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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동방박사들의 경배 방문과 헤롯의 유아 학살 및 아기 예수의 피신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1:1-4:11절까지 이어지는, 구속주요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개시하기 이전의 주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 및 공생애 개시 준비를 보도하는 일련기사의 연속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저자 마태는 우리 구주 예수의 여러 측면중 주님께서 구속주(救贖主)로서 성도와 우주에 대하여 가지신 메시야직을 집중 강조하고 있다. 이에 전장에서 마태는 예수의 족보와 동정녀 탄생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예수께서 구약 시대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거듭하여 메시야(the Messiah)가 태어날 것으로 약속된 바로 그 혈통에서 나신 사실과 남 ․ 녀의 육적 결합이 아니라 성령의 잉태로 성육신 하신 사실은 결국 예수 메시야직의 신적 기원 및 역사적 정통성을 입증하는 것임을 강조했었다.
한편 이제 저자는 본장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계시로 아기 예수가 메시야임을 인지하고 경배하러 찾아온 이방 출신의 소위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 방문과 관련된 일련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전장에서 구약 언약(covenant)의 성취로 오신 메시야 예수의 탄생은, 동시에 구약 여러 예언(prophecy)의 성취이기도 함을 보여 주어 결국 예수의 메시야직의 확실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아기 예수가 탄생 직후부터 사탄(the Satan)의 사주를 받은 세상 지도자들로부터 핍박받은 사실을 보여 주어 처음부터 예수의 구속사역이 수난을 무릅쓴 지극한 희생과 사랑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 이를 보다 더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전반부 1-12절은 하나님께서 메시야 탄생의 징표로 보여준 한 별을 보고 메시야를 찾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이 메시야 곧 왕으로 나실 분은 의당 어느 한 나라의 왕자로서 태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먼저 당시의 팔레스틴 전역의 통치자인 헤롯 대왕을 방문하였다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떠나 아기 예수를 발견하고 경배 드린 반면 헤롯 대왕은 정치적 야욕에서 아기 예수 살해를 꾸미게 되는 과정이 소개된다.
이 대목을 구속사적으로 개관할 때에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첫째 아기 예수의 탄생이 구약 예언의 분명한 성취였다는 사실이다. 어느 한 사건이 발생하기 수백 년 전에 그에 대한 예언이 있었고 그것이 훗날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신적 개입이 있는 것으로 먼저는 그 예언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성취된 사건은 신적 경륜(經繼)에 의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이처럼 예수의 탄생이 구약의 예언대로 진행된 것은 성경 예언의 확실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예수 탄생은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예비된 구속사적 사건이며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는 절대 신성을 가지신 우리의 구속주요 메시야이심을 확증한 것이었다. 둘째로 우리는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별의 계시만 받고도 경배하러온 반면 당시의 유대 박사들은 이론적으로는 구약 율법과 예언에까지 도통하였으면서도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경배치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예수의 탄생으로 개시된 신약시대에는 일부의 유대인들을 제외한 유대인 전체는 오히려 예수를 배척하는 반면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돌아와 신약 선민이 되어 교회를 형성할 것의 예표(豫表)라 하겠다(시 10:15; 사 60:1-4). 또한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믿음과 순종이 없는 한 그저 머리로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참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거나 믿을 수 없음을 교훈 받는다.
후반부는 13-17절은 앞 단락의 동방박사들의 방문 사건과 연결되어 그들의 방문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 아기 예수가 훗날 자신과 자신 가문의 정적(政敵)이 될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고 유아 살해를 시도하였으나 하나님 이 도우심으로 아기 예수는 무사히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귀환하여 유대 북부지역인 갈릴리 근처 나사렛에서 성장하게 되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세상을 구원하러 성육신하신 예수께서는 심지어는 아직 젖먹이였을 때부터 이 세상의 정치, 종교적 권력자들에게 핍박받아야 했음을 발견한다. 즉 예수는 이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 마치 그것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는, 영적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께 대항하여 죄로 물든 이 세상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원수 사탄의 사주를 받은 세상 권력자들로부터 핍박받으셨던 것이다. 이는 사탄이 공중 권세 잡은 이 세상(엡 2:2)을 훼파하시고 새 세상을 세우시려는 주님의 메시야 사역에 저항하여 사탄과 그의 세력이 발버둥치는 장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들의 모든 악행은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으로 허사로 돌아갔다.
저자 마태가 아기 예수의 모든 고난이 우연한 것이거나 힘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이미 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계획되었고 예언되었던 것의 성취일 뿐이었으며 이런 사탄의 악행은 하나님의 신적 보호와 직접적 간섭으로 저지되었음을 강조하는 이 후반부의 기사에서 강조하는 것도 결국 다음 2가지이다. 즉 예수는 여러 예언 성취가 보여 주듯이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신 확실한 메시야이시며 또한 그분은 하나님의 절대 사랑과 보호를 받는 신적 기원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구속사역을 집행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시라는 구속사적 진리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외울 말씀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 2:6)
예수의 탄생과 동방 박사들의 헤롯 방문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동방 박사들의 베들레헴 예수 경배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아기 예수의 애굽 도피
13 ○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헤롯의 유아 학살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아기 예수의 나사렛 귀향
19 ○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본문 & 자료노트
도표-2:1-12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
동방 박사들은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구약의 메시야 예언을 잘 알았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몰라볼 때 오히려 그를 찾아와 경배하고 영광을 돌렸다. 이 같은 행위는 동방 박사들이 말한바 유대인의 왕, 즉 메시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소동하며 당황한 유대인들의 태도와는 크게 대조된다. 이것은 성경을 지식적으로 깊이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성경을 알되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믿는 마음이 없는 자들보다 더 나은 자임을 암시해 준다. 이제 동방 박사들의 행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그리스도의 별을 찾음(2절)
2. 그리스도의 별을 따름(9절)
3. 그리스도께 나아옴(11절)
4. 그리스도께 경배함(11절)
5.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12절)
인물 연구-2:1 헤롯 대왕
본장 연구 자료 참조.
난제 해설-2:1-18 예수 탄생 연도설
눅 2장 자료 노트 참조.
원어 연구-2:2, 경배하다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로스퀴네오'( )인데, 이 단어는 특별히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마가는 이 단어를 단지 2회,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3회, 사도행전에서 4회 사용했을 뿐인데 비해, 마태는 13회, 요한은 복음서에서 9회, 계시록에서 24회나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입 맞추다'라는 뜻의 '퀴네오'( )와 '~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다'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프로스'( )가 합성된 단어로서 일차적인 의미는 '입맞춤으로 존경심을 표하다', '엎드려 절하여 존경심을 표하다'이다. 여기서 '경배하다'(마 4:9), '예배하다'(요 4:27), '절하다'(마 8:2; 막 5:7; 행 7:43)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한편 본문에서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의미는 단순히 인간적인 존경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종교적인 용법으로 사용되어 유대인들이 명절 때에 성전에서 드리는 정통적인 예배를 지칭하기도 하기 때문이다(요 12:20; 행 8:27). 또 우상을 숭배한다고 할 때에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계 14:9,11; 20:4).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단순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초월하여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성자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성격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실로 아기 예수의 탄생은 곧 구약에서 예언된바 유대인의 왕일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메시야의 오심이었다. 따라서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의 의미는 유대인들은 그 왕,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았으되 오히려 모든 이방인들의 대표로서 동방 박사들이 그 왕을 영접하였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리 배경 -2:1-23 본장에 나타난 예수의 명칭 7가지
본장은 예수의 족보와 그의 탄생 예언 및 탄생에 관해 기록한 전장(前章)에 이어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아기 예수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이 본장에 나타난 예수의 명칭은 그가 인성과 신성을 다 갖춘 메시야이시며, 유대인의 왕이심을 분명히 알게 해준다.
1 | 예수(1절) |
2 | 유대인의 왕(2절) |
3 | 그리스도(4절) |
4 | 다스리는 자(6절) |
5 | 아기 (8절) |
6 | 주의 아들(15절) |
7 | 나사렛 사람(23절) |
지리 배경-2:1 베들레헴
눅 2장 자료 노트 참조.
보감 - 2:11 동방 박사의 세 가지 예물의 의의
등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가장 먼저 나아와 경배드린 이방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보다 높은 자나 왕께 경배할 때 예물을 바치는 고대 풍습에 따라 아기 예수께 세 가지 예물을 바침으로써 예수를 경배의 대상으로 인식한 자들이다. 또한 이들이 바친 예물들은 각기 상징적인 의의를 지니는데, 그것에 대해 한 번 알아보자.
일빈적 용례 | 상징적 의의 | |
황금 | 매우 귀하고 불변함 | 예수의 왕권 |
유향 | 향기로운 향품 | 예수의 신성(神性) |
물약 | 시체를 염하거나 부패 방지 | 예수의 수난과 대속 죽음 |
역사 배경-2:1-23 신약 시대의 역사적 배경
본권 신약 총론 참조.
주요 주제-2:5,6,15,18,23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과 전진성
본권 신약 총론 특별 자료 참조.
주요 주제-2:6 예수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
본권 사복음서 개론 특별자료 '예수 시리즈' 참조.
지도-2:13-23 예수의 애굽 피난 및 귀환 경로
2:1-12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방문과 경배
앞장에서는 메시야의 혈통에 대한 소개와 탄생에 대하여 소개한데 이어, 본장은 예수님의 탄생 직후부터 공생애가 준비되고 시작되기 전까지의 약 30년간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중 본문은 앞장에서 소개된 천사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자, 동방으로부터 수천 km를 여행해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서 그 앞에 경배한 기사를 소개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경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에 의해서까지 '왕'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겠다. 또한 이는 결국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며 온 인류의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본서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탄생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은 동방 박사들의 경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대신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의 경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눅 2:8-27). 따라서 본문의 내용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이방인들과 유대인 중에서도 비천한 계층의 사람들이 맨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깨닫고 복음의 기쁨을 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선지자 미가의 예언(미 5:2)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무지와 어두움에 빠져 메시야의 강림(降臨)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한다.
① 메시야의 탄생에 경배한 자들은 율법에 정통한 자들이 아닌 이방인과 비천한 신분의 목자들이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 역시 영적으로 근신하여 깨어 있는 자만이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마 24:42'44; 25:13; 살전 5:6). 그러므로 비록 신학적으로 박학다식(博學多識)하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할지라도, 그의 지식이 신앙을 보중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악의 세력들에게 있어서 두려움과 배척의 대상이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기쁨과 경배의 대상이시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크게 소동했으며 심지어 메시야를 죽이려는 음모마저 꾸몄다(7,8절).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크게 기뻐하면서 그 앞에 엎드려 경배했으며 황금과 유향과 물약을 예물로 바쳤다. 자신들의 악한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여 구원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들은 장차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 천국에서 배척받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두려움과 심판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요 3:29; 계 18:15-20).
③ 동방 박사들은 당시 최고의 경배 대상에게 바치던 황금과 유황과 물약을 예수님께 드렸다(11절). 여기서 황금은 영원히 불변하실 예수의 왕적 권위, 유향은 예수의 거룩하심과 제사장적 권위. 물약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이는 결국 예수는 우리의 왕이요, 제사장이요, 구세주이심을 보여 준다. 이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 '동방 박사의 세 가지 예물의 의의'를 보다 참조하라. 실로 예수는 동방 박사들의 세 가지 여물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2:1 헤롯 왕 때에. - 본서 1장에서 마태는 예수가 다윗의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할(삼하 7:13; 눅 1:32,33)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족보를 통해 강조했다. 이제 본절에서 마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예수의 탄생 시기가 헤롯 왕이 통치하고 있던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역사 한 가운데에 오신 때를 밝히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헤롯은 B.C. 37년에 왕위에 올라 B.C. 4년에 죽었다(Schurer). 그런데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헤롯은 B.C. 4년 3월 12-13일에 있었던 월식(月蝕)이 있은 직후에 죽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헤롯이 죽기 적어도 몇 달 전에 나셨을 것이므로(15-20절), 시기적으로 B.C. 5년 말이나 B.C. 4년 초에 나셨을 것이다(Williams).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헤롯 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다. 즉 그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 사람 안티파터 2세(Antipater ll)의 아들이었다. 때문에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반감을 받아 왔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반감을 회석시키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B.C. 20년에는 제 3성전인 헤롯 성전 재건을 시작하기도 했다. 헤롯 성전에 대해서는 눅 19장 연구 자료를 참조하라.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유대인들의 반감을 완전히 무마할 수 없었다. 더욱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 사상이 고조되어 있어서 항상 반란의 기미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헤롯이 동방 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2절)라는 말을 듣고 2살 이하의 유아들을 학살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한다(16절). 즉 헤롯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메시야가 나타나면 그가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왕가의 위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헤롯의 가계는 공관 복음서에 매우 자주 등장한다. 이 헤롯 가계와 헤롯에 대해서는 신약총론, 신약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필히 참조하라.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 마태가 예수의 탄생한 곳이 구체적으로 유대(Judea) 베들레헴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갈릴리 지방에 위치한 동일 지명(수 19:15)과 구분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Bruce, slummer) 그 보다도 미가의 예수 탄생 예언(미 5:2)이 진실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8km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눅 2장 자료노트 참조. 이곳은 다윗의 고향이기도 한데(삼상 16:1) 구약에서는 '에브랏'(창 48:7; 룻 1:2; 삼상 17:12) 혹은 '에브라다'(미 5:2)로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성경에서 베들레헴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야곱의 아내인 라헬의 죽음과 관련되어 나타난다(창 35:16-20). 그래서 베들레헴은 야곱에게 큰 슬픔을 준 곳이고 야곱은 이곳에 라헬의 무덤을 표시하는 기둥을 세웠다. 그러나 이제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함으로써 이곳은 생명의 장소일 뿐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과 장차 다윗의 왕위와 왕국이 확립될 소망의 장소로 여겨지게 되었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 '동방으로부터'(아포 아나톨론)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떠오르는 곳으로부터'라는 뜻으로' 그 위치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하여 학자들은 '동방'을 페르시아(Vincent), 바벨론 또는 메대(Carr), 아라비아(Burce) 등 다양하게 제시한다. 이 같은 다양한 견해들 가운데 '동방'이 바벨론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왜냐하면 바벨론에는 예루살렘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고 박사들이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유대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박사'들에 대해서는 그 신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점성학자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본절의 '박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고이'( )는 보통 '천문학자' 또는 '철인'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Williams).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이들이 셋이었으며' 그 이름은 가스촐(Caspar), 메키올(Mechior), 발다살(Barthasar)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의 학자들은 '마고이'가 이방의 왕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Olshausen, Wycliffe), 이는 왕들이 와서 메시야를 경배할 것이라고 하는 예언(시 68:29,31; 72:10; 사 49:7; 60:1-6)에 기초한 것이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른 것은 당시 예루살렘이 왕도(王都)였고, 정치 ․ 종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이 그곳에서 태어났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2 유대인의 왕. -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들이 유대 출신이 아니라 먼 나라의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준다(Plummer). 또한 '다윗의 자손'(마 1:1;9:27; 12:23)이라는 말이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들의 별칭이었듯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은 당시 이방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메시야의 별칭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은 단순히 한 유대인의 왕을 가리키지 않고 유대에서 탄생하는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메시야를 알고 찾아온 자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다. 하나님의 친 백성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영적 무지로 인하여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 사실도 몰랐거니와 도리어 멸시했던 것이다.
그의 별을 보고. -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에게 특별한 표적을 주셨는데 그것은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됨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이 별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동방 박사들이 어떻게 해서 이 별의 출현을 유대인의 왕의 탄생과 직결시키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질문인 그 별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는 박사들이 본 별의 정체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 별이 일반적인 별보다 다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또 심지어 일정한 위치에 머물러 서기까지도 하는 것을 알게 된다(9절). 따라서 이 문제는 하나님의 비밀로 돌려야 하며 성경에 밝혀져 있지 아니한 천문학적인 현상은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하나님께서 별을 연구하던 그 박사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계시, 곧 '별'의 언어로 '계시하셨던' 사실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친절하신 은혜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제기된 질문은 메시야를 별로 상징하는 것이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나므로(민 24:17; 계 22:16) 그 해결책을 보게 된다. 아브라함의 자손의 수를 별에 견준 것과(창 15:5), 신약에서도 메시야를 별로 표시한 것들을 볼 때(벧후 1:19; 계 22:16) 박사들이 메시야 탄생과 별의 출현을 쉽게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별이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셨음을 알게 된다.
경배하러 왔노라. - 본절의 '경배하다'(프로스쿠네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복종하다'라는 의미로 특별히 신약 성경에서는 주로 그 대상을 하나님과 예수께 한정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서의 '경배'는 동방인들의 전통적 인사법에 따라 무릎을 꿇고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禮)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즉 마태는 지금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예를 표할 목적으로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 본문의 '소동한지라'(타랏소)라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뒤흔들다', '흥분케 하다', '괴롭게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헤롯왕과 당시의 예루살렘 거민들의 심적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잘 묘사해 준다. 그런데 이처럼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메시야 탄생의 소식을 듣고 소동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헤롯이 소동한 이유는 유일한 '유대인의 왕'은 헤롯 자신이었고 또 로마로부터 이 칭호를 수여 받았는데,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자신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음모로 밖에 들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때는 헤롯의 통치 말년이었고 그가 폭군인데다가 집권욕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황권 교체에 따른 정변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앞에서도 밝혔듯이 헤롯은 다윗의 계보를 따른 정통성 있는 왕이 아니었다. 사실상 그는 야곱의 후손이 아니었고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거민이 소동한 이유는 메시야 탄생의 소식이 헤롯에게 새로운 적대감을 형성케
하여 그의 잔인한 학정이 다시 시작되리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도 헤롯은 유대인들의 반역에 대한 과대망상증 때문에 그의 유대인 아내 미리암느와 그의 아들들을 살해하기도 했었다(Josephus).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 헤롯 황은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약속과 그 메시야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소망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팽배했던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유대인의 왕'과 '메시야'가 동일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이 탄생한 곳을 찾아내 일찌감치 후환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헤롯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장소가 어디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헤롯은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곧, 유대인의 공식 대표자들, 즉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서기관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은 율법에 능통해 있어서 메시야가 어디에서 나실
것인가 하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한편 헤롯이 불러 모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모임 성격에 대해서는 그들의 당시 법적인 공의회였던 산혜드린(Sanhedrin)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Dewette, Holtzmann). 그러나 당시 산헤드린에는 대제사장과 서기관 외에 장로들도 포함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은 주로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헤롯의 자문 역할을 했던 개인적인 성격의 단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Vincent, Bruce, Jonhson). 대제사장. - 헬라어 원문에는 '대제사장들' 이라는 복수로 나타난다. 이는 당시의 대제사장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즉 본래 대제사장직은 종신직으로 아론의 자손 중에서 한 사람만이 할 수 있었으나 헤롯 당시에는 로마가 자기 임의로 대제사장직을 임면(任免)했던 까닭에 현직의 대제사장 외에 그의 대리자, 전직자 등이 있었고, 그외 실제로는 대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종교적으로 유력한 자가 대제사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것이다(Josephus).
서기관들. - '서기관들'(그람마튜스)이란 본래 공적인 문서를 관리하는 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행 19:35). 그러나 유대교에서의 서기관은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랍비 또는 율법사(마 22:35; 눅 5:17)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체질상 대제사장들과는 함께 어울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들은 모두 바리새파와는 경쟁 관계에 있는 사두개파에 속했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의 유대교 분파의 종류와 특성에 대해서는 본서 서론을 참조하라. 아무튼 헤롯이 이처럼 체질상 모일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함께 부른 것은 그들의 경쟁 심리를 이용하여 '유대인의 왕'의 탄생지에 대해 보다 분명히 알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 매우 흥미롭게도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2절)와 '그리스도'를 연관시키고 있다. 이것은 곧 의심할 여지없이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고 그가 세상에 태어나실 것을 믿고 있었음을 반영해 준다. 한편 본문에서 '물으니'(에쥔다네토)라는 말은 '시험 삼아 물어 본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로 미완료 시제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헤롯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에 대한 자신의 의구심을 풀기 위해 계속 집요하게 묻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2: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기록된 바.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지가 될 장소를 묻는 헤롯의 질문에 지체 없이 그곳이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대답의 근거를 '기록된 바'(게그라프타이)라고 하여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 탄생에 대해 예언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그 예언이 '선지자를 통해서'(디아 투 프로패투) 예언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메시야 탄생의 예언이 그 장소와 성격에 있어서 너무나 분명함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답은 또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풍부한 성경 지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선지자들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그대로 믿었음을 반영해 줄 뿐만 아니라 오실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가 매우 컸음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헤롯의 질문에 즉각 대답할 수 있는 성경 지식을 많이 갖추었지만 메시야를 영접할 마음의 자세는 갖추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메시야를 배척하는 자들이 되었고'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주님을 영접할 기회를 빼앗기는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2:6 유대 땅‥‥목자가 되리라. - 본절은 미 5:2을 인용한 것이다. 물론 본절과 미가서의 내용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한편 미가서와 본절의 차이점을 도표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차 이 점 | 해석 | ||
미 6:2 | 마 2:6 | ||
1 | 베들레헴 에브라다 | 유대 땅 베들레헴 |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시적, 고전적 표현 |
2 | 유다 족속 중에 | 유대 고을 중에 | '족속'은 '고을'의 의인화된 표현 |
3 | 작을지라도 | 가장 작지 아니 하도다 | 두 기록이 동일하게 베들레헴이 작은 성읍이나 메시야의 탄생으로 중요한 성읍이 될 것을 나타내 주는 표현 |
4 |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 |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 마 2:6에 '목자'가 첨가된 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바로 다윗에게 주어진 언약의 성취자 (삼하 5:2)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임 |
2:7 이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테'( )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본서에 자주 사용되는 본서의 특징적 용어의 하나로, 본절에서는 '그리고 나서', '그때에' 등을 나타내는 시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헤롯이 가만히. - 이는 헤롯이 예수가 태어난 정확한 시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물은 사실을 가리킨다. 즉 헤롯은 '유대인의 왕'을 죽일 음모를 은연중에 벌써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헤롯이 이처럼 은밀하게 일을 꾸민 것은 ① 그 일을 공개적으로 수행할 경우 유대인의 새 왕의 권한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② 위기에 처한 부모들이 아이를 도피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Williams).
박사들을‥‥자세히 묻고. - '자세히 묻고'(에크리보센)라는 말은 '꼼꼼하고 정확하게'라는 의미이다. 헤롯은 이처럼 별이 나타난 정확한 시간을 자세히 알려고 하였다. 이는 그 별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과 동시에 나타났으므로 별의 출현 시각을 알면, 곧 아기의 나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자세히 알아보고. - 헤롯은 이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자세히 입수하여 확실히 그를 죽이기 위해서 그의 격한 감정도 참으며 끝까지 노력하였다. 즉 그는 아기의 탄생 시기와 장소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하여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헤롯의 교활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교활한 간계는 사람의 심중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산산히 부숴지고 만다(13절).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 이는 경건을 가장하여 자신의 추악한 음모를 은폐하려는 헤롯의 위선적인 말이다. 즉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 나신 장소를 확인하여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실행하려고 한 것을 '경배'라는 명목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헤롯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악인들은 때로 자기들의 흉계를 신앙으로 위장한다. 그래서 선량한 사람들을 기만하여 자신을 선하고 경건한 목적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둘째' 악인들은 또 간교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사람들을 이용한다. 그래서 연약한 자들을 유혹하며 순진한 사람들을 속여 자신의 악한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셋째' 악인들의 계획은 치밀하고 주도 면밀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을 철저히 경계하지 않으면 그들의 계략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고전 13:33).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머물러 섰는지라. - 동방 박사들은 헤롯에게서 물러나와 '유대인의 왕'께 경배하기 위해 다시 길을 찾아 나섰다. 그러자 동방에서 그들이 보았던 그 별이 그들을 다시 인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자는 이 별이 항시 있었고 한 자리에 있었으나 박사들이 시각의 착각으로 별이 그들을 인도한 것처럼 느꼈다고 주장한다(Weiss).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수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박사들 모두가 동일하게 시각의 착각을 했다고 볼 수 없으며, 또한 별은 분명하게 박사들을 인도하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머물러 섰다고 본절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별이란 본래 동편에서 서편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면 이 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는 자연 현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 별이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The Shekinah glory of God)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Barbieri).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 문자적으로는 '아기 있는 곳 위에 이르러서는 그 위에 머물러 섰더라'이다. 이는 박사들을 인도한 별이 막연하게가 아니라 정확하게 아기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음을 의미한다(Ridderbos).
2:10 저희가‥‥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본문을 문자적으로 표현하면 '저희가 큰 기쁨으로 대단히 기뻐하더라'이다. 여기서 '가장'(스포드라)이라는 말은 '충만하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사 66:10; 요 3:29; 살전 3:9에서도 흘러넘치는 기쁨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와 함께 예수가 나신 곳을 발견했을 때의 박사들의 '큰 기쁨'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발견했을 때의 여인들의 '큰 기쁨'과 비교할 수 있다(마 28:8). 하여간 박사들의 이 기쁨은 어두움에 있던 자가 빛을 발견할 때의 기쁨이자, 미로를 헤매이는 자가 정로(正路)를 찾았을 때의 기쁨과 유사한 것으로 '유대인의 왕'이자, 인류를 구속하실 그리스도를 찾게된 데 대한 한 없는 기쁨이었다. 이러한 기쁨은 오늘날 세상의 미로에서 방황하다가 길이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4:6)를 발견하는 모든 자가 누리는 기쁨이기도 하다.
2:11 집에 들어가. - 누가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 곳을 '마굿간'으로 말하고 있다(눅 2:7). 그러나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이 여관인지 개인 집인지는 확증할 수 없지만(Williams)'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방 박사들이 찾아간 시기는 예수에서 탄생하시고 약간 시간이 경과하여 어느 집으로 옮겨진 후로 보고(Alford) 박사들이 '마굿간'에 들어간 것보다 '그 집에' 들어간 사실로 이해한다(Hendriksen).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 - 예수의 모친과 아기가 함께 언급되고 있는 곳(11,13,14,20,21절)마다 아기가 먼저 나오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모든 주요 관심사가 마리아가 아니고 아기 예수께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Hendriksen).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성육신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경배'는 왕에 대한 예법이었다. 즉, 메시야로서 유대인의 새 왕이신 아기께 예의를 갖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오직 아기 예수였다. 즉 박사들의 경배의 대상은 마리아도 요셉도 아닌 오직 예수 한 분 뿐이었다. 이는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한편 동방 박사들의 경배의 특징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황금과‥‥예물로 드리니라. - 고대 세계에서는 높은 자나 왕 앞에 나아갈 때는 예물을 가져가는 것이 평범한 관습이었다(삼상 9:7,8; 왕상 10:2). 이러한 배경과 함께 본 내용은 이방의 황들이 메시야께 예물을 드리며 복종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시 45:8; 72:10; 아 3:67; 사 60:6)의 분명한 성취로서 훗날 메시야께 온전히 바쳐질 열국의 부요함을 잘 묘사해 준다(사 60:5,11; 61:6; 66:20; 습 3:10; 학 2:7,8, Barbieri). 한편 박사들이 정성들여 갖고 온 각각의 예물은 신 ․구약 성경에 나타난바 한 가지 이상의 용도로서 사용되었다. 이에 우리는 그 예물에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황금'은 모세 당시에 성막과 그 제구들(출 25-31, 35-40장)을 만드는데 널리 사용되었으며' 또한 솔로몬 당시에 성전과 그 내용물들(왕상 5-7장; 대하 2-5장)을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또 황금은 그 불변의 성질과 찬란함으로 인하여 성경에서 자주
왕권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시 45:9; 전 2:8; 단 5:7,29).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황금'은 곧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암시하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향'(문자적으로는 순수한 향)은 소제(레 2:1,2,15,16)와 결혼 행렬(아 3:6)에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께 예배하는 것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련이 있다(대상 9:29; 느 13:5). 특별히 출 30:37 이하에 보면 유향은 백성들이 사용할 수 없고 '오직 여호와를 위하여만 사용할 지극히 거룩한 향'을 제조할 때 들어가는 재료 중 한 가지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여전히 '나의 향'(겔 16:18)이라고 부르셨다. 이런 사실로 보아 '유향'의 예물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몰약'은 침상(잠 7:17) 혹은 옷(시 45:8)을 향긋하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또 젊은 여인들의 몸매를 더 아름답게 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에 2:12). 또한 술에 타서 마취제로 사용되기도 했으며(막 15:23, 시체를 장사하는 데에 사용되었다(요 19:39'40).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Orison' Hendriksen). 동방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애물의 의의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를 참조하라.
2:12 꿈에‥‥지시하심을 받아. - '지시하심을 받아'(크레마티스덴테스)라는 말은 '문의한 것에 대해 답변을 받았다'는 뜻으로(Vincent' Bengel)' 이는 박사들이 헤롯의 악한 계획에 대해 일찍이 들었으나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던 터에 꿈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계시의 응답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하심은 헤롯의 손에 의해서 죽을 가능성이 있는 박사들을 보호하고, 은혜를 주시는 증거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시는 자를 지키시며 악한 자들의 계교를 막으심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한편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선지자들에게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창 20:3; 37:5; 왕상 3:5:욥 4:13-15; 단 7:1). 그러나 박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런 꿈이 일반적인 꿈과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꿈을 통해 전달되었으나 우리들의 꿈에는 어떤 객관적 신빙성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여간 박사들의 이 꿈은 아기 예수와 박사들의 생명을 지키시고 헤롯의 악한 계획을 무산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볼 수 있다(Gaechter).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서 박사들에게 헤롯을 피하여 갈 길을 분명히 보여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들이 정확하게 어느 길로 갔는지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성경 기자의 관심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있다는 것과 예수를
만난 자의 삶의 길은 이전의 길과는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2:13-18 아기 예수의 애굽 피난과 헤롯의 유아 학살
앞 단락에서는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해롯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간 사실을 소개한 데 이어 본문은 아기 예수의 애굽 피 난 사건(13-15절)과 헤롯의 유아 학살 사건(16-18절)을 소개한다. 즉 동방 박사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달성하려던 애초의 계획이 무산되자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의 모든 유아들을 몰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16절). 하지만 '왕으로 나신' 아기 여수께 대한 헤롯의 미움과 살해 음모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가족을 애굽으로 무사히 피신시킴으로써. 호 11:1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본문의 내용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결코 순탄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고난과 배척의 연속일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아울러서, 요셉 일가의 애굽 피신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었던 야곱 일가의 애굽 이주에 비유되어,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애굽이 상징하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성도들)을 구원해 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본장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본문에는 요셉 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 한 것이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경배를 받은 날 혹은 그 다음 날 밤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눅 2:21에는 생후 8일에 할례를 행하였으며 눅 2:22-38에는 그로부터 8일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마리아의 결례(레 12:2)와 예수의 헌신례를 드렸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로 보건데 동방 박사의 예수 방문 자체는 이러한 모든 일이 지난 후 즉 생후 40일에 있었던 예수의 헌신례 이후에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 역시 동방 박사의 경배가 있은 후 그들이 다른 길로 고국으로 향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헤롯이 자신이 동박 박사로부터 속은 것을 확실히 알고 난 이후에 발생했을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① 성도들의 삶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지만, 비록 시험과 환난을 당하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마땅히 피할 길을 내시기 때문에 결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고전 10:13). 예수님께서 탄생하시자마자 헤롯의 살해 음모가 꾸며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 일가를 애굽으로 피신시켜 보호하심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셨다.
② 악한 세력이 흥왕하고 불의한 자들이 오히려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의 궁극적인 순리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해야 한다. 헤롯왕이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무고한 유아들을 학살한 사건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같이 부당한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하고 불평하며 원망한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죄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시 37:7)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궁
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악의 세려에 대해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시고 그들을 도말하시며, 성도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가져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시 1:5'6; 10:1-18; 27:1-3; 37:9-20).
2:13 주의 사자가‥‥현몽하여 가로되. - 요셉은 두 번째로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있다(1:20; 2:13,19,22). 이러한 직접적인 계시는 박사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지시한 때와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역시 메시야를 보호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나타내고 있다.
일어나‥‥애굽으로 피하여‥‥거기 있으라. - 하나님은 아기 예수의 피난처로 애굽을 지정하셨다. 이는 아마도 당시 애굽이 유대에서 비교적 가까웠고 헤롯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는 안전 지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애굽은 선민의 피난 역사와 매우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즉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야곱이 흉년을 피해 애
굽으로 내려갔었으며(창 12:10; 46:6), 포로 시대에도 예레미야를 비롯해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피난을 갔었다(렘 26:21-23; 43:7). 그리고 이제 아기 예수께서도 헤롯의 음모를 피하여 애굽으로 가게 되신 것이다. 아무튼 예수께서 그의 생애 가운데서 팔레스틴 지역을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그가 유대 땅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이방 땅으로 피난하신 것은 실로 비극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2:14 요셉이 일어나서. - 여기서 '일어나서'(에겔데이스)라는 말은 단순 과거 수동태 시상으로 행동의 즉각성을 말해 준다. 즉 본절은 요셉이 꿈에서 깨어난 즉시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기 위하여 일어났다는 말이다.
밤에‥‥애굽으로 떠나가. - 예수의 생애는 창세기에 나타난 요셉의 생애와 사뭇 유사하다(창 46-50장).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까지 팔려간 반면, 예수는 헤롯의 시기를 받아 애굽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야 어찌됐든 두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장차 구원 사역을 감당할 자의 신분으로 애굽으로 이주했다는 면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즉 요셉은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장차 선민 이스라엘을 형성할 야곱의 가족들을 흉년에서 구원할 자로 애굽에 이주했으며, 예수는 만왕의 왕으로서 온 인류를 구원할 자로 애굽에 잠시 피난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그림자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예수의 애굽 피난 및 귀환 경로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 지도를 참조하라.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 헤롯은 B.C. 37년에 왕위에 올라 B.C. 4년에 죽었다(1절 주석 참조).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B.C. 4년 3월경에 추하고 심한 질병에 걸려 고생하다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예수께서 B.C. 5년 말이나 B.C. 4년 초에 나신 것이 확실하다면 예수의 애굽 피난 생활은 몇 개월 남짓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 여기서 '애굽에서‥‥불렀다'라는 말은 호 11:1의 인용구이다. 그런데 호세아는 본래 이 말을 예언적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즉 호세아는 이 말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출애굽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마태가 이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즉 마태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과 예수의 애굽 피난 및 귀환 사건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본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 먼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가운데서 택하신 하나님의 '장자'(출 4:22)였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친아들이셨다. 그리고 둘 다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경위가 생명의 위기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볼 때 호세아의 기록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역사적 사건의 내용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부르신 사건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 또는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메시야 생애의 모형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Carr, Barbieri).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 여기서 '속이다'(앰파이조)라는 말은 '조롱하다' 혹은 '놀리다', '비웃다', '기만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마 27:29,31; 막 10:34; 15:20; 눅 14:29; 22:63; 23:36). 따라서 본절은 동방 박사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헤롯에게 가지 아니 하고 자기들의 고향으로 간 것을 안 헤롯이 동방 박사들에게 기만과 조롱을 당한 것처럼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 박사들이 의도적으로 헤롯을 속이거나 조롱한 것이 아니라 헤롯 자신의 계략에 자기가 빠지고만 것이었다. 그럼에도 헤롯이 스스로 기만 당했다고 여긴 사실에서악인들의 추악한 속성을 보게 된다.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본문의 '지경'(호리오이스)이라는 말은 오늘날 '해변'(coast)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웃 지방이라는 뜻으로 베들레헴 주위의 인접 지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두 살부터 그 아래로'(아포 디에투스 카이 카토텔오 카타 톤 크로논)라는 본문의 말은 '두 살 이하'를 가리킨다. 이로 보아 헤롯은 새로 나신 '유대인의 왕'을 실수 없이 살해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헤롯의 잔인한 살상극은 '유대인의 왕'에 대한 영적 무지의 결과였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왕이었으나 헤롯의 왕위를 위협하는 왕은 아니었던 것이다(요 6:15). 한편 이처럼 철저한 유아 학살 명령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죽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바로의 이스라엘의 사내아이 학살 명령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살아난 사건을 상기시켜준다(출 1:15-2:10). 한편 헤롯의 잔인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는 이 잔인한 유아 학살 명령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사건의 역사적 진정성이 자주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자신의 처자까지 이유 없이 죽였던 헤롯의 잔인성과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며 자기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을 위해서는 무자비한 만행도 서슴없이 저질렀던 그의 사악한 모습을 볼 때 이러한 사건이 의심 없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Barbieri).
2:17,18 라마에서 슬퍼하며‥‥라헬이‥‥애곡하는. - 본문은 렘 31:15의 인용구이다. 그런데 렘 31:15은 본래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당시(B.C. 586) 죽임당한 자식들로 인한 백성들의 슬픔을 표현한 말이었다. 여기서 라헬은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로 라마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었고, 야곱은 그녀를 베들레헴 길에 장사하였다(창 35:19). 한편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수 18:25) 예루살렘 북쪽 5km 지점에 위치하는데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당시 이곳을 지났었다. 예레미야는 이 두 사건을 결부시켜 유다 사람들이 포로될 때의 유다 어미들의 슬픔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이제 그 내용을 인용하여 헤롯의 베들레헴 유아 학살과 연관시키고 있다. 즉 본절의 초점은 베들레헴이 아니라 유다 어미들의 '슬픔'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태는 바벨론 포로로 인한 유다 백성들의 슬픔을 또 다른 이방인인 헤롯의 잔인한 학정으로 살해된 베들레헴 유아 부모들의 슬픔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가 이 두 사건을 결부시킨 것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유대인의 왕'이자 구속자이신 다윗의 후손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의 학정과 포로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시고 그들을 위로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신 약속(렘 31:31-34)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19-23 예수의 나사렛 귀환
복음서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본서 역시 예수님의 유년 및 청년 시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과 애굽으로의 피신에 대해 언급한 전 단락(13-18절)에 이어 다시 나사렛으로의 귀향을 소개함으로써 예수의 탄생과 유년 시절 소개를 마무리한다. 그럼으로써 다음 장에서부터 서술될 예수님의 공생애 준비에 대한 도입부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아기 예수를 살해하려던 헤롯 대왕이 죽은 후에' 요셉은 가족을 데리고 원래 자신이 살던(눅 2:4)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아마 요셉 일가의 애굽 체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헤롯 대왕이 그의 통치 37년, 즉 로마 기원 750년(B.C. 4년)에 사망한 것으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가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탄생 시기는 B.C. 5년 말이나 B.C. 4년 초기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장 1절 주석과 눅 2장 자료 노트를 보다 참조하라. 아무튼 헤롯 대왕의 사후에 팔레스틴 지역은 그의 세 아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으며, 요셉 일가의 거주지였던 나사렛은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B.C. 4-A.D. 39년)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헤롯 가계와 그 아들들의 통치 지역에 대해서는 신약 총론, '신약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참조하라. 그런데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나사렛으로 온 것은 당시 유대 땅을 다스리던 아켈라오(Achelaus. B.C. 4-A.D. 6년)가 그의 부친 헤롯 대왕 못지않게 포악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여간 요셉의 일가가 나사렛으로 귀환함으로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리라는 성경의 예언은 성취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본장 23절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다(마 10:29,30).
한편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① 성도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는 자가 복된 삶을 누리게 된다.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의지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하나님의 뜻이 주어지든지 즉시 '일어나서'(14,21절; 마 1:24) 순종하는 자세를 지녔다. 바로 이러한 믿음과 순종으로 인해 요셉은 성육신하신 메시야를 하나님과 사람들이 보기에 지극히 사랑스러운 존재로 양육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었다(눅 2:52). 만약 성도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지니기만 하면, 반드시 주님께서는 지극히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시 23:2,3; 37:5; 잠 16:3).
②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 기간과 훈련을 거쳐야 한다. 비록 예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지만,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에서 무려 30년 동안이나 스스로를 준비하신 후에라야 비로소 3년간의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메시야를 가장 뚜렷하게 예표한 모세 역시 바로의 궁전에서 40년,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다시 40년간 연단 받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어 가나안 땅의 축복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했다(행 7:22,23, 29,30).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이 충성하려는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도 날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여 믿음의 진보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딤전 4:6-16; 딤후 2:15).
2:19 헤롯이 죽은 후에‥‥현몽하여. - 헤롯이 죽은 연대와 당시의 형편은 분명하다. 즉 헤롯은 그의 통치 37년, 즉 로마 기원 750년(B.C. 4년)에 70세의 나이로 병들어 죽었다. 그리고 그의 잔악한 모습에 대해서 상술하고 있는 고대사가 요세푸스의 '고대사'에 의하면 헤롯은 더러운 병에 걸려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며 경련이 계속되는 절망 가운데 죽었다고 한다(Josephus, Ant., XⅦ, 6:5). 15절 주석 참조. 하여간 헤롯이 죽자
주의 사자가 다시금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한 것을 지시하셨다. 그러나 이때가 언제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외경 '예수 유년기 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는 애굽에 약 3년간 머무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확인할 수는 없다. 한편 본절의 '주의 사자가‥‥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라는 표현은 13절의 표현과 일치한다. 이는 예수의 애굽 피난과 이스라엘 귀환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2:20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 본절의 '이스라엘 땅'은 6절의 '유대 땅'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또한 '찾던 자들'(호이 제툰테스)에 대해서는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헤롯과 그가 죽기 5일 전에 그에 의해 학살당한 그의 아들 안티파터(Antiparter)를 가리킨다는 견해(Clarke)와 단순히 헤롯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막연한 지칭이라는 견해(Bengel, Carr, Bruce)가 있는데' 두 견해가 모두 가능성이 있다. 한편 본절은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출 4:19)는 모세 이야기의 반영이다(Hill). 모세의 경우와 예수의 경우가 다른 것은 출애굽 시에는 애굽의 왕이 이스라엘의 원수였는데' 여기서는 유대의 왕이 원수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출애굽 시에는 모세가 애굽에서 피난했다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는데' 여기는 예수가 유대에서 피난했다가 유대로 돌아오고 있다. 출애굽의 경우에는 애굽과 바로가 불신앙 및 완악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예루살렘과 헤롯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 보아 모세는 예수의 그림자였음을 알 수 있다.
2:21 요셉이 일어나‥‥들어오니라. - 본절은 14절의 반복이다. 다만 14절의 '밤에'라는 말이 생략되고, '애굽으로 떠나다'라는 말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아무튼 여기서도 말없이 절대 순종하는 요셉의 모습이 돋보인다. 14절 주석 참조. 한편 예수의 애굽 피난 및 귀환 경로에 대해서는 본장 자료노트' 지도를 참조하라.
2:22 아켈라오가‥‥임금 됨을 듣고. - 헤롯이 죽자 로마 정부는 헤롯이 관할했던 팔레스틴 지역을 셋으로 나누어 그 가운데 유대와 사마리아 및 이두매 지역을 아켈라오(Archelaus)에게 주고, 바타네아(Batanea)와 트라코나티스(Trachonitis) 지역을 헤롯 빌립 2세에게 주어 다스리게 했다. 또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은 헤롯 안디바에게 주어 다스리게 했다(눅 3:1). 이에 대해서는 신약총론, '신약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유대와 사마리아 및 이두매 지역의 분봉왕이었던 아켈라오(B.C. 4-A.D. 6)는 그의 부친 헤롯 못지 않은 잔인한 성격의 독재자요 변덕쟁이로 악명 높았으며, 무능했다. 때문에 그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Augustus' B.C. 63-A.D. 14)에 의해 추방당하고 그후로 유대 지역은 로마에서 직접 파견한 총독에 의해 통치되었다(Josephus). 그런데 요셉이 유대 땅으로 가기를 싫어한 것도 바로 이러한 아켈라오의 잔인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 유대 땅으로 가기를 싫어한 요셉은 또다시 꿈을 통해 주의 지시하심을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당시 갈릴리 지방을 통치하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B.C. 4-A.D. 39)는 당시 팔레스틴 지역을 통치하던 세 명의 헤롯 아들들 가운데서 비교적 제일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때문에 요셉의 일행은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헤롯 안디바에 대해서는 신약총론, '신약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마 14장 연구 자료를 참조하라.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 나사렛은 갈릴리 북방을 담당하던 로마의 부대가 주둔하였던 지역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 마을과 별다른 연관이 없었다. 때문에 나사렛에서 살던 유대인들은 원수인 로마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회색분자들로 취급당했으며,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경멸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요셉과 그 가정이 나사렛에 정착한 이래로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모독을 받으셨다(요 1:46). 그뿐 아니라 '나사렛'이란 말은 예수와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경멸과 무시의 의미로 적용되었다(마 21:11; 막 14:67; 요 18:5,7). '나사렛'의 위치에 대해서는 막 2장 자료노트, 지도를 참조하라.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루려 함이리라. - 본 구절은 예수의 가족이 나사렛으로 이주한 사실을 예언의 성취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직접 예언된 바 없다. 다만 몇몇 예언들이 유사한 방법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참 뜻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태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어느 특정한 장소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에게 관련된 여러 예언들의 뚜렷한 특징, 즉 주님께서 비천한 사람들과 섞여 살며, 유대인들에 배척당하며,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이라는 전반적인 예언의 경향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Bardes). 이와 같은 주장은 다음 사실로 지지를 받고 있다. 우선 이사야는 메시야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가지'와 같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사 11:1). 여기서 '가지'라는 히브리어 단어 '네체르'( )는 '나사렛'과 유사한 자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의미가 '보잘 것 없는 시작'이란 개념을 담고 있어서 관련성을 가진다고 본다. 또한 마 1:22; 2:5,15에서처럼 '그 선지자'(The prophet)라 하지 않고 '그 선지자들' (The prophets)이라 함으로써 어느 특정한 선지자를 지칭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아마도 멸시당하는 메시야의 특성에 관한 수많은 예언들 속에 드러난 개
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 셋째로, 본문의 '그는‥‥칭하리라'(he shall be called)라는 말은 사실 '그는‥‥이다'(he shall be)라는 말과 동일하다. 여기에다 실제 나사렛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었다(요 1:46; 7:52). 따라서 '나사렛 출신' 혹은 '나사렛 사람'이란 말은 동시에 별다르게 내 세울 것이 없는 천한 신분의 사람이란 뜻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곧 이사야가 말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사 53:2)이라고 한 말과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물론 다른 여러 선지자들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마태가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표현한 것은 예수께서 낮고 천한 모습으로 삶을 살며 끝내 버림받으실 것이라는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이 지금 '나사렛 사람'이 되심 속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빌 2:8). 본권 사복음서 개론 특별자료, 예수 시리즈 '예수에 대한 예언과 그 성취' 참조.
연구자료
헤롯 대왕-유아 학살을 자행한 잔인한 피의 대왕
1. 인적 사항
① 헤롯은 '영웅의 아들'이라는 뜻.
② 이두매인으로 헤롯 안티파터 2세(B.C. 55-43년)의 둘째 아들.
③ 로마의 속국으로 있던 유대의 왕으로 재위(B.C. 37-4년).
④ 10명의 아내와 15명의 자녀를 둠.
⑤ 아들 아켈라오가 왕위 계승.
2. 시대적 배경
B.C. 37-4년경. 유대의 분봉왕으로 통치한 인물. 이 시기는 소위 신구약 중간기(B.C. 400-A.D. 4년) 중 그 말기에 해당하는 때로서 B.C.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Pompey)의 예루살렘 점령으로 말미암아 마카비 왕가의 하스몬 왕조가 무너짐으로써 약 170여 년간의 유대 독립 시대가 끝나고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던 때였다. 헤롯은 처음에 부친 안티파터 2세에 의해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되었었다. 그러다 헤롯은 후에 다시 로마에 의해 유대 왕으로 임명되어 로마의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의 신임을 받음으로써 유대 지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그 위치를 확고하게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헤롯이 로마에 대해 보인 과잉 충성은 로마에 대한 유대인의 적개심을 더욱 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헤롯 왕가가 유대인들의 미움을 사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주요 생애
등 극 이 전 | ||
출생 | 1세, B.C. 73년 | |
갈릴리 총독으로 부임 | 25세, B.C. 47년 | |
유대 왕으로 임명 받음 | B.C. 40년 | |
예루살램 정복 | B.C. 37년 | |
유대 왕으로 군림 | ||
등 극 이 후 | ||
반대 세력을 제거 | B.C. 37-25년 | |
왕궁, 요새, 이방 신전 건축 | B.C. 24년 | |
예루살렘 성전 건축 | B.C. 24년 | |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소식 들음 | B.C. 4년 | 마 2:8-13 |
2살 이하의 유아 학살 | 마 2:16 | |
심한 악질로 인해 즉음 | 70세, B.C. 4년 |
4. 성품
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의 처자식과 또 베들레헴의 2살 이하의 유아들을 무참히 죽인 것으로 보아 권력욕이 강하고 잔학한 자(마 2:16).
② 로마의 정권 변화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여 자신의 통치 기반을 확고히 한 것으로 보아 국제 정세에 밝고 처세술이 뛰어난 자.
③ 이방인으로서 30년 동안이나 유대를 통치한 것으로 보아 조직력과 지도력을 갖춘 자.
④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여 왕궁과 요새, 예루살렘 성전 및 이방 신전 등을 건축한 것으로 보아 의욕적인 추진력을 갖춘 자.
5. 구속사적 지위
① 베들레헴의 2세 이하의 유아를 몰살함으로써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훼방하려 했던 사탄의 하수인(마 2:16).
②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영욕에만 집착하는 자의 비참한 종말을 보여준 자.
6. 주요 공적
① 이방인으로서 유대의 왕위에 올라 30년간 통치.
② 거대한 규모의 건축 사업을 통해 문화적 발전 유도.
③ 예루살렘 성전 재건 시도.
7. 주요 실수
① 권력 유지를 위해 수많은 인명을 살해.
② 예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의 2세 이하의 유아를 몰살(마 2:16).
③ 그가 벌인 건축 사업에 이방 신전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 우상 숭배를 부추긴 듯함.
8. 평가 및 교훈
①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온갖 권모와 술수. 또한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헤롯 대왕의 영욕에 넘친 삶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슬픈 종말을 증거해 준다. 더욱이 그 역시 끊임없는 음모로 인해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마침내는 병으로 심히 앓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갈 6:8).
② 탄생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베들레헴의 2살 이하 된 유아들을 모조리 몰살시킨 헤롯의 학살 사건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마 2:16). 또한 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흉악한 궤계와 미혹을 상징해 준다. 실로 사탄은 이토록 무서운 욕망과 집착을 통해 성도에게 도전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러한 사탄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엡 6:11; 벧전 5:8).
③ 유아 학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려는 헤롯을 통한 사탄의 궤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은 계획하신 그대로 면밀히 이행되었다. 이는 사탄의 궤계가 아무리 사악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하심을 증거한다. 이에 마귀를 대적하고 싸워 이겨야할 우리 성도들은 이 싸움의 승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성취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담대히 주의 뜻을 이루어 가야 하겠다(롬 8:35-37).
9. 핵심 성구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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