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시집 『시간의 빛깔, 시간의 향기』
金松培 시의 시간 현상학
李 秀 和 (시인.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시집 『시간의 빛깔, 시간의 향기』(삶과꿈 발행)는 문단의 중견 金松培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으로, 그가 데뷔 이후 줄기차게 몰두해 온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가 시간이란 시적 오브제를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시간 현상학적 세계”이다. 그러나 Plotinos 이래 현대 시간철학의 거봉들인 Kant나 Bergson, Husser이 공감했듯 시간이 곧 우리 인간의 마음(意識, 靈魂)이고 마음이 곧 삶의 이음동어(異音同語)일진대, 김송배 시인의 인간 내면에 대한 시적 탐구로서의 시간의식은 그만큼 관념론에 기울 위험이 항존한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이 시집의 메타 텍스트로 동원된 ‘시간의 빛깔, 시간’의 향기라는 시적 오브제의 구체적 사물이며 그 빛깔과 향기란 두 말할 것도 없이 삶에 대한 김송배 시인의 현상학적 실존의식(사르뜨르나 메를로 퐁티의 先驗主義)이 그의 시간의식을 테마로 한 텍스트마다 구체적인 이미지로 드러나는 감각소재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그는,
시간은 빛깔이 없다. 동시에 향기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교훈을 새겼다. 시간의 자아성찰과 희망을 제공하려는 마력에 공감한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시간, 즉 인간의 의식 현상인 주관적 시간(심리적 시간)과 객관적 시간(물리적 시간)의 존재를 일단 부정하고 있다. 위의 인용에서 보이듯 빛깔과 향기가 없는 시간, 즉 삶이란 얼마나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것인가! 그러나 김송배 시인의 시간(삶의 빛깔, 영혼의 향기)의식은 역동적(소비하는 시간)이고 윤리적(자아성찰과 교훈적 가치의 시간)이며 희망적이다.
김송배 시인의 삶의 시간 태반이 직장 소재지인 동숭동 대학로의 우울한 도시 정서와 관련되어 있음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상충된 포에지가 아닌가도 여겨지는 대목이지만 이는 그의 시간 빛갈과 향기의 현상학을 드러내기 위한 그만의 독특한 미학일터이다.
이제 그런 텍스트를 주목해 본다. 여기 ‘현상학’이란 시니피에는 ‘선험적’과 동의어이다.
날밤 새워 퍼마신 음복술에 취해
시간의 무게에 한없이 짓눌리고 있었다
실타래로 담긴 혼백과의 마지막 대화
사고팔고(四苦八苦)의 굴레를 벗어남이여
그러나 그 시각
지리산 폭우는 또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데.
-- [ 「시간에 대하여 . 5」] 끝 부분
위의 인용부위에서 약여하듯이 김송배 시의 시간 현상학은 색깔과 향기가 없음을 재삼 강조하는언표로 드러나고 있다. 2행에서 ‘시간의 무게에 한없이 짓눌리고 있었다’거나 ‘사고팔고(四苦八苦)의 굴레를 벗어남이여’라는 시적 진술의 포즈와 톤이 그렇다는 것은 시인의 포에지가 시간, 즉 삶
을 무겁다거나 벗어나야 할 멍에의 현상학으로 파악하고 있는데서 드러나고 있는 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 즉 빛깔과 향기 중단(없음. 無)의 시간이 우리의 근원 정서인 사고팔고(四苦八苦=生老病死, 愛離別, 怨憎會, 求得不, 五蘊盛)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음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시간 미학이 현상학적 존재론에 토대하고 있음을 확연하게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1) 어둠으로 솓아지는 저 개울의 눈물
눈물 마신 피라미 하나 둘 온몸 휘어지고
무수한 생명 비틀거리는 폐허...........//
시간의 무게 그토록 무거웁다.
-- 「시간에 대하여.17」 끝 부분
(2) 6.25가 무어 말라죽은 귀신인지, 인자는 잊어삣다
생각하모 할수록 평생 눈물나는 한이재.
-- 「시간에 대하여. 18」 끝 부분
(3) 잊혀진 오솔길에 이슬은 젖어
가난이 묻힌 그 흔적들
그 길은 향기가 없다
무심(無心)의 꽃들만 피어 있다.
--「시간에 대하여. 20」 끝 부분
그의 연작 텍스트 ‘시간에 대하여’ 중 위에 특히 각 텍스트의 후말 부분이 인용된 것은 문법상 기본적으로 텍스트의 테마나 시인의 메시지가 대개는 저러한 서브 코다에 명시되게 마련인 탓이기도 하지만 김송배 시인의 경우, 저러한 사정은 더욱 뚜렸한 성향을 보인다.
이와 같은 시기법상 문제의 호불호를 떠나 김송배 시인처럼 스타일리스트이기 전에 정공법의 보수주의 시법에서는 시인의 포에지나 텍스트상의 언술이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그 효율적인 면에서는 저처럼 효과적인 방법도 없으리라 본다.
어쨌던 김송배 시의 시간 현상학은 위 인용시들에서 볼 때 (1) 공해와 (2) 한(恨)과 (3) 궁핍한 삶의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원망(願望)의 포에지로 파악된다. 부연하자면 김송배 시의 시간 현상학이야말로 빛깔 없는 삶, 향기 없는 삶에 길항(拮抗)한다기 보다 그를 터득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포에지의 역동성을 읽을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그의 시간 연작 텍스트 머리에도 이른바 니체의 영겁회귀(永劫回歸)나 소위 ‘공동체의 이리떼 시각’ 극복(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적 실존의식)의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김송배 시의 시간 현상학이 답지한 그의 포에지의 전향성이라 보여 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기본적으로 이미지 위주의 시인이 아니다. 시의 이미지가 아무리 긴요하긴 해도 자칫 설익으면 유치해지거나 재치 따위를 뽐내서 시인다운 정신의 무게 없는 경망스러운 머크레이커가 되기 쉽다.
이 점에서도 이미지즘 보다는 사무사(思無邪)의 동양미학에 착목하고 있는 김송배 시의 보수주의는 여타 텍스트에서도 그의 견고한 포에지가 비온 뒤 파밭에 새로 드러난 사금파리처럼 날카롭고도 명징하게 드러남을 볼 수 있다.
이 아침
모든 나뭇잎 풀잎 짙게
제 몫의 숨소리까지
숨죽이며 아주 낮게 손짓하는 길섶
한 웅큼 그리움
맑게 이슬로 녹아
내 가슴 깊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날
문득 한 송이 곱게 피어난 꽃을 볼 수 있다
엷게 다시 가녀리게 떨리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의 아픈 메아리
이제사 감싸이는
무지개빛 은은한 그대의 눈시울
지금 막 싸목싸목 번지는 저 향내처럼
붉게 혹은 다른 유채색으로
작게 그러나 모질게
사바(娑婆)에 마악 함께 젖었음을 알 수 있다.
-- 「산책길에 한 생명을 본다」 전문
결코 난삽하지 않은 언어와 레토릭에 실어 또한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제재인 생명의 화엄주의(華嚴主義)를 노래하고 있는 위의 텍스트야말로 김송배 시인의 보수적인 동양미학이 그의 정제된 톤과 겸허한 시적포즈를 바탕으로 움터서 성취되고 있는 경우가 아닌가 한다. 특히 마지막 스탠자에 ‘지금 막 싸목싸목 번지는 저 향내’라든가, ‘붉게 혹은 또 다른 유채색’이라는 향기와 색깔은 결국 그가 이 시집에서 전개하고 있는 포에지의 경계(境界)가 화엄세계(華嚴世界)에 있음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다고 하겠다.
더구나 서브 코다에 제시된 ‘작게 그러나 모질게 / 사바(娑婆)에 마악 나와 함께 젖었음’이라는 미물로서의 생명과 자아와의 위일융합적 화엄주의는 김송배 시의 시간 현상학이 인간 내면에 대한 시적 탐구를 한층 더 존재론적 우위의 경지로 고양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언표일 터이다.
시간 현상학, 즉 아직 경험하지 않은 시간(삶)에 대한 희망을 지닌 김송배 시인의 이 시집이 우리 시단에, 죽음이 모든 철학의 중심 테마가 됨은 결국 인간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티야 말로 인류의 구원의식이란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듯이 그렇게 출발하고 있는 이른바 “시집 거품시대”의 향긋한 청량제가 되리라 희망해 본다. (’99. 3. 『심상』)