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믿음이 더해지는 비밀
제가 목회를 하면서 절망스러울 때가 있고 소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떤 대가 절망스러운가? 어떤 사람이 교회생활을 오래했는데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믿음에서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 절망스럽습니다. 어떤 대가 소망스럽습니까? 교우들 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점점 커지고 점점 주님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사람을 볼 때 소망이 생깁니다.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는 구원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엡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을 얻는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얻게 된 것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우리가 무엇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짜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얻은 것에 대해서 자신을 자랑할 것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할 것뿐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또 다른 믿음은 생활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만들고 우리의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크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믿음이 크기 때문에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믿음이 없거나 미약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이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며 살고 변화된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믿음이 더해진다고 할 때 그 믿음은 구원의 믿음이 아니라 생활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주어가 하나님이시지만 생활의 믿음은 주어가 나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지만 생활의 믿음은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부분도 있지만 생활의 믿음은 나의 반응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믿음이 더해질 수 있을까요? 답은 ‘종의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라’입니다. 따라합시다. “종의 자세를 자기고 신앙생활 하자”
본문 7-10절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대해서 주님께서 믿음이 더해지는 비결을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종이 있습니다. 이 종이 밭에 나가서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일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밥상을 차려놓고 “이리 와서 앉아서 먹어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인은 종에게 “밥 차려와라”고 말합니다. 주인은 하루 종일 그늘에서 쉬었고 종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일했는데 일을 마친 후에는 하루 종일 수고한 종이 하루 종일 쉬었던 주인의 밥을 차려주고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 자기는 밥도 먹지 못하고 주인 곁에서 주인을 수종듭니다. 그렇게 해도 주인은 종에게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더해지려면 이 종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명하신 대로 사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정말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처럼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칭찬을 들을 생각도 하지 말고, 상을 받을 생각도 하지 말고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종의 자세를 가져야 믿음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인들 중에는 아주 작은 봉사를 해도 알아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아주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목사를 믿고 사람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 모교회에서는 교회 물건 중에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강대상 옆에 아크릴로 이름표를 만들어서 ‘000 기증’, 악보 보면대에도 ‘000 기증’, 철제 케비넷에는 ‘000 000 000 기증’이라고 3명의 이름이 써져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교회 물건마다 그렇게 사람들의 이름을 써놓으셨을까요? 제 모교회는 굉장히 인간적인 교회였습니다. 교인들끼리 패가 갈려서 제직회를 하면 늘 고성이 오갔고 교회에 분란이 끊이지 않았던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없다보니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을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은 종의 자세가 아닙니다. 종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저는 사역을 하다가 무명의 까마귀를 만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님이 명하신 일을 해야 하는데 물질이 없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돈이 헌금으로 들어옵니다. 무명으로 누군가가 헌신을 합니다. 저는 그분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행할 때 은밀하게 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면 하늘에서 상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너무 민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보시기 때문이고, 하늘의 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우리교회에 권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강대상을 해놓으면서 저에게 “목사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순진해서 그분 말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몇 사람에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강대상을 해놓은 후에 시험이 들었습니다. 왜 시험이 들었을까요? 자기가 강대상을 해놓았는데 목사가 광고라도 해줘야 자기 면이 서는데 제가 광고를 해주지 않았고, 자기가 강대상을 해놓았으니 제가 자기를 칭찬하고 높여주어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아서 마음이 섭섭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그분이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종의 자세가 없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대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종의 자세가 부족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종이다” 열심히 일했는데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왜요? 종이니까요. 잘한 일이 있는데 칭찬을 받지 못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왜요? 종이니까요.
우리 한국교회에 훌륭한 많은 장로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중에 외정시대에 황해도 재령에 계셨던 정찬유 장로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분은 수리조합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버셨고, 그 시대에 그 지역에서 가장 갑부였습니다.
장로님은 자기 집을 지으려고 재목과 모든 것을 준비해 두시고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분이 나타나서 한쪽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기 동쪽을 보아라. 허물어진 성전이 보이지 아니하냐”라는 음성이 들려 그 순간 잠이 깼습니다.
장로님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 하나님의 성전보다 내 집을 먼저 지으려고 하니 이렇게 보여 주시는군요”라고 하며 자기집을 지으려고 준비한 재목을 다 바치고 그 당시 돈으로 3만 원, 현재 돈으로 몇 십억 원 되는 돈을 헌금해서 예배당을 잘 지었습니다.
교회를 다 짓고 나서 교회에서는 [정찬유 장로 기념예배당]이라고 교회 벽에 붙여 놓아서 이 장로님이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를 나오시지 않고 시골교회로 출석하셨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왜 교회에 오시지 않느냐고 묻자 장로님은 “나는 주님의 교회에 나가지 사람교회 안 나간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정찬유 장로님은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종에 불과한 것을 아셨던 분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밀도 있게 살펴봅시다. 10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종은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명령 받은 일을 해야 합니다. 누구의 명령을 받아야 합니까? 주인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교회 모토는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인생을 만든다’입니다. 여기서 위대한 비전은 큰 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부터 온 비전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가지신 계획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이 가지신 위대한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에 헌신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위대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 종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돌쇠야, 내일 읍내에 다녀와야 겠다”, “네 주인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주인이 돌쇠를 부릅니다. “돌쇠야, 돌쇠야” 주인이 아무리 불러도 돌쇠는 대답이 없습니다. 오후 쯤 되었는데 될쇠가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옵니다. 주인이 “이놈 돌쇠야. 오늘 읍내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는데 어디 갔다오느냐?”, “주인님, 명하신대로 읍내에 다녀왔습니다” 그날 돌쇠는 주인에게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왜 맞았을까요?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읍내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읍내에 다녀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주인이 시키고 싶은 심부름이 있는데 주인의 말도 듣지 않고 읍내에 다녀왔다가 매를 맞은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한다고 다 주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목회를 원하시는데 평신도로 충성하면 잘하는 일일까요? 하나님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데 다른 일로 분주하면 잘하는 일일까요?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교회가 매주 한라에서 백두까지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여행을 합니다. 9월에는 백두산에서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려고 32명이 중국에 갑니다. 고된 일입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우리교회가 매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기도여행을 합니다. 물질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겨울에 청소년 무료 수련회를 합니다. 돈 많이 듭니다. 희생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합니다. 왜요? 주인이신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과 대화를 하다가 교회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역들을 이야기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단하다고들 말합니다. 칭찬해주니 감사하지만 저는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왜요?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맞으십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주인이신 그분의 명령을 받고 살아갑니까? 그분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성경으로 말씀하시고, 설교로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경으로, 설교로, 성령으로 명하시는 명령을 듣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습니까? 아멘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믿음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삽시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가 충만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