다고 그리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정보들에 도취돼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제 마지막 때니 일할 필요도 없고 학교나 직장도 다닐 필요 없다는 식으로 현실을 포기하고 하늘에서 UFO 내려 올 때만 목매달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병폐적 의식을 가진 자들은 착각과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면서 작더라도 우선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의식의 주파수를 높은 진동 상태로 높이고, 사랑의 파장을 주위로 방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차원상승은 우리 주파수의 상승이므로 되고 안되고는 결코 누가 대신 해주고 안 해주고 하는 성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오면 무조건 외계인이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기대해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2.부모에게 학대받는 자녀나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 하는가요? 인과법(因果法) 대로라면 부모에게 학대받고 미움받는 자식들은 전생에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 학대받는 입장에 있는 자녀가 과거에는 어떤 형태로든 부모에게 학대를 가하는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그 무엇도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측면에서 이러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현재 학대받는 자녀가 괴롭다고 해서 부모에게 대들거나 위해를 가한다면, 이는 피로 피를 씻으려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런 행위는 또 다른 업을 짓게 되어 부모와의 끝없는 악연(惡緣)의 고리가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중생들은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끊임 없이 카르마(業)를 짓게 됨으로써 돌고 도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학대를 받더라도 내가 과거에 지어놓은 업이니 참고 견뎌야 합니다. 예컨대 만약 내가 남에게 큰 잘못을 저질러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 분노케 했거나 그에게 원한을 샀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용서를 빌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나를 학대할수록 어찌 되었든 그분들은 나를 세상에 낳아 주신 분이니 그들을 지극정성으로 받들고 봉양한다면, 언젠가는 그 분노와 한이 풀릴 것입니다. 물론 학대받는 자식 입장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처럼 전생의 원수같은 악연들이 한 가족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의 원한을 풀고 화해함으로써 함께 영혼의 성숙을 이루라는 하늘의 뜻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부모와 자식 관계라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천륜(天倫) 관계인데, 어디로 피한다고, 도망간다고 결코 업(業)이 소멸되지는 않습니다. 자살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방법들은 단지 필연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를 시간적으로 뒤로 미루어 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자님은 <논어(論語)>에서 말씀하시길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강조 하셨습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해주고 잘해줄 때만 자식이 효를 행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효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해주든 학대하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함을 공자님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효행(孝行)은 단지 형식적인 예(禮)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자식의 영혼에게 큰 도움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 효의 정신이며, 이런 효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 인간은 점차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33.질문: 1.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는 말씀이 무든 뜻인지요? 2.송과체가 열려야 죽음을 겪지 않고서 차원 상승 할 수 있다는데 무슨 말인지요? 3.선천에 쌓였던 상극의 원한을 풀어야 상생의시대가 도래한다는데 아직 지구상에 쌓여있는 신명들과 낙태아의 한이 괴병겁을 일으킨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며.. 곧 높아지는 지구진동에 적응 못하는 자는 죽음을 격은 후 다른 행성으로 옮겨진다는데 무슨 소리인지요? 답:1. 창조주의 속성을 표현한 말로서 글자 그대로 신(神)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하느님이 저 하늘의 특정한 곳이나 어느 공간에 위치해 있다면, 무소부재한 존재가 아니므로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며 전능한 신도 아닌 것이죠. 소위 하느님을 인격신(人格神)으로 상정해서 저 하늘 어딘가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며 벌을 내리기도 하고 복을 내리기도 한다는 식의 생각이 보통 종교인들의 신관(神觀)입니다. 기독교와 회교, 가톨릭, 기타 우리나라 민족종단이 가지고 있는 신관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데, 이는 한마디로 수천년 전 인간의 의식이 깨어나기 이전 원시인들이 믿던 비과학적이고 미개한 신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코 그런 인격신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생각은 인간적 차원의 낮은 관념의 투영이고 원시적인 상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로 하느님은 일종의 인격신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우주 자체에 깃들어 있는 거대의식(巨大意識)이자 에너지, 또는 우주 윈리 내지는 법칙으로 상정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이 어디에나 편재해 있으려면 이 우주 자체에 깃들어 있지 않으면 안되며, 따라서 우주 삼라만상 자체가 신(神) 자체의 현현(顯現)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삼일신고(三一神告)>에 나와 있는 신관이자 우주적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차원 높은 신관인 것입니다. 2.송과체의 비밀은 아직 과학적으로 제대로 규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노화와 죽음은 내분비선의 호르몬과 차크라가 관계돼 있다고 추정됩니다. 죽음을 겪지 않고 상승하는 길은 비단 송과체 하나의 개발에만 관계돼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차원상승에는 세포 내에 빛을 증가시키고 충전시켜 인체의 차크라와 내분비선을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수련기법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아울러 장차 광자대의 광자 에너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승은 개개인 영혼의 카르마(Karma)와 영적으로 각성된 여부나 그 단계, 영육의 순수성 정도와 종합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보여집니다. 3.그것은 증산계 종단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병겁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갖가지 천재지변 등이 지구를 정화하는 작용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인간의 분노와 증오, 원한, 등의 악 상념은 네가티브한 에너지 막을 만들어 지구의 상승을 막고 있는데, 이러한 어둡고 탁한 에너지 정화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지구변동은 불가피 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구의 진동이 높아져 상승이 일어났을 때 주파수 미달로 탈락하는 영혼들과 천재지변 과정에서 희생되는 인간들은 다시 지구에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구에서 기존의 윤회환생의 사이클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지구는 현재의 초등학교 수준에서 중학교 수준으로 승격되어 다시 개교하기 때문에 아직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학생들은 지구라는 학교에 더 이상 다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초등학생의 영혼들은 다시 우리 은하계 내의 다른 초등학교(행성)로 옮겨서 학업을 계속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34. 業을 소멸하는데 있어서 이타적인 행동은? 답:물론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이 우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는 "여자를 보고서 음심(淫心)을 품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이미 간음(姦淫)했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우리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씩 간음하며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네 불완전한 중생들은 이것이 자기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보아야 하며, 때문에 마음에서 짓는 죄는 어느 정도는 용인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런 불완전한 가운데서도 보다 나아지고 완전해 지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 나가는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도 이미 그러한 것을 이해하고 있는 바탕 하에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제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 그러한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돕는 어떤 이타적 행위를 할 때, 보통의 중생들은 그것을 남에게 드러내거나 일부러 과시하려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이것 역시도 인간이 미성숙한 에고(ego)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그런 사람들에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쳤고, 부처님 역시도 "남에게 베풀되, 내가 베푼다는 생각없이 하라(無住相布施)"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조건이나 기대 없이 실천하는 선행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선행을 했을 때만이 진정한 공덕이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지요. 예를 들어 불우이웃 돕기나 수재의연금 낼 때, TV 방송 같은데다 얼굴 내놓고 나와서 나 얼마 성금 냈네하고 전국에 광고하는 사람들은 몇 억을 냈다고 하더라도 그리 큰 공덕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과시로 인해 이미 자기 공덕의 상당부분을 깎아 먹은 상태라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보시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 이름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숨어서 하는 보시는 드러낸 보시보다 10배 20배의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처님 설법처럼 아예 내가 보시한다,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보시의 공덕은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 중생들의 문제는 질문하신 분 마냥 자신의 행위를 어느 정도 의식할 수 밖에 없다는 데 또 다른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반대급부적인 계산이나 결과 같은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만, 자기도 모르게 자꾸 의식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는데, 의식이 되더라도 다만 가엾은 사람, 나보다 어려움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 자비심 쪽에다 좀더 생각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의식되는 것을 억지로 억누른다고 그 생각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의식이 되더라도 이럴 바엔 "그래 어려운 사람도 성심껏 도와주고, 동시에 내 업장도 해소하자." 또는 "전생에 내가 남에게 지은 죄업을 그 몇 배의 선행을 통해 씻자."차라리 이런 참회와 자기반성적 사고를 통해 적극적 생각을 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대로 이 세상에는 머리 속에서 생각만 하면서 실천은 하나도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선한 생각, 자비심, 이타적인 마음을 품는 것도 분명 일부 선업을 쌓는 것이기 하지만, 거기에 직접적인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 또한 문제가 있는 것이며, 큰 공이 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형태로든 실천을 한다는 것은 생각 속에서만 그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것입니다. 35. 단전 호흡을 혼자서 하는데, 가끔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답: 가슴이 답답하다면 좀 무리하게 호흡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전호흡은 제대로만 수련한다면 건강과 더불어 영적상승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좋은 수련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단학이나 선도계통의 수련자들 가운데는 수련 과정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와 상기증(上氣症)과 같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화(走火)는 상기증이나 비슷한 의미인데, 특히 입마(入魔)라는 것은 "빙의(憑依) 현상"을 뜻합니다. 초보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축기(蓄氣)하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무리하게 호흡을 길게 들이쉬고 내쉬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흡은 절대 무리해서는 안되며, 자기의 호흡 길이에 맞춰 자연스럽게 여유를 두고 해야 합니다. 부작용이 나타나려는 조짐이 보이면, 즉시 수련을 중단해야 합니다. 상기(上氣) 증상이 나타나게 되면, 우선 자꾸 입안의 침이 바싹바싹 마르고, 두통이 오거나 불면증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입안의 침이 자꾸 마른다는 것은 단전의 화기(火氣)가 머리로 상승해서 수기(水氣)를 증발시키게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와 반대로 정상적으로 수련이 잘 될 때는 입안에 반드시 단침이 고이기 마련이고, 단전이나 발바닥 용천혈(湧泉穴) 쪽이 뜨거워지게 돼 있습니다. 이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에 따라 수기(水氣)가 머리로 상승하고 화기는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위에 열거한 여러 증상들 가운데 어떤 증상이 자기에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잘 살펴본다면 자신이 올바로 제대로 수련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잘못되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수련을 하려면 물론 본인의 의지나 노력도 중요합니다만, 무엇보다 수련할 수 있는 어떤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 인연은 전생(前生)에서 부터 이어져 온 맥이라고 생각되는데, 전생에 수련경력이 전혀 없는 완전 초보자가 현생에서의 수련만으로 높은 경지를 성취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절대 욕심으로 무리한 수련을 해서는 안되며, 혹시라도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자기는 수련할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평범하게 그냥 열심히 사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수련 부작용이 심할 경우,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되어 일생생활을 제대로 영위도 못하고 인생 자체를 망치는 경우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바르지 않은 사람, 수련목적이 잘못돼 있는 자들, 또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수련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초보자들은 혼자서 독자수련 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일정 기간(6개월-1년) 동안은 앞서 간 지도자의 지도를 받는 게 많은 도움이 되고 위험 부담성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36. 질문:1.남의 업보를 약간이나마(천배나 이타행) 대신 갚아주고 용서받을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가능한지요? 2.현생에서 가장 이상적인 수련법은 천배와 이타행과 기수련이 세 가지가 알맞은 조화 같은 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1.남의 카르마(業)를 대신 갚아 준다는 것은 불가합니다. 우주 법칙상 자기의 업은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카르마의 법칙>이라는 것은 영적 진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그 영혼이 배워야 할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전생에 남을 괴롭히거나 도둑질을 많이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 악업에 의해 이번 생에서는 입장이 반대로 바뀌어 내가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물건을 빼앗기는 처지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리바꿈을 해봄으로써, 비로소 나는 괴롭힘을 당하고 물건을 빼앗긴 사람의 처지를, 즉 내가 피해를 주던 상대방의 입장과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사람이 나의 업을 대신 한다면, 내가 배워야 할 그러한 교훈의 학습기회를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카르마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경우, 높은 차원의 스승이 제자의 과중한 카르마를 대신 일부 짊어져 주는 경우가 있다고는 합니다. 이것은 제자의 업장이 너무 무거워 도저히 혼자서는 그 업장을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보일 때, 또는 제자가 가진 수련의 장애물을 일부 대신 짊어져 줌으로써 수련에 도움을 주고자 할 때, 그런 케이스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그 제자의 카르마가 스승에게 전이(轉移) 되어 스승이 대신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제자에 대한 스승의 깊은 사랑과 자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스승이 제자의 영적진화 경로 전체를 꿰뚫어 보는 높은 안목이 있어야만 하며, 제자가 업의 법칙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주 희귀한 일부 케이스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남의 카르마에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남의 어려움을 일부 도와주는 이타행(利他行)과 남의 카르마에 대한 근본적 관여는 차이가 있고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허리 굽은 노인들 짐을 좀 들어주었다거나 앞을 못 보는 시각 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고 그것이 상대 카르마에 대한 관여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죠. 이러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 행위는 용인될 수 있고 오히려 권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표현상의 용어를 정확하고 적절하게 선택해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을 기회를 만드는 것도 참다운 참회와 반성을 통해 자기가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이 대신 그것을 만들어 주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 사람의 영적진화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2.일률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자기에게 맞은 수련법이나 방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자 개인에게 적합한 수단이나 방법을 찾거나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37. 문: 안녕하세요. 게시판을 읽으면서 최근에 올라온 글 중 사주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혹시 12운성이라는 것에 대해 아시는지? 저도 알게 된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사주로 사람의 현재, 잠재의식을 말해놓는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고... 설령 이것이 맞다해도 자기가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을까요? 운명이라는 것도 자기가 예전 삶에 했던 습관들이 반복되어 나온 것일 뿐..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생에 원치 않던 삶을 살던 사람이 이생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래 글 중 사주로 부터 벗어나기 힘들다는 뉘앙스가 느껴져서 한 번 써봅니다. 답: 물론 인간의 운명은 어느 정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사주팔자 정해진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면, 인간의 노력이라는 게 아무 의미나 가치도 없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12운성이라는 것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사주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소위 그런 것들은 중국 당사주(唐四柱)와 비슷한 유형으로 복잡한 사주판단을 아주 단순화시킨 것인데, 이런 것은 거의 맞지 않습니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宿命)과 운명(運命)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명은 전생의 업(業)에 의해 이미 결정돼 있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명(命)입니다. 자기가 어느 집안에서 태어나느냐의 문제와 그 태어난 집안의 부귀여부나 길흉화복, 부모형제가 어떤 사람이라든가 부모덕이나 형제덕의 유무, 자신의 타고난 성별(性別)이라든가, 이런 조건들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선택하거나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사항이 아니지요. 이밖에도 신체의 선천적인 건강상태, 두뇌의 지능지수나 명석함 여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運)의 흐름, 이런 것들도 전생에 자기가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 의해서 이미 결정돼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간적 노력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정해진 그러한 숙명적 조건들의 토대 위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노력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 선천적 체질이 허약한 사람이 열심히 운동하고 섭생을 조심해서 어느 정도는 건강유지를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또 거지 사주를 타고 태어난 자가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어려서부터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물론 최소한 거지 신세는 면할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가 타고난 운력(運力)이 지극히 미약하고 전생에 쌓아 놓은 복덕(福德)이 없기 때문에 그가 소위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간신히 거지 신세만 면할 정도로 하류 생활을 전전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인간의 사주와 인간의 운명을 비교해서 조사해본 통계에 의하면, 거의 90% 이상이 자기 사주에서 못 벗어나고 타고난 대로 산다는 내용을 어느 역학 잡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 운명을 개선하려고 지극히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도 많지는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거지 사주를 가진 자들 10명 중의 9명은 그냥 거지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것을 일종의 우연의 산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것인데, 이른바 사주가 나쁘다고 할 경우, 어쩌다 재수 없게 나만 안 좋은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 어떤 것도 우연은 없습니다. 따라서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고, 신세 한탄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정확하게 내가 뿌려 놓은 그대로 내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주도 인과법(因果法)에 의해 내 스스로 만든 것임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는 인간이 열심히 노력했을 때 자기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한도를 한 20~3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나와는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요. 38. 문: 지구가 차원 상승한 다음에 살아남는다면? 답: 우선 이해해야 할 점은 차원이 상승된 이후의 지구문명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의 수십만 년 동안 지구라는 행성은 저급한 영혼들을 교육시키는 학교 또는 수련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상승이라는 것은 지구가 그러한 역할을 이제는 마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기존에 존재하던 윤회환생의 시스템은 장차 해체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지상에서 한 세상 살다 죽으면 그 영혼은 영계(靈界)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자기의 카르마(業)에 의해서 다시 환생을 반복하는 체제가 유지돼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영혼의 세계가 없어지게 되므로 지구에서 이미 죽은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어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물론 죽은 가족이나 친구 가운데 일부라도 진동이 상승한 지구에 다시 태어날 만한 영격을 이룬 존재라고 한다면, 재회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는 파장의 원리로 존재하고 유지되므로 서로 간에 주파수가 다른 존재들끼리는 만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부모형제간이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요. 향후 상승에 실패하는 영혼들은 우주 법칙 상 지구에서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지구와 유사한, 우리 은하계 내의 진동이 낮은 물질행성으로 옮겨져 거기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기억을 망각한 채 다시 윤회환생의 사이클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상승에 성공한 지구의 누군가가 자기 가족이나 친구였던 영혼을 찾아 그 곳에 가보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모든 기억을 망각하고 새로운 육신을 쓴 그들을 만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안타깝지만 영적진화의 문제는 가족 간이라도 억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 가족이라도 서로간의 영적 레벨이 다르고 의식의 파장이 다르면, 앞으로는 함께 하기가 어려운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자기 부모형제나 친척, 친구 같은 가까운 이들을 영적으로 깨우쳐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9. 운명을 개선하려면? 답: 앞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지만, 자기의 사주(四柱)를 정확하게만 풀어낸다면, 인생을 사는데 많은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주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한 개인의 전생의 카르마(業)에 의해 각자의 사주팔자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윤회환생을 통해서 전생에서부터 해 오던 패턴을 거의 반복하게 됩니다. 따라서 직업이라든가 적성, 취미, 관심분야, 인간관계가 모두 전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으며, 과거에 해오던 일을 또 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일부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만약 전생에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현생에서 새롭게 하려 한다던가, 카르마적으로 자신에게 안 맞는 길을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로 가려고 했을 경우는 어려움을 겪거나 헛된 시간낭비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려 애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안 좋은 운명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물론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기가 지어놓은 카르마를 무시하거나 초월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건대 사주팔자가 안 좋은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선적덕(積善積德)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업이 상쇄되거나 소멸되어 좋은 방향으로 운명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부지런히 땀 흘리며, 정직하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피라밋이나 히란야 같은 것을 이용한다고 자신의 악업이 저절로 소멸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입니다. 그런 상업적 선전같은 것은 좀 과장된 면이 많이 있으며, 약간의 에너지적 보조효과 정도로만 생각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수호령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보호령, 또는 지도령이라고도 합니다. 주로 그 개인이 하는 일을 지도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윗대의 조상신인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조상신이 아닌 경우는 인간으로 있을 때 비슷한 일을 했던 영(靈)이 와서 수호령 역할을 해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술가에게는 예술가의 영혼이, 군인에게는 군인이었던 영혼이, 수도자에게는 수도자였던 영혼이 보호령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40. 선과 악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답:본래 절대선도 절대 악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3차원의 상대 계에는 분명히 선과 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견해로는 선과 악을 가름할 수 있는 척도는 외형적인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하는 자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르마가 되고 안되고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내가 선의(善意)를 가지고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이 물론 본의 아니게 남에게 일부 피해를 줄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누군가 피해를 좀 봤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이타적인 선의는 이해되고 용인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카르마(業)로 작용해서 업보를 받는 식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떤 직접적인 행위가 없었음에도 마음에 어떤 생각을 강하게 품는 것만으로도 카르마가 되고 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예수님 말씀에 "마음속에 음심(淫心)을 품는 것만으로도 이미 간음(姦淫) 했느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매우 증오한다든가, 어떤 강한 욕망을 품는 것만으로도 카르마가 되어 다음 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악이라는 것은 미성숙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악한 자는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남에게 예사로 피해를 주고, 또 심지어는 남을 짓밟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아기나 아이들일 수록에 남에 대한 배려가 없고 자기 밖에 모르듯이, 이처럼 악인의 행위는 모든 것이 자기중심으로, 자기 한 사람의 이익과 욕망충족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영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영적으로 어린 철부지들이고, 망나니들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장해서 성숙한 어른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자타일여(自他一如)의 이치를 깨닫고 이타적인 선한 인간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은 이미 오랜 진화를 거쳐 영적인 성숙단계에 와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41. 명상 방법에 관하여 말씀해주세요. 답:인간은 누구나 다 내면에 선(善)과 악(惡)의 양면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지 어느 정도 본인의 이성(理性)으로서 본능적인 욕망들을 자제하고 선(善)을 지향하는 의지와 노력을 해 가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멀쩡한 정상적인 사람도 한 순간의 충동이나 분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면 한 순간에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명상수행은 어느 정도 마음을 닦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단, 명상수행 만으로는 부족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선행이나 봉사를 병행해가면 업장소멸에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행과 봉사는 그리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드린다든가, 무거운 짐 가진 사람 짐을 들어준다던가 하는 것만으로도 큰 선행이나 훌륭한 봉사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가지씩만 실천해 간다면, 점차 운명개선의 효과와 더불어 이타행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명상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요가나 기공과 더불어 돈 받고 가르쳐 주는 곳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정신세계원(TEL:747-7033)에서 나오는 <웰빙 라이프> 같은 잡지를 참고하면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서점에 가면 명상법에 관한 책도 여러 종류 나와 있으니 읽어보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견해로는 명상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가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명상도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명상이란 기본적으로 의식을 한 곳에 붙잡아 맴으로써 혼란스러운 평상시의 마음을 가라앉혀 무념무상의 고요하고 평정한 상태로 들어가려는 노력입니다. 한 가지 소개한다면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간단하지만 좋은 명상법입니다. 조용한 방에 앉아서 자연 그대로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여 주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잡념이 떠오를 것이고, 내면에 억압돼 있던 갖가지 감정이나 욕망들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때문에 끈기가 없는 사람은 명상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40분~1시간 정도 꾸준히 몇 달 이상 노력하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을 평정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만트라(Mantra) 즉 진언(眞言)을 암송하는 것도 좋은 수행법입니다. 예컨대 <옴(Aum)>이나 옴의 변형인 <음> 또는 <옴 마니 반메 훔> 같은 만트라를 외우는 <소리 수련>은 참선(參禪)이나 마음 관조법 보다는 초보자가 하기가 쉽습니다. 의식을 단전(丹田), 즉 아랫배에다 두고 처음에는 소리내어 하다가 어느 정도 숙달되면, 조용히 나즈막하게 속으로 외워도 됩니다. 이 수련의 장점은 빠르게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는 것이며, 길을 걸어가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할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42. 이타행과 운명 개선의 길을 알고 싶습니다. 답:앞서 있었던 질문과 거의 대동소이한 질문인데, 기존의 답변만 자세히 읽어도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답변을 자꾸 반복하려니 좀 답답한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자기가 처한 현생의 모든 불리한 상황은 결국 자기가 만든 것입니다. 누구 탓을 할 필요도 없고 부모나 조상 원망할 문제도 아닙니다. 이 점을 우선 명확히 인식해야합니다. 이러한 명확한 인식 내지는 각성(覺醒)을 토대로 자신의 악업(惡業)에 의한 업장(業障)을 소멸시켜 자신의 운명을 전환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것은 결코 그리 쉽거나 간단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많은 영혼들이 약간의 어려움에도 좌절하여 악순환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는 윤회환생의 사이클을 돌고 도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일도 공짜로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불운한 운명을 바꾸려면 뼈를 깎는 고난을 극복해야 하고, 때로는 처절할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나약한 영혼들은 약간의 어려움도 극복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퇴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들이 스스로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이런 사람들은 예수도 석가도 하느님도 구원하기가 힘듭니다. 예컨대, 걸음마 처음 배우는 아기가 처음에는 몇 걸음도 못 가서 넘어지기를 반복하지요. 이때 엄마가 아기가 애처럽다고 업어 주기만 하면 아기는 영원히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기만 해야 합니다. 이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우주의 섭리와 법칙은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 진화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에 간섭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 냉엄한 것 같지만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의 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화하지 않으려 하는 존재들은 아마도 언젠가 우주법칙에 의해 자연도태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상은 가능한 한 보다 많은 영혼들을 깨우치고 이끌어 주고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인류의 교사들을 파견해 왔습니다. 그들이 바로 인류 역사상의 많은 성인, 부처, 보살, 기타 선각자,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가르친 핵심은 우리가 다 아는 바 아닙니까? 지구상의 인간은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다 문제가 있고 부족한 가운데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것이죠. 만약 주위에 소외되고 고립되고 은둔해 있는 불쌍한 영혼이 있다면, 먼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손길을 내밀어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 고마워할 겁니다. 자기 힘으로 서서 걸어야 하되, 누군가의 도움으로 좀 더 걸음을 수월하게 배우는 정도는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이죠. 그게 알다시피 예수, 석가가 가르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아니겠습니까? 이타행이든 참회든, 천배를 하든, 그 모든 노력은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 모든 노력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업장을 조금씩 녹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업장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신성의 빛을 밝힐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업장이 많은 사람은 앞길이 업장에 의해 방해받게 되고, 가려는 길이 자꾸 가로막히게 됩니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먼저 업장을 소멸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남에게 부채를 지고 있는 한, 나는 법적으로나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 빚을 모두 갚았을 때만이 채무자 신분에서 벗어나 나는 홀가분한 상태가 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카르마(業)란 내가 남에게 진 부채와 같습니다. 어차피 반드시 갚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안다면 자기 신세 가지고 한탄하거나 자학하거나 누굴 원망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또 삶을 멋대로 낭비하거나, 이기적으로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죄(罪)도 인간이 너무 무지하기에 짓는 것이죠. 이 정도면 아마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43. 영혼의 환생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답:영혼이 환생하는 데 있어서 그런 불균형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영계(靈界)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영계란 영혼들이 다음 환생을 위해 머물러서 대기하는 일종의 대기소입니다. 때문에 자신이 들어가기에 마땅한 육신을 기다려야 하므로 환생의 사이클이 영혼들마다 각각 다른 것입니다. 또한 각 영혼들은 자신의 전생의 카르마나 또는 지상에서의 임무나 사명이 제각각 다릅니다. 예컨대 저급령들이야 대충만 맞으면 아무 육신이나 들어가면 되지만, 고급령의 경우는 적합한 부모의 DNA를 갖춘 육신을 찾아야 합니다. 고급령이 저급한 영적의식과 DNA를 가진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기는 힘듭니다. 이런 경우 적합한 인연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어떤 영혼의 경우는 50년이고 100년이고 마땅한 육신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육신 받아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않은 일이고, 영적진화를 할 수 있는 이런 귀중한 기회를 허송세월로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계는 정묘한 에너지의 파동의 세계로 육신이 아닌 영체의 상태로 거주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는 지구에서의 윤회환생 사이클 자체가 점차 끝나게 되니 더 이상은 지구에 환생하지 않는 영혼들이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이 지상에 태어나는 영혼들은 (1)죽음을 통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카르마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거나, (2) 아니면 지상에서 차원상승하기 위해서 이거나, 또는 (3)인간을 돕기 위해 온 스타피플이거나, 셋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44.공덕에 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답:현생에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불행을 당하는 것도 다 자기 전생의 카르마(業)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해있거나 가난한 사람일수록 공덕을 쌓기가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범죄에 노출되기가 쉽고, 또 악업을 지어 업장이 무거워지게 되고 다음 생에 더 나뿐 환경에 태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환생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설사 전생에 쌓은 공덕이 있어 현생에서 유복한 환경에 태어나더라도 우리가 재벌들이나 국회의원, 사회저명인사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수시로 감방 드나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런 사람의 복덕은 현생에서 모두 탕진되어 한 번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공덕은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 하는 작은 선행이 큰 공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과부의 헌금"이란 대목이 나옵니다. 사두개파나 바리새파 제사장들과 부자들이 온갖 금은보화를 가져다 보란듯이 헌금하는 가운데 가난한 노파가 부끄러워하며 달랑 은전 한 닢을 헌금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히려 저 노파가 가장 큰 헌금을 했다고 칭찬합니다. 의아해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설명하기를, 제사장들과 부자들은 자기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놓았으나 저 여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다며 그 여인의 공덕이 가장 크다고 답변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공덕은 물질의 액수나 크기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 사람의 정성과 성의에 달린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이 이웃에게 베풀기는 쉬우나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 남에게 베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환경에서 그것을 실천했을 때 그 사람의 공덕은 부자의 선행보다 몇 십 배 이상 큰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물질은 사실 우주의 것이고 하느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인간의 사유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물질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사는 동물인데, 이는 말 그대로 어리석은 착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을 때는 몇 천 억 가진 재벌이든 길거리의 거지든 똑같이 빈손으로 가야합니다. 이처럼 저 세상 갈 때는 누구든 간에 단돈 100원 짜리 동전하나도 가져갈 수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모든 물질은 자신이 잠시 맡아두고 있는 것이고, 인간 각자는 그 물질의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알음귀가 열린다함은 자신의 보호령 또는 수호령, 지도령과 통신이 가능케 됨을 뜻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영감(靈感)형식으로 오거나 텔레파시 형태로 올 수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나거나 어느 정도 수련이 되어 영들의 주파수에 동조능력이 생겨서 파장 수신이 가능해졌을 때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45. 세계의 기운이 한반도에 집중되는 이유는? 답:1.우선 대표적인 원인으로서는 풍수지리상 한반도가 지구의 단전(丹田), 즉 기해혈(氣海穴)에 해당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인체에서 단전이 기가 모이는 중심이듯이 한반도가 위치상 지구의 중심 부위이므로 기운이 모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또 지구의 축(軸)에 해당되는 부분이 충청도 계룡산 근처라는 설(說)도 있지만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천문학상의 이론으로서 특정 천체(天體)의 성기(星氣)가 현재 한반도를 비추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몇 가지 이야기들은 장차 우리나라가 세계 지도국가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언의 토대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될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되며, 미래는 그때 가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쨋든 한반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특수한 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인삼이나 산삼도 세계에서 한반도에서 나온 고려인삼만을 인정해주고 중국산이나 캐나다산, 유럽산은 별로 쳐주질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약효가 한반도에서 나온 제품의 약 6분의 1에서 10분의 1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한반도에서 나온 식물이나 동물들 일 수록에 몸체는 작으면서도 약효나 맛이 다른 나라보다 뛰어납니다. 故 인산 김일훈 선생같은 분도 한반도 상공에는 감로정(甘露精)이라는 특수한 성분이 존재한다고 생전에 언급하신 바가 있지요. 2.제사의 의미는 우선 살아있는 후손이 돌아가신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추모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울러 영혼이 환생하기까지의 기간인 4대(代) 내의 조상신 가운데 혹시라도 천도가 안되 떠도는 영가가 있을 경우, 제삿날 하루라도 음식을 대접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사는 유교문화권에만 존재하는 훌륭한 미풍양속(美風良俗)입니다. 특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는 옛부터 조상신명 모시기에 가장 극진한 민족이었습니다. 꼭 제사상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안 차리더라도 간소하게나마 차려 조상을 깊이 기리고 추모하면서 그 생전의 은덕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영계에 있는 조상에게 그 염(念)의 파장이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상신 역시도 지상에 있는 자신의 후손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돌보지 않겠습니까? 조상과 후손은 기적(氣的)인 파장으로 하나로 연결돼 있으므로 조상공덕이 자손에게 미치고, 반대로 자손의 공덕이 조상에게 미칠 수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46. 영적 상승의 길에 관하여 말씀해 주세요. 답: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진정으로 과거를 참회한다든가 과오를 씻기 위해 헌신 봉사하는 것은 가치있고 바람직한 것입니다. 앞서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결코 채널링 지식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주지는 못합니다. 지식이나 정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고 일종의 참고자료에 불과한 것이죠. 인간의 이기주의와 에고가 철저히 깨져서 스스로를 밑바닥까지 낮출 수 있는 겸허한 인격이 형성되는 데는 뼈를 깍는 고난의 체험과 오랜 헌신, 봉사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높은 영적 차원에 도달하는 길에는 여러 가지 수련법을 통한 길도 있겠지만, 수련이 아닌 몸으로 직접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이타행, 보살행의 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천을 통해 자신의 업장을 점차 소멸시키고 아상이 어느 정도 이상 정화되었을 때 비로소 영적상승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세상에 공짜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영적인 길일 수록에 더욱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몸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꿈을 통해 찾는 경우는 그 사람의 조상신이나 보호령이 꿈이라는 매체를 통해 도움을 주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47. 차원 상승 이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답: 아마도 기존의 윤회환생 사이클을 반복하는 방식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차원의 상승은 곧 진동 주파수의 상승입니다. 즉 우리의 육체도 변형되어 진동도 높아지므로 그 자체가 영체의 주파수에 근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과거처럼 육신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이 빠져나와 영혼 계에 대기하고 있다가 다시 몸을 받아 환생하는 기존의 시스템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채널 정보의 가르침대로 장차 지구가 5차원 진동의 행성이 된다면, 그리고 우리가 상승에 성공한다면, 그 세계는 영육이 하나로 통합된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에는 죽음이 없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물론 수명이 몇 천 세, 몇 만 세로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영생은 아니니 죽음과 유사한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에 지구에서 있었던 두려운 형태의 죽음과 같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생생한 의식을 유지한 채로 낡은 체(體)를 버리고 새로운 체에 들어가는 형식이 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영적경험을 위해 보다 고차원의 세계로 올라가는 방식이 될 것으로 봅니다. 영혼에게 죽음이란 본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한 영적진화를 위해 입는 옷이 육신이나 또 다른 체(體)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은 단지 옷을 갈아입는 것에 불과한 것이죠.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던 몸이 아직 쓸만하여 더 사용할 수 있다면, 옷을 보수해서 다시 입듯이 재사용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8. 질문: 2012년 말이면 무엇인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 부탁드려요. 답: 채널링 정보의 신뢰성 문제는 뭐라고 단정해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이 예언 같은 것들이 자주 빗나갈 경우 인간의 입장에서는 의심할 수 밖에 없고,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로 돌아선 일부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구를 둘러싼 아스트랄계가 혼란 상태에 있다 보니 일부 저급령들(低級靈)이나 허령(虛靈)의 장난도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고급의 채널 정보들조차 모조리 거짓이라고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 항상 빛과 어둠, 음과 양의 양면성(兩面性)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빛의 세력이 활발히 움직이는 만큼 어둠의 세력도 살기위한 최후의 발악을 할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무엇인가 배후에서 모종의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상과 외계존재들은 보통의 우리 인간들이 상상하듯이 모든 일을 100% 완벽하게 수행할만큼 그렇게 완전무결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너무 한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나타나 지구상의 모든 것을 단 번에 해결해 줄것이다라는 식의 지나치게 목을 매다는 의존성도 문제가 있고, 반대로 예언이 안맞았으니 모든 채널 정보는 거짓이다라는 식의 극단적 부정도 좋지 않습니다.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인간의 노력과 천상의 노력이 서로 부합되어 플러스 효과를 나타낼 때, 비로소 무엇인가 가시적인 결과가 실현될 것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대량 착륙 같은 문제도 저들이 지구의 상황을 고려함이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우리 인류가 저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전 준비가 돼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2012~2013년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세상이 어찌 바뀔 것인가? 현 시점에서 아무도 단정하기가 힘들다고 봅니다. 하지만 채널 정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시기가 바로 그 때이니 추측컨대 그 때까지 상당한 가시적 변화는 분명히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장차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해서 지금의 현실 생활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쪽 분야에 너무 심취해 있는 일부 사람들 중에는 세상이 곧 바뀔 것이니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고, 아둥바둥 먹고살고자 애쓸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현실포기인데,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결국에 이런 현실 도피자나 포기자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고통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단체들은 이런 인간의 말세적 심리와 약점을 교묘히 이용해 그들을 자기네 단체에 묶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가서 세상 변화가 오면 오는 거고, 그 때까지는 무슨 일을 하든 현실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이왕이면 현실생활과 더불어 나름대로 빛을 전파하는 봉사나 영성활동을 병행하면 더 좋겠지요. 49. 창조주와 부처님의 관계는? 답: 앞서의 답변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질문이 올라왔군요. 다음의 설명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 다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신관(神觀)>을 올바로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창조주" 또는 "신"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설정해서 보느냐의 문제인데요. 기존의 기독교나 이슬람교, 또 여타 종교 및 우리나라 민족종교에서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신관은 아다시피 대충 이러합니다. <저 천상에 어떤 하나의 절대적 인격신(人格神)이 있어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했고, 또 이 인간계를 내려다보면서 섭리하고 관여한다> 제가 보기엔 이러한 신관(神觀)은 인류의 의식이 깨어나기 전인 중세시대 이전에 형성된 수준 낮고도 미개한 신관이라는 것입니다. 원시인들이나 미개인들은 <神>이라는 것을 대개 인간을 다스리고 심판하는 두려움의 존재로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구약성경의 <여호와신>이라는 것도 그러한 유대민족의 미개한 관념이 투영되어 형성된 신인 것이죠. 그런데 인류가 영적으로 과학적으로 이 만큼 발전한 21세기 과학문명시대인 지금도 불교를 제외한 상당수의 종교들이 여전히 그러한 왜곡된 창조주신을 신도들에게 계속 가르치고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교에 따라 너희가 믿는 신과 내가 믿는 신이 다르다는 착각과 심지어는 자기네 종교가 믿는 신만이 우월하고 진짜신이라는 지극히 유치한 서로간의 분열과 싸움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무지몽매한 종교인들에 의해 수천 년간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인류가 창조주라는 존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우주적 신관정립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럼 진정한 창조주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는 창조주란 결코 기존종교에서 믿고 있듯이 하나의 인격신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존재는 바로 이 우주 자체에 깃들어 있는 거대한 정신(精神), 또는 영(靈), 의식(意識)이며 또한 거대한 힘이고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존재는 모종의 원대한 <법칙과 원리>로서 우주를 움직이면서 천, 지, 인 삼계를 주관하고 운행시키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흔히 "무소부재(無所不在)한 존재"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어디에나 계시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 자체에 세세히 깃들어 있지 않으면, 무소 부재 할 수가 없지요. 따라서 우리 인간 자체 속에도 그 분의 속성과 성품이 그대로 잠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러 석가모니 부처님은 "불성(佛性)"이라 했고, 그리스도는 "신성(神性)"이라 했습니다. 최근의 발전된 인간의 과학은 우주가 일종의 "홀로그램(Hologram)" 이고 "프랙탈(Fractal)" 원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언급하고 있고, 이는 곧 부처님의 설법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과학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홀로그램>과 <프랙탈> 구조는 "부분 속에 전체의 속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를 계도하기 위해 지상에 왔던 모든 선각자, 성인, 각자(覺者)들은 사실 인류에게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 창조신의 속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으니 우리 각자는 본래 신(神)의 작은 분신(分身)이자 창조주의 몸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세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수양하고, 수도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영성공부를 하는 모든 행위가 잠재된 불성 또는 신성을 일깨워 각자가 부처(佛)가 되고 신(神)이 되자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조주와 부처님의 관계를 질문하셨는데, 이미 설명했듯이 창조주를 하나의 <개체적 인격신>으로 상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창조주는 우주 전체이고 부처님은 개체이고 부분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개체이고 부분이면서도 자신이 본래 전체의 속성을 고스란히 담은 전체의 한 부분이고 또 전체 그 자체이기도 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완성해 전체로 환원시킨 위대한 존재입니다. 동양의 <주역(周易)>은 우주의 생성 원리를 철학적으로 풀이해 놓은 것인데, <무극(無極)>의 개념은 우주 삼라만상의 상대계가 창조되기 이전의 절대 계(太虛, 空)를 상징합니다. 이 절대 계에서 삼라만상의 상대계가 생성되어 나왔으며, <태극(太極)>은 이를 표현한 개념입니다. 상대계가 창조될 때 창조주 의식(意識)이 스스로를 분화(分化)하여 창조를 대행할 주요 하위의식(下位意識)들을 낳았고, 이 하위의식들이 다시 세포분열 하듯이 또 다른 의식체(意識體)들을 낳아, 우주 전역에 흩뿌려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의식 체들이 바로 우주 전역에서 각양각색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영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혼들이 <진화법칙>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여 영적완성을 이루었을 때, 각자 누구나 부처(佛)가 되고 신(神)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영혼들은 누구나 존귀한 존재들이며, 미래의 예비적 소창조주(小創造主)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우리 인간들을 <집나온 탕자(蕩子>로 비유했고,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했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망각한 본래의 신분, 즉 "신(神)의 아들"임을 깨닫고 완성하여 "아버지의 집(無極世界)"으로 귀환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50. 부처님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부처, 즉 산스크리트어로 붓다(Buddha)란 "완전한 각자(覺者)"를 의미합니다. 제가 보기엔 부처님은 "개체적 영혼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 진화의 정점(頂点)"에 계신 분입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붓다의 경지에 이른 영혼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행성, 하나의 태양계 내에 1~2 정도가 있지 않을까 추측되며, 따라서 붓다와 같은 존재들은 우주 내에서 최소한 한 행성, 하나의 태양계의 최고 관리자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우주는 너무나 광대하므로 우리 은하계 내에만도 최소한 몇 천, 몇 만 이상의 붓다가 존재하는 지도 모르지요. 궁극적으로 우주 내의 모든 영혼들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붓다라는 정점>에 도달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것이 하늘이 정한 진화법칙이고 우주법칙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이 지구라는 별에 "그대들도 모두 깨달아 나와 같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시범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또 교사(校師)로서 오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그 맡았던 사명이나 역할은 약간 달랐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